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양 ‘돈 잔치’로 용광로에 금 가다
  • 조현주 기자·제희원 인턴기자 (cho@sisapress.com)
  • 승인 2015.03.24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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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임 5년간 흥청망청 부실기업 인수…포스코 경쟁력 약화

‘잃어버린 5년.’ 철강업계에서 2009년 3월 정준양 전 회장이 취임한 이후 포스코가 지내온 세월을 이르는 말이다. 포스코는 정 전 회장이 취임한 2009년부터 2013년까지 실적과 재무구조, 신용등급까지 곤두박질치며 악화일로를 걸었다.

포스코는 2008년까지만 해도 실적이 좋았다. 자회사를 포함한 연결 기준으로 매출 41조7420억원, 영업이익 7조1730억원에 달하는 사상 최대 실적을 올렸다. 하지만 정 전 회장 취임 이후 실적이 크게 악화됐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가 어느 정도 작용하긴 했지만, 정 전 회장의 ‘묻지 마’식 기업 인수가 포스코 추락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포스코는 정준양 전 회장이 취임한 2009년 이후 악화일로를 걸었다. 정 전 회장의 문어발식 확장 전략이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시사저널 포토
해외 투자와 인수·합병에 7조원 ‘펑펑’

정 전 회장은 에너지 자원개발, 신소재 사업을 신성장 동력으로 삼고 공격적인 M&A(인수·합병)에 나섰다. 실제 정 전 회장 재임 당시 포스코 계열사 수가 36개에서 71개로 늘어났다. 이 기간 포스코의 매출은 2009년 26조9539억원에서 2013년 61조8647억원으로 129.5% 증가했다. 하지만 영업이익은 3조1480억원에서 2조9961억원으로 4.8% 감소했다. 당기순이익은 3조1723억원에서 1조3552억원으로 57.3%나 줄어들었다. 덩치는 커졌지만 알맹이는 없었던 것이다.

정 전 회장이 포스코의 외형 확장에 쏟아부은 돈은 상상을 초월한다. 3월18일 재벌닷컴과 업계에 따르면 정 전 회장이 포스코 회장 취임 후 단행한 대규모 지분 투자와 M&A 규모가 7조6620억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 전 회장은 2009년 9월 비철금속 압연 제품 제조업체인 대한ST 지분 85%를 600억원에 인수한 것을 시작으로 2010년에는 3조3724억원을 들여 대우인터내셔널 지분 60.31%를 매입했다. 1593억원에 성진지오텍(현 포스코플랜텍) 지분 40.38%도 인수했다. 2012년에는 2차전지 양극재 재료 생산업체인 에너지머티리얼즈(50%)와 동부메탈(10%) 지분을 각각 430억원, 981억원에 사들였다. 

정 전 회장 재임 때 신용등급·주가 곤두박질

해외 투자에도 거액을 쏟아부었다. 2010년 호주의 철광석 판매 및 광산 개발업체인 AMCI의 지분(49%)을 1947억원에 사들인 데 이어 2011년에는 태국 냉연 스테인리스업체인 타이녹스 스테인리스 지분 66.39%를 3950억원에 인수했다. 2012년에는 호주 자원개발 투자업체인 로이힐 홀딩스 지분(15%)을 1조7790억원에 사들이기도 했다.  

계열사가 하나둘 늘어나는 과정에서 포스코의 재무구조는 급격히 나빠졌다. 2009년 54.5%였던 포스코의 부채 비율(연결 기준)은 정 전 회장 취임 후 3년 만인 2011년 말 92.5%로 훌쩍 뛰어올랐다. 글로벌 우량 기업으로 손꼽혔던 포스코는 해외 신용평가사로부터 신용등급이 강등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2011년 포스코 신용등급을 ‘A’에서 ‘A-’로, 2012년에는 ‘BBB+’로 강등했다. 무디스(Moody’s) 역시 2011년 ‘A3’이던 것을 2012년에는 ‘Baa1’으로 하향 조정했다.

외부 감찰 시스템 마련해야 

정 전 회장은 수십 개의 계열사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부풀려진 값에 부실기업을 사들여 회사에 부담을 안겼다. 성진지오텍(현 포스코플랜텍) 인수가 대표적이다. 포스코는 2010년 성진지오텍 지분 40%를 1593억원에 사들였는데 주당 1만2900원이던 인수 가격은 당시 성진지오텍의 주가(9030원)보다 40% 이상 높은 수준이었다.

포스코는 부채 비율이 1600%에 달하는 성진지오텍 인수 후 부실 정리에만 5000억원 가까이 투입했다. 애물단지가 된 성진지오텍은 결국 2013년 8월 포스코플랜텍에 흡수 합병됐다. 업황 부진까지 겹쳐 포스코의 실적은 바닥을 기었고, 실적 부진은 주가에도 영향을 미쳤다. 정 전 회장 재임 기간 내내 포스코 주가는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2010년 1월5일 최고점인 63만3000원을 찍은 포스코의 주가는 정 전 회장 퇴임 직전인 2014년 3월4일에는 26만8500원까지 추락했다. 

현재 포스코의 대주주는 7.72%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국민연금관리공단이다. 국민연금은 정 전 회장 재임 기간 포스코 주가가 폭락하는 과정에서 가장 큰 주식 보유 평가손실을 봤다. 국민이 낸 연금 자산이 그만큼 증발해버린 것이다.

전문가들은 포스코의 실질적인 정상화를 위해선 무엇보다 정권에 휘둘리지 않는 시스템 마련이 시급하다고 조언한다. 포스코는 2000년 민영화 이후 정부 지분이 하나도 없는 민간 기업이 됐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포스코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임원진이 교체되는 등 정치권의 입김에 휘둘렸다. 김용진 서강대 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포스코는 정부 지분 하나 없는 사기업인데 지금까지 정권을 잡은 쪽에서 측근을 밀어넣는 ‘불법’을 자행해왔다. 이런 불법을 저지르지 못하도록 감시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외부에서 감찰하고 관리하는 시스템과 기업 내부에서 최고경영자를 뽑는 지배구조가 자리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이사회 구성부터 소액주주들이 참여할 수 있는 집중투표제 등이 도입돼야 한다. 소액주주들의 권한이 보호될 수 있는 장치가 있어야 기업 활동에 대한 ‘견제와 균형’이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2014년 5월19일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포스코 투자자 포럼에서 권오준 회장이 프레젠테이션을 듣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포스코건설에서 시작된 검찰 수사가 포스코그룹 전반으로 번지면서 권오준 포스코 회장의 경영 정상화 노력이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2014년 3월 ‘포스코 개혁’이란 과제를 안고 취임한 권 회장은 ‘재무구조 개선’과 ‘철강업 본연으로의 회귀’를 기치로 비핵심 사업을 과감하게 정리해왔다.

포스코특수강 지분을 세아그룹에 매각해 6000억원에 달하는 현금을 확보했고 대우인터내셔널·포스코건설 등 계열사가 마산과 베트남에 갖고 있던 백화점도 팔았다. 포스코 계열 시설관리업체인 포스메이트 소유의 서울 역삼동 포스타워 건물과 부지도 처분했다.

권 회장은 취임 이후 비주력 계열사를 팔아치우면서 2조원 가까운 현금을 확보하는 등 나름의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면서 권 회장의 드라이브에 제동이 걸릴 전망이다. 특정 계열사에 대한 지원이나 매각과 같은 구조조정 작업이 정치적으로 해석되는 상황에서 경영진이 제대로 힘을 쓰기 어렵기 때문이다. 권 회장이 최대 위기에 처한 포스코를 어떻게 일으켜 세울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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