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가 돈 대고 조폭이 불법 스포츠 도박 운영
  • 박혁진 기자 (phj@sisapress.com)
  • 승인 2015.04.09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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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사립대 강사와 전직 교수 연루…가르치던 대학생 도박 끌어들여

현직 대학 시간강사와 전직 대학교수가 돈을 투자하고 폭력조직이 운영하는 불법 스포츠 도박 사이트가 경찰 수사에서 적발됐다. 특히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교수들이 자신의 강의를 듣는 학생들에게 이 사이트에 접속해 도박을 하게끔 권유한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더하고 있다. 그동안 불법 스포츠 도박 사건은 주로 운영자가 적발되거나  현직 선수들이 도박과 관련한 승부 조작에 연루됐던 것이 대부분이었다. 대학교수가 직접 사이트에 돈을 투자하고 학생들까지 도박에 끌어들인 사건이 적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수원 남부경찰서는 불법 스포츠 도박 사이트를 운영한 조직폭력배 A씨와 유명 사립대학 현직 시간강사 B씨를 국민체육진흥법 위반으로 지난 3월25일 구속하고, 이 사이트 운영 자금을 댄 전직 유명 사립대학 교수 C씨에 대해 수사를 진행 중이다. 이들은 체육대학에 재직하면서 체대 학생들을 불법 스포츠 도박에 끌어들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두 사람은 법원에 구속적부심을 신청했으나 기각됐다.

본 이미지는 해당 기사와 아무런 연관이 없음. ⓒ 시사저널 최준필
경찰 관계자에 따르면 A씨와 B씨는 최근 서울 잠실에 있는 한 오피스텔에 서버를 마련하고 사이트를 운영하면서 수억 원대의 불법 스포츠 도박을 벌여왔다. 이들은 회원들이 축구 등 스포츠 경기에 최대 300만원가량을 베팅하면 경기 결과와 승률에 따라 배당금을 주고 수수료 등을 챙기는 수법을 동원한 것으로 조사됐다. 불법 스포츠 도박에 활용된 종목은 러시아 아이스하키, 이집트 축구, 스타크래프트 등 다양했으며, 본인 인증 시스템을 거치지 않고 지인 추천을 통해 쉽게 가입할 수 있도록 했다. 국내의 스포츠 베팅은 국민체육진흥법에 따라 2001년부터 시행된 스포츠토토만 합법이며 이를 모방한 유사 게임은 모두 불법이다.

A씨는 이 사이트뿐만 아니라 해외에도 서버를 두고 ‘스보뱃’ ‘피나클’ 같은 외국 도박 사이트에 베팅을 대행해주는 일도 함께 해왔다고 한다. 또 최근에 새로 준비해왔던 사이트도 경찰 수사를 통해 적발됐다.

대학에도 독버섯처럼 퍼져

더 큰 문제는 이 사이트에 가입한 회원 중 상당수가 사립대학교 체육대학에 다니고 있는 학생들이라는 점이다. B씨는 수원에 있는 한 사립대학 체대에서 박사 과정을 밟으면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시간강사다. 그는 자신이 사이트를 운영하면서 학생들에게도 사이트 가입을 권유해왔던 것으로 경찰 수사 결과 드러났다.  경찰이 수사를 계속하고 있는 C씨는 지난해까지 유명 사립대학 체육대학 교수로 재직했으나 다른 사건에 휘말려 해임됐다. 그는 사이트 운영 자금으로 4억원을 댔다는 혐의로 경찰 수사선상에 올랐으나, A씨에게 돈을 빌려준 것뿐이라고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C씨는 이번 사건 외에도 지난해 서울지방경찰청 관할 경찰서에서 수사했던 불법 스포츠 도박과 관련해서도 수사선상에 오른 바 있으나, 당시에도 실제 운영자만 구속됐을 뿐 C씨는 비켜갔다.

불법 스포츠 도박이 특정한 소수뿐만 아니라 대학 캠퍼스 내에도 독버섯처럼 퍼지고 있다는 사실이 이번 수사를 통해 드러나면서 좀 더 강력한 정부 차원의 대책이 요구되고 있다. 불법 스포츠 도박은 강력한 중독성으로 인해 최근 인터넷을 통해 급속도로 퍼져나가고 있다. 심각한 중독성과 가정 파탄 등 폐해가 커 2004~06년 당시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성인 오락 게임 ‘바다이야기’를 연상케 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지난 1월에도 수백억 원대 불법 스포츠 도박 사이트를 운영해온 조직이 검찰에 적발된 바 있다.

불법 스포츠 도박은 단순 베팅만 해도 처벌을 받게 되는 데다, 고액의 당첨자가 나왔을 경우 자취를 감추는 ‘먹튀’ 위험도 크다. 하지만 강한 중독성 때문에 쉽사리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합법적 스포츠토토의 경우 베팅 금액이 10만원으로 제한되어 있지만, 불법 사이트의 경우 1회에 100만원씩 무제한 베팅이 가능하다. 게다가 하루 24시간 베팅을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아프리카 3부리그 축구 경기까지, 지구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스포츠 종목을 대상으로 삼고 있다. 청소년들도 통장만 있으면 이용이 가능해 많은 사람이 쉽사리 유혹에 빠져들게 된다. 

현재 불법 스포츠 도박 사이트로만 한정했을 때, 약 3000개가 존재하는 것으로 사행산업감독위원회(사감위)는 추정하고 있다. 사감위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합법적인 스포츠토토 시장 규모는 3조원대다. 반면 불법 스포츠 도박 시장 규모는 이보다 훨씬 큰 7조6000억원대로 추정된다.

대부분 서버 외국에 있어 단속 쉽지 않아

불법 도박 사이트는 대부분 중국이나 동남아시아 등에 서버를 두고 있으며, 운영자가 문자메시지나 이메일을 이용해 단골 고객에게만 사이트 주소를 알려주고 있다. 또 잠깐 영업한 다음 사이트를 폐쇄하고 자취를 감추는 등 지능화하고 있어 처벌은 물론 단속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경찰은 현실적인 한계 때문에 규모가 작은 사이트는 아예 방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불법 스포츠 도박 사이트는 불법성과 익명성이 특징으로 발행부터 환급까지 운영의 모든 단계에서 불법이 자행된다. 경찰의 추적을 피하기 위한 ‘대포통장’과 ‘대포폰’ 등이 활용된다. 외환관리 위반과 미성년자 거래, 세금 탈루 등 불법 행위의 종합세트가 바로 불법 스포츠 도박인 셈이다.

경찰 관계자는 “2012년 개정된 국민체육진흥법에 따르면 불법 스포츠 도박은 운영자뿐 아니라 이용한 경우에도 5년 이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며 “하지만 사회에 미치는 해악을 감안할 때 처벌이 약하다는 지적이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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