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가 3·4세 후계 구도 선명해지다
  • 김진령 기자 (jy@sisapress.com)
  • 승인 2015.04.09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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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LG·한화·한진 그룹 등 올 주총에서 승계 가시화

재벌그룹의 정기 주주총회가 끝나면서 3·4세 승계를 눈앞에 둔 재벌그룹들의 승계 구도가 더욱 선명해지고 있다.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 LG의 4세 승계자 구광모 상무, 조원태 대한항공 부사장, 효성그룹의 조현준 사장과 조현상 부사장,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장남 김동관 한화큐셀 상무, 범(汎)삼성가에서 4세 그룹 중 처음으로 임원 타이틀을 단 조연주 한솔케미칼 기획실장 등 재벌가 3·4세들은 이번 주총을 전후로 후계 구도를 더욱 확실히 굳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은 이번 주총을 계기로 명실상부하게 현대차그룹의 3대 축인 자동차·제철·건설 사업군에서 경영인 정의선의 존재감을 확인시켰다. 기아차와 현대차를 거치면서 경영인으로 검증을 받고 있는 정 부회장은 최근 경제개혁연대가 실시한 ‘재벌 총수 일가의 경영권 세습과 전문가 인식도 분석’에서 11명의 재벌 3세 그룹 중 경영 능력에 대한 평가 3위에 오르는 등 괜찮은 평을 듣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왼쪽)과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 ⓒ 시사저널 임준선
이번 주총을 계기로 현대제철과 현대하이스코의 합병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는 것도 그에게는 우호적인 상황 변화다. 정 부회장은 현대제철 등기임원으로 품질 부문을 총괄하고 있다. 지난해 현대제철의 매출액은 16조원, 현대하이스코는 1조4000억원대다. 업계에서는 두 회사가 합병할 경우 시너지 효과가 커져 연 매출액 20조원대를 쉽게 넘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럴 경우 경쟁 업체인 포스코(2014년 매출액 29조원) 추격도 가시권에 들어오게 된다. 포스코는 2011년 39조원에서 2014년 29조원대로 매출이 추락하고 현대제철은 2011년 10조원대에서 2014년 16조원대로 불어났다. 이런 속도라면 애초에 불가능해 보였던 현대제철과 포스코의 근접전 또는 역전극이 3~4년 내에 가시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 부회장의 승계에서 유일하게 약점으로 지적되던 것이 현대차그룹 지배구조의 정점 격인 현대모비스 지분이 없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그는 현대글로비스 지분이나 현대엠코·현대엔지니어링 합병에 따른 현대엔지니어링 지분 확보 등으로 증여세 또는 지분 매입에 필요한 충분한 실탄을 마련했다는 게 중론이다. 정 부회장은 제철 부문에서 매출 격차를 없애거나 역전시키면 대관식에 쓸 왕관을 얻는 격이다.

LG그룹의 4세 승계자 구광모 상무도 주총 시즌을 전후로 더욱 입지가 확고해졌다. 구 상무는 지난해 말 임원(상무)이 됐다. 아울러 (주)LG 지분 190만주를 생부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으로부터 증여받아 양부인 구본무 회장과 작은아버지인 구본준 LG전자 부회장에 이은 3대 주주(5.83%)가 됐다. 구 상무는 올 초 LG그룹 지주회사 체제 바깥에 있던 범한판토스(LG 창업주 구인회 회장의 동생 구정회씨 집안 소유)의 지분 인수에도 적극 참여해 범LG가의 중심 인물임을 각인시켰다.

