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대 노부부 동반 자살은 왜 묻혀 있었나
  • 조해수·김지영 기자 (chs900@sisapress.com)
  • 승인 2015.02.13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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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서에 검찰 편파·과잉 수사 지적…‘청와대 출신’ 검사 의혹 제기

검찰 수사를 받던 70대 노부부가 수사 도중 검찰의 편파·과잉 수사를 주장하는 유서를 남기고 동반 자살한 사건이 시사저널 취재 결과 확인됐다. 70대 노부부는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 다음 날 극단적인 선택을 했고, 이들이 남긴 유서에는 검찰의 무리한 수사 행태를 비난하는 내용이 빼곡히 담겨 있다. 유족과 지역사회에서는 이번 검찰 수사를 놓고 ‘커넥션’ 의혹까지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객관적 자료도 없이 검사가 무리한 수사”

취재진은 지난 1월20일께 한 사정기관 관계자로부터 의미심장한 얘기를 들었다. “지난해 말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70대 노부부가 산에 올라가서 목을 매 동반 자살을 했는데, 전혀 언론 보도가 안 됐다. 한 달이 넘도록 안 되고 있다. 이런 건 보도될 만큼의 사안이 아닌가. 좀 이상하지 않나”라는 게 그가 한 말의 요지였다. 그 관계자의 말은 사실이었다. 실제 자살 사건이 있었다. 하지만 이에 대한 기사는 단 한 줄도 다뤄지지 않았다. 사건 자체를 ‘쉬쉬’했던 것이다.

ⓒ 시사저널 포토
지난해 12월21일 새벽 4시35분, 서울 청계산 등산로 인근 정자에서 목을 맨 시신 두 구가 등산객에 의해 발견됐다. 관할서인 서초경찰서 관계자는 “조사 결과 이 아무개씨(77)와 부인 강 아무개씨(68)로 밝혀졌다. 청계산 등산로 CCTV에 두 사람이 20일 밤 9시50분쯤 사건 현장으로 올라가는 장면이 찍혔다. 타살 흔적이 없었기 때문에 단순 변사 사건으로 처리했다. 유족에게 당일 연락을 취했다. 유족들이 ‘자살할 이유가 없다’며 크게 놀랐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밝혔다.

자살의 원인은 사건 현장에서 함께 발견된 유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씨가 불러준 내용을 부인 강씨가 받아 적은 것으로 보이는 유서는 앞·뒷면을 가득 채운 A4용지 한 장 분량이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이 유서의 75% 이상은 자신이 억울한 누명을 썼으며, 검찰이 이에 편승해 무리한 수사를 진행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수사를 진행했던 담당 주임검사를 직접 거론하기도 했다. 유서의 주요 내용은 이렇다. “여기에 서울중앙지검 7XX호 김○○ 검사도 동조하여 객관적인 자료도 없이 이△△(자살한 이씨 본인)에게 구속영장을 신청하여 무리한 수사라고 생각합니다.” 

자살을 택한 이씨는 당시 한남 5구역 재정비 사업과 관련해 배임수재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었다. 정비 사업 용역업체로 선정된 삼우ENC로부터 6억원 상당의 돈을 받아 가로챘다는 것이다. 한남 5구역 재정비 사업은 2359세대의 아파트와 상가 및 업무시설 등이 들어설 예정으로, 분양 수입금 규모가 8200억~1조원으로 추산된다. 한남동 재정비 사업 중 가장 규모가 크다. 삼우ENC는 분양 수입금의 2.38%로 입찰에 참여해 약 230억원에 PM(Project Management) 계약을 체결했다. PM이란 정비업체가 법률, 세무·회계, 감리, 행정 등 모든 업무를 총괄하는 방식을 말한다. 

그러나 재정비사업조합 측은 삼우ENC와 2011년 계약을 파기했다. 삼우ENC의 업무 능력 부재가 그 이유로, 삼우ENC가 PM을 전혀 이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때부터 불거졌다. 삼우ENC의 홍 아무개 대표는 당시 계약 파기가 의결된 주민총회에 참석해 “섭섭하다. (계약을 체결하기 위해) 이씨에게 거액의 뇌물을 건넸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이씨가 조합 간부는 아니지만 “추진위원회를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점은 누구나 잘 알고 있다”는 게 홍 대표의 주장이다. ‘실세’인 이씨에게 돈을 전달했다는 것이다.

