“MB 회고록에서 BBK 진실 밝혔어야”
  • 안성모 기자 (asm@sisapress.com)
  • 승인 2015.02.09 14:2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07년 의혹 제기 인사들 “박근혜 대통령에게 재조사 요청하겠다”

“회고록을 내면서 BBK 사건을 쏙 뺀 건 비겁하다.”

2월4일 오전 서울 구로구의 한 사무실. 재미 언론인 출신 김충립 목사(67)의 언성이 높아졌다. 이틀 전 발간된 이명박 전 대통령(MB)의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을 언급하면서다. ‘남북 비밀 접촉 폭로’ ‘해외 정상 발언 공개’ ‘자원외교 자화자찬’ 등으로 한창 논란이 되고 있는 바로 그 책이다. 회고록을 내려고 했다면 자신을 둘러싼 ‘BBK 의혹’에 대한 진실부터 밝혔어야 했다는 것이다.

이번 회고록이 대통령 재임 기간인 2008년부터 2013년까지의 기록을 다뤘으니, 2007년 대선 과정에서 불거진 BBK는 빼도 되는 것 아닌가. 김 목사의 생각은 달랐다. 2007년 대선 당시 미국에 거주하며 BBK 사건을 국내에 알린 그는 “아직까지 실체가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다”며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김 목사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재조사를 요청할 것”이라며 “청원서를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김경준 전 BBK 대표가 2007년 11월16일 귀국 직후 서울중앙지검에 소환되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벌써 7년이나 세월이 흘렀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이 확실시되던 2007년 12월과 ‘당선인’ 시절이던 이듬해 2월 발표된 서울중앙지검과 정호영 특별검사팀(특검)의 수사 결과 이 전 대통령은 BBK 의혹과 관련해 ‘혐의 없음’ 판정을 받았다. 검찰과 특검은 수백억 원의 피해를 가져온 주가 조작과 횡령을 30대 재미교포 사업가 김경준 전 BBK 대표의 ‘1인 사기극’으로 결론지었다. 김 전 대표는 징역 8년에 벌금 100억원을 선고받아 천안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다.

2007년 대선은 시작 전부터 사실상 승패가 한쪽으로 기운 경기였다.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후보 경선이 본선으로 받아들여질 정도였다. 이 전 대통령은 치열한 경합 속에 박근혜 현 대통령을 간발의 차로 제치고 한나라당 후보로 낙점됐다. 특별한 반전이 없는 한 대권은 떼놓은 당상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한 가지 걸림돌이 남아 있었다. 바로 BBK였다. 당내 경선 과정에서부터 온갖 의혹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당시 수사 결과를 바탕으로 사건의 개요를 정리해보면 이렇다. 김 전 대표가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본사를 둔 투자자문회사 BBK를 설립한 건 1999년 4월이다. 그해 10월에는 한국지사를 설립했다. 김 전 대표는 이듬해인 2000년 2월 이 전 대통령과 함께 LKe뱅크를 설립했고, 같은 해 6월에는 e뱅크증권중개(EBK) 설립을 신청해 10월에 예비허가를 받았다. 

문제는 2001년 2월 코스닥 상장 법인 옵셔널벤처스(당시 뉴비전캐피탈)를 인수하면서 불거지기 시작했다. 2000년 12월부터 1년여 동안 BBK·LKe뱅크·MAF펀드 등의 법인 계좌를 이용해 해당 주식 시세를 100차례 넘게 조작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회사자금 319억원에 대한 횡령도 이뤄졌다. 투자사들의 투자금 반환 요구와 고소가 이어졌다.

50억원을 투자한 심텍은 2001년 10월 이 전 대통령의 재산에 가압류를 신청하고 11월에는 이 전 대통령과 김 전 대표를 사기죄로 고소했다. 긴급 체포됐다가 12월 심텍의 고소 취하로 석방된 김 전 대표는 미국으로 도피했고, 고소·고발이 계속되자 법무부는 2004년 1월 미국에 범죄인 인도 요청을 했다. 김 전 대표는 대선 정국이 뜨겁게 달아오르던 2007년 11월 한국으로 송환됐다.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쏟아진 의혹은 하나로 모아졌다. 이 전 대통령이 BBK의 실소유주가 아니냐는 것이다. 이 경우 주가 조작과 횡령 등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검찰은 의혹이 사실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BBK는 이 전 대통령이 아닌 김 전 대표의 회사라는 것이다. 김 전 대표가 ‘BBK는 MB 회사’라는 미국에서의 주장과 달리 자신이 100% 지분을 가진 회사라고 진술했고, 이른바 ‘이면 계약서’도 사실과 다른 문안을 만들어 이 전 대통령의 날인을 받은 것으로 진술을 번복했다는 것이다.