ⓒ 연합뉴스
구광모 상무 입지 더욱 확고해져

총수 일가의 스캔들로 곤욕을 치렀던 한진그룹과 효성그룹은 이번 주총을 오히려 그룹 후계 구도가 흔들리지 않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하는 계기로 활용했다. 조원태 대한항공 부사장은 한진그룹의 지주회사인 한진칼의 대표이사 자격으로 올해 정기 주총에서 처음으로 의장 역할을 수행해 한진의 후계자임을 확실히 했다. 조양호 한진 회장은 1남 2녀의 자녀들에게 주력사 지분을 거의 똑같이 나눠주고 직급도 비슷하게 주면서 3남매의 경영 능력을 시험했다. 하지만 조현아 전 부사장이 땅콩 회항 사건으로 이사회 멤버에서 물러나면서 한진그룹의 3세 재산 분할 또는 경영권 승계 작업은 조원태 부사장 위주로 급속히 재편될 가능성이 커졌다. 조원태 부사장은 이번 대한항공 정기 주총에서 사내이사로 재선임됐다. 재계에서는 조 부사장이 한진그룹이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저가 항공 진에어(한진칼의 100% 자회사)의 성장에 어떤 식으로 관여할지가 경영인 조원태의 능력을 평가받는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3세 승계 준비 중에 오너 리스크에 노출됐던 효성그룹도 정기 주총을 3세 경영인의 입지를 더욱 굳히는 계기로 삼았다. 효성의 조석래 회장과 이상운 부회장은 분식회계 혐의와 관련해 지난해 증권선물위원회로부터 해임권고 조치를 받았지만 집행정지 가처분을 받아내 이번 주총에서 해임안이 안건에 오르지는 않았다. 오히려 조석래 회장과 장남 조현준 사장이 등기이사로 재선임되고 3남 조현상 부사장이 신규 이사로 선임됐다. ‘형제의 난’을 치렀던 3형제 중 그룹을 떠난 조현문 전 부사장만 빼고 3부자의 결속이 더욱 강해진 셈이다. 조현준 사장은 효성의 전략본부장으로 효성그룹의 중·장기 전략을 책임지며 IT 사업 쪽을 이끌고 있다. 조현상 사장은 산업자재사업그룹장으로 효성의 주력 분야 중 하나인 탄소섬유 사업을 관장하고 있다. 조현문 전 부사장이 맡았던 중공업 사업 그룹은 조현준 사장이 맡게 될 가능성이 크다.

김동관 상무 태양광 사업 진두지휘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장남 김동관 한화솔라원 영업실장은 지난 1월1일자로 상무로 승진했다. 2010년 1월 한화에 입사한 후 5년 만이다. 김 회장은 인수·합병을 통해 한화가 새롭게 진출한 태양광 분야에 김 상무를 전진 배치했다. 김 상무는 지난해 솔라원 본사가 있는 상하이에 머무르며 영업 업무를 지휘했다고 한다. 한화는 지난해 12월 초 한화큐셀과 한화솔라원을 합병해 기술과 생산 규모 면에서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확보했다. 5년 전만 해도 태양광 사업은 블루오션이었지만 이후 참여 업체들이 난립하면서 레드오션으로 전락했다. 하지만 한화는 인수·합병으로 덩치를 키우고 적자에도 투자를 멈추지 않아 지난해부터 실적이 호전되기 시작했다.

김동관 실장의 상무 승진 이유를 설명하는 한화의 공식적인 입장도 이에 근거하고 있다. “한화큐셀 전략 마케팅 실장으로 부임해 1년 만에 적자 기업을 흑자로 만들었고 한화솔라원과 한화큐셀의 합병 작업을 주도해 태양광 분야에서 글로벌 1위 기업으로 도약하는 데 공을 세웠다”는 것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 박삼구 회장은 외아들 박세창 금호타이어 부사장을 지난 2월 처음으로 계열사 대표이사로 전진 배치하며 승계 작업에 속도를 냈다. 아시아나항공에 항공 예약, 발권 시스템 등을 제공하는 아시아나애바카스의 대표이사로 박 부사장을 임명해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양대 주력인 항공과 타이어 부문에서 모두 박 부사장의 역할을 키운 것이다. 2002년 아시아나항공 자금팀에 입사한 박 부사장은 2010년 금호타이어로 옮긴 후 2012년 1월 부사장으로 승진해 기획관리총괄 업무를 맡고 있다. 박삼구 회장은 4월1일 박 부사장을 금호타이어 대표이사로 임명하며 후계 작업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었지만 채권단의 반대로 하루 만에 철회하는 해프닝이 빚어졌다.

지난해 12월 워크아웃을 졸업한 금호타이어는 채권단과 맺은 특별약정에 따라 대표이사를 선임할 때는 9개 채권 기관으로 구성된 주주협의회의 사전 심의를 받아야 하는데 이 절차를 거치지 않고 이사회에서 임의로 결정했다가 채권단의 항의를 받고 박 부사장의 대표이사 선임이 없던 일로 된 것이다. 박삼구 회장이 승계를 자신의 스케줄대로 하기 위해선 일단 채권단의 간섭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경영 정상화를 먼저 이뤄야 한다는 게 확인된 셈이다.

