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생명은 진실에 대한 신앙”
  • 조철│문화 칼럼니스트 ()
  • 승인 2015.02.11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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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저널리스트’ 박권상 선생 추모식 두 권의 추모 문집 헌정

언론인 박권상 선생이 별세한 후 1년이 흐른 지난 2월3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추모식이 열렸다. 행사 중에 박 선생을 기리는 영상이 흘렀다. 고인의 생전 모습 위로 그의 육성이 흘렀다. 2003년 KBS 사장직에서 물러나면서 한 말이었다.

“어느 편에 서서, 어느 당파에 봉사하기 위해 뉴스 보도에 편파, 왜곡, 과장 그리고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자기 의견을 뉴스로 포장해서 내보내서는 안 됩니다. 저널리스트는 특히 방송의 경우 중립적이고 독립적이고 자기감정을 드러내서는 안 됩니다.”

각계 300여 명의 인사로 북적이던 추모식장은 숙연해졌다. 이날 추모식에는 최규엽 여사 등 유족과 심상기 서울미디어그룹 회장, 남시욱 전 문화일보 사장, 이대훈 전 동아일보 출판국장, 김인규 전 KBS 사장, 제재형 전 대한언론인회장, 한승헌 전 감사원장, 김원기 전 국회의장, 김진현 전 과학기술처장관, 이종찬 전 국정원장, 박종렬 가천대 교수, 류균 극동대 석좌교수, 이연택 전 대한체육회장, 이경재 전 방송통신위원장, 남재희 전 노동부장관, 임홍빈 문학사상 회장, 김용운 전 한양대 교수, 윤재홍 KBS 제주방송총국장 등이 참석해 고인을 기렸다.

앞줄 왼쪽부터 김선홍 전 기아차 회장, 이대훈 전 동아일보 출판국장, 김인규 전 KBS 사장, 한승헌 전 감사원장, 고 박권상 선생의 부인 최규엽 여사, 김진배 이사장, 김원기 전 국회의장, 김진현 전 과학기술처장관, 남시욱 전 문화일보 사장, 이종찬 전 국정원장. 뒷줄 왼쪽부터 박종렬 가천대 교수, 류균 극동대 석좌교수, 이연택 전 대한체육회장, 이경재 전 방송통신위원장, 심상기 서울미디어그룹 회장, 남재희 전 노동부장관, 임홍빈 문학사상 회장, 제재형 전 대한언론인회장, 김용운 전 한양대 교수, 윤재홍 KBS 제주방송총국장. ⓒ 시사저널 박은숙
한승헌 전 감사원장과 이종찬 전 국정원장이 추모사를 준비했는데, 한 전 감사원장은 “언론이 독재를 위한 도구가 돼서는 안 된다고 성토하며 비켜갈 수도 있는 험한 길을 당당히 걸어간 언론인이었다. 군사독재 시절 3선 개헌을 비판하는 사설을 게재하고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지지 사설을 거부하는 등 투사보다 강인해야 하는 언론인의 기개를 떨친 분이었다”고 회고했다.

이종찬 전 국정원장은 “1989년 시사저널이 창간될 때 사회가 대단히 시끄러웠다. 고인은 시사저널이 주관하는 시사포럼을 만들어 여야 중진들 다 모여서 비보도 원칙을 만들어서라도 대화를 해보자고 제안했고 그렇게 소통 창구를 만드는 일이 성사됐다. 또다시 참 언론이 심판자가 돼 대화를 할 수 있게 해야 하는 상황을 맞아 선배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며 아쉬워했다.

추모식은 박권상기념회 창립 보고를 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박권상기념회는 앞으로 박권상 이름을 딴 언론상과 학술상을 제정하고 자유언론도서관 건립을 추진하기로 했다. 김진배 박권상기념회 이사장은 “선배는 각 미디어에서 일하는 모든 분에게 하나의 지침을 주고 있다”고 밝혔다.

박권상기념회는 이 자리에서 추모 문집 두 권을 헌정했다. 추모 문집 편집위원을 맡은 류균 전 KBS 보도국장은 “지난해 2월 중순 삼우제를 지내고 김진배 선생이 기념회 예비 모임을 마련했다. 유족과 후배들이 모인 이 자리에서 1주기를 기념해 추모 문집 두 권을 내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말했다.

“사실 둘러싼 완전한 진실 알려야”

추모 문집은 평전인 <박권상을 생각한다>와 유고집<박권상 언론학> 등 2권이다. <박권상을 생각한다>는 박 선생의 인생을 기자·논객·저술가·잡지인·방송인 등 다섯 카테고리로 분류해 정리하고, 사회 각 분야 인사 42명의 회고담과 가족들의 글을 함께 실었다. <박권상 언론학>은 박 선생이 생전 언론에 대해 쓴 글 960여 편 가운데 34편을 골라 엮었다. 책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그의 시론 ‘디오게네스의 철학과 참 언론’ 중 한 구절이 현 상황을 질타하는 목소리처럼 들린다.

그 시론은 박 선생이 1989년 10월 시사저널 창간 당시 시사저널 지면에서 언론과 언론인이 지향해야 할 방향에 대해 분명히 밝힌 것이다. 그는 편집인 겸 주필로서 시론을 쓰며 언론과 언론인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이 무엇인가 물었다. 그는 ‘역사에 대한 지식도 인간의 지혜도 아니다. 구체적으로는 어떤 사실의 핵심을 포착하는 민첩한 통찰력도 아니다. 사실을 바로 객관적으로 균형 있게 표현하는 문장력도 아니다. 기사 내용에 적절한 제목을 뽑는 편집 재능도 아니다’고 전제하고 이렇게 썼다.

‘언론으로서, 언론인으로서 역사의 지식, 인간의 지혜, 통찰력, 표현력 그리고 사물을 요약하는 지능, 어느 한 가지도 소홀할 수 없다. 그러나 아마도 가장 소중한 것은 디오게네스가 대낮에 등불을 들고 다니면서 추구했다는 진실에 대한 신앙이 아닐까. 그것은 어떤 단편적인 사실이 아니라 나타난 사실을 둘러싼 포괄적이고 완전한 진실이다. 그런 진실을 찾고 알리고 부추기고 가꾸고 꽃피우는 것, 그것이 곧 언론의 생명이요, 빛이요, 뜻이라고 말할 수 있다.’

박권상 선생은 1952년 합동통신 기자를 시작으로 언론인의 길을 걸었다. 1950년대 중반 기자들의 모임 ‘관훈클럽’을 태동시켰다. 1970년대 동아일보 편집국장으로서 유신독재에 정론과 무사설로 맞섰고, 1980년 신군부의 언론 탄압에 맞서다 강제 해직되는 험난한 길을 걸었다. 1989년 한국 최초의 정통 시사 주간지 시사저널을 창간했다. 1998년부터 2003년 초까지 KBS 사장을 맡았는데, 그의 재임 중 KBS는 한국에서 가장 신뢰받는 언론으로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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