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해와 무기 문제로 쌍욕하며 대판 싸웠다”
  • 김지영 기자 (young@sisapress.com)
  • 승인 2015.03.23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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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세례 받은 거물 무기 로비스트 린다 김

기자는 3월9일 저녁 천주교 신자인 법조계 인사 등과 저녁 식사를 함께했다. 이 자리에서 법조계 인사는 “내가 다니는 성당에서 린다 김이 세례를 받았다. 우리 신자 중 ‘유명한 법조계 인사’가 린다 김을 인도했다. 린다 김이 성당에 나오는 모습을 자주 봤다”고 전했다.

무기 로비스트 린다 김(61), 한국명 김귀옥. 2000년 10월 ‘백두·금강 사업’(음성·영상 정보 시스템 탑재 정찰기 도입 사업)과 관련해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됐다가 항소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당시 ‘사랑하는 린다’로 시작되는 이양호 전 국방부장관의 연서가 공개되면서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부적절한 관계’라는 유행어를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모든 죄악을 씻는 의식인 천주교 세례를 받은 까닭이 궁금했다. 2000년 사건 이후 간간이 언론에 모습을 비치긴 했지만 세례를 받았다는 건 또 하나의 뉴스다.

‘린다 김 세례 소식’을 전해들은 다음 날(3월10일) 공교롭게 한 일간지에 린다 김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포털 사이트 검색 순위에서 ‘린다 김’은 1위에 올랐다. 그에 대한 세인들의 관심이 여전히 뜨겁다는 것을 방증했다. 기자 입장에선 다행스럽게도 이날 인터뷰 기사에 세례를 받았다는 내용은 없었다. 기자는 평소 린다 김과 절친한 지인을 통해 린다 김과의 인터뷰를 시도했다. 하지만 그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일간지 인터뷰 기사 내용을 거론하며 “당분간 인터뷰할 생각이 없다”며 사양했다. 이후 몇 차례 더 통화하며 설득을 거듭했고 3월18일 오후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어렵사리 만날 수 있었다.        

© 시사저널 이종현

천주교 세례를 받았다고 들었다.
‘잘 아는 지인’이 내가 신앙으로 살아가게끔 많이 인도했다. 원래 종교가 없었는데, 가져야겠다는 생각에 지난해 논현동성당에서 세례를 받았다. 세례명은 ‘세실리아’다. 성당에는 꼬박꼬박 못 나가지만 최대한 많이 나가려고 노력한다.

종교 생활이 일상에 영향을 미치나.
전엔 막연히 가톨릭에 대해 호의를 가졌는데 성당에 나가면서 지금은 기도를 많이 한다. 생활이나 마음가짐에 절대적으로 도움이 된다.

항우울제를 장기간 복용한 걸로 안다. 건강은 어떤가. 
많이 좋아졌다. 활기차게 일하니까 건강도 훨씬 좋아졌다. 항우울증 약은 10년 정도 복용하고 있다. 닥터가 그만두라고 할 때까지 복용해야 한다.

미국 영주권자인데 주로 어디서 생활하나.
무기중개상으로 35년째인데 집시와 같다. 일이 있으면 유럽·이스라엘·터키 등 어디든 간다. 그런 생활의 반복이다. 여자로서의 삶이 나한텐 별로 없다. 두 딸이 미국에 있는데 로스앤젤레스(LA)가 주요 거처다. 

두 딸도 결혼했다고 알려졌는데.
두 사위가 모두 미국인이다. 큰 사위는 연방검사, 둘째 사위는 변호사다. 둘째 사위는 케네디 가문이다. 둘째 딸과 3년 동안 캠퍼스 커플이었고 지난 1월 결혼했다. 케네디 집안에서 동양인 며느리를 맞는 건 처음이라고 하더라.

1981년부터 로비스트로 35년째인데, 언제까지 이 일을 할 계획인가.
앞으로 한두 건만 더 한 뒤 은퇴할 생각이다. 정계에 계신 분들도 나보다 나이 어린 분이 많고, 너무 오래 한 것 같다. 나같이 오래 하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 후배를 충분히 가르친 다음 은퇴하려고 한다. 사람들이 날 보고 ‘저 여자는 돈을 얼마나 더 벌려고 그래’라고 하는 것 같다(웃음).

