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깡통계좌’
  • 윤길주 | 편집국장 ()
  • 승인 2015.02.11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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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고립되고 있습니다. 국민 시선은 차갑고 우군의 총구는 적진이 아니라 청와대를 향하고 있습니다. 전직 대통령까지 나서 현 정권을 조롱하고 있습니다. 권력이 진공상태에 빠져드는 양상입니다.

 유승민 의원이 새누리당 새 원내대표로 선출된 것은 청와대 권력이 쇠락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유 의원은 ‘친박(근혜)’계가 밀었던 이주영 의원을 압도적인 표 차이로 누르고 원내대표로 선출됐습니다. 권력 이동에 민감한 정치인들이 청와대를 이빨 빠진 호랑이로 본 겁니다. 유승민 원내대표는 거침없이 포문을 열었습니다. “증세 없는 복지는 가능하지 않다. 연말정산 파동은 국민을 속인 문제가 있다.” 김무성 대표도 “증세 없는 복지는 불가능하며 그런 말로 국민을 속이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직격탄을 날렸습니다.

 증세와 인사 문제는 박근혜정부의 아킬레스건입니다. 박 대통령은 2012년 대선 때 ‘증세 없는 복지’를 약속했습니다. 증세 논쟁이 가열되고 있는 현재까지도 “증세는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집권당 투톱이 이를 “국민을 속이는 것”이라고 협공한 것은 대통령에 대한 선전포고나 다름없습니다. 청와대 인사에 대한 언급은 그동안 새누리당에서 금기시됐습니다. 말을 하더라도 특정인을 거명하지 않고 에둘러서 했습니다. 그런데 유승민 원내대표는 “(김기춘) 비서실장하고 비서관 몇 명 그것만 가지고 인적 쇄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정곡을 찔렀습니다.      

 어지러운 판국에 이명박(MB) 전 대통령이 튀어나와 박 대통령을 정조준했습니다. <대통령의 시간>이란 회고록에서 그는 박 대통령에게 분풀이를 하는 듯했습니다. 측근들은 ‘MB 회고록 2탄’을 준비 중이라며 은근히 겁박하고 있습니다. 의도가 어디에 있든 과오로 얼룩진 과거 권력이 현재 권력을 동네북처럼 대하는 것은 전례 없는 일입니다.

 박 대통령이 집권 2년 만에 궁지에 몰린 까닭은 뭘까. 민심이라는 자산이 바닥난 게 화근입니다. 국민이 지지를 회수하면서 박근혜정부의 자산은 사실상 ‘깡통계좌’가 돼버렸습니다. 잔고가 비었음을 확인한 정치인들이 약삭빠르게 ‘선거의 여왕’ 품을 떠나는 걸 야박하다고 탓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요즘 박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30% 안팎입니다. 전문가들은 이 중 20%가량은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이고, 10% 정도만 박 대통령의 순수 지지율이라고 분석합니다. 국정 동력을 상실할 위기에 처한 겁니다.

자산을 다시 채우는 일은 박 대통령에게 달려 있습니다. 지금 많은 국민은 문고리 3인방과 십상시가 국정을 좌지우지하는 걸로 믿고 있습니다. 사실 여부를 떠나 지목된 인물들은 스스로 옷을 벗거나, 아니면 과감히 내쳐야 합니다. 빈자리는 ‘수첩’ 밖에서 널리 구한 인재로 채워야 할 것입니다. 장관들과 찻잔 들고 서서 웃는 모습으로 사진 찍는 게 소통은 아닐 겁니다. 대통령이 재래시장을 찾는다고 국민과 소통이 이뤄지는 것도 아닙니다. 장관들이 거침없이 쓴소리를 할 수 있고, 국민의 명령을 경청하는 게 진짜 소통입니다. 인적 쇄신과 소통만 잘해도 박 대통령의 ‘민심 자산’은 두둑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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