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군 흩어지고, 민심 바닥나고…사면초가 박근혜
  • 감명국 기자·양정대 한국일보 기자 (kham@sisapress.com)
  • 승인 2015.02.10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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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성·유승민 투톱 전 방위 압박…박 대통령 ‘콘크리트 지지층’ 균열로 장악력 약화

제1야당의 최고 수장을 뽑는 전당대회가 여당 원내대표 경선 이슈에 완전히 덮여버린 꼴이 됐다. 정치부 기자들이나 정치평론가들의 얘기가 아니라 2·8 전당대회를 코앞에 둔 새정치민주연합 관계자들 입에서 나온 자조 섞인 한탄이다. 그만큼 2월2일의 새누리당 원내대표 경선이 정치권에 울린 파장은 컸다. 당초 이주영 의원의 무난한 승리를 예상했던 데서 뒤집혀진 결과이기에 더 그랬다. ‘친박(근혜)’의 등에 올라 탄 이 의원이 ‘비박(근혜)’으로 분류되는 유승민 의원에게 19표 차로 완패한 결과를 두고 정국의 ‘분수령’ 또는 ‘변곡점’으로 해석하는 시각이 쏟아지고 있다. 야당 대표 선거는 누가 되든 관심 밖이라는 식이다. 한 정치평론가는 “제1야당 전당대회가 ‘크림빵 뺑소니’ 사건보다 더 관심이 없다”고 촌평하기도 했다.  

새정치연합의 한 중진 의원은 “유승민 신임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빚진 게 없는 사람이다. 게다가 TK(대구·경북) 본류이면서 외교·안보·국방 분야에선 상당히 보수적이지만, 경제·사회·복지 분야에선 중도 개혁 성향이 강해 잠재력이 크다. 한마디로 ‘저평가 우량주’라고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유 원내대표가 국민들 사이에선 아직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지만, 향후 집권 여당 원내대표로서 어떤 모습을 보여주느냐에 따라 여권 내 차기 대권 주자로 부상할 수 있다는 얘기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왼쪽)가 2월4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유승민 원내대표(오른쪽), 원유철 정책위의장과 대화하고 있다. ⓒ 연합뉴스
야당의 유력 대권 주자 중 한 명인 안철수 전 새정치연합 대표도 기자에게 유 원내대표에 대해 후한 평가를 내놓았다. 그는 “무소속 의원 시절 유승민 의원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경제 분야에 상당한 수준의 지식과 개혁적 마인드의 일관된 철학을 갖고 계신 데 대해 놀랐다. 대화도 합리적으로 잘 풀어나가시더라. 여야 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도 크지만, 아마 향후 정부·여당의 경제정책에 큰 변화를 몰고 올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굳이 야당 인사들의 기대감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유승민 신임 원내대표의 등장은 향후 당·청 관계에 큰 변화를 불러올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일각에서는 “김무성 대표의 등장보다, 유승민 원내대표의 등장이 더 파란을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도 나온다.  

여당, 경제·사회 분야 정책 기조 ‘좌클릭’ 예상

유승민 원내대표는 자타가 공인하는 경제 전문가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위스콘신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정치권에 입문하기 전까지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일했다. 정치인으로 변신한 뒤에는 여권의 대권 후보였던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와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 과외교사’ 역할을 했다. 그는 전통적인 의미에서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다. 대구에서 재선(13~14대)을 한 유수호 전 민정당 국회의원의 차남으로 비교적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경북고와 서울대를 나온 후 해외유학을 다녀왔다. 2000년 2월 한나라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장을 맡으며 정치권에 화려하게 등장했고, 이후 17·18대에 이어 현재 19대까지 내리 3선을 하고 있다. 17대는 비례대표로, 18·19대는 대구 동구 을에 출마해 당선했다.

유 원내대표가 전면에 등장하면서 여권은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상당한 변화를 겪게 됐다. 우선 경제·사회 분야 정책 기조의 변화다. 집권 여당의 원내 사령탑이라는 무게감을 감안할 때 새누리당의 정책적 지향은 일정 정도 ‘좌클릭’될 것이 불가피해 보인다. 그가 당선되자마자 여권 내부에서 복지·세금 논란이 표면화하기 시작한 게 단적인 예다. 필연적으로 당·청 관계의 재정립 시도가 본격화하면서 결과적으로 여권 내부의 권력 지형도 변화할 수밖에 없다. “유 원내대표 당선의 일등공신은 연말정산 ‘세금 폭탄’ 논란”(유 원내대표 측 관계자)이라는 얘기가 나올 만큼 박 대통령과 여권을 바라보는 민심은 싸늘하다. 새누리당 입장에선 청와대에 일방적으로 끌려가던 당·청 관계를 바꿔놓지 않으면 내년 총선을 기대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크다.

