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은행, 중국에서 의문의 420억 대출
  • 박혁진 기자 (phj@sisapress.com)
  • 승인 2015.04.02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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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푸빌딩 사업 관련 3800억 부실 채권 원인 제공자에게 추가 신용대출

우리은행의 부실 채권 가운데 가장 큰 규모 중 하나인 중국 화푸빌딩 3800억 PF(프로젝트 파이낸싱)와 관련해 은행 측이 420억원을 추가로 시행 사업자 개인에게 신용대출을 해준 사실이 시사저널 취재 결과 확인됐다. 은행 측은 이 채권을 기업개선단에서 관리할 정도로 부실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으나, 오히려 중국 현지 시행 사업자 개인 이름으로 420억이란 돈을 신용으로 대출했다. 중국 현지에서 대출된 이 돈이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는 현재까지 파악되지 않고 있다.

화푸빌딩 PF 부실 채권 3800억원은 우리은행 관련 국회 국정감사 때마다 크게 논란이 일었던 사안인데, 은행 측이 420억원을 신용으로 대출한 사실이 드러남에 따라 파문이 예상된다. 이 대출은 우리은행 북경분행에서 집행됐다.

서울시 중구 회현동 우리은행 본점 ⓒ 시사저널 최준필
우리은행 측은 이 돈이 국내 예금 등을 담보로 이뤄졌고, 회수됐다고 해명하고 있다. 또한 중국 현지에서 채권 추심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북경분행에서 대출이 나간 것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이미 부실 위험이 큰 상황에서 이를 추심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수백억 원을 추가로 대출해줬다는 설명은 납득하기 어렵다. 게다가 채권을 회수했다는 우리은행의 설명과 달리 2013년 8월 이 채권을 매각하기 위해 우리은행이 김앤장법률사무소와 삼정회계법인 등을 통해 낸 매각 공고 자료에 보면 여전히 회수되지 않은 채권으로 남아 있다.

파이시티 이정배 대표가 사업 시작

이 사업에 관심이 모아지는 이유는 우리은행이 화푸빌딩 PF를 일으키기 위해 끌어들였던 인사가 당시 양재동 파이시티 사업을 시행했던 이정배 대표이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이명박 정권 실세였던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과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의 인허가 관련 청탁 로비에 연루됐던 인물이다. ‘파이시티 게이트’로 불리는 이 사건은 2012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의 수사로 이어졌고, 최 전 위원장과 박 전 차관이 구속됐다. 파이시티 사건은 지난 2010년 우리은행이 주도하던 채권단이 사업 시행사에 대한 파산신청을 한 것이 단초가 됐다. 당시 사업 시행사 대표가 이정배 대표였으며, 이 대표는 “우리은행이 의도적으로 파산신청을 해서 사업을 빼앗아가려 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우리은행이 파산신청을 한 것은 2010년 8월이었는데, 이 대표가 우리은행과 갈등을 빚기 시작한 것은 같은 해 초 화푸빌딩 프로젝트 때문이었다. 결과적으로 우리은행과 이정배 대표가 화푸빌딩 사업을 놓고 다투는 과정에서 파이시티 사건이 불거진 셈이다.

2009년 12월 우리은행 북경분행과 중국 시행사업자 간에 맺은 420억원 신용대출 계약서.
우리은행이 이 사업 참여를 검토한 것은 2006년께다. 2006년은 금융권에서 해외 부동산 투자 열풍이 불었던 시기다. 우리은행은 중국 부동산 사업에 투자하기 위해 사업자를 물색하던 중 조선족 현지인 민 아무개씨를 만났다. 민씨는 중국 현지 사정에는 밝았지만, 부동산 사업 경험이 많지 않았던 탓에 우리은행은 민씨와 함께 일할 국내 사업자를 물색했다. 이때 우리은행이 사업 참여를 권유했던 인물이 이정배 대표다. 이 대표는 장교동 센터원 사업을 비롯해 국내에서 30개가 넘는 굵직한 시행 사업을 해왔던 경험이 있는 데다, 우리은행과 함께 파이시티 사업을 추진하던 시행 전문가였다. 이 대표가 중국에 전문가를 파견하는 등 사업을 검토한 끝에 찾아낸 곳이 화푸빌딩이다.

