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언맨 슈트 입은 군인 전쟁터 누빈다
  • 김진령 기자 (jy@sisapress.com)
  • 승인 2015.03.19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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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머노이드 로봇 개발 경쟁…인류의 삶에 대격변 예고

후쿠시마 원전 사고 현장에 인간형 휴머노이드 로봇이 차를 운전하고 접근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드릴로 벽을 뚫고 들어가 현장을 수습한다. 퇴근 후 술을 한잔하고 스마트폰 앱을 켜 목적지를 입력하고 무인차를 부른다. 3분 안에 도착한 자동차에는 아무도 없고 차에 오르자 문이 닫히고 곧바로 출발한다. 두 상황은 먼 미래의 일이 아니다. 오는 6월 미국 국방부 산하 연구기관인 다르파(DARPA)가 주최하는 재난구조 로봇 본선대회에서 한국·미국·일본 등 25개 팀은 전자의 미션을 휴머노이드 로봇을 통해 구현한다. 후자의 경우 2007년부터 구글이 무인자동차를 개발해 수만 마일의 사막 주행과 도심 주행에서 무사고를 기록 중이다. 당국이 허가만 내준다면 당장이라도 실전 운행에 들어갈 수 있다. 무인자동차의 등장은 축복이자 재앙일 것이다. 수많은 택시 운전기사가 일자리를 잃을 것이기 때문이다.

로봇은 이미 우리 곁에 왔다. 다만 영화에서처럼 인간의 직립보행과 손발 활용 기술 발전이 더딜 뿐이다. 시사저널은 한재권 박사(로보티즈 책임연구원, <로봇 정신>의 저자)의 도움말과 인터뷰를 통해 로봇이 어디까지 발전했고, 한국은 어느 좌표에 와 있는지 알아봤다. 한 박사는 로보컵 대회 휴머노이드 키즈 사이즈와 어덜트 사이즈에서 동시 우승한 기록을 갖고 있고, 다르파 재난구조 로봇 대회에서도 자신이 개발한 휴머노이드 똘망으로 본선에 진출했다. 현재 본선 대회 준비를 위해 미국에서 전지훈련 중이다.

 


ⓒ 시사저널 우태윤
왜 휴머노이드인가

SF영화도 아닌데 굳이 로봇이 인간을 닮을 필요가 있을까. 닮아야 쓰임새가 더 넓어진다. 지구에 세워진 모든 시스템과 하드웨어는 인간이 직립보행을 하고 두 팔과 두 다리를 쓴다는 전제로 만들어져 있다. 문고리가 성인 허리께에 달려 있고 비상 대피로에 사다리가 있는 것도 인간의 몸 구조를 반영한 결과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때 바퀴 달린 로봇을 투입했지만 효과를 보지 못한 이유는 문을 열고 사다리 오르내리기, 밸브 개방, 소방 호스 연결 등의 재난구조 활동에서 아무 쓸모가 없었기 때문이다. 


구글의 전략

구글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하고 무서운 로봇 회사다. 구글은 빅데이터 처리 능력과 각종 인식 프로그램, 인공지능 등 로봇에 필요한 거의 모든 기술과 자산을 갖고 있다. 단 하나 없는 게 있다면 하드웨어 제조 기술. 구글은 이를 인수·합병으로 해결했다. 구글은 2013년 12월 다르파 대회 예선에서 1등을 한 일본의 샤프트와 군수용 로봇업체 중 최대 매출을 기록하고 있는 미국의 보스턴다이내믹스 등 세계 톱랭커 로봇 개발회사 8곳을 동시에 인수해버렸다. 이후 샤프트는 대외 활동을 완전히 접었고 보스턴다이내믹스는 미국 국방부 프로젝트를 중단하고 장막 뒤로 사라졌다. 이들 회사에 대한 인수·합병은 또 다른 형태의 로봇인 구글의 무인차와는 다른 프로젝트다. 구글의 무인차 프로젝트에 따르면, 2007년 다르파 무인자동차 챌린지 대회에서 우승한 스탠퍼드 대학의 세바스티안 스룬 교수팀을 영입해 2017년 본격적인 서비스에 나설 예정이다. 샤프트 등은 사지 관절을 이용해 직립보행을 하는 휴머노이드 로봇에 특화된 로봇회사들이라 구글의 신병기가 휴머노이드 형태의 로봇 서비스일 것이라 짐작되고 있다.

