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아역 배우 출연료 1억 못 받아 조사 중”
  • 김지영 기자 (young@sisapress.com)
  • 승인 2015.03.12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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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검 강력부장 출신 김규헌 초대 문화예술공정위원장

‘‘을’(광고 모델)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킬 경우 (모델) 계약은 취소되며 ‘을’(광고 모델)이 이로 인해 발생하는 피해에 대해 책임지고 전액 배상해야 한다.’ 국내 대형 광고기획사와 광고 모델이 체결한 계약서 내용의 일부다. 3월4일 기자와 만난 한 한류 스타의 최측근은 이 계약 조항에 대해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만약 모델이 운전하던 차량과 다른 차량 간에 가벼운 접촉 사고가 났을 경우 상대방이 악의를 갖고 경찰에 신고하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것이냐”고 반문하며 “‘사회적 물의’라는 광범위하고 애매한 조항이 아직도 계약서에 버젓이 남아 있다. 연예인에게 불리한 노예 계약이 지금도 횡행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위원회 출범 8개월 만에 101건 제보 접수

문화예술계의 노예 계약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 문화예술계 종사자는 45만명, 이 가운데 계약 관계로 일하는 사람은 6만여 명으로 추산된다. 그런데 문화예술인 상당수가 ‘불공정’ 계약으로 불이익을 당하지만 딱히 하소연할 곳이 마땅치 않다. 대기업 등의 담합과 독점을 막는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가 있긴 하지만 문화예술인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문화예술계 전반에 대한 전문 지식이 필요한데 공정위가 그 영역까지 담당하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 시사저널 이종현
2012년 11월 ‘예술인복지법’이 제정돼 문화예술 분야 계약서의 표준 양식을 만들고 복지 사업을 수행하기 위한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 설립됐다. 하지만 법률이 시행된 이후에도 예술인의 특수성을 반영하는 실질적인 정책과 지원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에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해 7월 ‘문화예술공정위원회’를 출범시켰다. 문학·미술·음악·무용·연극·영화·연예(방송)·만화 등 11개 분야의 불공정 행위를 조사해 시정하기 위해서다.

문체부 산하 문화예술공정위원회 초대 위원장을 검사 출신인 김규헌 변호사가 맡자 문화예술계에선 위원회를 ‘문화 검찰’로 부르기도 한다. 김규헌 위원장은 연예계 비리 사건과 악연이 깊다. 2002년 7월 그가 서울중앙지검 강력부장으로 있을 때였다. 당시 그는 연예계 전반에 만연한 각종 비리 의혹 사건에 칼을 빼들었다. 연예기획사와 방송사를 비롯한 연예계에 뿌리 깊이 박혀 있는 검은 커넥션을 파헤치려고 했다. 연예인과 정·관·재계 유력 인사들의 성상납 내지 매매춘 의혹에도 메스를 들이댔다. 검찰의 역대 연예계 비리 의혹 수사 가운데 최대였다. 장자연의 소속사 대표였던 김 아무개씨도 수사 선상에 올랐다.

하지만 당시 수사는 중도에 좌절됐다. 수사를 진두지휘했던 김규헌 강력부장에게 검찰 내부뿐 아니라 외부에서도 강한 압박이 들어왔다. 그는 ‘탤런트 고 장자연 성상납 의혹 사건’이 불거진 2009년 4월과 2011년 10월 기자에게 “수사 당시 여권의 최고 실세와 유명 여배우의 스캔들 첩보가 입수됐는데 그 여권 최고 실세의 측근들로부터 ‘적당히 수사하라’는 협박성 전화를 받았다. 당시 여권 최고 실세는 지금도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인물”이라며 “다른 경로를 통해서도 ‘너무 강하다’ ‘웬만큼 하고 손을 떼면 좋겠다’ ‘너무 넘어가면 다친다’는 경고를 들었다”고 회고한 바 있다.

당시 전 방위 외압이 들어오는 와중에도 수사는 진행됐다. 그런데 갑자기 수사에 급제동이 걸렸다. 수사책임자였던 그가 충주지청장으로 발령 난 것이다. 수사에서 손을 떼야 했고 검찰 안팎에서는 ‘좌천성 인사’라는 관측이 나돌았다. 그는 “그때 제대로 수사해서 연예계 비리를 어느 정도 뿌리 뽑았다면 장자연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며 못내 아쉬워했다. 그는 2011년 9월 검찰에 몸담은 지 30년 만에 서울고검 검사를 마지막으로 검찰청사를 떠났다. 재즈와 발레 등 예술 분야에도 조예가 깊어 직접 공연에 참가하기도 했다.

문화예술공정위원장을 맡게 된 것도 강골 검사였던 과거 이력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2월25일 김 위원장을 서울 서초동에 있는 그의 변호사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동안 문화예술계에 산적한 사건과 의혹이 많기 때문일까. 위원회가 출범한 지 8개월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위원회에 접수된 제보만 벌써 101건에 달한다. 이 가운데 14건은 현재 사실관계를 조사 중이고, 30건은 소송을 지원하거나 조정 중이다. 이미 25건은 사건 종결 조치됐고, 32건은 조정이 끝났다.

“공연계 유명 인사 ‘갑질’ 제보 들어와”

해외에서도 큰 인기를 모은 뮤지컬 <점프>의 출연자는 2005년부터 2010년까지 출연료를 지급받지 못했다고 신고해왔다. 신고인과 파산한 공연단체의 대표가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있었으나 위원회가 조정안을 제시해 합의를 도출했다.

하지만 아직 해결되지 않은 제보가 14건이다. 유명 연예기획사가 유명 아역 배우에게 출연료를 지급하지 않았다는 제보도 그중 하나다. 김 위원장은 “TV와 영화에 출연했던 유명 아역 배우의 부모가 상당히 유명한 연예기획사로부터 출연료 1억원을 받지 못했다고 제보했다. 해당 기획사 대표는 고급 외제차를 타고 다니면서 호화로운 생활을 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 대표는 위원회에 재정상 어렵다는 사유도 제출하지 않았고 출연료도 주지 않고 있다”며 “위원회는 그 기획사가 파산선고를 했거나 담보 대출을 받았는지 등 출연료를 지급하지 못한 정당한 사유가 있는지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럴 경우 위원회는 해당 기획사에 과태료를 부과하거나 신문·방송 등에 게시할 수 있는 행정처분을 내릴 수 있다. 하지만 아역 배우의 부모는 기획사 대표를 처벌해달라는 강경한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위원회는 미술 화랑의 횡포도 심각한 것으로 진단했다. 미술 작품이 유명 화랑에 전시돼 판매될 경우, 화랑 측은 판매가의 30% 정도를 수수료로 떼어간다. 이 판매 수수료가 과다하다는 지적이다. 김 위원장은 “예술가들이 화랑의 횡포에 상당히 노출돼 있다. 그렇다 보니, 작가들이 화랑에서 작품을 구입하려는 사람들에게 ‘화랑에서 그림을 사지 마라. 내 작품 가운데 화랑에 전시되지 않은 비슷한 작품이 여러 점 있으니 그걸 사라’고 은밀히 제안할 정도다. 판매 수수료가 높다 보니 그림 매입자와 직접 거래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그림 판매 수수료 문제도 시정해나갈 방침이라고 강조했다.

공연계에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유명 인사가 평소 ‘갑(甲)질’을 하고 있다는 제보 등도 접수됐다. 김 위원장은 “공연 기획과 현장에서의 다양한 불공정 행태 내지 ‘갑질’에 대해 시정 요구가 잇따르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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