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는 ‘행동대장’, 더 큰 배후 세력 찾아야
  • 김종대│<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 ()
  • 승인 2015.03.23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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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이 거물로 과대포장…무기중개업계 한탕주의 세력 많아

이규태 일광공영 회장이 구속된 데 대해 언론이 “거물 무기 로비스트가 구속됐다”고 일제히 보도하자 업계는 코웃음을 친다. 일광공영처럼 소규모 무기 거래를 한 무기중개상이 ‘거물 로비스트’로 둔갑한 것에 어이가 없다는 반응이다. 수천억 원에서 수조 원에 이르는 대형 무기 도입이 즐비한 해외 무기 거래 시장에서 카쇼기와 같은 거물 무기 로비스트는 웬만한 국가의 무장(武裝)을 책임질 역량을 갖고 있다. 터키 출신인  카쇼기는 1970년대 후반에 20대의 린다 김을 무기중개업계에 끌어들인 전설적 로비스트다. 그에 비하면 린다 김도 초라해 보일 정도다. 로비스트 자체가 불법인 한국에는 그 같은 인물이 출현할 수도 없지만 프로젝트 하나를 다 책임지는 로비스트가 고용하는 존재에 불과한 무기중개상(에이전트)에 대해 언론이 그 의미를 너무 과대평가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사진 왼쪽부터 무기중개상 이규태·김영완·조풍언씨. ⓒ 시사저널 포토·EPA 연합
린다 김 사건 후 무기중개업자 폭발적 증가

이규태 회장이 터키로부터 공군 전자전 훈련장비를 도입해 공군에 납품하는 과정에서 500억원대 장비를 1000억원대로 부풀려 약 500억원의 부당 이익을 도모했다는 합수부의 설명도 이상하기는 마찬가지다. 현행 방위사업 법령은 국내 무기중개상, 또는 무역대리점이 방위사업청과 무기 거래에 대해 계약할 수 있는 법적 지위조차 부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존재하지도 않는 거물 로비스트를 적발한 것처럼 언론이 사실을 과장하는 것은 방산 비리 합수부의 실적을 과대포장하려는 의도에 말려든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이 회장이 권력의 비호를 받지 않고 자신이 독단적으로 사업비를 두 배 이상 부풀려 장비를 납품했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느냐는 것이다. 도입 장비 선정과 도입 방식 결정, 대금 정산까지 무기중개상 말 하나만 믿고 방위사업청이 전부 용인을 해줬다는 것 자체가 한국 실정에서는 비현실적이다. 이 회장은 행동대장에 불과할 뿐이고 더 큰 배후 세력이 존재하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합수부가 풀어주지 않는다면 또 반쪽짜리 수사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는 관측이 그래서 나온다.

백두정찰기 도입 과정에서 로비스트 역할을 한 린다 김이 국방부 최고위층에 부적절한 로비를 했다는 2000년 린다 김 사건이 터진 이후 국내에서는 무기중개상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린다 김 사건이 “무기 거래 한 건만 성사시키면 평생 먹고산다”는 환상을 유포시킨 결과다. 이때 서울 강남 일대에 갑자기 300개 이상의 무기중개상이 개업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사업 한 건만 성사시켜 일확천금을 꿈꾸는 한탕주의 세력이었다. 이렇게 난립한 결과 전문 지식과 높은 수완이 요구되는 무기중개상들은 스스로 몸값을 떨어뜨리고 무리한 영업으로 부패가 서식할 수 있는 적절한 토양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경쟁적으로 군 예비역 장성을 영입해 군 내부와 연결 고리를 형성하고 부실한 사업계획으로 군에 섣부른 영업을 하다가 사업도 성사시키지 못하고 망하는 길로 간 것이다. 또한 진급 경쟁에서 도태된 상당수의 예비역 장교들 역시 사회에 진출해 적절한 일자리를 찾지 못하다가 무기중개상으로 변신하는 경우도 상당했다. 특히 군 전력 분야에 근무한 경력이 있고 병참·통신·함정 등 전문 분야에 약간의 지식을 갖춘 예비역 장교가 해외의 최신 장비를 찾아내 후배들에게 소개하는 건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했다. 이것이 2000년대 초반에는 영관급 장교들에게서 주로 나타난 추세였다면 최근에는 장성급, 심지어 4성 장군까지 무기중개업계에 뛰어드는 기현상으로 확대됐다. 2013년 김병관 국방부장관 후보자는 독일계 무기중개업체에 고용된 전력 때문에 장관직에서 낙마했다. 최근 구속된 이 회장 역시 이명박 대통령 안보특보를 지낸 이 아무개 예비역 대장과 기무사령관 출신 김 아무개 예비역 중장까지 거느리면서 군 안팎을 요리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무기중개업계가 퇴역 장성이 사회에 진출하는 요람이 되고 말았다.

