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츠 타고 제주 땅 보러 다니는 ‘왕서방’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5.03.12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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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차 시장 큰손 중국인들…부동산업체들, 외제차 경품 걸기도

중국의 부호들, 이른바 ‘푸이다이’가 국내 수입 자동차 업계의 큰손으로 떠오르고 있다. 국내에 거주하는 중국인 부자들은 자신들이 타고 다닐 차를 자국에서 공수해오지 않고, 국내에서 직접 사기 때문이다. 중국인의 외제차 사랑은 유명한 데다, 국내 수입차 가격이 중국의 절반 정도여서 전액 현금으로 한 번에 몇 대씩 구입한다. 푸이다이(富一代)란 1960년 이후 태어나 자수성가한 30대 중반에서 50대 사이의 중국 부유층을 의미하는 말이다. 중국 기준으론 재산이 최소 1000만 위안(약 17억원) 이상인 사업가나 금융권 고위층이다.

이들은 사업상 중국과 한국을 오가며 생활한다. 한 해 국내에서 머무르는 한 달 남짓 동안 타고 다닐 차가 필요해 수입차를 산다고 한다. 나머지 기간에는 차를 다른 중국인에게 빌려주거나 자녀들이 타고 다닌다. 자녀들은 국내 대학이나 국제학교에 다닌다. 한 수입차업체 관계자는 “최근 수입차를 사기 위해 전시장에 오는 중국인들이 늘어났다. 단순 관광객이 아니라 국내에 거주하는 부자들인데, 자신이나 자녀가 타고 다닐 차로 한국산보다 벤틀리·아우디·재규어·벤츠 등 외국산 고급 차량을 선호한다”며 “서울의 한 수입차 전시장에만 한 달에 10명 이상의 중국인이 방문한다”고 말했다.

ⓒ 일러스트 정찬동
수입차 가격이 중국 현지의 절반가량인 점도 중국인이 국내에서 수입차를 한 번에 여러 대씩 사는 이유다. 수입차 관계자는 “같은 브랜드의 수입차라도 중국에서 3억원이면 한국에서 1억5000만원가량이어서 한꺼번에 2대씩 현금으로 구입하는 경우도 있다”며 “최근 중국인이 국내 수입차 시장의 새로운 고객층으로 떠오르는 중”이라고 덧붙였다.

국내 외국인 운전자 10명 중 7명 중국인

중국 현지에서 신차 구매자 3명 중 2명은 외국산 차량을 선택할 정도로 중국인의 수입차 사랑은 유별나다. 특히 중국인이 몰리는 제주에서는 이를 마케팅에 이용하는 사례도 생겨났다. 고급 부동산 분양업체가 경품으로 고가의 수입차를 제공하는 이른바 VVIP(극소수 상류층 고객) 마케팅까지 펼치고 있다. 중국 최대 국영 부동산개발기업인 녹지그룹이 1조1000억원을 투자한 제주 헬스케어타운이 1차로 분양한 콘도미니엄 188실 계약자 중 95%는 중국인이다. 가구당 8억원 안팎의 분양가를 현금으로 내는 중국인을 잡기 위해 1억원 안팎의 수입차 제공은 일반적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그동안 분양업체들은 중국인 큰손들을 잡기 위해 면세점 VIP 카드, 대학병원 VIP 진료권 등을 경품으로 제공해왔다. 한 수입차업체 관계자는 “제주의 한 빌라 분양업체는 경품으로 독일산 고급 승용차 25대를 주문해 제공했는데 반응이 뜨거웠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푸이다이가 국내에 거주하기 시작한 것은 2010년 제주도가 투자이민제도를 도입하면서부터다. 50만 달러(약 5억5000만원) 이상을 투자하면 거주자(F2) 비자를 발급하고, 5년 후 영주권도 준다. 5년 동안 F2 비자를 받은 외국인은 1000명을 넘어섰고, 이들 가운데 98% 이상은 중국인이다. 중국 상하이의 방 2~3개짜리 아파트가 10억원을 넘는 현실에서 그 절반 정도 투자로 한국에서 살 수 있는 셈이다.

