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도 5만원짜리를?
  • 윤길주 | 편집국장 ()
  • 승인 2015.03.19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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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처음 도입된 전국 동시 조합장 선거가 끝났습니다. 1326명의 농협·수협·산림조합장이 선출됐습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습니다. 선거운동 과정에서 악취가 진동했습니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선거가 치러지는지조차 몰랐겠지만 농어촌 지역은 몸살을 앓았습니다.

 중앙선관위는 조합장 선거 기간 동안 위법 행위 746건을 적발해 이 중 147건을 수사 당국에 고발했습니다. 7명이 구속되고 8명에 대해 구속영장이 청구됐습니다. 선관위가 당선 이후에도 끝까지 추적하겠다고 한 만큼 구속자는 더 늘어날 전망입니다.

 돈 봉투가 난무했습니다. 경상남도 진주에선 현직 조합장이 고무줄로 20만원씩 묶은 현금을 돌리다 체포됐습니다. 충청남도에서는 한 후보자가 1인당 20만~30만원씩 총 6000만원을 뿌렸다가 고발됐습니다. 한 축협 조합장 출마 예정자는 현 조합장에게 출마 포기를 종용하며 5000만원을 건네기도 했습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5당 4락’이란 말이 유행했습니다. 5억원을 쓰면 당선되고 4억을 쓰면 떨어진다는 얘기입니다. 어떤 곳에서는 ‘개도 5만원짜리를 물고 다닌다’는 우스개까지 돌았습니다. 그만큼 선거가 지저분했던 겁니다.

 조합장이 되려고 죽기 살기로 덤비는 이유는 빤합니다. 5억원을 써도 당선만 되면 본전을 어렵잖게 뽑을 수 있고, 지역에서 유력자 행세를 하기 때문입니다. 임기 4년인 조합장 연봉은 7000만~1억원에 달합니다. 전국 농·수·축협 자산은 290조원에 육박하며 단위조합 평균 자산은 2500억원이나 됩니다. 조합장은 이 돈을 굴리는 ‘큰손’이자 인사권을 거머쥔 막강한 권력자입니다. 조합에서 발주하는 각종 이권 사업에 개입해 리베이트를 챙기는 이도 있습니다. 권력은 ‘머릿수’에서 나오는데 조합장은 조합원이라는 든든한 ‘빽’을 갖고 있습니다. 국회의원들이 지역에 내려가 조합장에게 굽신거리는 것은, 이들이 표를 몰아줄 힘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금권 선거의 가장 큰 피해자는 지역민들입니다. 동네에서 지지하는 후보에 따라 편이 나뉘고, 이웃끼리 원수가 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선거철만 되면 공동체가 갈기갈기 찢기고 민심은 흉흉해지는 겁니다. 탐욕에 눈먼 자들이 돈 봉투로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것은 가당찮은 일입니다. 이제 끝장내야 합니다. 불법 선거운동을 하면 패가망신한다는 걸 보여줘야 합니다. 뿌린 돈의 수십 배를 벌금으로 물리거나, 한 번 걸리면 영구히 피선거권을 박탈하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합니다.

 조합장은 ‘선량한 관리자’로만 기능하도록 권한을 제한하고, 감시·견제 장치를 강화해야 합니다. 모든 조합에 감사가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농사짓는 조합원들이 맡고 있어 전문성이 떨어지고 조합장의 눈치를 보는 게 현실입니다. 감사를 외부 전문가에게 맡겨 투명성을 높여야 합니다. 현재는 일정 규모 이상의 조합만 외부 감사보고를 하도록 돼 있습니다. 이를 모든 조합으로 확대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조합장이 멋대로 조합을 주무르지 못할 것입니다. 팔자라도 고치겠다는 듯 수억 원씩 쓰며 조합장이 되려는 이들도 줄어들 겁니다. 이번에 당선된 사람들은 감투를 쓴 게 아니라 농어민들의 머슴이 됐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잇속 챙기려다 감옥 간 사람들 수두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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