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듣고 싶은 말
  • 김재태 | 편집위원 ()
  • 승인 2015.04.09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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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정치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아마도 붕당(朋黨)일 것입니다. 동·서·남·북인, 노론, 소론 등 이해관계에 따라 여러 정치 집단이 생겨났다 사라졌습니다. 자신들의 뜻에 맞지 않는 집단과는 서로 헐뜯고 반목하면서 숱한 사화(士禍)를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그런대로 각 붕당을 함께 아우르는 탕평 정치를 편 정조 시대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정조실록> 1788년 7월27일자에는 정조가 이렇게 말한 대목이 나옵니다. ‘대체로 근래 고치기 어려운 폐습이 두 가지 있으니, 그것은 저 사람은 이 사람을 역적이라 하고, 이 사람은 저 사람을 역적이라 하는 폐습인데, 이는 반드시 한 번 징계한 뒤에야 비로소 개혁할 수 있을 것이다.”

정조가 말한 이 ‘폐습’은 오늘날 정치에서도 형태만 바뀌었을 뿐 그대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서로 생각이 다르면 가차 없이 몰아붙여 끝장을 보려 드는 행태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거친 정쟁은 특히 선거가 있을 때 더욱 추한 몰골을 드러냅니다. 서로의 정책을 두고 잘잘못을 지적하는 것으로 그친다면 말 그대로 선의의 경쟁이 될 수 있을 텐데, 이런저런 낙인을 찍고 비방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4·29 재·보선을 앞두고 있는 요즘도 상황은 마찬가지입니다. 선거구 4곳 중 3곳이 통합진보당 해산에 따른 보궐 선거의 성격을 띤 탓인지 벌써부터 이념 논쟁에 불을 붙이려는 시도들이 곳곳에서 드러납니다. 새누리당이 “통진당 의원들이 빠져나간 자리에 같은 세력을 다시 들여놓아서는 안 된다”는 논리로 ‘종북’ 프레임을 앞세워 공격하면 새정치민주연합이 “안보 무능을 드러낸 새누리당이 종북몰이로 선거에서 이득을 보려는 궁리만 한다”며 역공을 취하는 식입니다. 새누리당은 이미 당 내부적으로 이번 보궐선거의 성격을 ‘종북 세력 심판’으로 규정해놓고 ‘종북 두들기기’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선거를 통해 국민의 심판과 선택을 받는 정당들이 선거에 이기기 위해 나름의 승부수를 던지며 전략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두고 잘못됐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정당에는 민심에 어필할 수 있는 정치적 목적성이 반드시 있어야 마땅합니다. 그래야 정당으로서 존재 증명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거기에도 지켜야 할 선이 분명히 있습니다. 국민의 생각과는 동떨어진 주장으로 괜한 논란을 일으키는 것은 선거를 피곤한 소모전으로 만들 뿐입니다. 특히 국회의원 네 명을 뽑는 선거에서까지 그동안 수없이 반복돼온 ‘종북’ 타령을 또다시 들어야 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과합니다. 보수와 진보 성향이 공존하는 국민들을 앞에 두고 정책 대결이 아닌 이념 대결로 선거판을 몰아간다면 그 자체로 분열을 조장하는 행위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지역구민을 위해, 나라를 위해 일할 사람을 뽑는 선거에서 본질을 어지럽히며 이념 대결에 치중해 국론을 분열시킨다면 그 선거는 오히려 안 하느니만 못한 것입니다. 괜스레 국민들 사이만 갈라놓는 선거가 국민들에게 왜 필요하겠습니까. 표 하나 더 얻겠다고 애먼 국민을 이간질하면 안 됩니다. 국민을 위한 말만 내놓기에도 시간은 터무니없이 모자랍니다. 이제라도 선거에 임하는 정당 지도부나 입후보자들이 절실한 마음으로 지역구민 혹은 국민이 원하는 말을 찾아 머리를 싸매기를 간절히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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