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 잃은 홍대 거리에 전단지만 나뒹군다
  • 이규대 기자 (bluesy@sisapress.com)
  • 승인 2015.03.19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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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여자친구를 데려온 곳이었어요.” ‘단골’ 김영민씨가 마이크를 잡았다. 홍대 앞에서 뮤지션으로 활동하는 김씨가 이곳을 처음 찾은 것은 2003년의 일이다. 이곳 특유의 자유롭고 친근한 분위기가 좋았다. 10년이 넘는 시간을 단골로 지냈다. 이곳은 그에게 20대 무렵의 추억이 오롯이 깃든 장소다.

“주방에 들어오면 언제나 편안함을 느꼈어요. 하루 일을 마치고 나면 ‘잘 놀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뿌듯했죠.” ‘스태프’ 박선영씨가 마이크를 잡았다. 박씨는 2004년 손님으로 이곳을 처음 찾았다. 미술 이론을 전공하던 대학생 때의 일이다. 6~7년 전부터 이곳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하루하루가 즐겁고 보람 있었다. 이곳은 박씨에게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일터다. 오래 몸담으며 미래를 그려나가고 싶은, ‘잘 놀 수 있는 판’과 같은 곳이다.

3월12일 홍대 앞 거리 풍경. 치솟는 상가 임대료가 이곳의 풍경을 바꿔놓았다. ⓒ 시사저널 박은숙
마이크를 든 이들 앞에 수십 명의 사람이 앉아 있다. 바로 이곳, 지난 2002년부터 홍대 앞을 지켜온 이탈리안 레스토랑 ‘제니스카페’를 아끼는 이들이다. 오늘이 마지막 날이다. 제니스카페는 3월7일을 끝으로 홍대 앞을 떠나게 됐다. 이에 가게 주인 및 스태프, 단골과 인근 예술가 등이 모여 ‘홍대 앞 13년’을 돌아보는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가게의 공동 운영자 김소라씨(44)가 마이크를 잡았다. 목소리가 떨렸다. “(이번까지) 저희 세 번 쫓겨났거든요. 한 번도 권리금 받고 나와본 적이 없어요.” 법은 항상 건물주만을 보호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고민이 깊었다. 결국 자신들의 터전이었던 홍대 앞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이곳을 지키는 일이 더는 의미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권리금’이라는 것이 있다. 가게를 낼 때 보증금·월세 등 임대료와는 별도로 지출하는 돈이다. 새로 상가를 임차하는 상인이 직전까지 임차하고 있던 상인에게 낸다. 홍대 앞처럼 ‘핫’한 상권은 대개 수천만 원 수준이다. 비싼 곳은 억대를 호가한다. 가게 임차상인 입장에서는 목돈의 초기 투자에 해당한다. 가게를 정리하게 됐을 때, 이를 인수할 상인으로부터 권리금을 돌려받지 못하면 큰 손실을 입는다. 문제는 이런 권리금이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계약서에 존재하지 않는, 말 그대로 ‘관행’일 뿐이기 때문이다.

“‘임대료’ 올려주든지 ‘권리금’ 포기하든지”

‘갑’인 건물주는 이를 악용한다. 재계약 시점이 다가오면 두 배 이상 높은 수준의 임대료 인상을 요구한다. 임차상인이 거부하면 재계약이 결렬되는데, 이때 권리금을 돌려받을 수 없는 상황으로 유도한다. 건물을 새로 짓는다거나, 자신이나 가족·지인이 직접 운영한다는 등의 이유를 내세워 다음 임차상인과의 계약을 거부한다. 그러면 권리금을 돌려받을 방법이 없다. 일방적으로 내쫓기면서도 거액의 초기 투자금마저 회수할 수 없게 되기 십상이다. 건물주는 쫓아낸 가게의 아이디어를 차용해 스스로 가게를 꾸린다든지, 직접 임차상인을 구해 자신이 권리금을 챙긴다. 임차상인이 수차례 교체되며 상권이 커지는 동안 건물 가치는 꾸역꾸역 오른다.

‘임대료 올려주든지, 아니면 권리금 못 받고 나가든지.’ 다수의 홍대 앞 임차상인들이 맞닥뜨리는 부조리한 선택지다. 현행법에서는 상인의 임차권을 5년만 보호한다. 5년이 지나면 임대료를 마음껏 올릴 수 있다. 아무리 장사가 잘되는 가게라도 순식간에 치솟은 임대료를 감내할 수 있는 곳은 거의 없다. 고정 지출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임대료가 한꺼번에 뛰면 기존에 유지해왔던 가게 운영이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적자를 내며 가게를 운영할 순 없다. 울며 겨자 먹기로 후자를 택하는 경우가 많다. 수천만 원 이상의 권리금을 포기한 채 상권 외곽으로, 타 지역으로 밀려나게 된다.