 

국방 로봇의 진화

국방 로봇은 로봇 연구가 가장 활발한 분야다. 각국 정부가 예산을 쏟아부으며 지원하고 있다. 무인폭격기나 무인전차(이스라엘의 가디움)는 이미 실전에 투입됐다.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후 미국은 국방 로봇 개발에 공을 들이고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국방 로봇 기업인 레이시온은 60kg 정도의 군장을 들고 무리 없이 뛰고 날 수 있는 근력 증강 로봇(외골격 로봇, 입는 로봇)을 개발하고 있고 일본의 사이버다인은 ‘의료용’이라는 명분으로 ‘할(hal)’이라는 로봇을 개발했다. 하체 거동이 불편한 사람이 할을 착용하면 일상생활을 정상인처럼 할 수 있다. 장시간 외부 충전 없이 쓸 수 있는 배터리만 개발된다면 아이언맨 슈트를 입은 슈퍼솔저의 실전 투입을 곧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국방 로봇 개발의 최종 기착지는 무인로봇이 될 것이다. 로봇업계에서는 무인전차 다음으로 로봇 군인이 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는 인공지능 기술이 더 발달해 바퀴 달린 감성 로봇 페퍼나 테이블 위에 올라앉아 고개를 돌리며 식구를 알아보고 대화를 하는 ‘지보(jibo)’가 등장한 정도지만 휴머노이드 로봇 기술의 동작 제어 기술이 한 단계 더 발전하고 여기에 인공지능을 적용하면 전투 능력은 로봇의 여러 옵션 중 하나로 자리 잡을 것이다. 미국 테슬라의 CEO인 엘론 머스크는 “인공지능은 악마를 소환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영국의 천체물리학자 스티브 호킹 박사도 “완전한 ‘인공지능’의 개발은 인류의 멸망을 불러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 정부는 재난구조 로봇을 로봇 군인의 전 단계쯤으로 인식하고 있다. 로봇 군인을 개발하면 세계적인 비난 여론에 직면하겠지만 재난 상황에 인간 대신 투입하는 재난구조 로봇 개발에는 반대할 명문이 없다. 하지만 재난구조 로봇과 로봇 군인은 기술적으로나 내용적으로 종이 한 장 차이일 뿐이다. 재난구조 휴머노이드 로봇을 개발하는 기술은 여러 가지 방향으로 가지를 뻗는 나무와 같다. 어느 방향으로 뻗어갈지는 가지치기를 하는 인간의 손에 달렸다.     

 

미국·일본·중국의 휴머노이드 로봇

미국은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에 적극적이다. 대학 연구소와 민간 기업을 앞세워 진행하고 있다. 미국은 로봇 기술 개발이 중국을 견제하는 데 한몫할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 경제의 가장 큰 자산인 싼 노동력을 무력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가장 큰 위협은 북한 핵도, 중국과의 영토 분쟁도 아니다. 고령화다. 일본의 고령화는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이다. 심각한 노동력 부족과 도시 외곽 공동화, 경제 성장률 저하가 이미 진행되고 있다. 노인 복지용 실버로봇 개발에 열중하고 감성 로봇 페퍼가 일본에서 먼저 등장한 이유다.

중국은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에 소극적이었지만 미국이 드라이브를 걸자 적극적으로 개발에 나서고 있다. 돌이킬 수 없는 변화라면 주도권을 쥐자는 입장이다.

 
한국의 휴머노이드

우리나라의 휴머노이드 개발은 삼성종기원이 주도했다. 혼다의 아시모보다 뛰어나다는 평을 얻었다. 하지만 이 팀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2012년 해체되고 연구원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무인로봇의 일종인 무인장갑차를 개발하던 삼성테크윈이 올 초 한화에 매각된 것을 보면 이미 그때부터 삼성의 사업 지도에 이런 그림이 그려졌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LIG넥스원에서도 드론과 무인장갑차를 개발하고 있다. 산업용 로봇은 현대중공업이 상당한 실적을 올리고 있고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과 생산에는 로보티즈가 있다. 지난해 5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재래식 무기 금지 협약(CCW) 회의에서 한국은 미국과 함께 살인 로봇을 제조할 위험성이 큰 국가로 지목됐다.



일본 샤프트가 만든 로봇의 운전 주행 모습 ⓒ 다르파 챌린지 제공
최근 다양한 형태의 로봇이 상용화되고 있는데, 이 중에서도 가장 주목해야 할 로봇은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야심 차게 준비한 로봇 페퍼(Pepper)다. 향후 인간관계까지 바꿀 로봇이며 경제와 사회 판도를 크게 바꿀 존재다.

2014년 6월5일 처음 모습을 드러낸 페퍼는 놀라울 정도로 부드러운 손동작과 인간과 비슷한 감정 표현 능력을 보여줬다. 페퍼의 인공지능을 통한 주인과의 대화도 사람과의 대화처럼 자연스러웠다. 페퍼는 주위 상황 판단이 가능하고 자율적인 행동 판단을 할 수 있으며, 사람의 표정과 목소리를 분석해 사람의 감정을 헤아릴 수 있는 지능을 가진 로봇이다. SF영화 속에서나 보던 휴머노이드인 셈이다.

