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삼구 회장 부활 ‘돈 넘어 돈’ 금호산업·금호고속 인수 자금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5.03.12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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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조5000억 조달 능력 의문

올해 M&A(인수·합병)의 최대어로 꼽히는 금호산업 인수전이 본격화됐다. 금호산업은 2014년 매출 1조4710억원과 영업이익 530억원을 거둘 것으로 추정된다. 3월5일 현재 시가총액은 8113억원(주당 2만3850원)을 기록했다. 매출이나 시가총액으로 보면 200대 기업에도 들지 못한다. 하지만 금호산업은 금호그룹 지배구조의 최정점에 있다. 현재 아시아나항공 지분 30.08%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아시아나항공은 에어부산·금호터미널·금호리조트 등 20여 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금호산업을 인수하면 그룹을 통째로 먹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산업은행을 포함한 채권단은 1월 말 금호산업 지분 57.48%를 매각하기 위한 공고를 냈다. 2월25일까지 인수의향서를 제출한 곳은 모두 6곳이다. 호반건설과 신세계, 사모펀드인 MBK파트너스, IBK투자증권-케이스톤파트너스 컨소시엄(IBK펀드), IMM 프라이빗에쿼티, 자베스파트너스 등이 참여했다. 신세계는 인수의향서를 제출한 지 하루 만에 입찰 포기를 선언했다.

ⓒ 뉴시스
채권단 지분을 가장 먼저 매수할 수 있는 권리는 박삼구 회장에게 있다. 박 회장은 2010년 산은과 이면 합의를 체결했다. 사재 출연을 조건으로 계열사 경영권과 함께 금호산업의 우선매수청구권까지 약속받았다. 우선매수청구권은 입찰의 최종 승자가 써낸 가격에 지분을 사들일 수 있는 권리다. 금호산업의 시가총액(8113억원)으로 계산하면 채권단 지분의 가치는 4660억원 수준이다. 하지만 금호산업은 아시아나항공을 통해 대부분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경영권 프리미엄까지 합하면 매각가는 최소 1조원을 상회할 것으로 추정된다. 박삼구 회장이 어떻게 이 돈을 마련할지가 재계의 가장 큰 관심거리다.

박 회장이 현재 동원할 수 있는 현금 능력은 최대 2000억원 수준으로 추정된다. 박 회장은 2012년 금호석유화학 지분을 매각한 돈으로 금호산업(2200억원)과 금호타이어(1300억원) 유상증자에 참여했다. 금호타이어 지분 9.1%를 보유하고 있지만, 채권단에 담보로 설정돼 있어 현금화는 불가능하다. 때문에 1조원이 넘을 것으로 추정되는 자금을 마련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금호산업 인수 ‘5파전’으로 압축

금호그룹 측은 “금호산업 인수 자금 마련에는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룹 관계자는 “구체적인 계획은 밝힐 수 없지만 자금 마련에는 문제가 없다”며 “(박삼구 회장도) 금호산업 지분 인수에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박 회장은 금호산업뿐 아니라 모태 회사인 금호고속도 인수해야 할 처지다. 2012년 박 회장은 2년 후에 되사는 조건으로 금호고속 지분 100%를 IBK펀드에 팔았다. 이때 매각한 금호고속 지분을 되사야 하는 것이다. 인수 비용은 5000억원 정도로 추정된다. 금호산업과 함께 금호고속 인수 자금도 추가로 마련해야 하기 때문에 박 회장의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시장에선 금호타이어의 지주회사 전환설이 설득력 있게 거론되고 있다. 금호타이어는 지난해 워크아웃을 졸업했다. 경영 상황도 견조한 편이다. 금호타이어의 현금성 자산과 매출 채권을 유동화해 자금을 조달한 후 금호산업을 인수하는 시나리오다. 이 경우 지주회사가 금호산업에서 금호타이어로 바뀌게 되지만 자금 부담 없이 그룹 경영권을 되찾을 수 있다. 금호타이어 지분 42.1%를 보유한 9개 채권단도 손해는 아니다. 금호타이어 지분은 현재 우리은행과 산은이 각각 14%와 13.5%를 보유하고 있다. 금호타이어가 지주회사로 전환되면 보유한 주식 가치가 상승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호타이어 자금을 빼서 금호산업을 인수하게 되면 특혜 논란에 휩싸일 수 있다. 최악의 경우 채권단은 배임 혐의로 고발까지 당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산업은행도 추가 자금 지원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홍기택 산업은행장은 최근 기자들과 만나 “박삼구 회장에게 자금을 지원하는 것은 공정성에 문제가 있다”며 “산업은행이 금호산업 인수 금융에 참여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박 회장이 금융권 차입이나 재무적 투자자를 끌어들여 인수 자금을 마련해야 한다. 이 경우 제1금융권은 대상에서 제외된다. 산업은행을 포함한 주요 은행이 대부분 금호산업 채권단에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재무적 투자자를 유치하는 일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박 회장은 과거 대우건설을 되파는 과정에서 풋백옵션을 상환하지 않아 투자자들로부터 신뢰를 잃었다. 최근 금호고속을 되사는 과정에서 최대주주인 IBK펀드와도 갈등을 빚었다. 박 회장이 재무적 투자자를 끌어들이는 과정에서 잃어버린 신뢰를 얼마나 만회하느냐가 관건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다.

