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제 식구 감싸기’ 해도 너무했다
  • 이규대 기자·김지영 인턴기자 (bluesy@sisapress.com)
  • 승인 2015.04.01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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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현 의원 출신 인사청문 후보자 34명 전원 ‘무사통과’ 2000년 이후 총 275건 사례 전수 분석

국회 인사청문회 제도가 도입되고 15년이 흘렀다. 2000년 이후 고위 공직 후보자로 지명된 이들은 어김없이 ‘검증대’에 올라야 했다. ‘검증위원’은 국민의 대표자인 국회의원이다. 인사청문회를 전후해 후보자의 도덕성과 전문성, 직무 적합성 등을 아우르는 검증 작업이 전 방위로 진행된다. 행정 수반에 권력이 집중되는 현행 대통령 중심제에서, 인사청문회는 국회가 정권을 견제하는 유력 수단이다. 인사권을 휘두르는 ‘제왕적 대통령’의 턱밑에 들이민 칼날이다. 정권의 평판은 물론 국정 운영의 안정성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큰 영향을 미친다.

시사저널은 지난 15년간의 국회 인사청문회를 전수 조사했다. 역대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임명동의안’ ‘선출안’ ‘인사청문 요청안’을 토대로 총 275건의 인사청문회 결과를 들여다봤다. 통과·낙마 결과를 단순 집계하는 것을 넘어 각 공직 후보자의 출신·직업·학력·병역 등을 토대로 입체 분석을 진행했다. 국회 인사청문경과보고서, 언론 보도 등을 참고해 후보자들에게 제기된 각종 의혹·논란까지 데이터베이스화해 분석했다. 분석 결과를 압축적으로 드러내는 몇 개의 숫자들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 사회의 ‘엘리트 집단’이라 할 수 있는 고위 공직 후보자들의 민낯이 보인다.

낙마자 직업군별로 봤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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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현직 국회의원 출신 후보자 중 낙마 ‘0명’

최근 박근혜 정부 주요 국무위원들에 대한 인사청문회 결과를 두고 비난 여론이 뜨겁다. ‘국회의원 출신 봐주기’ 논란이 일고 있는 탓이다. 이완구 국무총리, 유기준 해양수산부장관, 유일호 국토해양부장관 등 현역 국회의원 후보자들의 경우 의혹이 대대적으로 불거졌음에도 결국 청문회를 무난히 통과했기 때문이다. 국회의 검증이 유독 ‘동료’ 후보자에게는 관대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여기에는 야당 의원도 예외가 아니다. 모두 “우리는 의원”이라는 동료의식이 강하게 작용한 셈이다. 과연 사실일까.

이번 전수조사 결과 이는 명확한 사실로 다시 한 번 입증됐다. 지난 15년간 인사청문회 도중 사퇴, 임명동의안 부결, 통과 직후 사임 등으로 ‘낙마’한 사례는 전체 275건 중 22건이었다. 이 중 현직 국회의원 신분의 후보자로 낙마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다. 이뿐만이 아니다. 전직 의원 후보자 역시 단 한 명도 낙마한 사례가 없었다. 즉 전직이든 현직이든 ‘여의도’ 경험을 가졌던 34명의 의원 출신 후보자는 모두 인사청문회를 거뜬히 통과했다. 그렇다고 이들의 도덕성이 다른 후보자들에 비해 월등히 뛰어났다고 보기도 힘들다. 절반에 가까운 16명이 탈세·탈루를 저질렀다는 의혹을 받았다. 금품 수수, 로비 주선, 인사 청탁 등 권력형 비리 연루 의혹이 제기된 이도 10명이나 됐다. 전체 직업군 평균과 비교해보면 비슷하거나 많은 수준이다. 더 큰 문제는 다른 직업군 출신의 경우, 이런 비리라면 혹독한 검증 과정을 통해 낙마한 사례가 적지 않았다는 점이다.

낙마 사례 22명의 직업군을 보면, 학계 출신의 비중이 가장 높다. 7명이다. 전체 학계 출신 후보자가 40명임을 감안하면 상당히 높은 비율이다. 국회의원 출신 34명 중 0명, 판사 출신 81명 중 3명, 검사 출신 29명 중 4명이 낙마한 것과 비교해도 그렇다. 국회의 인사 검증이 ‘자기 식구’와 권력기관 출신에 상대적으로 관대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현직 국회의원인 유일호 국토교통부장관(왼쪽)과 이완구 국무총리는 각종 의혹·논란에도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했다. ⓒ 시사저널 박은숙
가장 많이 문제 된 비리 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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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탈루, 부동산 투기, 위장전입 의혹 순

역시 공직 후보자의 아킬레스건은 부동산이었다. 275건의 인사청문에서 제기된 주요 의혹·논란을 종류별로 집계한 결과, 부동산 관련 문제의 비율이 높았다. ‘부동산 투기’ 의혹이 70건(25.5%), ‘위장 전입’ 의혹이 54건(19.6%)이다. 공직 후보자 넷 중 하나는 투기 의혹, 다섯 중 하나는 위장 전입 의혹에 휩싸였다. 인사청문회 제도 도입 이후 부동산 관련 논란은 거의 ‘단골 메뉴’로 자리 잡았다.

