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송우혜가 말하는 일본의 윤동주 시인 70주기 행사
  • 조철│문화 칼럼니스트 ()
  • 승인 2015.03.04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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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점 부끄럼 없이 싸우다 간 시인이 더 그립다”

윤동주 시인을 추모하는 행사가 한국도 아닌 일본에서 더 성황을 이뤘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최근 ‘윤동주 시인 서거 70주년 기념 유고·유품 순회 전시회’가 도쿄 도시마구에 소재한 릿쿄 대학에서 열렸다. 어린이까지 포함해 많은 일본인이 전시관을 찾았다. 한국이 아닌 일본에서 지속적으로 추모 행사가 열리는 이유가 궁금했다. <윤동주 평전>을 펴낸 송우혜 소설가(67)가 행사에 참석해 강연을 했다는 내용도 들어 있어 그를 찾아갔다.

송 작가는 일본에서 윤동주 추모 열기가 뜨거운 데 대해 ‘역사 제대로 알기’ 같은 흐름도 있다고 봤다. 자신이 <윤동주 평전>을 쓴 것도 단지 한 시인에 대한 글을 쓰자고 한 것이 아니라, 역사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더 깊이 알려 하지도 않은 채 자신의 과거까지 폄훼하는 한국의 분위기에 경종을 울리고 싶어서였다고 강조했다.

서울 청운동의 윤동주문학관은 윤동주의 시에 등장하는 ‘우물’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 시사저널 임준선
“윤동주 기리는 것만이 진정한 과거사 반성”

“윤동주 시인이 원하던 세상은 무엇이었는지를 단순히 시에서만 느끼는 것으로는 부족했다. 그러니 시인의 삶을 ‘한낱 유학생’ 정도로 폄하하는 것이다. 그래서 취조 문서와 판결문에서 드러난 내용을 분석해 시의 내용과 연결시켰다. 그랬더니 대한 독립에 대한 강렬한 의지와 조선 문화를 사수해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이 드러났다.”

윤동주 시인은 창씨개명을 통해 ‘히라누마 도추’라는 이름으로 1942년 4월부터 9월까지 도쿄 릿쿄 대학에 다녔다. 일본의 탄압에도 한글로 시를 썼다. 이후 도시샤 대학으로 편입했으나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체포됐고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됐다가 1945년 2월16일 27세의 나이로 옥사했다.

송 작가가 <서시>를 쓴 윤동주 시인을 제대로 알기 위한 작업을 처음 끝낸 것은 17년 전이다. 1998년 개정판으로 나왔던 <윤동주 평전>은 초판을 낸 지 16년 만인 지난해 재개정판으로 출간됐다. 재개정판에서는 릿쿄 대학 시절에 대한 새로운 증언 등을 보완했다.

“릿쿄 대학 시절인 1942년, 여름방학을 맞아 귀향한 윤동주는 ‘빡빡머리’인 채 사진을 찍었다. 이 사진과 관련해 평전에 의문을 제기해놓았는데, 이 대목을 읽은 일본인 독자 야나기하라 씨가 당시 릿쿄 대학의 신문 등을 뒤져 학부 단발령이 내려졌던 사실을 전해왔다. 또 군사교련 담당이었던 현역 육군 대좌의 강압적인 교육 방식과 군사교련 문제를 놓고 학생과 현역 장교 사이에 일어났던 갈등 등 당시 엄격했던 군국주의식 교육의 실상에 대해서도 사료와 함께 확인해줬다.”

윤동주 시인이 릿쿄 대학의 군국주의적 분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한 학기만 마친 후 교토의 도시샤 대학으로 전학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 시사저널 박은숙
송 작가는 윤동주 시인의 고종사촌이자 일본 유학 시절 시인과 함께 같은 죄목으로 투옥돼 옥사한 송몽규의 조카이기도 하다. 윤동주의 유해를 수습하기 위해 후쿠오카 형무소를 찾은 이는 윤동주의 부친 윤영석과 당숙 윤영춘이었다. 이들은 수감돼 있던 송몽규를 면회했는데, 그에게서 “이름 모를 주사를 강제로 맞고 있다”는 증언을 듣는다. 윤동주의 유해가 고향인 북간도의 용정동산에 묻힌 날은 3월6일, 그다음 날 송몽규도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숨을 거둔다.

송 작가는 일본인 중에는 윤동주 시인의 죽음에 대해 일본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하는 이가 많다고 전했다. 윤동주 시인을 ‘윤사마’로 부르며 한국말로 시를 읊조리는 일본 여성도 있다고 귀띔했다.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마이니치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일본이 가진 문제는 공통적으로 자기 책임의 회피에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하루키는 제2차 세계대전 패전을 대하는 일본의 태도를 두고 “종전 후에 결국 누구도 잘못한 사람이 없었다. 잘못한 것은 군벌(軍閥)일 뿐, 일왕도 이용당했고 국민도 모두 속아서 지독한 일을 만났다는 식이었다”고 비판했다.

송 작가는 “이것은 실로 눈 크게 뜨고 지켜볼 만한 매우 흥미로운 풍경이다. 세계인들이 다 알다시피, 일본은 지난 세기에 아시아의 여러 나라는 물론이고 미국까지 공격하는 해외 침략 전쟁을 일으켜 많은 나라를 고통과 도탄에 빠뜨리면서 인류에 큰 죄를 지었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번 일본 행사에 참여해 사죄하는 일본인들을 다시 확인하면서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고 밝혔다. 

윤동주 시인이 숨진 후쿠오카에서는 1994년부터 매년 추도식과 시낭독회가 열리고 있다. 특히 올해는 일부 혐한파의 반대에도 시비 건립을 추진되고 있다. 니시오카 겐지 후쿠오카 현립대학 명예교수는 “일본인이 윤동주 시인을 기리는 것만이 진정한 과거사의 반성”이라고 말했다. 송 작가는 일본의 그런 분위기를 전하며 한국의 많은 학생이 윤동주 시인을 모른다는 조사가 나와 부끄럽다고도 했다. 평론가로 활동하는 최동호 시인은 “<윤동주 평전>은 풍부한 자료 섭렵과 빈틈없는 현장 답사로 씌어진 역저로 윤동주 연구에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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