제니스카페도 마찬가지다. 지난 13년간 홍대 앞에 머무르는 동안 이런 보편적·일반적 수법 앞에 무력했다. 2002년 홍대 앞 미술학원 거리에 자리를 잡았다. 5년 후인 2007년에 쫓겨났다. 가게의 이름값이 부쩍 높아진 것을 본 건물주가 친지를 통해 직접 가게를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권리금 2900만원을 받지 못했다. 상권에서 좀 더 외곽인 지금 위치로 옮겼다. 역시 5년 후인 2013년, 건물주는 월세를 두 배 이상 올려달라고 요구했다. 수지가 맞지 않았다. 버틸 수 없었다. 결국 지난해 12월 홍대 앞에서 영업을 끝내기로 결정했다. 이번 건물주 역시 제니스카페가 구해온 임차상인과의 계약을 거부했다. 자기 동생이 가게를 할 것이라 했다. 권리금을 받지 못하면서 초기 투자금을 회수하지 못했다. 이미 2008년 사업 확장차 낸 빵집 역시 5년을 버티지 못하고 쫓겨난 바 있다. 결국 홍대 앞 상권에서 세 번 쫓겨나는 동안, 단 한 번도 권리금을 챙기지 못했다.

홍대 앞 점포가 정리되고 난 뒤인 3월12일, 운영자 김씨로부터 더 자세한 소회를 들었다. 홍대 앞을 떠나는 심경은 사실 더 복잡하다고 했다. “건물주의 요구로 쫓겨가는 것이 홍대 앞을 떠나는 이유의 전부가 아니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정말 나를 슬프게 하는 것이 있다. 솔직히 더 이상 홍대 앞에 있고 싶지 않다는 사실이다.” 처음 이곳에 발을 들였을 때와는 너무도 달라진 분위기 때문이다.

ⓒ 시사저널 박은숙
예술가들 발길 돌리면서 호객 행위만 극성

홍대 앞 지역에서 오랫동안 활동해온 복수의 예술가 및 상인들 말을 종합하면, 상권이 떠오르면서 급속도로 유입된 ‘돈’이 홍대 앞 거리문화를 뒤바꿔놓았다. 2000년대 중·후반을 거치며 본격화된 현상이다. 당시 상권의 인기가 절정으로 치달았다. 상가 부동산 가치가 끝을 모르고 뛴다. 월세도 따라 오른다. 가게 운영은 압박받는다. 과거보다 더 큰 수익을 내야 유지가 가능하다. 그 결과 ‘규모의 경제’가 가능한 프랜차이즈 업체가 급증했다. 기존에도 몇몇 프랜차이즈 업소가 있기는 했다. 하지만 이즈음부터 큰길 주변을 유명 프랜차이즈 점포들이 우후죽순 장악하게 된다.

치솟는 월세를 감당할 수 있는 것은 빠른 테이블 순환이 가능한 가게다. 다소 노골적이고 자극적인 콘셉트의 바·술집 등도 고객 확보에 유리하다. 홍대 앞 상권을 키웠던, 특정 취향의 단골을 대상으로 ‘느린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해온 가게는 버티기 힘들다. 속칭 ‘삐끼’가 등장한 것도, 거리를 홍보 ‘찌라시’가 뒤덮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라고 한다. 골목 안쪽 점포들을 중심으로 점점 호객 행위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가중되는 임대료 압박이, 점포 수익으로 직결되는 고객 유치 경쟁을 가열시켰다는 해석이 나온다.

홍대 앞을 찾는 주 소비층도 변했다.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구매력을 갖춘 30·40대가 중심이었다. 홍대 앞이 문화의 메카로 떠오르면서 예술인들이 모여들었고, 이들이 곧 홍대 앞 상권의 주된 수요층이자 공급층이 됐다. 독특한 취향, 눈길을 끄는 문화적 감수성이 사랑받았다. 홍대 앞의 ‘주가’를 높였다. 하지만 홍대 앞 상권이 떠오르자 가장 먼저 튕겨나간 이들이 예술가들이다. 그들이 거주하던 주택·원룸 등의 월세도 감당하기 힘든 수준으로 뛰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문화를 향유하던 30·40대도 차츰 떠났다. 그 결과 홍대 앞을 주로 채우는 것은 10·20대 중심의 젊은 소비자들이다. 지갑이 상대적으로 얇은 이들에게 어필하는 것은 박리다매식 서비스다. 결국 홍대 앞 상권을 특징짓던, 개성 있고 감각적인 문화는 점차 사라지고 있는 상황이다.

