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 사무실에서 직원들이 뇌물 나눠 가져”
  • 조해수·박혁진 기자 (chs900@sisapress.com)
  • 승인 2015.03.31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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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무조사 현장에서 현금 받기도…갈 데까지 간 뇌물 수수 백태

국세청 직원들이 KT&G로부터 세무조사 편의 제공을 대가로 수억 원의 돈을 받아 챙긴 사실이 시사저널 취재 결과 단독 확인됐다. 문제는 이번 사건이 직원 몇몇의 일탈 행위가 아니라는 점이다. 국세청 직원들이 뇌물을 받은 업체 역시 한두 군데가 아니라는 점도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다. 서울지방국세청 조사1국은 대기업에 대한 정기 세무조사를 담당하고 있는 핵심 부서다. 그런데 이 조사1국의 한 팀 전체가 세무조사와 관련해 7개 업체로부터 모두 3억원 상당의 뇌물을 수수한 사실이 밝혀졌다. 관련 사안을 취재하던 시사저널은 이 과정에서 해당 팀이 7개 업체뿐만 아니라, KT&G까지 더해 총 8개 업체로부터 뇌물을 수수한 사실을 확인했다. 이는 현재까지 확인된 곳만 8개 업체라는 얘기다. 아직 드러나지 않은 업체들이 더 있을 수도 있다.

국세청 조사과 한 팀 전원이 뇌물 수수

인천지방검찰청 외사부(부장 이진동)에 따르면, 2009년 서울국세청 조사1국 소속 7팀 팀장 홍 아무개씨를 비롯한 같은 팀 직원 6명은 KT&G 측으로부터 세무조사 편의 제공을 대가로 2억2000만원을 받아 나눠 가졌다. 이 팀 소속 A씨는 KT&G에 자신이 지정한 세무사에게 관련 업무를 맡길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 같은 사실은 인천지검 외사부에서 KT&G의 불법 면세담배와 관련한 수사를 진행하던 중에 드러났다. 인천지검 외사부는 지난해 6월 말 군납용 면세담배 불법 유출 사건 수사를 위해 사상 최초로 서울 용산을 비롯한 전국의 미군부대와 미군 면세담배 유통 독점권을 가진 상훈유통 본사를 압수수색한 바 있다(시사저널 2014년 8월, 1297호 기사 참조).

ⓒ 시사저널 박은숙
검찰은 팀장인 홍씨를 비롯한 전·현직 국세청 직원 3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할 예정이며, 나머지 2명은 불구속 기소할 방침이다. KT&G에 세무사를 소개해준 팀원 A씨는 이미 별건으로 실형을 선고받아 수감 중이어서 추가 기소할 예정이다. 검찰은 국세청과 KT&G가 관련된 세무 비리가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실제로 KT&G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KT&G의 세무 비리를 국세청 측에 제보하겠다”는 이 아무개 전 KT&G 세무팀장에게 5억원을 건넨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KT&G에 대해 국세청 로비 혐의 외에 조직적인 분식회계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건을 거슬러 올라가면 국세청의 세무 비리가 얼마나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경찰에 따르면 홍씨가 팀장으로 있었던 서울국세청 조사1국 7팀 전원은 2009년 9월부터 2011년 2월까지 7개 세무조사 대상 업체로부터 7차례에 걸쳐 총 3억1600만원의 뇌물을 받았다. 교보증권·메가스터디·대상·협진해운·대한사료·신송식품 등은 세무조사 무마 대가로 금품을 조사1국 7팀에 상납했다. 뇌물을 받은 7팀은 세무조사 과정에서 업체 측 소득신고 등을 그대로 수용해주는 방법으로 편의를 봐줬다. 이 사건은 국세청 한 개 팀 전체가 적발된 최초의 사례다. 경찰 관계자는 “적발된 세무공무원들은 적발 기간 중 팀장 또는 팀원의 인사이동이 있었음에도 뇌물 수수 행위가 지속됐다. 뇌물이 팀원들에게 균등한 액수로 분배됐다”고 설명했다. 세무 비리가 얼마나 만연해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며, 박근혜 정부가 국가적인 병리 현상으로 지목한 ‘관(官)피아’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1982년 부산. 세관 공무원 최익현(최민식 분)에게는 뇌물 수수가 일상화돼 있다. 최익현뿐만이 아니다. 뇌물 수수에는 부서 전체가 연루돼 있다. 홍삼과 금시계 밀수 현장을 적발하지만 동료들은 금시계를 챙기느라 여념이 없고, 최익현은 밀수업자가 내민 돈뭉치를 받아 챙긴다. 담당 계장이 “적당히 좀 받아먹어라”는 애정 어린 충고를 할 정도. 이들이 챙긴 돈과 밀수품을 보관하는 장소는 다름 아닌 세관 화장실이다. 빼돌린 밀수품이 너무 많아서 마땅히 보관할 장소가 없기 때문이다. 여느 때처럼 밀수품과 뇌물을 받아 세관으로 돌아온 최익현과 동료 세관원들은 감사가 떴다는 말에 급히 화장실 천장에 물건을 숨기려 한다. 이 와중에 동료가 넘어지면서 화장실 천장으로부터 돈뭉치와 밀수품들이 마치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린다.