홍 대표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같은 해 4월, 이씨를 비롯한 조합 측 사람들을 배임수재 혐의로 고발하는 내용의 진정서를 서울중앙지검에 제출했다. 이렇게 되면 홍 대표 역시 배임증재로 처벌받을 수 있지만, 그럼에도 법정 싸움을 선택했다. 조합 측은 “계약이 파기되자 홍 대표가 앙심을 품고 무고를 했다. 만약 (조합 측이) 돈을 받았다면, 계약 파기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었겠나”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홍 대표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너무 억울해서 (나의)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진정서를 제출하게 됐다”고 말했다.

2년 만에 갑자기 강도 높은 수사 재개

검찰 수사가 시작된 것은 진정서가 제출되고 1년 이상 지난 2012년 하반기다. 이씨와 조합 측 사람들은 물론 홍 대표 역시 여러 차례 소환조사를 받았다. 그러나 당시 수사에서 기소를 당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씨의 변호를 맡았던 법무법인 대륙아주 측은 “(검찰이 기소를 하지 못한 것은) 홍 대표의 진술에 일관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뇌물을 줬다는 내용 중에도 실제와 다른 모순점이 존재했다. 홍 대표와 이씨 측의 진술이 엇갈리면서 사건이 유야무야됐다”고 설명했다.

무혐의로 끝나는 듯했던 검찰 수사는 2년이 지난 지난해 9월 갑자기 재개됐다. 이씨 변호인 측은 “지난해 8월 말 검찰 인사가 나면서 주임검사가 새로 부임했다. 부임 직후 이 사건을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10월부터 관련자들을 소환하는 등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됐다”고 밝혔다. 유족과 조합 측은 수사 재개 이유에 대해 의혹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조합 측은 “이미 2년 전에 모든 조사를 받아 끝난 사건인 줄 알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소환 통보가 날아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말 그대로 ‘아닌 밤중에 홍두깨’였다. 원래 이런 경우가 있기는 한 거냐”고 반문했다. 이와 관련해 검찰 관계자는 “사건이 2~3년 정도 지나면 어떤 식으로든 마무리를 해야 한다. 사건을 너무 오랫동안 끌어온 것 같다. 그런 차원에서 수사를 재개한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나 재개된 수사는 사건을 마무리하는 수준이 아니었다. 2년여 동안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던 수사는 새로운 주임검사 부임 후 급물살을 탔다. 장시간의 강도 높은 소환조사와 대질심문이 이어졌다. 이씨의 변호인 측은 “이씨에 대한 소환조사가 처음 이뤄진 게 지난해 10월이다. 그 후 두 달여 동안 10여 차례 소환조사를 받은 것 같다. 한두 번이면 기억하겠지만 너무 많아 기억도 나지 않는다. 한번 불려가면 10시간씩 조사를 받았다. 70대 고령인 이씨가 검찰에 불려가 고강도 조사를 받으면 심리적 압박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라고 지적했다.

“구속영장 청구 안 했으면 자살 안 했을 것”

일사천리로 조사를 진행한 후 검찰은 이씨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3년이나 풀리지 않던 사건이 단 두 달여 만에 해결된 것이다. 그렇다면 2012년 검찰의 첫 수사 때와 무엇이 달라진 것일까? 이씨의 변호인 측은 “처음부터 이 사건의 증거는 진술밖에 없었다. 대질심문을 여러 차례 했다. 통상 이런 사건은 (돈을) 줬다는 사람은 건넸다고 하고, 받은 쪽은 안 받았다고 주장하니까, 어느 쪽의 주장이 더 신빙성이 있는지 (검찰이) 취사선택할 수밖에 없다. 진술이 얼마나 신빙성 있는가 하는 점은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홍 대표는 “이번 수사를 통해 결정적인 증거가 나왔다. 2012년 수사 때는 검찰이 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아 (결정적 증거를) 놓친 것뿐이다”고 주장했다.

이씨에게 구태여 구속영장을 청구할 필요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씨는 검찰로부터 구속영장 청구 소식을 들은 다음 날 자살했다. 고강도 소환조사로 심신이 지쳐 있던 이씨에게 구속영장은 자살을 선택하게 된 직접적인 원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 이씨의 변호인 측은 “영장을 청구하지 않았으면 자살까지 가지 않았을 것이다. 이번 사건은 3년여 전의 사건이다. 지금에 와서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보기 힘들다. 도주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 이씨는 고령인 데다, 수차례의 소환조사를 성실히 받았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검찰 관계자는 “구속영장 청구는 검사의 재량이다. 이씨는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고 있었는데, 이를 두고 (검사가)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그러나 양측의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건일 경우, 기소를 하더라도 불구속으로 처리해 법원의 판단에 맡기는 경우가 많기는 하다”고 말했다.