김소라씨의 말이다. “골목마다 고유의 매력을 간직한 가게가 일부 남아 있긴 하다. 하지만 가게 나름의 철학과 문화를 지켜가는 곳이 과연 얼마나 있는지, 그런 부분이 제대로 소비되고 있는지 아쉬운 마음이 크다. 다른 가게 주인들과 얘기해보면, 이 지역이 평범한 관광지가 된 느낌을 많이 받는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4~5년 전부터 홍대 앞 상권에서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제니스카페는 서울 연희동에 다시 문을 열었다. 시세가 홍대 앞의 3분의 1 수준이다. 인근 대흥동·신수동·망원동 등으로 홍대 앞에서 방사형으로 튕겨져 나간 다른 가게들의 전철을 밟게 됐다. 운영자 김소라씨는 여전히 불안하다. 5년이 채 못 되어 장소를 옮길 때마다의, 재계약 전후 극도로 초조했던 기억이 생생하기 때문이다. “권리금을 어떻게든 회수해보려다 끝내 좌절하고, 매번 재투자나 직원 고용 문제 등 불투명한 미래와 맞닥뜨리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연희동이라고 그러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나.” 단골 고객이 10년의 청춘을 함께해온, 스태프가 현재의 즐거움과 미래의 행복을 의탁하는 이 ‘문화적 공간’은 5년이 안 되는 시간마다 생존을 골몰해야 한다.

상권이 커질수록 거리는 파괴된다. 잔인한 역설이다. 미친 듯이 치솟는 땅값이 모든 것을 바꾸어놓는다. 현행 법 및 제도가 거리의 진짜 주인공들을 보호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소비자는 사랑했던 단골 가게를, 그 속에 담긴 개성과 문화를 잃는다. 노동자는 소중한 일터를 잃는다. 임차상인은 꿈과 자본을 잃고 아이디어를 뺏긴다. 그렇게 모두가 밀려난다. 거리는 평범해진다. 거리를 그 거리답게 했던 ‘영혼’을 잃는다. 그 과정에서 웃는 건, 부동산을 소유한 건물주들뿐이다.


 


서울 상가 평균 수명 ‘고작 1.7년’ 


2013년부터 홍대 앞에서 카페를 운영해온 30대 남성 이 아무개씨. 그에게 건물주는 ‘무시무시한 사람’이다. 이씨는 곧 재계약을 앞두고 있다. 아직 5년이 안 됐으니 법적으로 임차권이 보호된다. 재계약 시 임대료 상승률도 9%를 넘을 수 없다. 그럼에도 이씨는 건물주가 무섭다. 현행법이 사실상 유명무실하기 때문이다.

이씨에 따르면 “9%를 안 넘기고 재계약을 하려 하면, 결국 나중에 권리금은 포기해야 한다”는 게 가게 주인들 사이에서 불문율로 통한다고 한다. 건물주가 권리금을 못 받도록 하는 일이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법이 보장하는 5년이 되지 않았음에도, 건물주가 바라는 만큼의 9% 이상의 월세 인상 요구를 거절하기 어렵다고 한다. 이씨가 끊임없이 건물주의 눈치를 보는 이유다. 인근의 한 가게는 2~3년 만에 장사가 자리를 잡았음에도 꿈을 못 펼치고 지방으로의 이전을 알아보고 있다고 전했다. 결국 홍대 앞 상인들은 1~2년 재계약 단위별로, 그것도 사실상 범위 제한이 없는 임대료 인상 압력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1.7년. 서울 시내 주요 상권 상가의 ‘평균 임대 기간’이다. 서울시가 2013년 11월부터 2014년 2월까지 한국감정원에 의뢰해 실시한 조사에서 드러난 결과다. 홍대 앞을 포함하는 신촌·마포, 강남, 서울 도심 지역 등 5000여 개 상가가 조사 대상이었다. 이곳의 가게들이 고작 1.7년을 버티다 문을 닫고 있다는 뜻이다. 홍대 앞만이 아니라 서울 지역 주요 상가 전체가 자영업자의 ‘무덤’인 셈이다.


 
 

“의원님들, 권리금 좀 받게 해주세요” 


“경제적 약자인 임차인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상가 권리금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겠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2월 발표한 ‘경제 혁신 3개년 계획 담화’ 중 일부다. 권리금을 양성화해 법적 보호 범위 안에 포함시키겠다는 것이다. “권리금 보장보험을 도입하고 분쟁 조정 기구를 설치해 임차인이 억울하게 삶의 기반을 잃는 일이 없도록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정치권에서도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현행 ‘상가 건물 임대차보호법’ 개정 논의가 시작된 것이다. 지난해 9월 정부 대책이 발표된 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입법 드라이브가 걸렸다. 계약 종료 후 2개월까지 임대인(건물주)이 권리금 회수에 협력할 것을 의무로 규정하고 위반 시 손해를 배상하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하지만 여야 합의가 지연되면서 개정안 통과가 늦어지고 있다.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한 수준, 임대인 협력 의무 부과의 정당성 등을 놓고 결론을 내리지 못한 것이다. 4월 임시국회로 넘어갔으나 처리가 불투명하다는 관측이 나오는 상황이다. 김남균 전국상가세입자모임 학술국장은 “최근 건물주들 사이에서 권리금이 법제화되기 전에 임차상인들을 쫓아내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지는 분위기”라며 개정안의 조속한 처리를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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