2012년 개봉한 영화 <범죄와의 전쟁-나쁜 놈들의 전성시대>의 한 장면이다. 뇌물 수수가 횡행하던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이번 국세청의 뇌물 수수 사건을 보면, 이는 흘러간 옛날 일만은 아니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검찰의 국세청 뇌물수수 사건 공소장에 따르면, 뇌물 수수는 유흥주점은 물론 세무조사 현장에서도 이뤄졌다. 또한 현금으로 받아온 뇌물은 국세청 사무실 안에서 팀원들에게 분배됐다. 영화의 한 장면이 고스란히 재연된 것이다.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3월25일 서울 종로구 수송동 서울지방국세청을 압수수색했다. ⓒ 뉴스원
검찰 공소장에 나타난 뇌물 수수 실태

#1. 서울 소재 ○○단란주점 안. 세무조사를 받는 B기업의 재경팀장과 서울지방국세청 7팀 직원들이 둘러앉았다. 술이 한 순배 돌아간 후, 400만원 상당의 상품권이 건네졌다.

#2. △△△△일식집에서 C기업 이사와 부장, 세무사와 함께한 술자리에서는 현금 100만원이 들어 있는 세무사 수첩 1개가 건네졌다. ▽▽커피숍에서는 D기업으로부터 500만원의 현금을, ◎◎냉면집에서는 E기업으로부터 1500만원을 받아 챙겼다. F기업은 회사 앞 노상에서 현금 4000만원을, G기업은 ◇◇횟집에서 2000만원을 쇼핑백에 담아 전달했다.

#3. H기업 본사 건물 5층. 사무실에서는 세무조사가 한창이었다. 다급해진 H기업은 7팀 직원 한 명을 따로 불러냈다. 현금 500만원이 세무조사 현장에서 급히 전달됐다. I기업은 다른 기업의 세무조사 현장에 있던 7팀 직원을 불러내 1억8000만원이 든 쇼핑백을 전달했다.

뇌물 수수는 술자리, 식사 자리 심지어 세무조사가 벌어지는 현장에서도 공공연하게 이뤄졌다. 이렇게 들어온 돈은 ‘룰’에 따라 분배됐다. 예를 들어 400만원 상당 상품권의 경우, 팀장에게는 100만원이 돌아갔고 상급자 2명은 80만원, 하급자 2명은 70만원씩 갖는 식이다. 한 사람이 독식하는 경우는 없었다. 국세청 출신의 한 세무사는 “뇌물이 들어오면 상급자에게 보고하고 공평히 나눠 갖는 것이 ‘법칙’이다. 혼자 먹다가 걸리면 눈 밖에 나고, 그러면 (뇌물 수수) 이너서클에서 퇴출된다”고 귀띔했다.

뇌물은 대부분 현금으로 건네졌다. 액수가 적을 때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수천만 원 혹은 억대를 넘어가는 현금은 보관상의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서둘러 분배를 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분배가 국세청 사무실에서 이뤄지기도 했다. 검찰 조사에 따르면, 돈을 나눠 가진 곳은 다름 아닌 서울국세청 조사1국 7팀 사무실 안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현금 다발을 쇼핑백 등에 담아 국세청 사무실로 가져온 후, 그 자리에서 돈뭉치를 나눴다는 것이다. 검찰 공소장을 통해 각기 다른 기업으로부터 받은 1500만원·4000만원 등의 현금 다발이 ‘서울 중구 60-6에 위치한 서울 국세청 조사1과 7팀 사무실’에서 교부됐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다른 기업의 세무조사가 이뤄지는 현장에서 뇌물이 오고 간 일도 있었다. I기업이 건넨 1억8000만원은 당시 국세청으로부터 세무조사를 받던 J기업의 빌딩 지하 1층에서 전달됐고, 그 돈은 바로 세무조사 현장에서 분배됐다.

검찰은 비리에 연루된 서울국세청 조사1국 7팀 직원 중 5명을 뇌물 수수와 제3자 뇌물 취득 혐의로 기소했다. 뇌물을 건넨 기업 중에서는 액수가 가장 큰 I기업만 재판에 회부됐다. 그러나 이마저도 뇌물을 직접 건넨 중간 간부 한 명 선에 그쳤다. 

이완구 신임 총리는 지난 3월12일 취임 후 처음으로 발표한 대국민 담화문에서 부정부패와의 전면전을 선포했다. 그러나 이 총리의 취임 일성이 끝나기 무섭게 국세청 직원 2명이 성매매를 한 사실이 시사저널의 단독 보도로 세상에 알려지기도 했다(본지 3월12일자 ‘경찰, 국세청 간부 두 명 성매매 혐의 적발’ 기사 참조). 수서경찰서는 해당 업소에 설치된 CCTV 영상과 카드 전표, 매출 장부 등을 확보해 이들에게 향응을 접대한 동석자가 있었는지 수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경찰은 3월25일 국세청 직원 8~9명이 세무사들을 통해 금품을 받고 병원 등 각종 업체에 세금 감면을 받게 해준 정황을 포착하고, 서울국세청 조사3국, 강남·서초·반포·동대문 세무서와 경기 지역 세무서 1곳을 압수수색했다. 이 과정에서 국세청 직원들이 10여 곳의 업체로부터 많게는 수천만 원의 금품을 챙긴 사실이 드러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이들 세무 공무원의 휴대전화 통화 기록을 분석해, 국세청 고위 간부들에게도 돈이 건네졌는지 수사할 계획이다.

3조원대 사기 대출 사건을 일으킨 가전업체 모뉴엘 측으로부터 세무조사 무마 대가로 3000만원을 수수한 서울국세청 국제거래조사국 오 아무개 팀장도 재판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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