화푸빌딩은 지하 3층, 지상 25층에 연면적 12만5000㎡ 규모의 건물로 베이징 시내 한가운데 위치해 있다. 이 빌딩은 JP모건이 주주로 있던 홍콩의 CCP라는 투자회사가 중천굉업이라는 특수목적법인을 통해 소유하고 있었다. 이 대표는 화푸빌딩을 인수해 리모델링한 뒤 재매각하는 개발 사업을 추진했고, 민씨와 백익인베스트먼트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백익인베스트먼트의 지분 구조는 이 대표 40%, 이 대표의 지인 장 아무개씨 30%, 민씨 30% 등이다. 우리은행의 지급보증을 조건으로 대한생명이 1500억원, KB국민은행이 2300억원을 이 대표 측에 대출해줬다. 우리은행이 ‘백익이 돈을 못 갚으면 대신 갚아주겠다’는 지급보증을 섰기 때문에 사실상 우리은행에서 대출이 이뤄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대출받은 돈을 통해 백익은 CCP가 소유하고 있던 중천굉업의 지분을 인수하는 방식으로 빌딩을 사들였다.

문제는 우리은행이 3800억원을 대출할 당시 부동산을 담보로 한 것이 아니라 중천굉업의 지분을 담보로 하면서 발생했다. 부동산이 담보로 설정돼 있어야만 실질적인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데 중천굉업의 지분만 가지고는 중국에서 권리를 행사할 수 없다. 우리은행은 향후 부동산 등기가 이뤄지면 담보를 해주겠다는 민씨의 말만 믿고 대출을 해줬다가, 등기가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결국 부동산을 담보로 설정하지 못했다.

부동산 담보가 없는 상황에서의 대출은 부실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대한생명과 KB국민은행 측은 대출 당시 계약 조건대로 우리은행 측에 채권을 인수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우리은행은 2009년 12월11일 대한생명으로부터 1500억원의 채권을 인수했고, 2010년 1월20일 KB국민은행 채권 2300억원을 인수했다. 하지만 우려대로 이 채권은 부실화돼 결국 기업개선단으로 넘어갔으며, 현재까지도 회수되지 않고 있다. 이정배 대표는 처음에 사업에 참여했지만 2010년 3월 우리은행 측의 요구로 가지고 있던 지분을 민씨에게 넘기고 사업에서 빠졌다. 이 과정에서 우리은행은 이 대표 측에 민씨와 이 대표 간의 주식양수도 계약에 사인할 것을 요구하면서 파이시티 사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줄 것을 약속했다고 한다. 이에 따라 이 대표는 주식양수도 계약서에 사인을 했지만, 약속했던 지원 대신 우리은행은 5개월 후 파이시티 사업에 대한 파산신청을 냈다.

이 사건은 2009년을 전후해 금융권 내부에 큰 파장을 몰고 왔다. 관리·감독 소홀에 대한 책임을 물어 금융감독원은 화푸빌딩 업무 약정을 맺은 2007년 12월 당시 황영기 우리금융지주 회장을 비롯해 사후 관리에 관여된 박해춘·이종휘 전 은행장들에게도 ‘업무집행정지 3개월’ ‘주의적 경고’ 등의 징계 조치를 내렸다.

중국 베이징 화푸빌딩
아무 담보도 없이 420억 신용대출

문제는 부실 채권을 대한생명과 KB국민은행으로부터 한 달 간격을 두고 인수하는 사이, 우리은행 북경분행 측이 중국 측 시행업자 중 한 명인 민 아무개씨에게 2억4000만 위안(당시 환율로 420억원)을 개인보증으로 대출해줬다는 점이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우리은행 북경분행과 민씨가 2009년 12월23일 작성한 계약서를 보면 이러한 내용이 자세히 나와 있다. 다음은 양측이 맺은 계약서 중 ‘8조 대출 담보’ 관련 부분이다.

“이 대출의 담보 방식은 다음과 같다. 즉 북경중천굉업방지산자문유한회사 법정대표자 민OO과 이사 김OO이 전액 연대책임보증을 제공한다.”