놀라운 점은 이렇게 정밀한 휴머노이드가 19만8000엔(약 184만원)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더 놀라운 것은 2015년부터 일반인에게 판매될 예정이라는 점이다. 이미 소프트뱅크는 2015년 2월27일 개발자를 위한 페퍼 300대를 판매했다. 온라인 접수 1분 만에 주문이 몰려 판매가 종료됐다. 사람들은 가정용 로봇을 상용화시킨 인물로 손정의 회장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고령화·저출산 사회에서 페퍼와 같은 로봇은 가족제도를 크게 바꿀 것이다. 이미 대화 기능이 들어간 페퍼는 애완견, 애완 고양이보다 훌륭한 반려로봇이다. 최근 선보인 게이샤 로봇처럼 성적 기능이 포함될 경우 이성 대신 로봇을 애인으로 삼고 지낼 남녀가 많아질 것이다.

페퍼와 같은 로봇 개발이 가능해진 것은 기계공학 외에도 음성인식 기술, 인공지능, 클라우드 컴퓨팅과 같은 다양한 기술이 바탕이 되었다. 음성인식 기술이 가능해졌다는 말은 기계가 사람의 말을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이미 음성 친구 또는 음성 비서 제품이 출시된 상태다. 2014년 말에 출시된 아마존의 에코(Echo)는 스피커통 모양의 기계인데 사람이 질문하는 내용에 대답하거나 사람이 요구한 대로 동작하는 음성 비서 제품이다. 이러한 음성 비서가 자동차·스마트폰·시계·냉장고 등 다양한 분야에 탑재될 것이다.

로봇산업이 정보기술과 접목되면서 미래 사회에서는 수많은 직업이 로봇에 의해 사라지고, 나타날 것이다. 아마존은 음성 비서 에코 외에도 자사 업무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키바(Kiva) 시스템을 비롯해 배달용 드론인 ‘프라임 에어(Prime Air)’ 등을 개발해 사용 중이다. 키바는 이미 아마존 물류창고 안에서 사람을 대신해 물건을 나르는 업무를 완벽하게 수행하고 있다. 드론을 운송 업무에 쓴다면 업무 효율성이 더 커지겠지만, 법적·정치적 문제 탓에 상용화되지 못하고 있다. 하늘에 수백만 대의 드론이 날아다니는 것을 허락해줘야 하는데, 정부로서는 각종 안전사고와 사생활 문제 등을 고려해 쉽게 승인하지 못하고 있다.

법적·정치적 이슈를 야기하는 드론과 달리 기업 내부적으로는 아마존의 키바와 같은 시스템이 각 분야에서 활발하게 도입되고 있다. 넓은 병원이나 요양원에서 건물과 건물 사이로 약을 배달하는 일은 시간과 인건비가 많이 든다. UCSF 메디컬센터에 배치될 ‘이브’도 키바와 비슷한 로봇이다. 이브는 의약품을 비롯해 여러 물건을 배달하는 로봇으로 메디컬센터에서 최단 이동 경로를 쉽게 찾을 수 있는 로봇이다. 이동 중에 사람이 앞을 막으면 ‘약 배달 중입니다. 잠시만 비켜주시겠어요?’라고 말하면서 자기 일을 수행한다. 이외에도 음식을 배달하는 ‘고카트(GoCart)’를 비롯해, 호텔의 룸서비스 배달을 대신하는 ‘보틀러(Botlr)’, 캐디처럼 주인 골퍼를 따라다니면서 골프가방을 들고 다니는 ‘캐디트렉(Caddy Trek)’, 경비를 담당하는 K5 등 다양한 로봇이 등장하고 있다.

이들 로봇은 2015년부터 보급될 페퍼를 기점으로 폭발적으로 확산될 전망이다. 캐디트렉 로봇이 캐디라는 직업의 몰락을 예고하는 것처럼 각종 로봇의 확산은 기존 직업의 몰락 및 산업의 재편, 남녀의 결혼관 등 다양한 부문에서 사회를 뒤흔들 것이다. 정부와 기업은 반려동물 및 친구를 대신할 수 있는 휴머노이드와 가정용 로봇의 보급이 먼 미래의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사회의 많은 것이 바뀐 것보다 휴머노이드 로봇 보급에 따른 변화가 더 엄청날 것이다. 미래 사회를 준비하려는 기업이라면 로봇 시대에 대비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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