이에 따라 2006년 929대였던 제주도 내 수입차는 2014년 9000대를 넘어섰다. 수요가 늘어나자 수입차 브랜드의 제주 진출이 활발해졌다. 제주도 수입차 매장은 1992년부터 터를 닦은 크라이슬러가 유일했다. 2013년 이후 BMW·mini에 이어 폭스바겐, 닛산, 포드, 링컨도 매장을 열었다. 올해 메르세데스벤츠까지 전시장을 열면 제주 수입차 전시장은 6곳이 된다. 이들 브랜드는 중국인들의 수입차 수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제주 도민 1인당 자동차 수는 0.61대로 전국 평균 0.39대를 크게 웃돈다. 하지만 유독 수입차 시장만큼은 불모지였다. 수입차 매장이 적었던 탓도 있지만 구설에 오르기 싫어하는 제주 특유의 지역색 때문이었다. 제주 시민 고 아무개씨(52)는 “제주 사람은 주변 친인척의 눈총을 받기 십상이어서 수입차를 거의 타지 않지만, 최근 중국인들과 육지 사람들이 제주로 유입되면서 수입차가 부쩍 늘어났다”고 말했다. 

자동차 운전면허증을 취득하는 외국인도 증가하고 있다. 도로교통공단 제주운전면허시험장에 따르면, 지난해 도내에서 운전면허증을 취득한 외국인은 모두 643명으로 전년의 384명보다 67.4% 증가했다. 이들 10명 가운데 7~8명은 중국인이다. 이처럼 중국인이 제주도에서 운전면허증을 취득하는 것은 시험 비용이 중국보다 싸고, 취득 시간도 짧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운전면허증을 취득하고 중국에 돌아가서 학과시험만 합격하면 중국 운전면허증으로 변경할 수 있다.

푸이다이가 밀집한 제주도의 한 리조트 인근 주유소에는 고급 수입차 전용 주유기까지 설치됐다. 중국인 약 450가구가 사는 한 리조트 인근의 주유소에는 2년 전 새 경유 주유기 1대가 설치됐다. 중국인들이 수입차를 타고 와서 주유하는데 차량 주유구와 주유기 크기가 서로 맞지 않아 크기가 작은 새 경유 주유기를 따로 설치한 것이다. 국산차의 경우 경유 차 주유구가 휘발유 차보다 2배 정도 크지만, 일부 수입차는 경유 차라도 주유구가 휘발유 차와 같은 크기다. 중국인 소유의 수입차가 늘어나면서 지역 정비업체에 차량 정비를 맡기는 중국인도 늘어나는 추세다.


중국인 ‘무면허 운전’ 부작용 늘어 


최근 20대 중국인이 서울 청계천로 신평화상가 앞에서 무면허 운전을 하다 경찰에 붙잡혔다. 지난해 6월에는 제주 한라도서관 사거리에서 면허 없이 만취 상태로 운전하던 20대 중국인 여성이 체포되기도 했다. 경찰에 따르면 외국인 교통사범 적발건수는 2010년 985건에서 2013년 5965건으로 급증했다. 이 가운데 약 30%가 무면허 운전자이며, 중국인 비율이 가장 높다. 중국인의 경우 본국에서 딴 면허증이 한국에선 효력이 없다. 중국은 전 세계 129개국이 가입한 도로교통 국제협약 미가입국이기 때문이다. 중국인의 무면허 운전이 횡행하는 또 다른 이유는 면허증이 없어도 한국에서 자동차를 쉽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외국인이 특히 중고차를 살 때 필요한 서류는 ‘외국인 등록증’과 ‘거주 사실 확인서’ 두 가지뿐이다. 지인이 쓰던 차량을 넘겨받아 타면서 중국에서 취득한 운전면허증이 한국에서도 통용되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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