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인사 공백, 높은 자리 비었는데 정부는 돌아가나
  • 이승욱 기자 (gun@sisapress.com)
  • 승인 2015.03.05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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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 공백’ 사태 심각…해당 부처는 청와대 눈치만

집권 3년 차를 맞은 박근혜정부의 인사 난맥이 계속되고 있다. 임기의 절반도 지나지 않은 정부에 ‘레임덕’이란 말이 나오는 것은 임기 초반부터 고질적으로 빚어진 인사 문제에서 비롯됐다. 최근엔 이완구 총리 인사 파문에 이어 청와대 비서실장 후임 인선을 둘러싸고 시끄러웠다.

청와대가 김기춘 실장의 후임으로 이병기 국정원장을 내정했다고 2월27일 발표했다. 앞서 2월17일 청와대가 통일부와 해양수산부 등 4개 부처 장관에 대한 개각과 함께 “박근혜 대통령이 김 실장의 사의를 수용했다”고 발표한 지 열흘 만이다. 납득하기 어려울 정도로 청와대가 비서실장 후임 인선 발표를 미루면서 청와대 비서실장의 공백 상태가 빚어졌다. 

2월23일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며 발언하고 있다. 사의를 표명한 김기춘 비서실장 자리가 비어 있다. ⓒ 연합뉴스
김기춘 전 실장의 교체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기정사실화되는 분위기였다. 후임자를 둘러싼 하마평이 여기저기서 쏟아졌다. 언론을 통해 거론된 유력 인사만 해도 10여 명에 이르렀다. 청와대는 2월17일 김 전 실장의 사의 수용을 발표하면서 “설 연휴가 지난 뒤 적절한 시기에 김 실장의 후임 인사를 발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설 연휴가 끝난 직후 비서실장 후임자가 공식화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었다. 하지만 청와대는 비서실장 후임자 결정을 뚜렷한 이유도 없이 계속 미뤘다. 김 전 실장 또한 후임자가 정해지지 않아 공백 사태가 올 것이 빤한 상황에서도 청와대 출입증까지 반납하고 출근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을 키웠다. 김 전 실장은 지난 2월22일 오후 마지막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는 것으로 공식 일정을 마쳤다. 23일엔 청와대 전·현직 참모 등과 오찬 회동을 가졌다. 이후 김 전 실장은 연락을 끊은 채 사실상 잠적했다.

후임자 인선이 발표되지 않은 상황에서 청와대 비서실장이 자리를 비운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비서실장이 공석인 상황은 지난 1983년 10월 아웅산 폭탄 테러 사건이라는 돌발적인 상황을 제외하면 30여 년 만에 처음이다. 당시는 함병춘 비서실장이 테러로 숨지면서 불가피하게 공석 상황이 빚어진 것이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김 전 실장 사임 과정에서 내부 갈등이 빚어진 게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다. 하지만 그동안 김 전 실장의 행적과 박 대통령과의 관계 등을 고려하면 이러한 분석은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게 중론이다. 이 대목에서 김 전 실장의 거취 문제와 관련해 ‘친박계’로 분류되는 한 여권 인사의 설명은 새겨들을 만하다. 이 인사는 김 전 실장의 거취 문제가 논란이 될 때마다 “김 실장이 지금 자리를 떠나면 누가 그 자리를 메울 수 있겠나”라면서 “지금은 때가 아니다. 조직이 안정되고 적당한 후임자를 찾으면 언제든 사심 없이 떠날 분”이라고 말했다. 김 전 실장의 사퇴와 후임 인선은 가장 안정된 방식으로 이뤄질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김 전 실장의 교체 과정에서 드러난 청와대 내부의 이해하기 어려운 움직임은 청와대 내부 인사 시스템 결함에 따른 불가피한 일이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설 연휴를 앞두고 있었던 4개 부처 장관 인선과 동시에 비서실장 사의 수용 발표가 있었다는 점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청와대가 굳이 후임 인선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비서실장의 거취 문제를 거론한 것은 애초 청와대가 계획했던 인선 계획에 차질이 빚어졌기 때문이었음을 방증한다. 거듭된 인사 실패와 비선 실세 국정 개입 의혹 등으로 인적 쇄신 요구를 받아온 청와대로서는 집권 3년 차를 맞아 청와대 개편과 총리 등 개각 발표를 통해 인적 쇄신 효과를 부각할 필요가 있었다. 당시 청와대는 이완구 총리 기용으로 여론의 반전을 꾀했지만, 청문회 검증 과정에서 각종 의혹이 불거지면서 인적 쇄신 효과가 반감되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후임자가 확정되지도 않았는데 비서실장 교체 카드를 내민 것은 청와대의 정국 반전을 위한 고육책이었을 것이라는 얘기다. 전략통으로 분류되는 새누리당 한 관계자의 설명이다. “애초 청와대로서는 이완구 총리 기용과 이어진 김기춘 실장 교체로 인적 쇄신을 요구하는 여론에 호응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두 가지 모두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자 김 실장의 사의 수용이라도 우선 언론에 공식화한 것으로 보인다. 인사에서는 타이밍과 메시지가 중요하다. 그런데 김 실장 사의 표명을 성급히 공식화하면서 타이밍도, 메시지도 모두 놓쳤다. 오히려 불안한 내부 시스템만 노출시켰다.”