김경준씨의 누나 에리카 김이 2011년 3월9일 검찰 조사를 마친 후 돌아가고 있다. ⓒ 연합뉴스
“MB 제안으로 BBK 설립”

이와 관련해 김 전 대표는 2012년 10월9일 옥중 발간한 자서전 <BBK의 배신>에서 “내가 BBK는 MB 것이 아니며 한글 이면 계약서도 위조한 것이라고 진술한 것은 벌금형 형기만 끝나면 미국으로 이송시켜주고 누나와 처를 선처해주겠다는 검찰의 회유에 넘어가 거짓 진술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BBK 설립이 이 전 대통령의 제안으로부터 출발했다고 밝혔다.

김 전 대표에 따르면, 투자 전문가로 한창 잘나가던 1999년 초 김백준 전 대통령실 총무기획관으로부터 “중요한 분이 뵙고자 한다. 시간을 내달라”는 전화를 받았고, 며칠 뒤 서울 서초동 한 연구원 건물에서 독대한 이 전 대통령은 인터넷 금융 사업에 큰 관심을 보이며 동업 제의를 해왔다고 한다. 이후 긍정적인 방향으로 논의를 이어가면서 사업의 틀을 완성해갔고, 그러면서 본격 사업에 착수하기 전 투자자문회사 BBK를 설립했다는 것이다.

LKe뱅크의 위상과 역할도 의혹을 받는 대목 중 하나다. LKe뱅크가 BBK의 지주회사로서 BBK의 자금 운용과 옵셔널벤처스의 주가 조작에 관여했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LKe뱅크는 2000년 2월 이 전 대통령과 김 전 대표가 공동 설립한 회사다. 김충립 목사는 “검찰에서 BBK만 조사하고 MB는 관계없다는 결론을 냈는데 BBK와 밀접한 관계에 있는 LKe뱅크는 제대로 조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삼성생명 17층을 같이 사용한 BBK와 LKe뱅크를 연속선상에서 조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전 대통령이 큰형 이상은씨와 처남 고 김재정씨가 대주주로 있던 자동차 부품업체 다스의 실소유주라는 의혹도 계속 제기돼왔다. 다스는 2000년 3월부터 12월까지 세 차례에 걸쳐 BBK에 대한 총 190억원의 투자 결정을 내렸다. 이 전 대통령이 다스의 실소유주가 아니라면 190억원이라는 큰돈을 투자할 수 있었겠느냐는 의혹이다. 마찬가지로 이 전 대통령이 BBK의 실소유주가 아니라면 다스에서 그런 투자를 했겠느냐는 것이다.

검찰은 주주들의 주식 이동 등을 조사한 결과 다스의 실소유주는 이 전 대통령이 아니라는 결론을 냈다. 또 다스의 190억원 투자 역시 김 전 대표의 설득에 따른 정상적인 투자라고 밝혔다. 하지만 다스가 2003년 5월 미국에서 투자 사기를 당했다며 김 전 대표를 고발하자 그는 “다스가 BBK에 190억원을 투자했지만 이상은 다스 회장이나 김재정 다스 감사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며 BBK와 다스의 실소유자로 이 전 대통령을 지목했다.

MB 퇴임 후에도 BBK 여파 계속돼

MB 재임 이후에도 의혹은 계속 불거졌다. 2011년 2월 미국에서 생활해온 김 전 대표의 누나 에리카 김이 한국으로 들어와 검찰 조사를 받았다. BBK 관련 의혹을 폭로한 당사자다. 조사를 진행한 서울중앙지검은 김씨에 대해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그런데 당시 에리카 김이 스위스 계좌에 있던 돈 중 140억원을 다스에 송금한 사실이 드러났다. 다스가 투자금을 모두 회수한 것이다. 다스는 앞서 2001년 10월과 12월 두 차례에 걸쳐 50억원을 회수했다.

