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 팔려다 IS 보복 당할라
  • 김지영(여)·조해수 기자 (abc@sisapress.com)
  • 승인 2015.03.17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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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S&T모티브·한화 등 이라크 무기 전시회 참가…NSC에서 참가 여부 놓고 격론

국내 주요 방산업체가 최근 이라크에서 열린 국제 방산·보안전시회에 참가한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 이라크 정부가 극단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와 치열한 교전을 벌이는 상황에서 국내 방산업체들의 이라크 무기수출 움직임이 알려질 경우 한국인이 IS표적이 될 가능성도 있다. 벌써부터 이라크 현지 교민들의 안전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 3월7일부터 10일까지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제4회 이라크 방산·보안전시회(The 4th International Defense, Security, and aviation Fair Exhibition)가 열렸다. 이라크 국방부가 직접 주최·주관하는 이 전시회는 2012년 처음 개최된 이후 매년 열린다. 국내외 기업이 이라크 군·경이 필요로 하는 무기를 직접 판매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참여 기업이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특히 정치가 불안정한 탓에 이라크 정부의 무기 도입은 경쟁계약보다 수의계약이 많이 이뤄져 군 수뇌부와 인적 네트워크를 쌓는 게 중요하다. 이런 상황에서 이라크 국방부가 주최한 이 전시회는 국내 방산업체로서는 강력한 세일즈의 장이다.

FA-50. 재작년에 무려 2조2000억원을 벌어들인 수출 효자다. 박근혜 대통령의 ‘창조경제 성공 모델’로 꼽힌다. 하지만 ‘창조경제의 성공’으로 한국인이 IS 표적이 될 위험에 처했다. ⓒ EPA연합
“국익 위해 최소 규모로 ‘조용히’ 갔다”

지난해에는 12개국 40여 개 업체가 참가했는데 올해는 25개 국가, 79개 업체다. 국내에서는 한화, 한국항공우주산업(KAI), S&T 모티브, 중소기업 2곳 등 5곳이 전시회에 참가했다. 2012년 첫 전시회에 KAI·삼성SDS·LIG넥스원 등 18개 업체가 참가했고, 지난해에는 한화·KAI·삼성텔레스·티타대우·S&T모티브 등이 비슷한 규모로 참여했다.

경제적 이득만 보면 놓칠 수 없는 기회지만 한국 정부가 이라크 정부에 살상용 무기를 팔고 있는 모습이 IS를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라크 정부가 IS와 전면전을 치르는 상황에서 한국 기업들이 이라크 정부에 무기를 파는 것은 ‘공식적으로’ IS와 전쟁을 선포하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중동지역 한국인의 생명을 위험에 빠뜨릴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국내 기업의 국제 방산전시회 참여를 주관하는 한국방위산업진흥회 관계자는 “작년 또는 재작년쯤 방산전시회에 참가한 업체 관계자들 숙소 바로 옆에서 폭탄 테러가 일어나기도 했다”고 말했다. 더구나 지금 이라크는 과거보다 더 악화된 상황이다. 이 때문에 정부와 기업이 전시회 참가를 이라크 현지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홍보했던 과거와 달리 올해에는 전시회 참여 자체를 현지 언론에 비보도를 요청하며 극비에 붙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라크 방산전시회와 IS를 연관 지은 일부 외신보도가 이미 나오고 있다. 신화통신은 3월8일 ‘이라크 정부, IS에 대항해 무기전시회 열어(Iraq hosts arms exhibition amid fight against IS militants)’라는 기사를 실었다. 여기에는 바하 알아라지 이라크 부총리가 전시회 개회식에서 전시회에 참가한 해외업체 관계자들에게 “만약 여러분이 테러리즘에 맞서 싸우고 있는 이라크 정부를 지지하지 않는다면, IS 테러단체가 여러분들의 나라에도 당도할 것이다(The IS terrorist group will reach to your own countries if you don't stand with those who are fighting terrorism, particularly Iraq.”)”라고 참여업체에 ‘경고(warned)’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라크 방산전시회 참여업체를 자신의 편이자, 동맹군으로 인식하고 있는 이라크 정부의 시각을 엿볼 수 있다.

더욱이 IS 모체가 2004년 김선일씨 살해 사건을 주도한 이슬람 무장단체 ‘유일신과 성전’인 점, 지난 1월 일본인이 IS 세력에 납치돼 참수됐다는 점을 볼 때 한국인도 IS 표적에서 예외라고 확신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정부는 올해 국내 방산업체가 이라크 무기전시회에 참가하는 것을 두고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표결에 부친 것으로 전해졌다. 국회 국방위 소속 관계자는 “정부가 기업들의 이라크행을 강제적으로 막았다간 사기업 활동을 막는다는 얘기가 나올 수 있다”며 “하지만 NSC까지 올라갔다는 것은 정부 당국이 이번 전시회 참여에 대해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고 말했다.

