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 ‘금고지기’ 송환 초읽기, 비자금 뇌관 터지나
  • 조현주·이석 기자 (cho@sisapress.com)
  • 승인 2015.03.27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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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그룹 김승수 전 부사장 미국 소재 파악…검찰 수사 재개 가능성

검찰이 2013년 CJ그룹 비자금 수사 중 잠적한 김승수 전 CJ제일제당 중국총괄 부사장의 행적을 추적하고 있다. 중요 피의자의 해외 도피로 조사를 마무리하지 못했던 CJ그룹의 비자금 수사가 재개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김 전 부사장은 이 회장의 최측근 중 한 명이다. 이 회장의 경복고 후배로 회장 비서실장(상무)과 경영지원담당 부사장, CJ건설 대표 등을 지냈다. 오랜 기간 이 회장을 보좌했던 만큼 신뢰도 각별했다. 이 회장은 2000년대 초 김 전 부사장을 포함한 경복고 라인을 주변에 두고 수시로 조언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부사장은 2004년을 전후해 그룹 물갈이가 진행될 때도 자리를 지켰다. 다른 경복고 라인이 그룹 경영에서 물러났지만, 김 전 부사장은 2004년 중국총괄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당시 그는 그룹에 사표를 내고 중국 법인에 재입사했다. 때문에 증권가에서는 이 회장과 김 전 부사장 간 갈등설이 나왔다. 이 회장이 김 전 부사장을 내치려 하자 비자금 폭로로 맞불을 놓았고, 이 회장은 김 전 부사장의 입을 막기 위해 중국으로 보냈다는 얘기가 증권가에 돌았다. 

2013년 5월 시작된 검찰 수사로 이 회장의 해외 비자금 실체가 드러났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는 서울 남대문로 CJ그룹 본사와 쌍림동 CJ제일제당센터, 장충동 경영연구소 등을 압수수색했다. 이 회장의 핵심 측근들이 잇달아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김 전 부사장도 수사 초기 검찰에 불려가 한 차례 조사를 받았다. 검찰 조사가 본격화되는 과정에서 김 전 부사장은 돌연 종적을 감췄다. 검찰의 계속되는 출석 요구에도 응하지 않았다. 검찰은 김씨에 대해 체포영장을 신청했다. 주중 한국대사관을 통해 소재 파악에 나섰지만 실패했다.

이재현 CJ그룹 회장 ⓒ 시사저널포토
2013년 검찰 조사 도중에 잠적

검찰은 김 전 부사장을 배제한 채 조사를 진행했고, 2013년 7월 이재현 회장을 횡령 및 배임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이 회장의 지시로 해외 비자금을 조성·관리한 재무팀장과 해외 법인장들도 기소했다. 잠적한 김 전 부사장에 대해서는 기소중지 상태로 사건을 종결했다.

CJ그룹 안팎에서는 김 전 부사장이 중국에 머무르고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그는 검찰 수사 전후로 미국에 건너가 도피 생활을 해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일보는 3월27일 김승수 전 부사장이 미국 현지에서 체포돼 국내 송환 절차를 밟고 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사정기관의 한 관계자는 “미국 인터폴이 3월19일 김 전 부사장의 소재를 파악해 긴급인도 구속 회신을 요청하는 내용을 한국 검찰에 통보했다. 한국 검찰도 곧 회신할 예정으로 안다"고 말했다. 최윤수 서울중앙지검 3차장도 3월27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김 전 부사장의 마지막 목적지가 미국이라는 점은 파악했다"며 "현재 법무부와 공조를 하는 단계다"고 말했다.

CJ그룹 안팎에서는 김 전 부사장이 머물고 있는 장소가 미국이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시사저널은 김 전 부사장의 검거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여러 차례 CJ그룹 측에 질의를 했다. 그때마다 “사실이 아니다”고 했다. 그룹 관계자는 “김 전 부사장과는 연락이 끊긴 상태다. 중국에 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검찰이 김 전 부사장의 소재를 파악했다는 얘기는 처음 듣는다”며 “기소중지로 여권이 만료된 상황에서 미국으로 건너갔다는 얘기는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미국의 캘리포니아 주에는 CJ 미국 법인 CJ아메리카가 있다. 검찰은 2013년 수사 때 이 회장의 차명 계좌 거래나 분식회계 등을 통한 국내외 비자금의 ‘운용 기지’로 미국 법인을 포착해 조사한 바 있다. 미국 법인장인 김 아무개씨가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기도 했다. 때문에 CJ 측이 김 전 부사장을 보호하고 있었거나, 적어도 미국에 입국할 당시 어떤 식으로든 관여했을 것이란 얘기가 나온다.