무기 로비스트로서는 관록이 쌓이는 것도 중요할 텐데 그만두려는 까닭은 무엇인가.
물론 나이와는 상관없다. 그런데 난 한평생 여자다운 생활을 해보지 못했다. 둘째 딸이 9월에 아이를 낳는다. 그래서 이제는 집에서 손자들 돌보며 가족과 함께 식사도 하고 비즈니스가 아닌 여행다운 여행도 다녀보고 싶다.

무기중개상은 어떤 직업인가.
무기 비즈니스라는 게 참 마약과도 같다. 한 번 발을 들여놓으면 빠져나오기 힘들다. 일을 하고 있으면 다른 회사에서도 하자고 한다. 그러면 또 하게 되고 ‘이것만 하고 끝내야지’ 하면 또 다른 일이 들어오면서 계속 굴러간다.

그렇다면 은퇴하기 힘들지 않나.
지금 트라이하는 게 다 끝나면 깨끗하게 물러날 것이다. 난 일을 한 번 잡으면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한두 가지 끝나면….

지금은 어디 소속으로 일하나.
국방부 일을 하는 로비스트는 회사도 전화번호도 안 알려준다. 내가 하는 일을 남이 알아서도 안 된다. 도움 되는 게 없다.

무기 계약 실패율 ‘제로’로 알려졌는데, 지금까지 몇 건이나 성사시켰나.
백두·금강 사업을 포함해 우리나라와 외국에서 17건의 딜(계약)을 성사시켰다. 한 번도 지지 않았다. 무기를 우리나라에 들여와서 잘못된 것 하나도 없다. 그 기록은 남기고 싶다. 20건까지 채우면 나이가 너무 많아진다.

2000년 5월11일 린다 김이 서울 안세병원에서 퇴원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로비스트 35년간 한 번도 진 적 없어”

로비스트로 일하다 보면 술자리도 많을 텐데.
내가 굉장히 보수적이다. 가까이 있는 사람들은 다 안다. 담배를 피우긴 하는데 술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술자리에 꼭 가야 할 필요는 없지 않나. 술 접대에는 남자 직원들이 간다. 난 음주가무를 별로 안 좋아한다. 사람들 모여가지고 수다 떠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 사람들은 내가 술 잘 마시고 잘 노는 줄 아는데, 아니다. 일 끝나면 집으로 들어간다. 술을 조금 마시긴 하는데, 제일 싫어하는 것 중 하나가 여자가 술 취한 모습이다. 국방 안보를 다루는데 술 먹고 횡설수설하면 되겠나. 난 ‘도꼬다이’(일본어로 특공대, 단독을 뜻하는 말)다. 사람 많이 모여서 얘기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한다.

커미션은 얼마나 받나.
이길 확률 많은 로비스트는 부르는 게 값이다. 무기 사업비의 0.5%, 1%, 3%까지 커미션을 준다고 하는데 난 그렇게 해본 적 없다. 7~10%를 받았다. 받는 만큼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노하우가 뭔가.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프로페셔널하다고 생각한다. 엔지니어까지는 아니지만 한국 정부에 설명할 정도로 공부를 다 한다. 파는 무기를 모르고 팔진 않는다.

“해군, 워낙 폐쇄적…그런 조직 처음 봤다”

정부 합동수사단이 통영함 납품 비리 사건을 수사하며 예비역 장성 등이 줄줄이 구속되고 있다.
통영함 사건을 보면서 내 직업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다. 깜짝 놀랐고 부끄러웠다. 해군은 워낙 폐쇄적이다. 해군은 해군끼리 뭉친다. 그렇게 잘 뭉치는 조직은 처음 봤다. 다른 나라는 그렇지 않다. 해군엔 발도 못 들여놓는다. 육군·공군은 그렇지 않다. 육군·공군에서 사고가 나면 어느 정도 상식선에서 사고가 나는데, 해군은 한 번 터지니까 크지 않나. 통영함이 세월호 사건 났을 때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지 않았나. 연평도 사건 때도 음파탐지기가 작동하지 않았다고 하더라. 30년 이상 어느 나라에서도 보지 못한 것을 봤다. 시험평가서 조작 같은 거 안 한다. 리베이트 없는 곳은 없지만 이렇게 무식한 리베이트는 없다. 이렇게 무자비하게…. 이런 법은 없다. 참 나쁘다. 저렇게 나쁠 수가 있을까. 많은 군인을 만나봤는데 진짜 나쁜 사람 없었다. 해군 쪽같이 그런 매국노들은 없었다.

