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극단화·지능화되는 보험사기
  • 조유빈 기자 (you@sisapress.com)
  • 승인 2015.03.30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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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람보르기니까지…전담팀 만들어 입체적으로 추적

#1. 지난 3월14일 경남 거제시에서 SM7 차량이 람보르기니 가야르도 차량을 추돌한 사고가 일어났다. 이 사고로 SM7은 보닛이 파손됐고, 람보르기니는 엔진이 탑재된 뒷부분이 망가졌다. 사고를 당한 람보르기니는 신차 가격이 4억원에 육박하는 최고급 슈퍼카다. 일부 언론 보도와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통해 람보르기니 수리비가 1억4000만원에 이른다는 것이 알려졌고, 조선소 협력업체 용접공인 SM7 운전자가 연봉의 세 배가량을 수리비로 물어야 한다는 사실이 전해지면서 동정 여론까지 일었다.

하지만 단순 교통사고로 보였던 이 사고는 3월18일 SM7 차주 보험사인 동부화재의 보험사기 전담 조사팀(SIU·Special Investigation Unit)이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반전됐다. ‘보험사기’라는 결론이 나온 것이다. 사람이 많은 시내에서 신호 대기 중인 고가의 외제차를 추돌한 점, 추돌하면서 브레이크를 밟지 않은 점 등이 SIU 조사관의 의심을 샀다. 동부화재로부터 관련 자료를 넘겨받은 경남 거제경찰서는 3월24일 사기 미수 혐의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 일러스트 서춘경
보험금 노린 패륜 범죄 증가 추세

#2. 지난 2월엔 2006년 크리스마스 때 전북 정읍에서 일어났던 교통사고가 보험금 6억원을 노린 사기극이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무려 9년이 지나서야 밝혀진 사건이었다. 일가족 3명이 탄 싼타페 차량이 좌회전 대기 중이던 쏘나타 승용차를 추돌했고, 싼타페 조수석에 타고 있던 50대 가장 김 아무개씨가 숨지고 부인과 아들은 경상을 입었다. 가족들은 김씨를 화장했다.

사건은 그렇게 끝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숨진 김씨 앞으로는 무려 14개의 보험이 가입돼 있었다. 쏘나타 운전자는 김씨 부인의 내연남이었다. 보험사가 보험금 지급 과정에서 수상한 점을 발견했고 경찰의 재수사가 진행됐다. 결국 내연남은 “살해 계획이 있었다”고 실토했고 교통사고로 위장한 살인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부인과 아들에게는 무기징역이 선고됐다. 

누군가의 생명을 담보로 잡거나 자작극으로 보험금을 ‘뜯어내는’ 보험사기. 그 과정을 쫓는 것은 쉽지 않다. 각 보험사에서 이를 파헤치는 사람들이 있다. 보험사가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보험사기 전담 조사팀, 바로 SIU다. 사건을 면밀히 조사해 수사 당국의 수사까지 이끌어내는 것이 SIU의 업무다.

최근엔 보험금을 노린 패륜 범죄가 증가하는 추세다. 교통사고가 보험사기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과거에 비해 범죄는 더 지능화되고 조직화됐다. 지난 2월 한 기업체 사장이 여직원에게 생명보험을 들어준 후 망치로 살해한 사건에 이어, 3월 초 수억 원대의 보험금을 챙기기 위해 농약을 먹여 남편과 시어머니를 살해한 ‘포천 독극물 사건’이 알려지면서 보험사기에 대한 경각심은 더 고조됐다.

1990년대부터 보험 범죄는 활개를 쳤다. 당시는 자동차를 이용한 ‘자동차 보험사기’가 극성이었다. 특히 조직폭력배들이 일부러 자동차 사고를 낸 후 보험금을 받아내려고 한 일이 빈번했다. 그들은 사고 상대방을 찾아가 거액을 요구했고, 원하는 만큼 뜯어낼 때까지 협박을 일삼았다. 사고 조사를 나간 보상 업무 파트 직원들이 납치와 폭행을 당하는 경우까지 있었다. 결국 금융감독원은 보험사기 전담 조사팀을 만들 것을 지시했고, 1990년대 후반부터 각 보험사는 SIU를 꾸리게 됐다.

사건을 파헤치는 일인 만큼 SIU 조사실장에는 베테랑 경찰 출신이 많다. LIG손해보험은 29명의 조사실장을 경찰 출신으로 채용했고, 한화손해보험 조사실장 23명 전원도 전직 경찰이다.

이런 일화도 전해진다. 한 40대 남성이 “사고를 당해 눈이 보이지 않게 됐다”며 거액의 보험금을 청구했다. SIU는 그를 미행 추적했다. 그리고 눈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던 그가 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뀌는 것을 기다리며 담뱃불을 붙이는 장면을 목격했다. 그 모습을 사진 촬영했고, 이를 증거로 보험금 지급을 막을 수 있었다.

지난해 8월 충남 천안에서 한 건의 교통사고가 일어났다. 캄보디아 국적의 부인을 조수석에 태우고 고속도로를 운전하던 남성이 8톤 화물차량을 들이받은 사건이었다. 조수석 쪽이 큰 충격을 받았고, 임신 7개월이던 부인은 그 자리에서 숨졌다. 남성은 ‘졸음 운전’을 주장했지만, 부인 명의로 총 93억원의 보험을 들었다는 사실이 한화손해보험 SIU 조사 과정에서 밝혀졌다. ‘위장 살인’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사건은 재판에 넘겨졌다.