단일 항목으로 가장 비중이 큰 것은 탈세·탈루다. 102건으로 전체 인사청문회 중 37.1%에서 문제가 됐다. 공직 후보자 10명 중 4명이 다운계약서 작성, 편법 증여, 재산 축소 신고 등으로 납세 의무를 회피했다는 의혹을 청문회장에서 질타받은 셈이다. 자녀의 재산·병역 관련 의혹(48건·17.5%), 후보자 병역 회피 및 정치·사상 편향 의혹(각각 29건·10.5%) 등도 자주 문제가 됐다.

15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생긴 비리의 변화도 눈길을 끈다. 청문회 도입 초기인 노무현 정부 시기에는 주로 부동산 투기, 탈세·탈루 등을 중심으로 대통령 ‘코드 인사’ 논란, 정치 성향 논란 등이 제기되는 식이었다. 그랬던 것이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는 여기에 좀 더 다양한 항목의 의혹·논란이 더해지는 모습이다. 전관예우, 무기중개상 전력, 대선 개입 의혹, 역외 탈세, 식민사관 논란 등이다. 노무현 정부 시기 단 2건에 불과했던 논문 표절·중복 게재 의혹이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에서는 각각 13건씩으로 늘어난 것도 눈길을 끈다.

노무현 정부와 비교할 때 이후 정권에서 지명된 공직 후보자들이 도덕성 면에서 더 많은 의혹에 휩싸였다는 점도 확인된다. 단적인 예로 가장 비율이 높은 탈세·탈루 의혹을 보면, 노무현 정부 시기에는 인사청문회 80건 중 10건에서 문제가 됐다. 이명박 정부는 115건 중 54건, 박근혜 정부는 66건 중 38건이다. 노무현 정부 이후 공직 후보자의 도덕적 흠결이 전반적으로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후보자 평균 신고 재산은 약 20억, 가계 평균의 ‘10배’ 

지난 15년간 275건의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공직 후보자들이 신고한 재산액의 평균은 19억6729만원이다. 고위 공직자에 근접한 이들의 재산 수준이 약 ‘20억’ 정도라는 뜻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4년 가계 평균 순자산(자산 중 부채를 제외한 것)은 2억7370만원이다. 15년 사이의 물가 상승 등을 감안하면, 공직자 후보 집단이 대한민국 평균의 10배에 달하는 재산을 신고한다는 뜻이다.

공직 후보자 개인마다 편차도 크다. 많게는 100억원대, 적게는 수천만 원대의 재산을 신고했다. 하지만 대다수 후보자가 가계 평균 순자산인 2억~3억원보다 많은 액수를 신고했다. 지난 15년 동안 가장 많은 재산을 신고한 이는 유인촌 전 문화관광부장관이다. 2008년 인사청문회 당시 140억원대를 신고했다. 재산을 많이 신고한 공직 후보자 상당수는 그 형성 과정, 공직자로서의 적절성 등을 둘러싸고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논란에 휩싸였다.


출신 지역과 학교는
TK·PK 순, 60%가 서울대 졸업 

출신 지역을 살펴보면 역시 TK(대구·경북) 지역이 가장 많다. 47명(18.2%)이다. 근소한 차이긴 하지만 두 번째는 PK(부산경남·울산) 지역으로 44명(17.1%)이다. 두 지역을 합쳐 영남 인사가 91명(35.3%)에 달한다. 전체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한다. 대한민국 전체 인구 분포를 감안하더라도 매우 높은 수치다. 서울이 43명(16.7%), 대전·충남·충북 등 충청권이 43명(16.7%), 광주·전남·전북 등 호남권이 42명(16.3%)이다. 이어 인천·경기 16명(6.2%) 순이다.

출신 대학의 경우 서울대 출신이 151명(59%)으로 압도적이다. 2위를 기록한 고려대의 25명(9.8%)보다 6배 이상의 큰 차이를 보인다. 연세대(16명)·육군사관학교(9명)·영남대(8명)·중앙대·이화여대(각 7명) 순으로 뒤를 잇는다.


병역 면제자 비율은... 병장 만기 전역자 16.9% 그쳐

지난 15년간 인사청문회를 거쳐 간 후보자 중 35명(14.1%)이 병역 면제 판정을 받았다. 면제 사유는 폐결핵, 디스크, 시력, 각종 질병 후유증 등 신체적인 이유가 대부분이다. 일부는 ‘독자’라는 이유로 면제를 받기도 했다. 이들은 청문회 과정에서 병역 기피, 각종 특례 논란으로 곤욕을 치렀다. 의무 복무 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전역한 비율도 20%가 넘는다. 임무 중 부상, 부적응 등으로 의가사제대, 현역 부적격 등의 판정을 받은 경우다. 병장 만기 전역은 42명(16.9%)에 그쳤다.

위관급 장교로 복무하다 전역한 후보자가 차지하는 비율이 높은 것도 눈에 띈다. 소위·중위·대위 등으로 전역한 공직자가 전체의 35%에 이른다. 이는 공직 후보자들 중 다수가 고시 합격자인 영향이 크다. 시험 합격 후 장교인 군 법무관으로 병역을 수행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한편 여성 비율은 8.6%를 차지했다. 김대중 정부 2명(14.3%), 노무현 정부 4명(5%), 이명박 정부 11명(9.56%), 박근혜 정부 4명(6%) 등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유의미한 변화 추세가 드러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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