이씨에게 배임수재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반면, 돈을 준 쪽인 홍 대표는 구속은 물론 기소도 되지 않았다. 검찰 관계자는 “이 역시 검사의 재량이다. (또한) 배임증재는 구속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조합 측은 지난 1월 중앙지검에 진정서를 내고 “홍 대표를 무고 내지 배임증재로 엄하게 처벌해달라. 그렇지 않을 경우 별도의 고발장을 제출하는 등 특단의 대책을 강구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수사 재개 배경에 청와대 민정 라인이?”

검찰에 대한 유족과 조합 측의 불신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유족과 조합 측은 수사 상황이 실시간으로 홍 대표 측에 전달됐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조합 측은 진정서를 통해 “이씨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사실을 홍 대표 측이 미리 알고 있었다. 이씨는 구속영장이 청구됐다는 사실을 지난해 12월19일 오후 3~4시쯤 검찰의 전화를 통해 알게 됐다. 그런데 이보다 2시간 전인 같은 날 오후 1~2시쯤 홍 대표 측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고, 소문을 퍼뜨리고 있었다”고 밝혔다. 조합은 또 “이씨 부부의 자살 소식도 마찬가지다. 이씨의 변호인조차 12월22일 오후에야 자살 소식을 접했는데, 홍 대표 쪽은 하루 전인 21일 오후 1시쯤부터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조합 측도 이들이 퍼뜨린 소문을 통해 이씨 자살 소식을 접했을 정도”라고 주장했다. 이어 “(검찰이)조사를 할 때도 홍씨의 진술에 지나치게 치우칠 뿐 아니라 (수사관이) 조서의 편집권을 남용하고, 수사 외적인 질문을 하는 등 과잉 수사를 했다”며 홍 대표와의 커넥션 의혹을 제기했다. 실제로 이씨는 진정서에서 “◇◇◇ (검찰) 조사관이 이○○(본인)와 홍□□(삼우ENC 대표)를 대질조사하는 과정에서 이○○에게 이○○는 기소될 수밖에 없다고 말을 하였으며…”라고 밝히고 있다.

이 사건을 재수사한 김 검사의 배경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김 검사는 이른바 ‘청와대 출신’ 검사다. 그는 2013년 3월, 청와대행을 이유로 검찰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1년 5개월여 동안 청와대 민정수석실 행정관으로 근무했던 김 검사는 지난해 8월 신규 임용 방식으로 검찰에 복귀했다. 그것도 검찰 조직의 중추인 서울중앙지검으로 발령을 받았다. 이러한 배경 탓에 유족과 조합 측은 이번 수사가 재개된 데 또 다른 힘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 조합 측은 “홍 대표 측 변호인단은 법무법인 바른이다.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김영한 민정수석이 법무법인 바른 출신이다”고 밝혔다. “실제 김 검사는 김 수석과 민정수석실에서 2개월간 같이 근무를 했다. 김 검사가 검찰에 복귀하자마자 2년 전에 수사를 했던 사건을 갑자기 꺼내든 것에 혹시 이러한 배경이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고 주장했다. 서울 중앙지검 고위 관계자는 “어떤 인권침해나 강압수사도 없었다. 법과 원칙에 따라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수사를 진행했다”며 “다만 피의자의 죽음에 대해서는 조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최근 검찰 수사 도중 피의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잇따라 벌어지고 있다. 지난 1월 방산비리 합수단 조사를 받았던 예비역 해군 소장 함 아무개씨는 한강에 투신했고, 대전지검에서 수사를 받던 전 관세청 고위 간부도 자살을 선택했다.

홍일표 새누리당 의원실에 따르면 김진태호 출범 첫해인 지난해의 경우 7월까지만 11명이 검찰 수사 도중 자살했다. 여기에 이른바 ‘정윤회 문건’ 유출 사건에 연루됐던 최 아무개 경위와 한남동 재개발 사업과 관련해 수사를 받던 이 아무개씨 부부의 경우까지 더하면, 확인된 것만 14명에 이른다. 이는 지난 10년간 최고치에 해당한다.

이는 김진태 검찰총장이 강조하고 있는 ‘환부만 도려내는 정제되고 절제된 수사’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결과다. 이에 따라 대검찰청은 최근 피의자 자살 방지 대책의 일환으로 일선 검찰청에 ‘피의자 수사 관련 업무 지침’을 배포했다. 지침에는 ‘수사 과정에서 피의자 인권 보호에 만전을 기해 극단적 행동을 예방하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김 총장도 직접 나서 대검 간부회의를 통해 “검사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 존재한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범죄자도 공동체 일원으로 살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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