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의 청와대, 비서실 가장 힘세다
  • 감명국 기자 (kham@sisapress.com)
  • 승인 2015.02.13 18:1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왕실장’ 파워 당·정 압도…앞선 정권에선 반대 현상

2월10일 청와대에서 김무성 대표, 유승민 원내대표 등 새누리당 지도부와 만난 박근혜 대통령은 “삼위일체가 되어달라”고 당부했다. ‘삼위’란 정권을 지탱하는 세 축인 ‘당(여당)·정(정부)·청(청와대)’을 가리키는 것이다. 한마디로 여당이 정부와 청와대, 특히 청와대를 잘 좀 도와달라는 뜻인 셈이다. 새해 들어 가파르게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국정 지지율에 더해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신임 대표의 ‘전면전 불사’ 선언, 여기에 이완구 총리 후보자의 각종 비리 의혹까지 겹치며 사면초가에 몰려 있는 박 대통령과 청와대의 위기감을 반영하고 있다. 

‘당·정·청’ 삼각 축 가운데 어느 한쪽이 짧아서도 안 되지만, 또 길어서도 안 된다. 균형을 이룬 채 가야 기울어지거나 넘어지지 않는다. 그 중심 역할은 당연히 대통령의 몫이다. 대통령의 성향과 지지도에 따라서 달라지게 마련이다. 당·정·청의 수장은 당 대표와 총리, 그리고 청와대 비서실장이다. 하지만 비서실장을 오롯이 당 대표나 총리와 동급으로 비교하기는 힘들다. 국가 의전 서열상으로도 확연히 차이가 난다. 총리는 5위, 여당 대표는 7위지만, 비서실장은 한참 뒤인 17위다. 그럼에도 청와대가 당·정을 압도할 수 있는 것은 실질적인 수장인 대통령이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라고 하는 최고봉에 가려 청와대 비서실 인사들은 권력의 전면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 실제 역대 정부들이 그랬다. 그렇다면 박근혜정부의 청와대는 어떨까.

참여정부는 정부, MB 정부는 여당 쪽에 쏠려

시사저널은 역대 정권의 당·정·청 간 역학관계를 살펴보고자 본지가 매년 창간 기획으로 실시하고 있는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전문가 조사 결과를 분석했다. 이 조사는 매년 전문가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통해 당시 우리 사회 권력 지도를 가장 정확하게 그리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본 조사는 시사저널 창간 첫해인 1989년부터 시작됐다. 노태우 정부 2년 차 때부터다. 이후 김영삼(YS) 정부에 이어 김대중(DJ) 정부에 이르기까지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위권 내에 포진해 있는 인사들을 보면, 대체적으로 여당과 정부 쪽 인사들이 청와대 인사들을 압도하고 있다. 청와대 인사로 순위에 이름을 올린 이들은 노태우 정부 때 문희갑 경제수석(1989년-9위), YS 정부 때 박관용 비서실장(1993년-8위, 1994년-9위), DJ 정부 때 박지원 비서실장(2002년-7위) 등 정권 5년 동안 한 명씩, 한두 차례에 그쳤다.

이 같은 현상은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MB) 정부 들어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노무현 정부 때는 정부 쪽 인사들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고건·이해찬·한명숙 총리와 이헌재·권오규 경제부총리, 강금실·정동영·김근태·반기문 장관 등이 매년 20위권 내에 이름을 올렸다. 특히 고 총리와 이 총리는 2003년과 2004년 각각 5위에 이름을 올리며 ‘실세 총리’로서의 위상을 과시했다. 여당 쪽에도 실세가 많았다. 당시 ‘잠룡’으로 분류됐던 정동영·김근태 장관 등이 정부 쪽뿐만 아니라 집권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에서도 전·현 의장과 원내대표 등으로 이름을 올렸고, 문희상 의장과 천정배 원내대표도 힘을 과시했다. 이에 반해 청와대 쪽 인사는 임기 첫해인 2003년에 문재인 민정수석이 20위에 간신히 턱걸이한 것이 유일했다. 그나마 10위권 내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MB 정부에서는 집권 여당인 한나라당 쪽에 확연히 쏠려 있다. 당시 사실상 정적이나 마찬가지였던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비롯한 ‘친박계’는 제외하더라도 박희태·안상수·홍준표 대표, 정몽준 최고위원, MB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 등이 매년 영향력 있는 인사로 이름을 올렸다. 정부 쪽 인사로는 강만수 기재부장관과 한승수·정운찬 총리 등이 한 차례씩 20위권 내에 들었다. 반면 청와대 쪽 인사는 전무했다. 5년 동안 20위권 내에 이름을 올린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얼핏 보면 당·정 쪽에 권력의 중심이 쏠린 듯하지만, 사실상 대통령의 존재를 감안해볼 때 비교적 당·정·청의 균형이 유지되는 모양새였다.

그렇다면 박근혜정부는 어땠을까. 지난 2013년과 2014년 두 차례 결과를 분석해보면, 청와대의 힘이 확실히 이전에 비해 커졌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이는 ‘왕실장’으로 불리는 김기춘 비서실장의 힘으로 볼 수도 있다. 2013년 공동 14위, 2014년 6위에 각각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당·정·청 인사 가운데 그의 앞에는 여당 대표만 존재한다. 2013년 황우여 대표(13위)와 2014년 김무성 대표(3위) 등이다. 정부 쪽 인사는 모두 그의 아래다. 2013년 정홍원 총리(공동 16위), 2014년 최경환 경제부총리(공동 10위)가 그렇다. 김 실장은 본지가 조사를 실시한 이후 역대 현직 청와대 비서실장으로는 최고 순위(6위) 기록도 세웠다.

지난 2년간 박 대통령과 김 실장이 자리하고 있는 현 정부의 청와대 파워는 실로 막강했다고 볼 수 있다. 조만간 교체가 확실시되고 있는 청와대 비서실장 자리에서 ‘왕실장’이 물러난다 하더라도 당분간은 청와대 파워가 어느 곳보다 우위에 설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당·청 간에 더욱 격하게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