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60대 테크노크라트, 신실세 그룹 떠올라
  • 이영종│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 부소장 ()
  • 승인 2015.02.13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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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 4년 차 김정은 체제 파워엘리트 20인… 외화벌이 둘러싼 권력다툼 가능성도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제1비서는 지난 2월 초 강원도 원산에 머물렀다. 이 지역 초중학교 건설공사장을 방문해 조기 완공을 독려했다. 1월 말 인근 해상에서 실시된 해·공군 합동타격훈련을 참관하는 등 원산 체류가 적어도 2주 이상 이어진 것이다. 부인 리설주를 비롯한 가족과 함께 이곳 특각(별장)에 머무르며 겨울 휴가를 즐기면서 현장을 챙기고 있다는 게 정보 당국 관계자의 귀띔이다. 김정은의 곁에는 최룡해 노동당 비서와 황병서 총정치국장, 현영철 인민무력부장, 한광상 당 부장을 비롯한 측근 실세가 대거 수행하고 있다. 평양의 핵심 권력이 원산으로 옮겨진 듯한 형국이다.

우리 정부 당국은 김정은의 원산 행보와 통치 구상에 주목하고 있다. 집권 4년 차에 접어든 김 제1비서가 인사·조직에 변화를 꾀하거나 대남정책에서 새 제안을 내놓을 수 있다는 측면에서다. 김정은 체제가 예상보다 안정적으로 운용되고 있다는 한·미 당국의 판단에도 미묘한 변화가 감지된다. 올 초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비롯한 미국 행정부의 중심부에서 북한 김정은 체제의 종말을 예고하는 언급이 쏟아진 것도 이런 상황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는 얘기다.

ⓒ 연합뉴스
장성택 숙청 주도한 ‘삼지연 8인’이 최고 핵심

김정은 체제의 내구성을 들여다보는 데서 가장 주목되는 건 평양 파워엘리트들의 면면과 이들의 권력 내 역학관계다. 김정은 제1비서와 그의 권력을 움직이는 핵심 멤버들이 북한 체제의 운명을 좌우할 변수가 될 것이란 판단에서다. 김정은 시대 핵심은 이른바 신(新)실세로 불리는 ‘삼지연 8인’ 그룹이다. 김정은이 2013년 12월 고모부인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을 전격 처형할 때 거사를 주도했던 인물들이다. 장성택을 체포해 국가안전보위부에 신병을 확보한 후 특별재판을 통해 사형을 언도하는 일련의 절차를 마무리한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당시 상황을 총괄한 것으로 파악되는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당시 노동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을 비롯해 김양건 당 통일전선부장, 한광상 당 재정경리부장, 김병호 선전선동부 부부장, 홍영칠 기계공업부 부부장, 마원춘 국방위 설계국장, 박태성 조직지도부 부부장이 포함돼 있다. 장성택 사형이 집행되기 보름 전인 2013년 11월 말 김정은을 수행해 백두산이 있는 양강도 삼지연에서 대책회의를 가진 멤버들이란 점에서 최고의 신임을 받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물론 이들은 하루아침에 반짝 등장했다기보다 김정은이 후계 수업을 받던 당시부터 눈에 쏙 들게 보좌했거나, 각별한 인연에 의해 김정은의 측근 세력으로 자리 잡은 경우가 많다.

이른바 항일 빨치산 2세로 불리는 최룡해(최현 전 인민무력부장의 아들)는 김정일 시대에 이어 김정은 정권에서도 최고 실세 그룹에 자리하고 있다. 장성택 처형의 전면에 나서거나 후계 구축에 줄을 선 흔적이 또렷하게 드러나지 않지만 대를 이어 건재를 과시하고 있는 것이다. 김정은 후계자 만들기에 올인한 공신 세력인 조연준 당 제1부부장도 승승장구하고 있고, 스위스 조기 유학 때 후견인을 맡았던 현지 대사 출신 리수용(당시 이름은 리철)은 대외정책 사령탑인 외무상에 앉았다. 최부일 인민보안상이 지난해 평양시 아파트 붕괴 참사에도 불구하고 건재한 것 또한 김정은의 어린 시절 농구 교사로서 끈끈한 정을 쌓은 덕분으로 보인다.

군부에서는 황병서 총정치국장이 당분간 최고 책임자 자리를 지킬 것으로 관측된다. 황병서는 지난해 김정은을 가장 많이 수행한 것으로 집계되는 등 최측근으로 꼽힌다. 김정은의 현지지도에 자주 동행하는 군 인사인 김춘삼 총참모부 제1부총참모장 겸 작전국장, 리병철 당 제1부부장 등도 새롭게 떠오른 인물이다.

주목받는 파워엘리트로는 한광상 당 재정경리부장과 김병호 선전선동부 부부장, 홍영칠 기계공업부 부부장, 박태성 평안남도 당 비서가 리스트에 오른다. 이들은 50~60대로 상대적으로 젊은 편인 데다 전문성을 갖춘 관료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지난해 김정은의 현지지도 때 한광상은 65회를 수행해 가장 횟수가 많은 그룹에 속했다. 김정은의 건설·건축 드라이브를 실무적으로 주도하며 최고의 측근으로 간주됐던 마원춘 국방위 설계국장은 제동이 걸렸다. 정보 당국은 그가 지난해 11월 김정은으로부터 질책을 받은 이후 공개 활동이 중단된 것으로 보고 있다. 비슷한 시기 김정은이 평양 순안공항 새 터미널 공사장을 방문해 “어느 한 나라의 공항을 본뜬 것 같다”며 재시공을 지시한 것과 관련된 것으로 판단된다는 것이다. 다만 북한 TV의 과거 김정은 동정 자료 화면에서 마원춘이 계속 등장한다는 점에서 숙청이라기보다는 근신 조치를 취한 것으로 보인다.

내각에서는 박봉주 총리와 노두철 부총리 겸 국가계획위원장이 최측근 그룹에 포진해 김정은 체제의 북한 경제를 이끌고 있다. 올해 55세인 리용남 대외경제상은 대외 부문에 밝은 소장파 경제 관료로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6월 무역성·조선합영투자위원회·국가경제개발위원회 등 3개 기구를 통합해 출범한 대외경제성은 경제특구 개발을 책임지고 있어 향후 그가 어떤 역할을 해나갈지 주목되고 있다.

이권다툼이 권력 내 갈등으로 증폭될 수도

현재로선 김정은 체제의 권력 안정을 해칠 북한 파워엘리트들의 특이 동향은 드러나지 않고 있다. 간부들에 대한 철저한 감시 체제와 사회 통제 시스템이 이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특히 장성택 처형의 충격파가 당·정·군 간부들을 꽁꽁 얼어붙게 만들었다. 하지만 단기적 충성 유도 효과는 있겠지만 중·장기적으로 북한 체제에 부담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또한 파워엘리트 계층 내부에서 김정은의 리더십에 대한 반감이 표출되거나 불만 여론이 커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특히 외화벌이 등을 둘러싼 이권다툼이 권력 내 갈등으로 증폭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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