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인 맘에 드는 ‘진짜 예술’이 걸리다
  • 조은정│미술평론가·미술사학자 ()
  • 승인 2015.03.26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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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 슈퍼리치 겨냥한 2015 아트바젤홍콩

슈퍼리치들이 몰려든 2015년의 아트바젤홍콩은 명실공히 세계 미술계의 주요한 지점에 섰다. 올해의 첫 대규모 아트페어이자 미술 시장의 향방을 가늠할 수 있는 기회다. 좀 이르다 싶은 3월에 아트페어를 연 것은 베니스비엔날레가 밀라노박람회와 기간을 맞추기 위해 5월9일에 시작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예년의 아트바젤홍콩은  5월15일부터 18일 사이에 열렸다. 예년처럼 진행했다면 베니스비엔날레의 시작 지점과 겹친다. 바젤아트페어는 예년과 같은 6월 셋째 주에 열리니 2015년의 아트페어는 봄-홍콩, 여름-바젤, 겨울-마이애미비치 구도가 됐다.

내년 아트바젤홍콩은 4월24일부터 열릴 예정인데 홍콩이야 이맘때쯤이면 여름에 접어들지만, 유럽의 북쪽은 4월은 돼야 봄이라 하지 않던가. 따뜻한 봄을 홍콩에서 맞고, 여름을 바젤에서 시원하게 즐기며, 겨울엔 태양이 넘치는 마이애미 해변에서 작품을 둘러보는 환상적인 슈퍼리치들의 일상이 눈앞에 그려진다.

스페인 미술가 후안 무노즈의 ⓒ 조은정 제공
아시아 미술 시장에서 홍콩의 힘 입증

바젤아트페어가 얻은 명성은 참가하는 갤러리에 대한 심사와 관리에서 기인한다. 이름 높은 아트페어를 만듦으로써 참여한 갤러리에는 신용을, 운영진에는 높은 임대료를 보장하는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다. 세계의 수많은 화랑이 전시장에서 작품 매매에 나설 수 있지만 일정 규모 이하의 갤러리는 심사를 통과할 수 없고, 부스를 구입할 자본도 부족하다. 마치 커다란 시장에 가게를 얻고 싶은데 그렇지 못한 장사꾼은 근처에 끼리끼리 모여 시장을 확대해나가듯, 대규모 아트페어 전시장 근처에는 위성 아트페어들이 즐비하다.

대개의 경우 위성 아트페어는 다른 조직이기 마련인데 홍콩에서는 위성 아트페어인 ‘아트센트럴’을 아트바젤 사무국이 주관한다. 이쯤이면 아트바젤에 들지 못한 갤러리까지도 아트바젤이 참가와 운영을 컨트롤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셈이고, 위성 아트페어에 참여한 갤러리도 자존심을 유지할 수 있다.

아트바젤홍콩의 운영만으로도 아시아 미술 시장에서 홍콩의 우위는 입증되었다. 일찌감치 소더비와 크리스티가 진출했고 금융과 문화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으며 동양의 진주로서 제 몫을 해온 결과다. 아트바젤홍콩의 성공에 고무돼 아시아로 미술 시장이 이동하고 그만큼 세계 미술의 중심에 가까워진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한국의 여러 아트페어와 지방자치단체에서 진행하겠다는 원대한 계획의 아트페어들이 새겨야 할 지점이 바로 여기다. 우선 검증돼야 할 것은 문화 인프라의 존재와 과연 한국까지 세계의 슈퍼리치를 끌어들일 특징을 가지고 있느냐다. 그것은 세계적인 갤러리들이 한국의 아트페어에서 작품을 팔 곳이 있느냐의 문제이기도 하다.

아트바젤이 홍콩을 선택한 이유는 M+로 대표되는 대규모 미술관 건립과 컬렉션, 그리고 홍콩이 내놓은 미술관 건립의 청사진 때문이다. 미술관이 들어서고 그곳에는 많은 작품이 필요하며, 그곳을 세계적인 명성이 있는 작품으로 채울 의지가 있는 곳이 바로 홍콩인 것이다. 세계의 경제 중심부가 된 중국의 일부이기도 하다. 따라서 일찍이 아트페어를 열어 아시아 미술의 허브가 되고자 했던 한국 미술계의 꿈은 일단 백일몽에 그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아트바젤홍콩의 성공은 폭넓은 작품 거래량과 예년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늘어난 관람객에서 입증된다. 수많은 군중이 아주 사실적인 호주의 조각가 샘 징크스의 <무릎 꿇은 여인>에 몰려들었고, 목매단 인물이 설치된 Skarstedt Gallery 부스는 장사진을 이뤘다. 눈에 띄고 선정적인 작품에 대중의 관심이 몰리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미술 작품의 아우라를 기본으로 한 일종의 전시장으로서 아트페어에서 벌어진 이 현상은 기이해 보인다. 무엇이 예술인가를 논의하기에 앞서 무엇이 흥미를 끄는가에 초점이 맞춰진 모습을 본 것이다. 그러한 아트바젤홍콩의 특성 덕에 전시장 입구 가까이에 있는 아라리오갤러러의 권오상과 강형구 작가의 작품은 몸살을 앓을 정도가 되긴 했다.

미술 작품을 사고파는 장소이긴 하지만 바젤이나 마이애미에서는 ‘미술품 견본 시장’이란 오래된 용어에 걸맞을 정도로 미술의 흐름을, 그해의 취향을 확인해볼 수 있다. 바젤에서는 아트페어를 바젤에 유치한 바이엘러 부부가 개인적으로 컬렉션해 공공미술관화한 바이엘러 재단이 아트페어 기간 동안 대규모 전시를 연다. 그것은 한자리에서 보기 어려운 뭉크나 자코메티 혹은 피카소에게 영향을 준 아프리카의 미술, 초현실주의 같은 미술사의 아주 중요한 작가나 어떤 사조들을 대상으로 한다. 결코 사고팔지 않는 이들 작품은 예술을 이해하게 하고 궁극적으로 아트페어를 주목하게 만든다.

① 호주 조각가 샘 징크스의 ② 강형구 작품, 아라리오갤러리③. 인도 출신 세계적인 작가 스보다 굽타는 영국 정통 클래식 바이크사 얄 엔필드의 가장 오래된 모델인 불렛을 브론즈로 떠낸 뒤 도금한 우유병들을 매달아놓았다. ⓒ 조은정 제공
중화권 염두에 둔 수묵의 귀환

홍콩의 아트페어에서는 ‘아시아권 50퍼센트 약속’ 덕인지 아시아권 작가의 작품을 그 어느 아트페어보다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전통의 변용을 주제로 한 작품이나 장식적인 성향이 농후한 작품이 여느 아트페어보다 많았다. 그것은 아시아의 특성이 아니라, 아시아를 시장으로 바라본 유럽인의 아시아 미술에 대한 평가다. 중화권을 염두에 둔 것이 분명한 수묵의 귀환은 자본으로서 미술에 대한 시장의 대처를 파악하게 한다. 유럽 아트페어 관계자들은 아시아 미술의 발전이 아니라 아시아에 미술의 이름으로 판매할 상품을 들고 나왔으며 그것은 현대의 ‘상상된 아시아’다. 공공미술의 성격을 띤 <Insights>나 세계적 신진 작가를 주목하는 <Discoveries>, 또 작가의 육성을 듣는 토크가 힘을 잃은 것은 그래서 당연하다. 지금, 이 순간의 물건을 만나는 장소가 바로 아트바젤-홍콩이기에 시장에 들고 나가 가장 팔기 좋은 것은 진짜 예술을 예술의 이름으로 판매하는 것임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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