MB 임기 말기인 2012년 10월 BBK 사건의 법적 피해자인 옵셔널벤처스의 민사소송 대리인을 맡은 메리 리 변호사는 BBK 사건의 주범은 에리카 김이며 이 전 대통령이 대주주이던 회사가 유상증자로 받은 수십억 원의 행방을 검찰이 수사하지 않은 채 덮었다고 주장했다. 에리카 김이 주도적으로 40여 개 유령회사를 설립했고 옵셔널벤처스가 회수해야 할 횡령금 140억원을 다스로 불법 송금했다는 것이다.

미국 변호사였던 에리카 김은 1994년부터 이 전 대통령과 친분을 가져왔다. 그해 4월9일 이 전 대통령(당시 국회의원)이 미국 LA를 방문했을 때 한인교회에서 처음 만났다. 이듬해인 1995년 10월11일 에리카 김이 서울 힐튼호텔에서 <나는 언제나 한국인> 출판기념회를 열었을 때 이 전 대통령이 참석해 에리카 김과 함께 축하 케이크를 자르기도 했다.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인연을 맺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리 변호사는 또 검찰의 ‘덮어주기 수사’ 의혹을 제기했다. 이 전 대통령이 대주주로 있던 LKe뱅크가 2001년 6월 옵셔널벤처스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로 45억5000만원어치 주식을 무상으로 받았고, 이 돈의 수혜자가 이 전 대통령이 될 수도 있는데 검찰은 수익금이 어디로 갔는지 조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2014년 1월 미국 캘리포니아 주 항소법원은 다스가 김 전 대표의 사기 피해자들에게 140억원을 되돌려줘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에리카 김이 스위스 계좌에서 송금한 140억원의 주인은 다스가 아니라 옵셔널벤처스라고 본 것이다. 이처럼 BBK 사건은 MB가 퇴임하고 박근혜정부가 출범한 이후에도 그 여파가 이어지고 있다.

2007년 대선 정국을 뒤흔들었던 BBK 의혹을 두고 ‘정치 공세’에 지나지 않았다는 비판적인 시각도 있다. 이미 법원 판결로 다 끝난 사안을 다시 거론하는 것은 소모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반면 의혹이 해소되지 않은 만큼 지금이라도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과연 BBK의 불씨는 되살아날 수 있을까. 


“장로라는 자가 권력과 돈으로 진실 왜곡” 
김경준 부모, 재미교포 목사 통해 밝혀


자식을 태평양 넘어 고국의 감옥에 두고 온 김경준 전 BBK 대표의 부모는 현재 어떤 심정일까. 미국 LA에 살고 있는 김 전 대표의 부모는 독실한 크리스천이다. 아버지가 장로, 어머니가 집사를 맡고 있다. 시사저널은 미주한인장로회총회 총무를 지낸 최승구 목사를 통해 김 전 대표 부모의 심경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최근 김 전 대표의 부모를 면담한 최 목사는 2월3일 김충립 목사에게 이메일을 보내왔다. 최 목사는 “애처롭고 답답한 심정을 느끼면서 세상은 무심하고 무자비하고 잔인한 사람들이 지배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고 밝혔다.

최 목사에 따르면, 김 전 대표의 부모는 “장로라는 자가 권력과 돈으로 진실을 왜곡해 다른 사람을 매장시켜버리고, 하나님도 무시하고 자기 권력을 통해 불법과 불의를 자행하는 현실에 대해 아무도 믿을 수 없고 기대할 수 없는 입장”이라고 했다. 소망교회 장로였던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비판으로 여겨진다.

김 전 대표의 부모는 또 “일일이 모든 것을 부모로서 설명하기보다는 속았다는 것과 권력의 압력에 속수무책이라는 것에 한계를 느끼면서 아무에게도 기대를 할 수 없는 처지”라고 했다. 최 목사는 “누구와 대화를 하고 기대하기에는 지쳐 있는 분들”이라고 설명했다. 사람들을 만나고 하는 것은 이미 너무 지친 일이라는 얘기다.

아들이 한시라도 빨리 감옥에서 나왔으면 한다는 바람도 전했다. 최 목사는 “경제사범에 속하는데 이렇게 오래 형을 살 수 있는가. 이것은 의도적으로 사람을 묶어놓는 일이 아닌가 생각된다”고 밝혔다. 아직 형기가 남았지만 대통령 사면을 통해 나올 수 있었으면 하는 기대가 엿보인다. 김충립 목사는 “미국에서도 교계 인사들을 중심으로 탄원서를 낼 준비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