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깟 이메일이 뭐라고...돈도 사람도, 힐러리에게 모인다.
  • 김회권 기자 (khg@sisapress.com)
  • 승인 2015.03.30 14:5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백악관 첫 여성 주인 도전…오바마 사람들도 속속 합류

그깟 이메일쯤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미국에서는 ‘그깟’이 아니다. 정부의 문서는 국민이 소유해야 될 공공자산이라고 인식하는 국가가 미국이다. 그리고 그 문서는 언젠가 언론을 통해 공개돼야 한다. 이를 위해 미국 정부는 공공기관의 문서를 자동으로 수집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여기에는 정부 시스템을 통과하는 모든 이메일이 포함된다.

이 수집 시스템에서 벗어나는 바람에 가장 유력한 차기 백악관 주인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곤욕을 치르고 있다. 그는 장관 재직 시절 개인 이메일 계정을 사용해 정부의 공문서를 보관해온 것으로 알려지면서 일이 복잡해졌다. 특히 2012년 9월 미국 대사 등 4명이 사망한 리비아 벵가지 미국 영사관 습격 사건을 조사하고 있는 미국 하원 특별위원회의 작업에 지장이 생길 가능성도 생겼다. 벵가지 사건에 대해 클린턴 전 장관이 개인 이메일로 상황을 보고받은 정황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클린턴 전 장관은 당시 책임자의 위치에 있었고 이 사건은 그의 대통령 적격 여부를 묻는 물음표가 되고 있다.

2011년 10월18일 당시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미군 군용기 안에서 블랙베리폰으로 이메일을 체크하고 있다. ⓒ AP 연합
장관의 개인 이메일 사용에 전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클린턴 전 장관의 대선 출마를 지지하는 사람들로 구성된 ‘코렉트 더 레코드(Correct The Record)’는 클린턴 전 장관이 개인 계정을 사용하고 있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비슷한 사례로 과거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2001~05년 재직) 또한 개인 계정을 사용한 바 있다고 주장했다.

대권 위해 넘어야 할 장벽은 민주당

월스트리트저널의 지적에 따르면, 미국 고위 관료들의 이메일 사용에 관한 규정에는 모호한 부분이 적지 않다. 미국국립문서보관소(NARA)가 2013년 공개한 지침에 따르면, 미국의 공무원은 일반적으로 공무 수행에서 사적인 이메일 계정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클린턴 전 장관은 NARA가 이러한 지침을 공표하기 전에 국무장관직에서 퇴임했다.

그런데 파월 전 장관에게는 그냥 넘어가는 사안이 클린턴 전 장관에게는 해당되지 않았다. 단순히 지침이나 벵가지 사건 때문만은 아니다. 차기 대권에 파월은 도전하지 않았지만 클린턴은 도전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다. 이미 ‘게이트’라는 수식어가 붙은 이메일 악재에도 불구하고 클린턴 전 장관 지지세는 여전히 탄탄하다. 여론조사 기관 갤럽이 3월12일 민주·공화 양당 대선 후보 1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인지도 89%와 선호도 50%를 기록하며 모두 1위에 오르는 저력을 보였다. 민주당의 조 바이든 부통령이 78%의 인지도와 39%의 선호도로 2위를 기록했고, 공화당의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가 68%의 인지도와 35%의 선호도로 그 뒤를 따랐다.

‘이메일 게이트’가 미국을 뒤흔드는 동안 오바마 대통령은 소속 정당의 1위 후보를 감싸주지 않았다. 오히려 비판하는 쪽에 섰다. 3월14일 우리네 관훈클럽 격인 ‘그리다이언 클럽’ 연례 모임에 참석한 오바마는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선거전의 달인이었던 자신과 비교하며 “과거에는 내가 최신 기술에 가장 익숙한 후보였다. 그런데 이제 보니 힐러리는 집에 서버가 있더라”며 에둘러 비판하기까지 했다.

힐러리 클린턴 전 장관은 자신이 대권에 도전하기 위해 넘어야 할 첫 번째 장벽이 공화당이 아닌 민주당 내에 있다는 점을 되새겨야 했다. 매번 잊을 만하면 불거져 나오는 오바마 대통령과의 불화설이 그렇다. 실제로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지난해 6월 뉴욕타임스 매거진 편집장 출신인 에드워드 클레인은 <철천지원수(Blood Feud)>라는 책을 펴냈다. 여기서 원수지간은 오바마 대통령과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며, 빌 클린턴의 아내였던 힐러리 클린턴 전 장관도 갈등의 범주에 포함됐다. 클레인의 폭로가 진실인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둘 사이가 좋은 게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 AP 연합
“오바마 측근이 이메일 게이트 정보 흘렸다”

클레인이 책을 낸 그때 클린턴 전 장관 역시 1기 오바마 행정부에서 보낸 국무장관 시절을 기록한 회고록 <어려운 선택(Hard Choices)>을 펴냈다. 책에는 오바마 대통령과 외교정책에서 대립했던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다. 시리아 정책에서 군사 지원에 신중한 오바마 대통령과 달리 자신은 반체제 세력에 대한 군사 지원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음을 분명히 밝혔다. 크림반도를 러시아에 합병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제2차 세계대전 직전 체코를 합병한 히틀러에 비유하며 공격하는 등 국제 문제에서 상당히 공격적인 태도를 드러냈다. 2기 행정부를 전개하고 있는 오바마 정부를 향해 야당인 공화당이 비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클린턴 전 장관이 ‘차이’를 강조하며 비판 대열에 합류한 점은 오바마 진영에서 매우 못마땅해하는 부분이다.