장애가 없는데 일명 ‘일당’이라 불리는 입원비를 받기 위해 ‘나이롱 환자’ 행세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휴대전화 입원’도 SIU를 통해 적발됐다. 실제 환자가 입원했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찾아간 한 한방병원. 그곳에 환자들은 없었다. 대신 환자들의 휴대전화만 병원 서랍에 들어 있었다. 보험사기와 관련해 경찰 수사가 시작되면 위치 추적이 기본적으로 들어가는데 병원 측에서 환자들의 알리바이를 성립시키기 위해 하루 한 번씩 환자들의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어주고 있었던 것이다.

3월14일 경남 거제시에서 일어난 람보르기니 추돌 사고 현장. ⓒ 뉴시스
여러 보험사가 공동 조사하는 경우도

보통 보험사기는 SIU가 자체적으로 적발한다. 자료 분석을 통해 의심이 가거나, 보험사 보상팀에서 조사를 의뢰하는 경우 조사에 착수한다. 공동 조사(2개 이상의 보험사가 공동으로 수사기관에 의뢰해 보험사기를 적발하는 유형)의 필요성이 있으면 다른 보험사의 자료를 요청하기 위해 금감원에 보고한다. 처음 사건을 분석한 보험사가 ‘주관사’가 된다. 주관사는 자료를 모아 수사기관에 브리핑한다.

가장 먼저 계약 사항과 보험금 지급 사항을 살핀다. 한 손해보험사는 독자적으로 개발한 FDS(Fraud Detection System)를 사용한다. 가입자의 기본인 인적 사항만 입력하면 보험 가입 현황, 질병 이력, 보험금 지급 액수까지 알 수 있다. 여러 보험 상품에 동시다발적으로 가입돼 있거나 상해 등 보험금을 받은 이력이 많은 사람의 경우 위험 경고(Warning)가 뜬다. 각 사마다 다소 차이가 있지만 보통 이 위험지수가 70% 이상이면 ‘위험 인물’로 분류된다.

보험 범죄의 심각성이 대두되자 금감원과 보험연수원에서도 보험 사기 조사 실무자를 대상으로 특별교육을 하고 있다. 교육과 분석은 발달하고 있지만 한계도 있다. 법적 조사권이 없기 때문에 사건 조사 과정에서 자주 어려움에 부닥친다는 점이다.

반면 미국은 SIU에 사법경찰권을 부여해 보험사가 자체적으로 수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한화손해보험 측은 “아무리 우리가 ‘보험사기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해도 수사기관이 혐의가 없다고 수사를 종결해버리면 대응할 방법이 없다. SIU 전원이 아니더라도 보험 조사 경력 10년 이상, 경찰 경력 10년 이상 등 일정한 기준이 충족되는 한두 명에게라도 조사권을 준다면 각 보험사가 보험사기를 적발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행 형법에는 ‘보험사기죄’가 규정돼 있지 않다. 형법 347조에 따라 ‘사기죄’로 처벌될 뿐이다.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는 수준이다. 실제로는 그마저도 가벼운 벌금형이나 집행유예가 선고되는 게 대부분이다. 이번 ‘람보르기니 보험사기 사건’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에도 보험금을 받기 전에 발각됐기 때문에 사기미수죄가 적용돼 100만~150만원의 벌금형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2013년에 김학용 새누리당 의원 등이  ‘보험사기죄 신설과 처벌 수위 강화’를 주요 골자로 한 법안을 발의했지만 아직 국회에 계류 중이다. 지난 2월에도 백재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보험사기죄 신설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본회의 통과는 불투명하다.

2013년 4553억원이었던 보험사기 적발 금액은 2014년 5190억원으로 늘어났다. 보험업계 관계자들은 “보험사기는 단지 보험회사에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다”고 말한다. 해당 보험 상품 가입자뿐 아니라 모든 보험사와 가입자에게 피해를 준다는 것이다. 실제로 보험사기 때문에 보험 가입자의 보험료는 올라간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보험사기로 인해 선량한 보험 가입자가 1인당 7만원(1가구당 20만원)을 추가 부담하고 있다.

한화손해보험 SIU 팀원들이 FDS를 통해 가입자의 정보를 분석하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보험사기로 선량한 가입자 7만원 추가 부담

“돈에 대한 욕심은 사람을 ‘수단’으로 보게 만든다.” 경찰 출신의 한 SIU 조사실장의 말이다. 한 남성이 차를 가지고 시골로 향했다. 어두운 시골길을 배회하다가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할머니를 차로 들이받았다. 80대 할머니는 현장에서 사망했다. 알고 보니 그는 5000만원의 형사 합의 지원금이 나오는 보험 10개에 가입돼 있었다. 사고가 났을 때 합의금을 지원해주는 명목의 보험 상품인데, 사망 사고가 나야만 그 돈을 받을 수 있다. 그는 5억원의 합의 지원금을 수령한 후 2000만원을 할머니 사망 합의금으로 썼다. 같은 보험을 여러 개 동시에 든 것을 이상하게 여긴 보험사를 통해 이 사고가 계획적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조병규 한화손해보험 보험사고관리팀 차장은 “보험사기는 처음부터 크게 시작되지 않는다”며 “몇 번 입원을 해 입원비를 받은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이 ‘이번에는 팔을 부러뜨려 돈을 받아볼까’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부터가 (보험사기의) 시작이다. 여기서 확대되면 ‘누구 하나 죽여볼까’라는 위험한 생각까지 하게 된다. 보험사기는 중독이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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