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급식 논쟁 시즌2
  • 김태일 | 영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
  • 승인 2015.03.26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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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전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이 불을 지폈던 복지 논쟁이 지금 홍준표 경남도지사에 의해 다시 불타오르고 있다. 

오세훈에 이어 홍준표가 점화한 무상급식 논쟁 시즌2의 결말은 어떻게 될까. 어느 사상가의 말이 생각난다. ‘역사는 되풀이된다. 한번은 비극(悲劇)으로, 한번은 소극(笑劇)으로.’ 무상급식 논쟁 시즌1은 보수 진영 전체를 위태로운 지경으로 몰아넣은 비극이었는데, 무상급식 논쟁 시즌2는 아무래도 소극이 될 것 같다. 홍준표 지사는 자신을 ‘얼치기 좌파’와 결연히 싸우는 보수의 전사라 여기고 있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그가 달려가고 있는 곳은 그 자신이 만들어놓은 신기루다. 자신을 정의감에 불타는 기사라고 생각하면서 풍차를 향해 달려드는 돈키호테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홍준표 지사가 달려가고 있는 곳이 ‘좌파의 진지’가 아니라 그 자신이 만들어놓은 ‘신기루’라고 보는 이유는 다음 때문이다. 첫째, 복지는 좌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역사적으로 복지정책의 깃발을 올린 것은 좌파가 아니라 우파다.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다. 우파가 수동혁명을 위해 들어올린 깃발의 하나가 복지다. 그러니 좌파의 상징과 복지 이미지를 등치시키면서 이데올로기 구도로 몰아넣으려는 홍 지사의 구상은 실현되기 어려울 것이다. 둘째, 보편적 복지는 좌파와, 선별적 복지는 우파와 동일시하면서 보편적 복지는 위험하다고 몰아붙이는 이분법적 구도도 힘을 얻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보편적 복지든, 선별적 복지든, 복지는 자선·시혜·구휼과 다른 것이다. 복지는 부자가 가난한 사람에게 ‘베푸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 태어난 모든 사람이 인간으로서 ‘누리는’ 기본적 권리다. 그런 전제 위에 대상과 수단이 어떤 경우에는 보편이 될 수도 있고, 어떤 경우에는 선별이 될 수도 있는 게 보편과 선별의 원리다.

그동안 진행된 우리 사회에서의 복지 논쟁은 이제 더 이상 홍 지사가 설정하고 있는 프레임에 가둘 수 없다. 좌든 우든 인간의 기본적 권리로서 복지를 의심할 사람은 없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적정한 복지 수준을 정하는 ‘계산’이다. 복지비용을 누가 얼마를 부담해야 할 것인지, 누구에게 얼마를 어떻게 주어야 할 것인지를 정확하게 판단하는 것이다.

홍 지사가 경남에서의 무상급식 정책이 도 재정 형편상 버겁다면서 조정을 하자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얼치기 좌파의 무상급식’이라는 신기루, 풍차를 만들어놓고 싸우겠다는 것은 돈키호테의 헛발질이 될 것이다. 그런 식의 논의는 우를 위해서도, 좌를 위해서도 이로울 게 없다. “학교에 공부하러

가지 밥 먹으러 가느냐”라는 홍 지사의 싸구려 교육철학 강의를 되풀이해서 듣는 것 역시 좌우 모두에게 괴로운 일이다.

무상급식 논쟁 시즌1이 오 전 시장의 ‘의도와 달리’ 우리 사회에 복지 논쟁을 조기 점화해 그에 대한 사회적 공론을 앞당기도록 했던 것처럼, 무상급식 논쟁 시즌2가 홍 지사의 ‘의도와 달리’ 복지정책의 적정 수준과 방법을 찾아가는 사회적 공론으로 귀결되었으면 좋겠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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