인사 공백 만연에 공직사회 ‘부글부글’

청와대는 우여곡절 끝에 박 대통령의 중동 순방 이틀 전인 2월27일 후임 비서실장을 내정하면서 더 이상의 청와대 공백 사태는 막았다. 하지만 거론되던 인사들은 모두 ‘설’로만 그친 채 현직 국정원장을 옮겨놓은 모양새가 되어 ‘윗돌 빼서 아랫돌 괴기’ 인사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여당 내에서조차 당장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유승민 원내대표는 27일 오후 발표 직후 “유감스럽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야당에서는 “(박 대통령의) 수첩 인사를 이젠 제발 끝내야 할 때가 됐다”고 비판하고 있다.

박근혜정부 출범 후 ‘인사 공백’ 사태는 집권 3년째를 맞는 지금까지도 해소되지 않고 있다. 오죽하면 이를 두고 ‘공석 정부’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을 정도다.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소속 박남춘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이 인사혁신처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박근혜정부 출범 후 현재(2014년 12월31일 기준)까지 정부 각 부처(17부 5처 16청 6위원회) 실·국장급 이상 고위 공직자 중 1개월 이상 인사 공백이 발생한 자리는 총 296곳에 이른다.

이 가운데 6개월 이상 장기 공석 중인 곳도 39곳에 달했다. 공석 직위당 평균 3~4개월의 공석이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국무총리비서실 시민사회비서관의 경우 12개월(2013년 3월23일~2014년 3월20일), 기획재정부 관세정책관은 11개월째(2013년 11월3일~2014년 10월9일) 공석 상태였고, 문화재청 문화재정정책국장은 2014년 2월부터 지금까지 1년이 다 된 시점에도 비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근혜정부 집권 2년 동안 고위 공직자들에 대한 인사 공백이 이어지면서 하위직 공무원의 인사 적체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공직사회 내부도 술렁이고 있다. 대통령 직속 기구 소속의 한 공직자는 “각 부처마다 비어 있는 곳이 많다 보니 하위직 인사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도미노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며 “공직사회 내부에서도 부글부글 끓고 있는데 정작 청와대만 모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병기 신임 비서실장 내정자는 역대 정권마다 당·정·청에서 두루 요직을 지낸 경험이 있고, 야당과도 비교적 원만한 관계를 유지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따라 앞서 ‘실세형’으로만 각인됐던 김기춘 전 실장과는 달리, ‘실세형+실무형+조율형’의 다양한 행보를 보일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이 내정자는 인사위원장을 겸임하게 된다. 하지만 집권 3년째인 박근혜정부의 인사 스타일에 당장 큰 변화가 생길지에 대해서는 의문부호를 다는 시각이 많다. 특히 각 부처가 주요 공직자 인선 과정에서 박 대통령과 청와대의 의중에 너무 신경을 쓰고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청와대 눈치 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자리를 비워놓고 있다는 것이다.

몇 개월째 국립대 총장 공석 수수방관

교육부에서 몇몇 국립대 총장 임용을 지연시키고 있는 것은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현재 한국방송통신대학교는 교육부가 지난해 대학 측에서 지명한 총장 임명 제청을 거부하는 바람에 총장직이 5개월째 공석이다. 공주대와 경북대도 각각 12개월과 6개월째 총장 임용 제청을 거부당하고 있어 공석이 길어지고 있다. 그러나 정작 교육부는 임용 제청 거부 이유에 대해서는 속 시원히 밝히지 않은 채 수수방관하고 있다. 방통대와 공주대의 경우 대학 측이 제기한 임용 제청 거부 취소 소송에서 연이어 교육부가 패소한 상태지만, 황우여 교육부총리는 “대법원 확정 판결까지 받아봐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청와대의 눈치를 보고 있는 부처의 한계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교육부로부터 임용 제청을 거부당한 특정 총장 후보자의 경우, 시민사회단체 활동을 한 전력이 있거나 야권 성향의 인물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의혹에 신빙성을 더하는 양상이다. 반면 23개월 동안 빈자리로 있던 한국체육대학교 총장에 최근 ‘친박’으로 분류되는 김성조 전 의원이 임명됐다. 이에 따라 부처가 앞장서 “박 대통령과 코드 맞추기 인사를 하고 있다”는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청와대 내부 사정에 밝은 여권의 한 관계자는 “김기춘 전 실장이 인사위원장을 겸하고 있었지만 (교체설이 나온 이후에는) 인사위원회를 거의 주관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도 있다”며 “막판엔 부처 인사는 손도 못 댄 채 청와대 민정실 인사만 하고 나왔다고 한다”고 전했다.

2월27일 오후 이병기 신임 비서실장 임명 발표가 있기 불과 몇 시간 전까지 임명이 사실상 확정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진 한 인사의 내정이 갑자기 취소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사전 검증 부실 등 추가 논란도 예상된다. 집권 3년 차의 첫 출발을 청와대 비서실 인사 공백 사태로 시작한 박근혜정부의 발걸음이 무거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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