CJ그룹 사정에 밝은 인사들은 이 회장이 LA에 적지 않은 연고를 두고 있다고 설명한다. LA 내 베벌리힐스에는  CJ아메리카 명의로 된 저택이 있다. 이 저택에 대해서는 그동안 이재현 회장이 CJ아메리카를 통해 차명으로 보유했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이 때문에 검찰은 여권이 만료된 김 전 부사장이 어떤 루트를 통해 미국으로 건너가게 됐는지, CJ그룹이 김 전 부사장의 도피에 관여했는지 여부에 대한 조사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김 전 부사장의 행적이 파악된 만큼 향후 송환 절차가 주목된다. 우리나라는 1999년 미국과 범죄인인도조약을 체결했다. 조약에 따라 김 전 부사장을 한국으로 데려올 수 있다. 사정기관 관계자는 “김 전 부사장의 신병이 확보되지 않았다면 행적이 파악돼도 절차가 복잡하다. 수사팀에서 대검 국제협력단을 통해 미국 FBI(연방수사국) 등에 수사 공조를 요청해야 한다”며 “김 전 부사장의 미국 소재가 파악된 만큼 이후 절차는 의외로 간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시기가 문제일 뿐, 김 전 부사장의 국내 송환은 예정된 수순이라는 것이다. 법무부도 현재 김 전 부사장의 신병 인수를 위해 미국 수사기관과 긴밀하게 형사 공조 중이다.

관심은 재무팀장 시절 김 전 부사장이 했던 역할이 어디까지냐에 쏠려 있다. 검찰에 따르면 이 회장은 1998년부터 법인 자금을 해외로 빼돌리는 수법으로 수천억 원의 비자금을 조성했다. 이후 조세피난처에 설립한 4개의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CJ(주)와 계열사 주식을 차명으로 사고파는 방식으로 238억4000만원의 조세 포탈과 963억원 상당의 국내외 법인 자산을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다. 김 전 부사장은 비자금을 빼돌리기 시작한 1998년부터 2004년까지 회장 비서실장과 그룹 재무팀장을 지냈다. 비자금 조성에 누구보다 깊숙이 관여했을 가능성이 크다.

때문에 김 전 부사장이 한국에 송환돼 검찰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의외의 뇌관이 터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사정기관 관계자는 “해외 비자금 수사 당시 검찰은 이 회장의 해외 차명 계좌를 모두 확보하지 못했다”며 “김 전 부사장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추가로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해외 차명 계좌가 나올 수 있다”고 밝혔다.

2013년 5월21일 검찰이 해외 비자금 조성 의혹을 받고 있는 CJ그룹에 대해 압수수색을 진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법원 선고 앞둔 이재현 회장에게 악재 

이 회장은 지난해 9월 항소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현재 대법원 상고심 선고를 기다리고 있다. CJ그룹은 2년 가까이 손경식 회장과 이미경 부회장, 이채욱 CJ(주) 대표이사 부회장, 김철하 CJ제일제당 대표가 참여하는 비상경영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오너 부재로 대규모 투자나 신규 시장 진출은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CJ그룹은 이 회장이 구속된 첫해에 매출액 28조5000억원을 기록했다. 목표인 30조원 달성에 실패했다. 영업이익은 1조1000억원으로 목표치인 1조6000억원의 70% 수준에 그쳤다. 지난해 상황도 녹록하지 않았을 것으로 재계에서는 보고 있다.

특히 이 회장의 건강 상태가 심상치 않다. 부인 김희재씨로부터 받은 신장 이식 수술의 후유증이 크다고 한다. 70~80kg을 오르내리던 몸무게는 49kg까지 줄었다. 이 회장은 현재 구속집행정지 상태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지금 상태라면 경영에 복귀해도 정상적인 경영을 할 수 있을지 우려스럽다. 이런 상황에서 김 전 부사장에 대한 수사가 재개될 경우 이 회장과 CJ그룹에 어려움이 가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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