그래서 이번 이메일 게이트를 이런 갈등의 연장선에서 해석하기도 한다. 이메일 정보를 흘린 사람이 오바마 대통령의 최측근인 발레리 재릿 백악관 수석고문이란 주장이 최근 클레인의 입을 통해 나왔기 때문이다. 재릿은 오바마의 대통령 당선 후 인수위원회 팀장을 맡았던 최측근 중 한 명이다. 클레인은 3월16일 ‘뉴욕포스트’ 기고에서 “재릿이 백악관 외부 인물을 통해 클린턴 전 장관의 이메일 의혹을 제보했다”고 주장하며, 재릿의 밀고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오바마 주변에서는 진보가 아닌 중도파인 클린턴 전 장관이 대선에서 승리할 경우, 공화당과 타협해 오바마의 개혁 정책이 후퇴할 것으로 생각한다.” 노선 갈등과 불신이 바탕에 깔렸다는 주장이다.

공화당의 저명한 선거전략가인 칼 로브는 “현재 클린턴 전 장관이 2008년보다 훨씬 유리한 위치에 놓여 있다는 것은, 그의 힘이라기보다는 민주당의 약점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로브의 설명에 따르면 그 이유는 이렇다. 2008년 당시 민주당에서 클린턴 대항마는 앨 고어 전 부통령과 존 케리 후보, 존 에드워드 상원의원 등 그 면모가 쟁쟁했다. 반면 현재 경쟁자로 꼽히는 인물들은 조 바이든 부통령,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매사추세츠), 앤드루 쿠오모 뉴욕 주지사 등인데, 중량감이 과거와 비교해 떨어진다는 평가가 많다. 그래서 지금의 경선 분위기, 그리고 힐러리 클린턴 진영의 자신감을 부정적으로 보는 기류가 존재한다.

어쨌든 현직 대통령과 당내의 부정적인 분위기 속에서도 힐러리 진영에는 그를 도우려는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다. 남편 빌 클린턴 정부 시절의 정치적 동지들인 ‘아칸소 사단’이 뭉치고 있고, 여기에 오바마 대통령 만들기에 나섰던 ‘시카고 사단’ 역시 속속 합류 중이다. 특히 불화설의 상대인 오바마 진영 사람들이 합류하고 있다는 점은 클린턴 전 장관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하게 한다. 오바마 대통령 재선의 핵심 전략을 만들었던 짐 메시나 전 본부장이 클린턴 진영에 들어왔고 대통령의 여론조사 담당 고문인 조엘 베네슨과 오바마 선거 캠프의 수석 미디어전략가였던 짐 마골리스의 합류도 눈에 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오바마 대통령도 보좌했던 존 포데스타 백악관 선임고문은 클린턴 전 장관 캠프의 총괄 지휘를 맡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국에서 하나의 정당이 3기 연속으로 정권을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1952년 애들레이 스티븐슨은 트루먼 전 대통령의 뒤를 이을 수 없었고, 1968년 허버트 험프리 역시 린든 존슨 전 대통령의 뒤를 밟으려 했지만 패배했다. 앨 고어 전 부통령 역시 2000년 클린턴 대통령에 이어 3기 연속으로 민주당 정권을 만들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클린턴 전 장관은 과연 그런 역사를 바꿀 수 있을까. 4월에 그는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다.

 

2013년 1월24일 존 케리 국무장관 인준 청문회에 힐러리와 함께 앉아 질문하고 있는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왼쪽). ⓒ AP 연합
3월22일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핵심 선거 참모였던 딕 모리스는 뉴욕 라디오의 한 프로그램에 출연해 “엘리자베스 워런 의원의 대선 출마 압박은 계속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오바마 대통령 주변에서는 워런 의원의 대선 출마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진보의 총아’ ‘월가 개혁의 기수’. 워런 의원이 가진 별명이다. 원래 하버드 로스쿨에서 파산법과 소비자보호법을 가르치던 교수였던 워런 의원은 2008년 리먼브러더스 쇼크 이후 메가뱅크에 대응하기 위해 은행·증권의 분리를 규정하는 글래스-스티걸법을 부활시키자고 주장해 큰 지지를 얻었다. 반면 힐러리 클린턴 전 장관은 월가와 호의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그래서 글래스-스티걸법 폐지를 지지하는 쪽이다.  

워런 의원과 클린턴 전 장관 사이에는 합의에 도달하지 못할 부분이 많다. 월가 문제만 있는 게 아니다. 워런 의원은 지적재산권과 특허에 대한 보호가 과도한 자유무역협정에 반대한다. 반면 클린턴 전 장관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의 강력한 지지자다. 상원의원 재임 중에는 오만·칠레·싱가포르와의 자유무역협정에 찬성표를 던졌다.

2012년 첫 상원의원 선거에 도전하면서 워런 의원은 전쟁을 공공연하게 비판했다. 의회에 입성한 이후에도 변하지 않았다. 지난해 8월 오바마 정부가 IS(이슬람국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라크 공습을 계획하자 “군사 개입은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며 반대의 뜻을 분명히 했다. 이와 반대로 힐러리는 2002년 이라크 전쟁 관련 표결에 찬성표를 던진 전력이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