전시회에 참여한 KAI와 한화 관계자 역시 “IS 위협을 고려해 전시회 내 부스 크기도 줄이고 참여인원도 작년에 비해 대폭 축소했다”며 “국민 안전에 해가 되지 않도록 최대한 신경을 썼다”고 전했다.

가장 잔인하고 위험한 극단주의 테러단체로 꼽히는 IS가 최근 6개월 동안 납치·살해한 외국인만 9명에 이른다.
방사청 “국익 위해 보도하지 말아달라”

이라크 치안 위험에도 불구하고 전시회 참여를 강행한 기업만 탓할 수도 없다. 정부가 만류했다는 얘기도 나오지만 더 강하게 기업에 조치를 취했어야 했다는 지적도 있다. 정부의 최종 승인이 없었다면 기업들의 이라크행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번 이라크 전시 참여는 외교부가 최종 승인한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 정부는 2007년 이후 대체적으로 이라크를 여행금지국으로 지정했지만 이 전시회 참가에 대해 예외적으로 여권 사용을 허가해왔다. 또한 ‘군용전략물자수출통제훈령’에는 외교부가 방산물자 수출요주의 국가 명단을 발행하도록 돼 있다. 국가안보, 외교 마찰, 정세 불안, 우리 국민 보호, 유엔 제재, 국제규범, WMD(대량살상무기) 개발·확산우려, 특별요청 등이 있을 때 외교부가 해당 국가에 대한 수출을 금지할 수 있다. 외교부 내부에서 최근 “이라크 정세가 불안정하니 조심해야 한다”는 의견서를 작성했음에도 외교부는 이라크는 수출요주의 국가로 지정하지 않았다. 시사저널은 외교부에 ‘이라크를 요주의 국가로 지정하지 않은 까닭’에 대해 답변을 요청했으나 “공식적으로 답변할 수 없다”는 입장만 밝혔다.

국방부·방위사업청(방사청)의 책임론도 제기된다. 실제 이번 전시회를 주도한 곳은 한국방위산업진흥회지만 전시회에 참여하려면 방사청에 신청서를 내고, 방사청이 최종 결정하기 때문이다. 방사청은 “일본도 자국 국민이 참수됐지만 대규모로 참석했고 중국도 마찬가지”라며 “국익을 위해 보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요청하기도 했다.

정부 당국이 적극적으로 만류하지 않은 것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의 ‘창조경제’ 때문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방위산업을 창조경제 핵심 분야로 키우겠다”며 “특히 국산 전투기 FA-50은 창조경제의 성공모델”이라고 강조했다. 가뜩이나 국내 경제에 디플레 우려가 확산되는 상황에서 사업성이 좋은 이라크에 대한 방산수출을 적극적으로 제지하기가 힘들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위험한’ 이라크 방산 시장은 블루오션 


국내 업체가 위험을 감수하면서 이라크 무기전시회에 참여한 이유는 이라크 방산 시장의 엄청난 시장성 때문이다. 산업연구원(KIET)이 지난해 내놓은 보고서를 보면, 2014년부터 2018년까지 향후 5년 동안 한국 방산 수출 유망 국가로 이라크가 미국, 인도에 이어 3위로 분류됐다. 전 세계적으로 국방비를 줄이는 추세에서 예외적으로 국방 예산이 급증하고 있는 이라크 시장이 방산업계의 ‘블루오션’이라는 얘기다. 특히 지리적으로 이라크가 중장기적으로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등 주변국 방산시장 진출까지 꾀할 수 있는 교두보라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이라크 무기 구매와 보안 관련 예산이 급증하고 있다. 무기 획득 예산 규모는 2013년 한 해에만 전년 대비 124% 증가한 30억5000만 달러(약 3조3540억원)로 2014년부터 향후 5년 동안 170억 달러(약 18조5400억원)를 넘길 전망이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2013년 국산 경공격기 FA-50(수출 모델명 T-50IQ) 24대를 총 11억3000만 달러(약 1조1870억원)에 수출하는 계약을 따내기도 했다.

한화는 이라크 자이툰부대 파병 경력이 있는 군 장성 출신을 영입해 이 지역에 공을 들여왔다. 초대 자이툰부대 사단장을 지낸 황의돈 전 육군 참모총장(육사 31기)을 지난해 4월 (주)한화 사외이사로 영입했다. 이라크 자이툰부대에서 인사여단장을 지낸 최익봉 전 특전사령관 역시 2012년 한화건설 전무로 영입했다. 지난해 김승연 회장이 직접 방문해 수주한 이라크 비스마야 신도시 주택 10만 가구 건설 사업이 이라크 방산 사업을 키우기 위한 포석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이라크 정부는 2013년 12월 한국의 FA-50 경공격기 구매 때도 절충교역제도가 없음에도 병원 설립 등을 무기 구매에 포함해 요구했을 정도로 해외 기업의 적극적 투자를 희망하고 있다. 실제로 한화는 신도시 사업을 통해 이라크 정부와 국민들 사이에 인지도와 신뢰도를 높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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