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준, 베트남에 수백억 원대 비자금 조성했다”
  • 안성모 기자 (asm@sisapress.com)
  • 승인 2015.03.24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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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산 관리인’ 이동조 제이엔테크 회장, 포스코건설 수주 받아 베트남 법인 개설

“박영준 전 차관이 감옥에서 나오면 베트남 사업으로 재기를 시도할 것이다.”

지난해 11월 초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의 출소를 며칠 앞두고 사정기관에서 고위직을 지낸 한 인사가 기자에게 한 말이다. 이명박(MB) 정권 당시 최고 실세로 불렸던 박 전 차관은 파이시티 사업, 민간인 불법 사찰, 원전 비리 등에 연이어 연루돼 2년 6개월을 교도소에서 보내야 했다. 이런 그를 두고 주변에서는 ‘정치적 사망 선고를 받은 것이나 다름없다’는 얘기가 공공연히 흘러나왔다.

한때 국회의원이 되겠다며 지역을 누비기도 했다. 하지만 전 정권의 핵심 인사로서 각종 비리 의혹에 휘말린 정치인이 설 자리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금배지’ 대신 ‘별’을 달고 나온 지금은 운신의 폭이 훨씬 좁다. 그런 박 전 차관이 베트남에서 재기에 나설 것이라는 말에 귀가 솔깃해졌다. 무슨 얘기일까.

2010년 12월20일 박영준 지식경제부 차관(가운데)은 베트남 산업무역부에서 열린 제7차 한-베트남 자원협력위에서 양해각서 5건을 체결했다. ⓒ 연합뉴스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박 전 차관과 친분이 두터운 이동조 회장의 회사 제이엔테크가 포스코건설의 베트남 공사 수주를 받았는데 여기서 마련된 비자금이 베트남 현지 법인에 숨겨져 있다.’ 한마디로 박 전 차관이 자신의 ‘재산 관리인’으로 지목됐던 이 회장을 통해 포스코로부터 넘겨받은 비자금을 베트남에 감춰뒀다는 것이다. 의혹을 제기했던 인사는 비자금 규모에 대해 “100억원대로 아는데 지금은 더 불어났을 수도 있다”고 전했다.

검찰의 ‘포스코 비자금’ 수사가 속도를 내고 있다. 포스코건설이 베트남 고속도로 건설 사업과 관련해 하청업체에 줄 대금을 부풀리는 방법으로 100억원대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게 현재까지 검찰이 밝혀낸 사실이다. 포스코 측에서는 ‘발주처 리베이트’ 용도라고 주장하고 있다. 포스코 관계자는 “여러 프로젝트에서 발생한 리베이트를 모아놓으니까 100억원대까지 늘어난 것”이라며 “개인 주머니로 들어간 것은 없다”고 밝혔다.

업계에 따르면 동남아 국가에서 리베이트는 일종의 관행이라고 한다. 100억원대 공사가 있으면 120억원에 계약해 20억원을 돌려주는 식이다. 포스코 측은 이번에 불거진 비자금도 마찬가지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의 입장은 다르다. 100억원대 비자금 중 상당한 금액이 리베이트로 쓰이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해당 사업에 책임이 있는 ‘윗선’으로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이 커졌다.

이런 상황에서 박 전 차관이 포스코건설의 해외 사업을 통해 베트남에 비자금을 조성해뒀다는 의혹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파문이 예상된다. 두 가지 측면에서 주목된다. 우선 그동안 소문으로만 떠돌던 MB 정권 실세들의 해외 비자금 조성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우량 기업’ 포스코가 왜 부실해졌는지 그 배경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다.

박영준 전 차관의 돈세탁 의혹을 받고 있는 이동조 회장의 제이앤테크 본사. ⓒ 시사저널 박은숙
“박영준과 이동조는 한 몸”

박 전 차관과 이 회장의 ‘친분 관계’는 어제오늘 나온 얘기가 아니다. 2012년 파이시티 사업 비리 수사 당시 검찰은 파이시티 측에서 발행한 거액의 수표가 박 전 차관과 가까운 이 회장이 운영하는 회사 계좌로 입금된 사실을 파악했다. 100만원권 수표 20장이 이 회장 측 계좌를 통해 돈세탁이 됐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 회장과 제이엔테크 사무실을 압수수색해 자금 흐름을 뒤쫓기도 했다.

박 전 차관과 이 회장의 관계를 잘 아는 TK(대구·경북) 출신의 한 유력 인사는 “박영준과 이동조는 사실상 한 몸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실제 두 사람은 ‘호형호제’하는 사이로 알려져 있다. 정보에 밝은 여권의 한 인사는 “박 전 차관이 잘나갈 당시 ‘이동조를 알면 박영준과 가까운 사이가 된다’는 말이 나돌았다. 뭔가 부탁할 게 있으면 이 회장을 찾아가면 된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첫 인연을 언제 맺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이 회장의 사업체가 이상득(SD) 전 의원 지역구에 위치해 이 전 의원의 보좌관이던 박 전 차관과 자연스럽게 만나게 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 회장은 이 지역에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지구당 중앙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한번은 박 전 차관의 집에 불이 난 적이 있었다. 이때 이 회장이 마치 자기 일처럼 곁에서 도움을 줬는데, 이후 두 사람이 의형제를 맺을 정도로 두터운 신뢰가 쌓였다고 한다.

