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우리 아들 두 번 죽였다”
  • 김지영 인턴기자 ()
  • 승인 2015.03.26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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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년 황산 테러 사망 사건’ 피해자 태완이 어머니의 항변

1999년 5월20일 대구 효목동 한 주택가 골목, 학원에 가기 위해 나섰던 태완이(당시 6세)에게 누군가 황산을 들이부었다. 얼굴에 집중적으로 뿌려진 황산은 태완이의 눈을 앗아갔고, 식도까지 까맣게 태웠다. 태완이는 전신에 화상을 입고 49일 만에 숨을 거뒀다. 16년이 지난 지금도 사건은 계속되고 있다. 태완이네 가족은 대구고등법원 앞에서 새벽부터 1인 시위에 나서고 유사한 사건 공판이 있으면 전국 어디라도 쫓아간다. 국회에서 기자회견도 한다. 태완이가 떠난 후 엄마는 불을 끄고 잠을 잔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앞을 못 보고 간 태완이가 집을 못 찾을까 싶어서다. 태완이 부모를 비롯해 남겨진 가족에게는 하루하루가 지옥이다. ‘태완이를 뜨겁게 한 나쁜 사람 잡아서 사과하게 해주겠다’던 약속을 아직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공소시효 만료 3일 앞두고 일시 중지

김태완군 어머니 박정숙씨와 아버지 김동규씨가 3월13일 태완이의 죽음과 관련해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 시사저널 우태윤
태완이 사건은 2013년까지 미제 상해치사 사건으로 남아 있었다. 상해치사의 공소시효는 10년으로 태완이 부모가 재수사를 요구할 당시 이미 공소시효가 만료됐다고 한다. 살인 의도가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는 어린아이에게 황산을 부은 게 살인이 아니면 무엇이냐”고 태완이 부모는 항변한다. 딱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2013년 11월 재수사 청원이 받아들여졌고 ‘살인’ 사건으로 분류됐다. 이후 태완이 부모는 태완이가 병상에서 진술한 내용을 바탕으로 유력한 범인으로 의심되는 이 아무개씨에 대한 기소 요청을 했지만 대구고등법원은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재정신청 역시 기각됐다. 태완이 부모는 대법원에 사유서를 제출하고 재항고했다. 현재 태완이 사건의 공소시효 15년은 부모의 재항고로 만료 3일을 앞두고 일시 중지된 상태다. 재항고마저 기각되면 더 이상 공소시효를 멈출 방법이 없다.

태완이 어머니 박정숙씨는 “나라가 태완이를 두 번 죽였다. 사고 당시에 한 번, 그리고 지금”이라고 말했다. “공소시효가 만료되고 나면 태완이 사건 가해자에 대해 법적으로는 처벌할 수 없는데 이는 나라가 태완이를 한 번 더 포기하는 것”이라고 했다. 당시 태완이의 진술이 증거로 인정되지 않았던 것에 대해서도 억울함을 호소했다. 온몸을 붕대로 칭칭 감은 태완이가 목소리를 쥐어짜며 사고 직전 골목에서 만났다고 진술한 한 남자, 그는 평소 가깝게 지내던 동네 치킨집 주인 이씨였다. 태완이는 사건 직전 분명히 이씨를 봤다고 말했다고 한다. 태완이 어머니는 “태완이는 ‘큰 전봇대와 작은 전봇대 사이에서 뜨거웠다’고 얘기했다. 그때 그 사람이 ‘태완아’라고 ‘한 번’ 불렀다고 진술했다. 여러차례 물어봤지만 이 말이 한 번도 바뀐 적이 없었다”고 당시 태완이의 진술 내용을 전했다.

태완이의 진술과 이씨가 주장하는 당일 행적이 엇갈렸다. 이씨는 당일 사건 현장에 가지 않았다고 했다. 당시 경찰은 태완이의 진술은 ‘여섯 살짜리, 몸도 성치 않은 상태의 어린아이의 말’이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대신 사건 발생 시각과 20여 분의 시간 차가 있는 이씨의 알리바이를 인정했다. 이는 사건이 발생한 지 16년이 지난 지금도 변함이 없다. 대구고등법원은 판결문에서 태완이 부모의 재정신청을 기각한 이유에 대해 ‘증거 불충분’이라고 밝혔다. 생전에 태완이의 육성을 녹음한 테이프와 12명의 전문가가 작성한 진술 분석 자료도 제출했지만 소용없었다. ‘태완이가 범인을 특정해서 지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의견은 달랐다. 태완이의 진술 분석에 참여한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 교수는 “태완이의 진술에 대한 분석 자료는 12명의 전문가가 공통적으로 도출한 내용으로 상당히 신빙성이 있다”고 말했다. 태완이의 주장이 일관되고 반복적일 뿐만 아니라 진술과 다른 내용은 분명하게 부정하는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공 교수는 “수사 방향을 제시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은 이상 방법이 없다”고 설명했다. 태완이 어머니는 “가장 크게 바라는 것은 이씨가 기소돼 제대로 된 수사를 받고 진실이 밝혀지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시간이 너무 없다”며 “공소시효가 억울한 피해자들을 더욱 힘들게 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1999년 사고 당시, 태완이 부모가 병상에 있는 태완이의 진술을 녹취하고 있다. ⓒ MBC 제공
“‘태완이법’ 4월 국회에서 통과시켜야”

태완이 부모의 사연을 들은 서영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지난 3월2일 15명의 의원과 함께 공소시효 폐지 내용을 담은 ‘태완이법’을 발의했다. 이는 존속살인·강간치사 등 모든 살인죄에 대해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현행법상 살인죄에 대한 공소시효는 25년이다. 이것도 2007년 15년에서 확대 개정된 것이다. 하지만 2007년 이전 사건은 소급하지 않도록 하면서 태완이 사건의 공소시효는 여전히 15년에 머물러 있다. 서 의원이 발의한 이번 개정안은 아직 공소시효가 만료되지 않은 범죄에 대해서도 적용한다는 부칙을 담고 있다. 이 법이 통과되면 태완이 사건을 비롯해 그동안 미제로 남았던 사건들을 재조명할 기회가 열릴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 3월10일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서영교 의원은 “공소시효 제도는 범죄자를 밝히기 어려웠던 과거에 만들어진 제도로, 과학적인 수사 기법이 발달한 현실을 반영할 필요가 있다”며 “살인죄에 대한 공소시효를 폐지해 억울한 죽음은 끝내 밝혀지고, 범인은 처벌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태완이 어머니는 “내가 당한 억울함이라면 세월이 지나면 잊을 수 있겠지만 자식이 당한 억울함은 그렇지 않다. 공소시효라는 제도에 막혀 그 억울함을 풀어줄 수 없다”며 “태완이를 보내고도 그런 생각은 안 했는데, 공소시효가 며칠 남지 않은 요즘은 정말 죽고 싶다”고 말했다. ‘태완이법’이 4월 국회에서 통과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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