이는 지금까지 박 대통령의 구심력만 작동했던 여권 권력 구도의 변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미 ‘수평적 당·청 관계’를 강조하는 김무성 대표와 청와대 사이에 긴장 관계가 형성돼 있는 상황이라 당·청 간 권력투쟁은 훨씬 심화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김 대표와 유 원내대표 모두 잠재적인 ‘미래 권력’이라는 점에서, 당장은 두 사람이 협력에 무게를 두겠지만 언제든 파열음이 날 가능성은 열려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1월20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앞서 최경환 경제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 등 국무위원들과 대화하고 있다. ⓒ 연합뉴스
복지·세금·개헌·인적 쇄신 등에서 정면 충돌

유승민 원내대표는 경선 기간 중 박근혜 대통령과의 관계에 대해 “‘친박’이라는 말이 생겨나기 전부터 친박이었고,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친박이 아니었던 적이 없다”고 말했다. 자신이 원내대표가 된다고 해서 당·청 간에 갈등이 조성되거나 하지는 않을 것임을 강조한 말이다. 하지만 이미 여러 정책·정치 현안을 두고 새누리당과 청와대 사이에 이견이 도드라지고 있다. 사실상 지금껏 숨죽여온 새누리당이 유 원내대표의 당선을 계기로 ‘민심’을 명분 삼아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집권 여당의 ‘투톱’인 김 대표와 유 원내대표가 의기투합하는 모양새다.

당·청 갈등의 일차 소재는 조세·복지 정책이다. 김 대표와 유 원내대표는 약속이나 한 듯 박 대통령의 ‘증세 없는 복지’ 정책 기조를 강한 어조로 비판하고 나섰다. 이들 정책은 담뱃값 인상과 연말정산 파동, 건강보험료 부과 체계 개편 논란 등 민심 이반을 부른 잇단 정책 혼선의 직접적인 원인이자 야당이 강력 요구하는 법인세 인상을 비롯한 증세 문제와도 연관된 민감 사안이다.

유 원내대표는 이른바 ‘초이노믹스’(최경환 부총리의 경제정책)에 대해서도 상당히 비판적이다. 현 상황에서 돈만 쏟아붓는다고 해서 경기가 살아나기 어렵고, 이는 결국 국민적 부담으로 귀결된다는 생각이 강하다. 결과적으로는 박 대통령의 ‘경제 혁신 구상’이 틀렸다고 보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경제 블랙홀’에 비유했던 개헌 문제를 두고도 당·청 간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대표적인 개헌론자인 김 대표에 이어 유 원내대표도 “개헌 논의 자체를 인위적으로 막아선 안 된다”고 가세하고 나섰다. 야당과 ‘친이(명박)계’의 목소리가 더 큰 개헌 문제에 대해 여당 지도부가 좌판을 깔게 되면 순식간에 정치권 전체로 확산될 수 있다는 점에서 개헌 논의는 당·청 간 힘겨루기의 한 축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참사’가 일상이 돼버린 인사 문제를 두고도 당·청 간 불협화음이 감지된다. 박 대통령이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과 ‘문고리 비서관 3인방’의 자리를 보존시킨 데 대해 비판 여론이 상당한 가운데 유 원내대표는 취임 일성으로 과감한 인적 쇄신을 주문했다. 청와대는 공식 대응을 자제했지만, 한 핵심 관계자가 춘추관을 찾아 ‘오프 더 레코드’를 전제로 “인사권은 대통령 고유권한인데 무슨 소리냐”고 쏘아붙였을 정도로 청와대는 발끈했다.

“유, 박 대통령에 고개 숙일 사람은 아니잖나”

유승민 원내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였던 2005년 당 대표 비서실장을 맡으면서 대권 밑그림을 그린 최측근이었다. 김무성 대표와 함께 이른바 ‘원조 친박’의 쌍두마차였던 셈인데, 2007년 대선 후보 경선 과정을 총괄하며 친박계 핵심 중의 핵심으로 통했다. 하지만 2012년 대선 과정에선 존재감이 거의 없었다. 대신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친박계 핵심으로 급부상했다.