이 회장이 지역 유지로 발돋움한 데는 박 전 차관의 역할이 컸다는 평가가 많다. 포항제철(현 포스코) 현장 직원 출신인 이 회장은 도시락업체를 운영하며 돈을 모았다. 2000년 기계설비 공사업체인 조은개발을 창업해 사업 영역을 넓혔는데, MB 정권이 출범한 2008년 회사명을 바꾼 후 사업이 급성장했다. 포스코건설의 하청업체로 공식 등록되면서 거래 실적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2007년 27억원이던 제이엔테크의 매출은 2008년 100억원으로 4배 가까이 뛰었다. 2010년 매출은 226억원에 이른다. 이 회사에 대한 기업분석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 매출이 174억원으로 다소 줄어들었지만 2012년 211억원으로 다시 늘어난 후 2013년에는 232억원으로 최대 매출을 기록했다. 이에 대해 포스코 측은 “정준양 회장 체제 이후 매출이 급성장한 것은 당시 중국 사업에서 독점 납품권을 땄기 때문”이라며 “그 과정에서 특혜는 없었다”고 밝혔다.

2014년 인도네시아 육군 수뇌부와 만난 이동조 제이엔테크 회장. ⓒ 뉴스1
베트남 법인 실소유주는 박영준?

MB 정권 시절 포스코 안팎에서 이 회장의 위세는 대단했다고 한다. 이구택 전 포스코 회장이 물러나면서 차기 회장이 누가 될지에 관심이 쏠리던 2008년 말에서 2009년 초 사이, 박 전 차관이 유력 후보로 거론되던 윤석만 당시 포스코 사장과 정준양 포스코건설 사장을 만나는 자리에 이 회장이 동석한 것으로 알려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 포스코 측은 박 전 차관과 두 사장의 만남이 회장 인선과는 전혀 관련 없다는 입장이지만 정권에서 포스코 수장을 사실상 내정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졌다. 박 전 차관이 이러한 ‘대권 경쟁’ 현장에 이 회장을 데리고 나가 그의 위상을 높여준 셈이다.

이 회장의 제이엔테크가 포스코건설로부터 수주한 베트남 사업의 경우 계약금액과 현지 법인의 매출액 신고가 달라 비자금 조성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만약 비자금이 조성됐다면 어떤 용도인지를 파악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국내 대기업의 비자금 조성 경로를 추적해온 한 유력 인사는 “비자금을 빼돌려 전달하려고 할 때 직접 돈을 건네지는 않는다”며 “기업이 A라는 사람에게 돈을 건네야 할 상황이 생기면 우선 B라는 하청업체에 대금을 부풀려 지불한다. 그러면 B업체에서 A에게 돈이나 사업체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중간에 돈을 돌려 세탁하는 업체가 둘이나 셋으로 늘어날 수도 있다. 그만큼 비자금 실체를 추적하기가 어렵게 된다. 이 인사는 ‘포스코 비자금’도 이런 식으로 조성됐을 수 있다고 의심했다.

결국 비자금의 종착역이 어디인지가 중요하다. 제이엔테크가 비자금을 조성했다면 그 돈이 어떤 형태로든 박 전 차관에게 건네졌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제이엔테크가 베트남 공사에서 특혜를 받았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어 의문이 더해진다. 베트남 공사 현장에서 수억 원에 이르는 자재와 장비를 도난당했는데 그 피해액을 제이엔테크가 아닌 포스코가 지불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포스코 측은 “사업을 주관한 게 포스코이기 때문에 사업장 관리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고 해명했다.

일각에서는 ‘현지 법인의 실소유주가 박 전 차관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포스코 내부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검찰 수사와 관련해 “계열사나 하청업체에서 새로운 회사가 만들어졌으면 실소유주가 누군지 파악해야 한다. 특히 해외 법인의 경우 반드시 챙겨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박 전 차관이 자신의 이름으로 못하는 일을 이 회장 이름을 빌려서 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포스코건설 측은 “베트남 사업의 경우 제이엔테크 현지 법인과 계약했는데 총 2건에 계약금액은 330만 달러 정도다. 모두 공개 경쟁입찰을 통해 낙찰됐고 공정한 절차에 의해 업체 선정이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관련 계약 서류 확인’ 요청에는 “현지 법인에 대해 내부 검토가 충분히 있었다”고 밝힌 후 “계약 서류는 영업상 기밀이므로 확인해줄 수 없다”고 답변했다.

한편 이 회장은 3월20일 휴대전화기가 꺼져 있었다. 제이엔테크에 기자의 휴대전화 번호를 남겼지만 연락이 오지 않았다. 포항에서 활동 중인 한 재계 인사는 “이 회장이 요즘 주변 사람들과 소원한 것 같다. 예전에 친했던 사람들 사이에서도 좋은 얘기가 안 나온다”며 “오다가다 한 번은 만날 텐데 요즘엔 그런 일이 없다”고 전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 회장이 포스코 공사가 많은 브라질까지 진출했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그래서 “해외에 나가 있을 때가 많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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