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P 관심 사업이라고 하면 무조건 ‘통과’였다”
  • 엄민우 기자 (mw@sisapress.com)
  • 승인 2015.04.02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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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정부 해외자원개발 성공불융자 심의위원 A씨의 고백

경상남도에서 무상급식 100년 치 예산에 해당되는 국부 35조원을 유출시킨 ‘자원외교’ 비리에 대한 검찰 수사 타깃은 ‘성공불융자’다. 이름도 생소한 이 제도는 기업들이 안심하고 자원외교에 나설 수 있도록 한 장치다. 실패하면 융자받은 정부 돈을 갚지 않아도 되고 성공하면 더 많이 갚는 일종의 ‘자원외교 육성책’이다. 취지 자체는 좋았지만 최근 경남기업이 이 자금을 통해 비자금을 조성한 사실이 수사 결과 확인되면서 자원외교 수사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이명박(MB) 정부 시절 209개 사업에 대해 신청이 올라왔는데, 그중 205건이 통과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성공불융자는 ‘눈먼 돈’이란 비판을 받고 있다. 성공불융자에 대한 심사는 성공불융자심의위원회가 맡는다. MB 정부 때 설립된 해외자원개발협회로부터 심의를 위탁받았다. 심의위원회는 교수, 지식경제부 공무원, 변호사 등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다. 그렇다면 전문가들로 구성된 심의위원회는 왜 심의과정에서 부실 사업을 제대로 걸러내지 못했던 것일까. 시사저널은 MB 정부 시절 성공불융자심의위원회 심의위원으로 활동했던 A씨로부터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신분 노출을 꺼려 한 그는 자원개발 분야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그가 고백한 심의위원회의 모습은 ‘들러리’에 불과했다. 

ⓒ 일러스트 오상민
성공불융자를 받기 위해선 신청 기업도 사업비를 들여야 하기 때문에 무작정 ‘눈먼 돈’이라고만 할 수 없다는 주장도 있다.

그 말은 맞다. 예를 들어 총 100억원이 사업에 들어가면, 정부가 전액을 융자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중 70억원은 신청 기업 스스로 조달하고 나머지 30억원만 융자를 해주는 식이다. 사업이 성공하면 융자해준 돈만큼 정부는 지분을 갖게 된다. 그러나 이자가 매우 싼 데다 사업에 실패하면 갚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나마도 민간 기업들의 경우에는 성과가 괜찮은 편이다. 그런데 공기업이 신청하는 건들이 대체적으로 부실했다. (성공불융자) 제도 자체가 나쁘진 않다. 제대로 된 (심의)조사만 이뤄진다면 참 좋은 제도다.

제대로 된 조사가 이뤄지기 힘든 이유는 무엇인가.

일단 자원개발 관련 국가에서 석유·광물 등을 시추할 수 있는 권한을 판다. 그러면 사업권을 따낸 국내 기업이 투입되는 사업비 중 일부를 융자받겠다고 신청한다. 예컨대 1000억원 사업이면 정부 돈 300억원을 융자받을 수 있다. 그런데 심사 자체가 말 그대로 대충일 수밖에 없다. 우선 심사 기간이 너무 짧고, 사업과 관련한 1차 자료(기초 자료)조차 볼 수 없다.

자료를 볼 수 없다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달라.

일단 심사위원회가 열리기 한 달 전쯤에야 위원들에게 관련 자료가 전달된다. 사업에 뛰어들 광구가 얼마나 유망한지를 설명하는 자료인데, 말 그대로 요약보고서다. 자세한 내용이 담겨 있는 기초 자료를 못 보고 요약본으로만 판단을 하다 보니 제한적인 근거를 갖고 심사할 수밖에 없다. 이후 한 달 만에 부랴부랴 위원회를 열면 프레젠테이션을 보고 결정을 한다. 단 하루 동안 진행되는 위원회에서 3~4건을 한꺼번에 심의한다. 참여 위원은 10명 내외다. 발표가 끝나면 위원들이 점수를 매겨 위원장에게 넘긴다. 평가 점수 70점 이상을 준 위원이 과반을 넘어야 한다. 위원장이 의결 전 마지막으로 한 명, 한 명에게 찬반 의사를 묻기도 하는데 이 과정에서 반대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진행 방식에 다소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위원들이 소신 있게 반대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안 되는 것인가.

소신 있게 이야기하기 힘든 분위기다. 위원회에 지식경제부 과장급 혹은 주무관이 위원으로 함께 참석하는데, 논의 과정에서 만약 부정적 의견이 나오면 “이건 VIP(대통령) 자원외교 사업입니다”라고 한다. 그러면 논의하던 위원들도 그냥 웃으면서 “아, 그랬군요” 하면서 넘어간다.

그렇게 성공불융자가 지급된 ‘VIP 사업’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

하나하나 기억이 안 나지만 대부분 기사를 보면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심사 전 대통령이 외국을 방문하고 자원 관련 사업 이야기를 했는데, 그런 건이 심의위원회에 올라오면 100%다. VIP 자원외교 사업이라고 하면 그냥 무조건 찬성이다. 정권이 제도를 교묘히 잘 이용해 먹은 것이다.

심의위원회에서 이뤄지는 결정 하나로 엄청난 혈세가 투입되는데 양심적으로 힘들진 않았나.

일단 엄청난 돈이 빠져나가니 너무 아깝지 않은가. 빤히 안 될 줄 아는 사업에 돈을 그렇게 들이는데…. 난 당시 그런 결정을 할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 돈이면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대체 얼마만큼의 밥을 먹일 수 있을까’라고. 차라리 4대강 사업 같은 건 자전거도로라도 남는데, 자원외교는 돈이 외국으로 빠져나가거나 어디로 갔는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을 하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솔직히 나 역시 부끄럽고 송구스럽다. 지금 이런 말을 하면서도 이렇게 말하는 나는 과연 당시 얼마나 최선을 다했는지 자문하게 된다.

심의위원회에 직접 참여했던 사람으로서 지금의 자원외교 의혹에 대해 한마디 한다면.

MB 정부 시절 마치 절대가치처럼 이야기되던 ‘자주개발률’(국내로 수입되는 해외 자원 중 국내 기업이 직접 개발해 도입한 물량이 어느 정도인지를 나타내는 지표)이 문제였다. 예를 들어 우리가 면류 음식 세계 1위 소비국이라고 하는데, 그렇다고 외국의 밀밭을 다 사들여야 된다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 않은가. 애초에 자원을 안보적 개념으로 보는 것 자체가 문제였다. 지금 산유국들은 오히려 인구 고령화와 자동차 연비 향상 등 때문에 석유 소비가 줄어들고 있어 걱정이다. 그런 그들을 향해 오히려 우리가 석유 소비국으로서의 입지를 살려 얼마든지 당당하게 협상 테이블에 앉을 수 있는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자원을 안보 개념으로 생각해서 무조건 자주개발률을 끌어올려야겠다는 정책은 그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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