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양 비리’ 문건 여의도에 떠돈다
  • 조해수 기자 (chs900@sisapress.com)
  • 승인 2015.04.07 14:5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권마다 반복되는 포스코 ‘흑역사’…수사 정치권 확대될지 주목

2012년 3월16일. 포스코그룹은 서울 강남구 대치동 포스코타워에서 주주총회를 열고 정준양 회장 연임안을 통과시켰다. 이로써 정 회장은 2015년 3월까지 임기가 보장됐다. 당시는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이 ‘대세론’을 굳히며 차기 대권에 한 발짝 더 다가선 상황이었다. 자타가 공인하는 ‘MB(이명박)맨’이었던 정 회장으로선 미래의 ‘박근혜 정부’를 준비해야 될 처지에 놓였다. 이 때문이었을까. 정 회장 연임안과 고 박태준 명예회장의 유족에게 40억원의 특별공로금을 지급하는 안건이 함께 통과됐다. 박 명예회장은 박근혜 대통령과 두 동생 등 3남매의 어린 시절부터 든든한 후견인 역할을 맡았던 인물이다. 당초 특별공로금은 직원 장기 근무 명예퇴직금과 관련된 규정에 따라 20억원 정도로 책정됐으나, “세금을 제외한 실수령액이 10억원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당시 정 회장의 지적에 따라 40억원까지 늘어났다. 

최근 포스코에 불어닥친 ‘사정 칼바람’은 이명박 정권 퇴진 이후 어느 정도 예상됐던 것이다. 정준양 전 회장은 MB 정부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MB 정부 출범 첫해인 2008년 당시 아직 임기가 남아 있었음에도 이구택 포스코 회장은 스스로 사퇴했다. 그는 노무현 정부 시절 회장에 선임됐다. 2009년 1월 당시 포스코 차기 회장 선출을 앞두고 박태준 명예회장은 윤석만 포스코 사장을 밀었다. 이구택 회장 역시 윤 사장에 우호적이었다. 그러나 MB 정권이 정준양 포스코건설 사장을 지원하면서 전세는 간단히 뒤바뀌었다. 윤 사장은 그해 1월29일 포스코 이사후보추천위원회 회의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2012년 1월4일 열린 경제계 신년인사회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정준양 포스코 회장과 악수하고 있다. ⓒ 연합뉴스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이 내게 전화를 해서 ‘이명박 대통령의 뜻’이라면서 회장 후보를 포기하라고 했다. 또 박영준씨가 만나자고 하더니 같은 뜻을 밝혔다. 정부 쪽에서 정당한 절차 없이 정준양을 밀고 있고, 이구택 회장도 이런 압력에 굴복했다.” 천 회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과 대학 동기로 절친한 친구다. 박씨는 이 전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전 의원의 보좌관 출신으로 MB 정권에서 지식경제부 차관을 지내며 ‘왕차관’으로 불렸던 인물이다. 모두 이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것이다.

권력에 따른 포스코의 부침은 계속됐다. 2012년 12월 대선에서 박근혜 정권이 탄생하자 상황은 급변했다. 사정 칼날이 포스코를 정조준하고 나선 것이다. 2012년 말 공정거래위원회는 아연도 강판 가격 담합 혐의로 포스코를 검찰에 고발했고, 검찰은 창립 45주년을 앞둔 2013년 3월29일 포스코 계열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단행했다. 2013년 9월에는 국세청이 포스코P&S를 세무조사한 후 역외 탈세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기도 했다. 현재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는 포스코P&S가 실제 거래가 없는데도 세금계산서를 발행하는 수법으로 1300억원의 세금을 빼돌린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에는 또 다른 계열사 포스코엠텍이 국세청으로부터 400여 억원의 추징금을 부과받았다.

2011년 3월31일 포스코의 종합 에너지 전문 회사인 포스코파워 스택(Stack) 제조공장 준공식을 가졌다. 이날 열린 준공식에 참석한 정준양 포스코 회장(왼쪽부터 다섯 번째)과 박영준 지식경제부 차관(맨 오른쪽). ⓒ 연합뉴스
연임 초기부터 불거진 조기 사퇴설

2013년 3월29일. 광양 백운아트홀에서 열린 포스코 창립 45주년 기념식에서 당시 정준양 회장은 “박정희 대통령의 일념과 기획에 의해 포스코가 탄생했다”고 박정희 전 대통령을 찬양했다. 그러면서 “이 시대가 요구하고 있는 창조경제가 무에서 유를 창조한 포스코의 창업정신과 다르지 않다”면서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 정책에 적극적으로 협조할 뜻을 밝혔다. 동시에 MB 색채 지우기도 본격화했다. 정 회장은 MB 정부의 정책 기조였던 ‘녹색성장’에 발맞춰 ‘녹색성장추진사무국’을 2009년 자신의 직속 부서로 설립한 바 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 출범 후 환경에너지기획실로 통합되며 ‘녹색’이라는 글자는 포스코에서 자취를 감췄다.

이 같은 정준양 전 회장의 눈물겨운 노력도 바뀐 정권의 냉랭한 시선을 되돌리기엔 역부족이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대통령 공식 만찬이나 해외 순방 때 정 전 회장의 이름이 연이어 빠졌다. 연임 초기부터 불거진 조기 사퇴설은 2013년 9월 한 언론의 “청와대가 정 회장에게 조기 사퇴하는 것이 좋겠다는 통보를 했고, 정 회장이 이를 받아들여 사의를 표명했다”는 보도로 기정사실화되는 듯했다. 포스코의 부인으로 일단락됐지만, 당시 정·재계에서는 정준양 회장이 해를 넘기지 못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이 관측대로 2013년 9월 국세청이 포스코를 상대로 특별세무조사에 착수하자, 정 회장은 11월 갑작스레 사퇴 의사를 밝혔다. 임기가 1년 넘게 남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정준양 회장의 조기 사퇴만으로 마무리되지 않았다. 포스코건설 비자금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은 베트남 현지에서 조성된 20여 억원이 정동화 전 포스코건설 부회장에게 전달된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정 전 부회장은 정준양 전 회장을 포스코 수장 자리에 올린 일등공신으로 꼽히는, 정 전 회장의 최측근이다. 이 때문에 정 전 부회장 다음 차례는 정 전 회장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검찰 안팎의 중론이다.

여의도와 서초동에서는 오래전부터 ‘포스코 정준양 회장 비리’라는 문건이 나돌았다. 사실 여부는 차치하고라도 해당 문서에는 △내부 정보 이용 자사주 매매로 부당 이득 실현 △친동생에게 납품 특혜 부여 △처남 회사에 납품 특혜 부여 △포스코건설 사장 재직 시 감사 결과 은폐 지시 등 정 전 회장의 개인 비리가 빼곡히 기록돼 있다. 이번 비자금 사건이 아니라도 검찰의 사정 칼날이 결국 정 전 회장에게 초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으리라는 것이 검찰 안팎의 지배적인 시각이다. 최대 관심사는 정 전 회장을 넘어 정치권으로까지 확산될지 여부다.

정 전 회장의 뒤를 이은 권오준 포스코그룹 회장은 지난해부터 창립기념일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묘소를 참배하고 있다. 포스코 최고 경영진이 창립기념일에 공식적으로 박 전 대통령 묘소를 참배한 것은 권 회장이 유일하다. 포스코의 한 고위 관계자는 “포스코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부침이 심하다. 만약 다음 대선에서 정권이 교체되면 포스코 회장이 봉하마을(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찾아가야 할 판”이라고 토로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