군인공제회 등 우호적 투자자로 분류

군인공제회, 칸서스자산운용, KTB자산운용 등은 그동안 박 회장의 우호적 투자자로 분류돼왔다. 군인공제회는 2003년 금호타이어 지분 70%를 매입했다가 2년 뒤 박 회장에게 32.14%를 되판 전례가 있다. 서울 한남동 리첸시아와 여의도 리첸시아 등 군인공제회가 시행한 대규모 PF(프로젝트 파이낸싱) 사업에도 금호산업이 참여했다. 이번에도 군인공제회가 박 회장의 ‘백기사’로 나설 가능성은 열려 있다.

김영재 칸서스자산운용 회장과 장인환 전 KTB자산운용 부회장은 박 회장과 광주일고 선후배 사이다. 김 회장은 2010년 산은과 함께 6500억원 규모의 사모펀드를 만들어 워크아웃 중인 금호생명(현 KDB생명)을 인수했다. 금호그룹이 2006년 대우건설을 인수했을 때는 FI(재무적 투자자)로 참여했다. 장 전 부회장도 2009년 워크아웃 중인 금호오토리스(현 글로벌리스앤캐피탈)를 부산저축은행과 공동으로 인수한 바 있다. 하지만 KTB자산운용은 지난해 10월 부산저축은행 부당 투자 권유 혐의로 삼성꿈장학재단과 포스텍에 487억원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라는 법원 판결을 받았다. 모기업인 KTB투자증권이 239억원을 긴급 수혈해 자본 잠식은 막았지만, 추가 투자는 힘들 것으로 재계에서는 보고 있다.

이 밖에 대상그룹, 한국SC증권, CJ그룹 등이 금호산업 인수전의 백기사로 거론되고 있다. 대상그룹은 박 회장의 여동생인 박현주씨가 현재 부회장으로 있다. 한국SC증권이나 CJ그룹의 경우 경영진이 박 회장의 장남인 박세창 금호타이어 부사장과 막역한 관계로 알려졌다. 이들 기업 또한 금호산업 인수전에서 어떤 식으로든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롯데 트라우마’ 시달리는 신세계 


아시아나항공이 갖는 메리트로 인해 금호산업은 일찍부터 재계의 관심을 받았다. 삼성·현대차·CJ·롯데·신세계 그룹 등이 금호산업 인수전에 참여할 것으로 예상됐다. 이 중에서 산업은행에 인수의향서를 제출한 곳은 신세계 한 곳뿐이다. 그나마 신세계도 하루 만에 입찰 철회를 선언했다.

재계에서는 신세계가 라이벌인 롯데그룹을 의식해 인수전에 참여한 것으로 보고 있다. 신세계는 2012년 롯데에 일격을 당했다. 인천시가 15년간 신세계백화점과 이마트가 입점해 있던 인천종합터미널 건물 및 부지를 롯데그룹에 매각했기 때문이다. 신세계 내부에서는 “상도의가 없다”는 거친 목소리가 나왔다.

이후 신세계는 ‘롯데 트라우마’에 빠졌다. 서울 강남점이 들어서 있는 센트럴시티를 1조2000여 억원에 인수했고, 서울고속터미널 지분도 인수했다. 광주신세계 입점 계약도 2033년까지 연장했다. 5000억원의 보증금도 지불했다. 롯데가 공격할 수 있는 싹을 미리 잘라버리려는 계산이 깔려 있었다.

지난 1월 말 금호산업 인수전이 시작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롯데그룹이 일부 사모펀드와 컨소시엄을 구성해 금호산업 인수전에 나설 것이라는 소문이 시장에 퍼졌다. 금호산업이 롯데에 매각되면 신세계는 호남의 전략 거점을 롯데에 내줘야 한다. 신세계는 마지못해 금호산업 인수전에 도전장을 냈다. 2월25일 인수의향서를 제출한 기업(사모펀드 포함)이 공개됐다. 최종 입찰 명단에 롯데의 이름이 빠져 있자 신세계도 슬그머니 발을 뺐다. 신세계 주가는 2월25일부터 3거래일 연속 하락했다.

시장에서는 회사뿐 아니라 경영진의 신뢰 문제를 제기한다. “신세계에 M&A 전략이 있는지 의심스럽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인수의향서 접수 전날까지도 정용진 부회장은 ‘(금호산업 인수전에 대해) 관심 없다’고 말했다”며 “신세계가 인수의향서 제출 마감 시기를 늦춰달라는 요구를 채권단이 받아들이지 않자 마지못해 제출한 것 아니겠느냐”고 지적했다.

신세계그룹 측도 관련 사실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룹 관계자는 “금호산업 인수전 참여는 광주신세계 경영권 방어 차원에서 진행된 것이 사실”이라며 “전략적인 대처가 미흡했던 것 같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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