계약서에는 대출신청서와 함께 차입인의 이사회 결의, 개인보증계약 2부가 첨부돼 있다. 민씨와 김씨가 보증을 선다는 내용의 계약서다. 대출받는 사람이 보증을 선다는 사실상의 신용계약이다. 등기를 차일파일 미루면서 부실화의 원인을 제공했던 시행 사업자에게 420억이란 돈을 국내도 아닌 북경분행을 통해 아무런 담보 없이 대출해준 셈이다. 취재 과정에서 자문을 구한 금융권 전문가들도 하나같이 ‘상식적이지 않다’고 답했다. 현재 신용대출 역시 부실 채권으로 분류되어 있는 상황이다. 이 돈이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는 중국 시행 사업자인 민씨만이 알고 있는데, 중국 사업자와 우리은행은 현재 한국과 중국에서 치열하게 법적 다툼을 벌이고 있다.

우리은행은 420억 신용대출에 대해 전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우리은행 기업개선단 김경수 부장은 시사저널과의 몇 차례 전화통화에서 “이 채권은 이미 회수가 된 것이고, 대출이 나갈 때 국내 예금 등을 담보로 나간 것이기 때문에 절차상 문제도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김 부장의 반박 요지는 크게 세 가지다. 하나는 국내에 있던 민씨의 외환은행 예금 통장을 담보로 했다는 것. 둘째는 북경분행에서 대출이 이뤄진 것은 북경분행이 중국 현지법인이기 때문에 현지에서 대출이 나가면 민씨와 연관되어 있는 3800억원 부실 채권에 대한 추심의 발판이 마련될 수 있다는 것. 마지막으로 서류상으로만 대출이 이뤄졌고, 실제로는 대출이 나간 것이 없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부실 채권으로 보는 것은 맞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은행 “전혀 문제 될 것 없다”

하지만 우리은행이 지난 2013년 7월 부실 채권 매각을 위해 김앤장법률사무소와 삼정회계법인 등을 통해 낸 매각 공고 자료에 보면 민씨에게 나간 2억4000만 위안(420억원)의 채권은 여전히 존재한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이 매각 공고 자료를 보면 우리은행이 내놓은 매각 대상 자산 개요에 ‘북경은행이 민 아무개씨에 대하여 보유하고 있는 대출 채권 원금과 연체 이자 등 총 2억8000만 위안’이 포함돼 있다.

우리은행도 3800억원과 420억원이 두 개의 부실 채권으로 분리돼 관리되고 있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420억은 사실상 회수되었기 때문에 이것은 부실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우리은행 측은 “담보로 제공된 국내 예금을 통해 회수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 금액이 줄어들지 않는 것은 환율 차에 따른 손실이 360억원가량 발생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사건을 몇 년째 조사하고 있는 국회 관계자는 우리은행 측의 반박에 대해 “부실 채권을 회수하려는 발판을 만들기 위해 또 다른 대출을 신용으로 420억원이나 해줬다는 얘기 같은데 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해 또 다른 리스크를 발생시켰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화푸빌딩 부실 채권 문제가 큰 휘발성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파이시티 사업 때 각을 세웠던 우리은행과 이정배 전 대표가 이 사업과 관련해서도 얽히고설켜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 포스코처럼 우리은행 역시 지난 정권과 연관된 정치적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도 하나의 이유다. 국회 정무위 소속인 새정치민주연합 김기식 의원실 관계자는 시사저널과의 전화통화에서 전 정권 실세 이름을 거론하며 이 사건을 ‘대국민 국제 사기극’으로 규정했다.

화푸빌딩 관련 부실 채권은 우리은행 국정감사 때마다 불거지는 내용이다. 지난 국감에서도 이 문제가 논의됐다. 이런 상황에서 3800억원 이외에 420억원의 돈이 추가로 대출됐다는 사실이 시사저널 취재를 통해 밝혀지면서 우리은행이 다시 논란에 휩싸일 가능성이 커졌다.

우리은행 측은 “지금 은행이 채권 회수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사안인데, 이런 기사가 나가면 또다시 회수가 어려워질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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