일광그룹 이규태 회장도 방위사업 비리와 관련해 구속됐다.
이규태 회장이 하는 행동을 보면서도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부끄럽더라. 이 회장이 비자금을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충격이 컸다. 우리 직업이 이게 아닌데, 삶에 비애 같은 걸 느낀다.  

이규태 회장을 아나.
잘 모른다. 2000년 이후에 (방위사업을) 했다고 하더라. 얘기 들은 적은 있는데 만나고 싶진 않았다. 이 업계에서 라이벌인 적도 없다. 그런 식으로 일하는 사람들은 라이벌이 없다. 라이벌이 없으니까 거액을 빼돌렸겠지.

과거에도 방산 비리는 있었는데 혹시 알려지지 않은 게 있나.
권영해하고 미사일 구매 문제로 서로 쌍욕을 하면서 대판 싸운 적이 있다. 그가 안기부장(현 국정원장)일 때다(권씨는 1994년 12월부터 1998년 3월까지 안기부장이었다). 당시 환율이 2000원대였는데 미사일을 사들였다. 그게 무슨 경우냐. 정말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안기부장 퇴임하기 전에 한몫(리베이트) 챙기려고 그랬던 것 같다.
(권영해 전 안기부장은 1997년 대선 직전의 ‘북풍 공작’으로 징역 5년, 2003년 ‘안풍 사건’으로 징역 10개월, 2005년 10억원 횡령 혐의로 징역 2년을 추가로 선고받은 바 있다.)

언론 인터뷰에서 “말도 많고 탈도 많던 F-X 사업(차기 전투기 사업)이 내 손에 들어올 뻔하다 빠져나간 일은 지금도 아쉽다. 누군가 나를 경쟁에서 밀어내기 위해 기무사 수사를 배후 조종했다”고 주장했다. 누가 당신을 밀어냈다는 것인가.
(김대중 정부의 숨은 실세로 지난해 10월14일 사망한 재미 사업가) 조풍언씨다. 나는 (미국에서 발급한) 로비스트 라이선스(면허)가 있다. 한국에선 로비스트 라이선스가 없기 때문에 조씨는 에이전트로 한국 일을 맡았다. 조씨와는 7년 정도 함께 일한 적이 있다. 그분은 돈도 꽤 벌었다. 그런데 DJ(김대중)가 대통령이 되니까, 완전히 내 뒤통수를 쳤다. (2000년 린다 김 스캔들의 도화선이 됐던) 이양호 전 장관이 나한테 보냈던 편지를 언론사에 갖다준 것도 조씨인 걸로 알고 있다.

조씨가 언론사에 편지를 전달했다는 증거는 있나.
그 당시 조씨가 우리 사무실을 왔다 갔다 했으니까. 

이양호 전 국방부장관이 뇌출혈로 쓰러져 병문안을 갔다고 하던데.
이 전 장관이 예전엔 오른쪽 뇌출혈이었는데 그땐 가지 않았다. 화가 덜 풀렸으니까. 그런데 왼쪽 뇌출혈이 생겨 두 번 병문안 갔다. 씩씩한 장군님이 누워계셨다. 불호령을 내리던 분이 나약하게 누워 있었다. 사모님이 깨웠는데도 날 못 알아보는 것 같았다. 일어나보시라고 했는데 눈만 뜨고 못 알아보시더라.

권영해 전 안기부장(왼쪽)과 고 조풍언씨 © 시사저널 우태윤·연합뉴스

“조풍언이 이양호 편지 언론사에 전달”

DJ의 비자금 관리인으로 알려졌고 불법 대북 송금 사건에 연루됐던 무기중개상 김영완씨는 잘 아는가.
내가 알기로는 이 업계에서 가장 괜찮은 분이다. 일도 열심히 하고 인간관계도 좋은 것으로 안다. 경북 청도 사람으로 나하고 같은 고향이다. 그동안 국방부나 업자들이 한 번도 그 사람 욕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 좋은 분으로 알고 있다.

