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로템 15년 철옹성 깨지다
  • 조현주 기자 (cho@sisapress.com)
  • 승인 2015.04.07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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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하철 전동차 입찰에서 패배…1조원대 시장 지각변동 예고

국내 전동차 시장의 판도가 요동칠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국내 철도차량 제작 시장은 현대차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현대로템이 독점해왔다. 최근 중소기업 컨소시엄이 현대로템의 독점 구도를 깨고 서울지하철 2호선 전동차 수주에 성공하면서 치열한 경쟁을 예고하고 있다.

로윈과 다원시스 컨소시엄은 서울 지하철 1~4호선을 운영하는 서울메트로가 진행한 지하철 2호선 전동차 200량 구매 입찰의 최종 낙찰자로 지난 3월20일 선정됐다. 현대로템이라는 ‘거대 공룡’과의 수주전에서 이름도 생소한 로윈·다원시스 컨소시엄의 승리는 상징성이 크다. 1999년 철도차량 사업 통폐합으로 대우중공업·현대정공·한진중공업 등 3사의 철도 사업 부문이 통합돼 현대로템이 출범한 이후, 국내 철도차량 시장은 지난 15년간 현대로템의 독무대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이노근 새누리당 의원이 국정감사에서 공개한 ‘한국철도공사 전동차 구입 현황’에 따르면 현대로템은 지난 1999년부터 현재까지 코레일이 도입한 전동차 1398량 전량을 공급했고, 그 금액은 1조4443억원에 달했다. 이 가운데 현대로템이 타 업체와의 경쟁을 통해 계약을 딴 것은 단 2건, 152량에 불과했다.

ⓒ 일러스트 정찬동
이번 입찰은 지난해 5월9일 박원순 서울시장이 직접 발표한 ‘서울 지하철 운영 시스템 10대 개선 방안’ 중 하나로 시작된 사업이다. 서울시가 잦은 고장으로 시민 안정을 위협하는 노후 전동차의 교체 시기를 35년에서 25년 주기로 단축하면서 새롭게 입찰 공고를 띄우게 됐다. 서울시는 이번 지하철 2호선 200량 교체를 시작으로 앞으로 2022년까지 총 8775억원을 들여 서울 지하철의 노후 차량을 모두 교체할 계획이다.

이번 2호선 전동차 구매 입찰 결과가 특히 업계의 관심을 끌게 된 이유는 향후 1조원대에 달하는 전동차 시장에서 주도권을 쥘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국내 전동차 시장 점유율이 90%에 달하는 현대로템의 독점을 막기 위한 시도로 이번 입찰에서는 국제 경쟁 입찰 방식을 도입했다.

또 사업자를 선정하기 위한 평가 기준표에도 변화를 줬다. 기존에는 전동차 완제품을 제작해 납품한 실적이 있는 업체에만 입찰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줬지만 이번에는 유사 물품을 납품한 실적이 있는 업체나 객차·화차를 제작해 납품한 실적이 있는 업체에도 점수를 부여하는 등 참여 기회를 넓혔다.

업계 관계자는 “완제품 제작 실적이 있는 업체로는 현대로템이 독보적이기 때문에 지금까지는 사실상 현대로템 외에는 전동차 입찰에 참여할 수조차 없었고, 그렇다 보니 국내 철도 운영 기관들은 로템이 제시한 가격을 구매 단가로 결정해야 했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이번에는 다양한 업체가 참여할 수 있도록 문을 터줬다. 납품 차량 대수에 대해 차등 평가를 하는 항목도 없앴는데 서울메트로가 현대로템의 독주를 막기 위한 제동장치를 만들어둔 셈이다”고 밝혔다. 

이번 입찰에는 현대로템과 로윈·다원시스 컨소시엄, 우진산전이 참여했다. 애초 조달청은 구매 입찰 가격을 2530억원으로 예상했으나 로윈과 다원시스 컨소시엄이 2096억원의 최저 입찰 가격을 제시해 434억원에 달하는 예산 절감 효과를 거뒀다. 또 1량당 통상 17억~18억원에 달하던 전동차 가격이 이번에는 10억5000만원대로 내려갔다. 

로윈의 첫 전동차인 SR001. 2011년 서울도시철도공사에 납품됐다. ⓒ 로윈 제공
2000억대 전동차 계약 따낸 ‘다윗’

하지만 2000억원대 규모의 전동차 입찰 계약을 놓고 발주사인 서울메트로와 탈락한 현대로템 사이에 여전히 기싸움이 팽팽하다. 현대로템은 서울메트로가 완성차를 만들어보지 않은 영세업체를 최종 낙찰자로 선정했다며 지난 3월23일 서울중앙지법에 입찰 후속 절차 금지 가처분신청을 냈다. 현대로템 측은 로윈이 제출한 전동차 납품 실적이 허위라고 주장하며 낙찰자인 로윈과 발주처인 서울메트로에 공세를 펼치고 있다.

