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리포트] “40대, 여전히 가슴 설레는 청춘이다”
  • 조현주 기자·이호재 인턴기자 (cho@sisapress.com)
  • 승인 2015.02.1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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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혹의 메달리스트 전재식·정영화…“목표는 도쿄올림픽”

흔히 운동선수들의 전성기는 10대 후반으로 알려져 있다.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 박태환 선수가 금메달을 목에 건 것은 18세 때였다. 피겨 여왕 김연아 선수는 지난해 24세의 나이로 은퇴했다. 그런데 불혹(不惑)을 넘겨서도 혈기왕성하게 현역 생활을 이어가며 40대에 아시안게임 메달리스트 반열에 오른 선수들이 있다. 올해 47세 전재식 승마선수(레츠런승마단)와 43세 정영화 당구선수(서울시청)가 그 주인공이다. 그들이 입을 모아 말한다. “40대, 아직은 청춘이다.”

“아직도 심장이 쿵쾅쿵쾅 뛴다”

지난 2월11일 과천 경마공원에서 만난 전재식 선수는 여전히 20대 같았다. 그는 한국 나이로 치면 49세로 지천명(知天命)을 목전에 두고 있다. 그럼에도 인터뷰 내내 청년의 패기가 느껴졌다.

전재식 승마선수1967년생(만 47세) 레츠런승마단 소속2014 인천아시안게임 승마 종합마술 단체전 금메달2010 광저우아시안게임 승마 종합마술 장애물 개인전 은메달ⓒ 시사저널 이종현
14세 때 처음 승마를 시작한 이후 전 선수는 34년째 말고삐를 쥐고 있다. 단체전 금메달을 딴 지난해 인천아시안게임 때는 국내 최고령 선수였다. 인천아시안게임 한국 선수단에서 남녀 통틀어 최연소였던 김다정(14세·요트)과는 34년 터울이다. 그럼에도 그가 현역 국가대표 선수로 뛸 수 있었던 비결은 ‘설렘’이다. 전 선수는 “아직도 말을 타러 가는 길에는 심장이 쿵쾅쿵쾅 뛴다”며 눈을 반짝였다.

시련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전 선수는 유난히 아시안게임과는 인연이 없었다. 1986 서울아시안게임 대표 선발전에서는 내내 상위권을 유지하다 마체검사(말 상태를 검사하는 단계)에서 탈락해 실격했다. 비리가 개입됐다는 생각에 6개월간 승마를 그만두기도 했다. 이후로도 불운이 계속돼 연이어 아시안게임에 출전하지 못했다. 그런 그가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 종합마술 장애물 개인전 은메달을 따냈다. 그의 나이 42세 때였다.

그는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2011년에는 독일에서 강습용으로 사온 ‘클래식걸’을 그랑프리 레벨(올림픽 출전 수준의 고난도)까지 키웠다. 2013년 국내 최초로 열린 말 갈라쇼에서는 주인공을 맡아 승마 대중화에 앞장섰다. 현재는 순우리말로 ‘그리운 남자’라는 뜻의 ‘그린비’를 길들이고 있다. 말을 처음 훈련시키고 올라타는 ‘브레이킹’을 국내 최초로 시도하는 것이다. 낙마 위험성 때문에 주위에서는 전 선수를 말리지만, 그럴 때마다 그는 “남들이 안 해본 일을 해보고 싶다”고 말한다.

“목표? 당연히 올림픽이다.” 전 선수는 2020 도쿄올림픽이 목표라고 당당히 말했다. 정부의 지원만 든든하다면 올림픽 메달은 문제없다는 것이다. 그때면 그의 나이 52세다. 그러나 그 꿈이 허무맹랑해 보이지는 않는다. 여전히 도전하고 싶은 청춘이기 때문이다.

정영화 당구선수1971년생(만 43세) 서울시청 소속2010 광저우아시안게임 당구 남자 개인전 9볼 동메달2002 부산아시안게임 9볼 복식 은메달, 개인전 동메달ⓒ 시사저널 이종현
60세에도 경기현장을 누비고 싶다

도쿄올림픽을 준비하는 40대 선수가 한 명 더 있다.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 당구 남자 개인전 9볼에서 동메달을 따낸 정영화 선수다. 당시 한국 나이로 40세였다. 아무리 체력적으로 부담이 덜한 종목이라도 적지 않은 나이다. 다른 선수들이 그를 코치로 착각할 정도였다.

지난 2월6일 서울 서초동에 위치한 서울시청팀 연습장에서 정 선수를 만났다. 스물다섯 살의 후배와 시합을 하는 그의 표정에서는 신중함과 여유가 묻어났다. 정 선수는 1992년 데뷔해 5년 만에 아시아 5위까지 올라섰다. 2002년 요미우리 오픈 세계대회에서는 1위를 차지했다. 그 이후 15년 가까이 포켓볼 최정상 자리(현재 국내 랭킹 2위)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선수로서 장수 비결은 꾸준한 노력이다. 그는 “남들 고시공부 하듯이 하루 10시간 이상 매일 연습했다. 시간이 아까운 나날이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정 선수의 젊은 시절은 평탄하지 않았다. 해외 대회에 참가할 경비를 마련하려고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다. 하루를 라면 한 끼로 때우며 버틴 날도 많다. 40대가 돼서야 비로소 통장에 잔고가 생겼다. 그 때문인지 그는 여전히 자기관리에 철저하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물구나무를 서고 팔굽혀펴기를 한다. 등산을 통해 꾸준히 체력관리를 한다. 담배도 피우지 않는다. 포켓볼 러닝타임에 맞춰 2시간 동안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기도 한다.

불혹의 나이에 정 선수가 깨달은 이치는 여유다. 1등을 유지해야 한다는 압박감만으로는 오랫동안 선수 생활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요즘은 경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즐긴다. 경기에서 지면 반성하고 약점을 고쳐나간다”고 밝혔다. 승리에만 목마른 젊은 선수들과 달리, 40대 선수는 차분히 스스로 문제점을 파악하며 발전할 수 있다는 말이다.

“얼마 전 대회에서 한국 나이로 60세인 캐나다 선수를 만났다. 정말 존경스러웠다.” 그는 이순(耳順)에도 경기 현장을 누비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한다. 50대 한국 선수들이 세계 무대에서 활약할 10년 후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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