2009~11년 사이 방산 비리 집중

그런데 문제는 지나친 경쟁으로 군 안팎 인사들에 대한 영업 강도가 높아지면서 어떻게든 단기 실적을 올리려는 무리한 시도가 나타났다는 점이다. 이번 합수부의 방산 비리 수사 결과를 보면 2009년부터 2011년 사이에 비리가 집중돼 있다는 사실이 발견된다. 이 시기가 무기중개상에게는 노무현 정부 당시 방위사업청 출범으로 한동안 규제가 강화되던 시기를 벗어난 일종의 해방 공간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무기중개상들은 고위 장성을 영입하고 정치권력과 군을 상대로 체계적이고 빈틈없는 인적 관계를 복원해내는 데 성공하게 된다. 이것이 지금에 와서야 곪아 터진 것이다.

그러나 무기중개업계의 현실을 보면 막강한 인맥과 자금력을 갖춘 극소수 업체가 독점하는 양극화 현상으로 치닫고 있다. 일광공영 외에도 O인터내셔날·I인터내셔날·S트론·D인터내셔날 등 특히 정치권력과 가까운 극소수 업체가 거의 모든 사업을 독차지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런 무기중개업계 판도가 각 군별로 나누어져 있다는 사실을 거론한다. 예컨대 해군의 경우에는 최대 거물 중개상이 누구이고 공군의 경우에는 누구라는 식이다. 반면 육군의 경우에는 국산 장비가 많아 해외 거래 비중이 낮고 워낙 범위가 넓어 특정 업체가 독식한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 이들 극소수 무기중개상은 해외 무기 거래 동향에 어두운 후배 군인들에게 최신 정보를 제공하고 국내외 방위산업 대기업과 정치인, 예비역 장성을 이어주는 일종의 접촉제 역할을 하면서 스스로 군의 무기 소요를 만들어낸다. 예컨대 2010년 연평도 포격 사건으로 안보가 불안해지자 즉각 이스라엘제 최신 미사일에 대한 정보를 입수해 군이 새로운 무기 도입 사업을 촉진하도록 발 빠르게 움직인다. 이에 반해 군이나 방위사업청은 정보력 면에서 이들보다 한 박자 늦기 때문에 무기중개상이 제공하는 정보에 현혹될 수밖에 없고, 여기에 예비역 장성까지 동원하면 이제는 군이 무기 도입 사업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이런 무기중개의 어두운 일면과 달리 무기중개상이 안보에 기여하는 순기능도 무시할 수 없다. 정보에 어두운 군인과 관료에게 중개업체가 아니라면 누가 친절하게 정보를 서비스해줄 것이며, 그런 정보력 없이 어떻게 무기 도입이 가능하겠느냐는 반론이다. 또한 비리에 연루되지 않고 정직하게 사업을 하는 업체까지 덩달아 불명예를 뒤집어쓸 필요는 없다는 지적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이 회장에 대한 언론의 묘사는 너무 과장됐다는 주장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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