현대로템이 문제를 삼고 있는 점은 로윈의 지하철 7호선 납품 실적이다. 현대로템은 서울도시철도공사에서 2010년 5월 지하철 7호선 56량을 발주할 때 완성품이 아닌 5개 부품으로 분리 발주를 했기 때문에 로윈의 완성차 납품 실적은 제로라고 주장한다. 현대로템 측 관계자는 “로윈은 (7호선 납품 계약 당시) 완성품 계약이 아닌 부품 계약을 맺었고 56량을 전부 납품한 것도 아니다”며 “게다가 로윈은 완성차를 테스트할 수 있는 선로조차 구비하지 못했는데 어떻게 완성차를 납품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로윈 측 입장은 다르다. 로윈의 물품 납품 실적증명서에 따르면 로윈은 차체·대차·제동·인버터·컴퓨터 장치 등 5개 부품을 납품했고, 이를 조립해 서울도시철도공사에 공급한 것으로 돼 있다. 로윈·다원시스 컨소시엄 관계자는 “현대로템의 주장은 억지에 불과하다. 로윈의 실적은 서울메트로와 조달청 모두 인정해준 것이고 실적증명서를 발행해준 도시철도공사에서도 전혀 문제가 없는 사항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5개의 부품을 조립만 하면 완성차가 된다. 로윈은 첫 전동차인 SR001부터 SR007까지 56량을 모두 조립해 도시철도공사에 공급했고 현재까지 사고 한 번 없이 운행되고 있다”며 “처음에는 8대, 다음에는 48대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됐다. 당시 서울도시철도공사의 테스트 선로를 빌려 시범운행 절차까지 마쳤기 때문에 전혀 문제 될 게 없다”고 반박했다. 

테스트 선로 구비 문제에 대해서도 “국내에서 전동차 테스트 선로를 가지고 있는 곳은 현대로템이 유일하다. 하지만 이번 입찰에 제안서를 제출하면서 테스트 선로를 직접 설치하겠다는 계획을 세웠고 지금은 (테스트 선로 마련을 위한) 준비 단계에 있다”고 말했다.    

3월27일 서울 서초구 서울메트로 본사 앞에서 철도 부품사 임직원들이 2호선 전동차 입찰 과정의 부당성을 제기하며 시위하고 있다. ⓒ 한국철도차량공업협회 제공
철도차량공업협회, 제조사 재선정 요구 집회 

양측의 공방이 오가는 와중에 국내 철도 부품사로 구성된 한국철도차량공업협회는 지난 3월27일 서울 서초구 방배동 서울메트로 본사 앞에서 서울시 지하철 2호선 입찰 과정의 부당성을 제기하는 항의 집회를 열었다. 이날 집회에 참석한 100여 명의 철도 부품사 임직원들은 낙찰된 로윈·다원시스 컨소시엄에 대한 재검증을 요구했다.

이들은 “로윈·다원시스 컨소시엄이 입찰 가격을 맞추기 위해 주요 부품들을 중국 업체들로부터 공급받아 사용할 것”이라며 “국내 철도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국제 경쟁 입찰을 도입하면서도 중국 업체의 입찰 참여를 제한했는데 앞으로 중국산 부품을 사용하게 되면 국내 업체들이 고사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협회 측은 서울메트로가 입찰 참여자를 검증하는 과정에서 공장을 실사하는 규정을 삭제해 제대로 된 검증을 거치지 않았다는 점 또한 문제로 보고 있다.

이에 대해 다원시스 관계자는 “현대로템의 입김이 작용했을 것이다. 그동안 한국철도차량공업협회의 회장은 현대로템 대표가 당연직처럼 맡아왔다. 게다가 현대로템 계열 부품사들이 90% 가까이 (한국철도차량공업협회에) 회원사로 등록돼 있다”고 밝혔다. 그는 “중국산 부품을 쓸 것이라는 것 또한 어불성설”이라며 “현재 부품 공급업체 명단에 오른 회사는 모두 국내 업체”라고 말했다.

로윈·다원시스 컨소시엄 측은 “로윈이 지하철 7호선을 납품했을 때도 현대로템 측의 방해 공작이 심각했다”며 “눈치를 보는 업체가 많아 부품 등을 공급받는 일이 지연돼 로윈은 100억원 가까이 손실을 봐야 했다”고 밝혔다. 이어 “전동차 업황이 좋지 않아 중소기업이 공장을 계속 풀가동하는 게 쉽지 않다. 로윈은 그동안 주로 조립을 담당해왔기 때문에 수주를 하면 공장을 가동하는 체제로 운영돼왔다”고 반박했다. 

전동차 시장에서 현대로템의 아성을 깨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게 그동안 업계의 중론이었다. 로윈·다원시스가 2호선 전동차 납품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다면 현대로템은 적지 않은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로템이라는 골리앗과의 경쟁에서 승리한 로윈·다원시스가 업계에 어떤 지각변동을 일으킬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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