만난 적은 있는가.
우리 세계에서 대장끼리는 잘 안 만난다. 직원들끼리 술은 마시겠지만. 방위사업이라는 게 아군이 됐다 적군이 됐다, 이게 할 짓이 아니다. 아군도 없고 적도 없다. 오늘의 아군이 내일의 적군, 어제의 적군이 오늘의 아군으로 돌변하는 곳이 이 업계다.

국제적인 무기중개상이기 때문에 도청이나 미행을 당한 적도 있을 것 같은데.
미행은 YS(김영삼 전 대통령) 정부 말부터 DJ 정부 초까지 있었다. (무기 구매 문제로) 나하고 쌍욕 하면서 대판 싸웠던 권영해 안기부장이 공항부터 미행자를 붙였다. 내 호텔 방에 도청 장치가 설치된 걸 발견한 적도 있고, 호텔 보이도 날 감시했다. 2000년 사건 이후 한 기관에 있는 사람이 ‘린다 김은 김정일도 알고 있기 때문에 캄보디아나 베트남 등에는 나가지 말라’고 주의를 주기도 했다.

로비스트로 활동하면서 후회한 적 없나.
1987년 영국 정부가 브라질에 헬기를 팔아줬다며 훈장을 준 적이 있다. 백두·금강 사업을 하면 한국 정부에서도 훈장 받을 줄 알았다. 그 당시 그게(음성·영상 정보 시스템 탑재 정찰기) 들어오면 국방 정보 자주화가 19% 되는 거였다. 그런데 감방엘 보냈다. 그럴 줄 몰랐다. 내가 도대체 무엇을 잘못했다는 거냐.

“돈 없어도 되고 평범한 남자면 좋다”

‘신정아와 같이 언급되는 게 싫다’고 말했던데.
표현력이 부족했을 뿐 나쁜 의미로 한 말은 아니다. 신정아 일과 나는 다르다. 난 개인적으로 신정아가 재능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그가 했던 일도 따지고 보면 실패한 것이 없지 않나. 어린 나이에 광주 비엔날레도 잘 끝냈고, 그런데 뭣 때문에 영원히 죽이려는 거냐. 학력 위조라는 것도 미국이나 유럽에선 안 했을 수도 있다. 학력을 따지는 한국이 가지고 있는 문제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그래야만 서바이벌(생존)할 수밖에 없는…. 개인적으로 재질이 있고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무슨 스캔들이 나면 사람을 때려잡듯이 아무것도 못하게 하고, 그건 아닌 것 같다. 신정아가 좋은 남자 만났으면, 자신의 능력을 살렸으면 좋겠다. 그리고 사회가 받아줬으면 좋겠다.

진지하게 만나는 남자는 없나. 
딸들이 결혼하기 전까지는 지장을 줄 수 있었다. 애들이 다 결혼하고 나니까 남자가 없다. 마음에 드는 남자가 없다. 눈만 높아져가지고(웃음). 내가 왜 남자를 못 만나느냐면 평생 군인들, 정치인들 이런 사람들만 만나지 않았나. 돈 없어도 되고 평범한 남자면 좋다. 그런데 평범한 남자는 나한테 안 온다. 시도는 안 해봤는데 친구한테 얘기하니까 무섭다고 다 도망갈 거라고 하더라. 평범한 남자는 날 감당 못할 것 같다고 하더라. 내가 기가 세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착하고 순종적이다(웃음).

린다 김은 2001년 출간된 자서전 <코코펠리는 쓸쓸하다>에서 무기 로비스트에 대해 ‘텔레비전을 통해 안방까지 생생하게 전달되는 전쟁의 참혹한 모습 때문에 군수업계의 사람들에게는 ‘죽음의 상인’이라는 딱지가 붙어 있다’고 했다. 거물 로비스트 린다 김이 ‘죽음의 상인’에서 ‘평범한 여자’로 돌아가기 위해 발걸음을 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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