새누리당 안팎에는 유 원내대표가 박 대통령과 멀어지게 된 가장 큰 이유를 유 원내대표의 ‘자존감’에서 찾는 이가 의외로 많다. 박 대통령 주변 인사들 대다수가 사실상 ‘가신’에 가까운 반면 유 원내대표는 ‘동반자’를 지향했다는 것이다. 김 대표가 박 대통령과 멀어진 것과도 비슷하다. 그래서 정치권에서는 유 원내대표와 김 대표 두 사람을 가리켜 ‘탈박(脫朴)’이라고 부른다. 유 원내대표는 원내대표 경선 전 ‘권력 실세 비선 개입’ 논란이 한창 불거졌을 당시 “이른바 ‘문고리 3인방’으로 불리는 비서관들은 내가 박근혜 대표 비서실장을 할 당시 의원실에 있던 것을 모두 비서실로 불러들여 직접 데리고 있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 의원들이 3인방의 눈치를 볼 정도라는 말이 있는데 사실인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자신과 다른 의원의 차별성을 강조한 것으로 읽혔다.  

유 원내대표는 박근혜정부 출범 후 지난 2년간 ‘와신상담’해왔다. 한 측근 의원은 “유승민이라는 정치인이 박 대통령에게 고개를 숙이고 들어갈 사람은 아니지 않으냐”며 “처음부터 19대 국회 4년 차 원내대표를 생각해왔다”고 전했다. 유 원내대표 자신은 “박근혜정부의 성공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하지만, 실제 그의 생각은 ‘포스트 박근혜’에 있음을 짐작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유 원내대표의 등장이 곧 박 대통령의 ‘콘크리트 지지율’ 붕괴 결과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적잖은 의미가 있다. 당장 국정 운영의 한 축인 집권 여당 지도부가 비주류로 채워지면서 박 대통령의 국정 주도력은 상당 부분 위축될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 사실상 당·청 관계의 무게 추는 새누리당 쪽으로 급격히 기울어질 가능성이 크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야당과 달리 집권 여당에서는 당 대표보다 원내대표의 역할이 더 중요한 경우가 많다”며 “여권 내부에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가 없는 상황까지 감안하면 보수적 안정감 속에 중도 개혁 색채를 지닌 ‘정치인 유승민’의 잠재력은 상당해 보인다”고 평가했다. 


유승민 vs 최경환, ‘위스콘신 동문’ 맞짱?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2월2일 원내대표 경선에서 승리한 이후 법인세 인상, 건강보험료 부과 체계 개편 재검토 등 민감한 경제정책 현안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에 따라 KDI(한국개발연구원) 출신이자 경제통인 유 원내대표가 본격적으로 ‘유승민표’ 경제정책에 대한 드라이브를 걸 것이라는 시각이 나오고 있다.

유 원내대표는 박근혜정부 경제 수장인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과는 미국 위스콘신 대힉 동문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유 원내대표와 최 부총리, 그리고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간사인 강석훈 새누리당 의원 등은 ‘위스콘신 4인방’으로 불린다. 이들은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 사이에 위스콘신 대학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위스콘신 학파는 적극적인 정부의 개입보다는 시장의 힘을 중시한다. 이러한 점에서 유 원내대표와 최 부총리는 거시경제를 바라보는 측면에서 결을 같이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유 원내대표는 정책 추진 과정에서 합리성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TK 출신의 한 친박계 인사는 “청와대가 유 원내대표를 감정적으로 싫어한다기보다는 부담감 때문”이라며 “현 정부가 경제정책을 힘 있게 추진하기 위해서는 당을 설득해야 하는데 유 원내대표가 당을 지키고 있는 한 오히려 정부가 설득당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했다.

유 원내대표와 최 부총리가 경제 해법을 둘러싸고 충돌할 우려가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유 원내대표는 최 부총리보다 나이는 두 살 어리지만 위스콘신 대학 선배다. 최 부총리의 정치권 입문을 주선한 것도 유 원내대표라는 게 TK 정가에선 익히 알려진 이야기다. 하지만 2012년 총선을 분기점으로 둘 사이의 관계가 급격히 틀어졌다는 뒷말도 나온다. 위스콘신 동문인 두 사람이 경제정책을 둘러싸고 어떤 전선을 형성할지 주목된다. 

이승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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