범삼성가에서는 이번 주총에 첫 4세 임원이 탄생해 눈길을 끌었다.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장녀 이인희 고문이 이끄는 한솔그룹에서 4세인 조연주 한솔케미칼 기획실장이 사내이사로 선임된 것이다. 조 실장은 이인희 고문의 장남 조동혁 한솔 명예회장의 1남 2녀 중 장녀다.

조 실장의 이사 승진이 눈길을 끄는 것은 한솔그룹의 지배구조와 관련이 있다. 현재 한솔그룹 경영은 이 고문의 셋째아들인 조동길 회장이 맡고 있다. 장남인 조동혁 명예회장은 한솔케미칼의 최대주주(14.3%)이자 등기임원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그는 미디어와의 접촉 등 한솔을 대변하는 것으로 오해받을 수 있는 활동을 자제하고 있다. 게다가 한솔케미칼은 한솔그룹의 지주사 체제에도 편입되지 않아 사실상 조동혁 명예회장의 지배 아래 놓여 있다. 때문에 이번 조 실장의 이사 승진으로 조동혁 가문의 계열 분리 작업이 시작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삼성가의 가장 큰 관심사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이번 주총에선 큰 변화가 없었다. 이재용 부회장이 대주주로 있는 삼성SDI와 제일모직(옛 삼성에버랜드)이 지난해 상장됐다. 이에 따라 경영권 승계와 관련된 모든 준비를 끝냈고 재산 상속으로 인한 세금 문제를 해결할 실탄을 충분히 마련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재벌닷컴 자료에 따르면 3월 중순 기준으로 국내 1위 주식 부자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으로 12조2200억원대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고, 이재용 부회장은 8조4500억원대의 주식을 보유해 3위에 올랐다. 이 부회장은 이건희 회장이 쓰러진 후 사실상 그룹 경영을 지휘하고 있다. 하지만 이 회장의 와병 이후 갤럭시S5의 실적 저하가 겹치면서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이 줄어드는 등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시판을 앞둔 갤럭시S6가 삼성전자 실적을 반전시켜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 능력을 재평가하는 계기가 될지 주목된다. 


신종균 삼성전자 IM부문 대표이사 사장(왼쪽)과 윤부근 삼성전자 소비자가전부문 대표이사 사장 ⓒ EPA 연합·AP 연합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5억원 이상 연봉을 받는 상장사 등기 임원의 연봉이 일제히 공개됐다. 오너가 아닌 전문경영인(CEO) 중엔 신종균 삼성전자 IM(정보기술·모바일)부문 대표이사 사장이 ‘연봉왕’에 올랐다. 신 사장은 지난해 145억7200만원의 연봉을 받았다. 급여 17억2800만원과 상여 37억3200만원에 기타 근로소득 91억1300만원이 포함된 금액이다. 전문경영인의 보수가 100억원을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신 사장의 연봉은 2013년 62억1000만원에서 134.6%나 급증했다. 2013년 스마트폰 세계 시장 1위에 오른 공을 인정받아 일회성 특별상여를 받은 영향이 컸다.

전문경영인 출신 고액 연봉자 상위 그룹에는 삼성전자 출신이 대거 포진해 있다. 삼성전자 DS(부품)부문장인 권오현 대표이사 부회장은 93억8800만원을 받아 2위를 차지했고, 삼성전자 CE(소비자가전)부문장인 윤부근 대표이사 사장은 54억9000만원으로 3위에 올랐다. 이상훈 삼성전자 최고재무책임자(CFO)는 38억6400만원으로 4위에 이름을 올렸다. 5위는 박승하 전 현대제철 부회장으로 총 28억원의 연봉을 받았다.

4월1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의 분석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시가총액 상위 30대 기업 가운데 전문경영인의 최고 연봉과 일반 직원의 평균 연봉 격차가 가장 큰 곳으로 꼽히기도 했다. 신 사장의 연봉은 삼성전자 일반 직원 평균 연봉인 1억200만원의 142.8배에 달한다. 삼성전자 직원의 평균 연봉은 2013년과 동일한 수준이었다. 30대 기업 소속 전문경영인의 최고 연봉과 직원 1인당 평균 연봉 격차는 평균 35.9배였다

지난해 100억원 이상의 연봉을 받은 인물은 2명이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지난해 3개 회사로부터 총 215억7000만원(현대모비스 42억9000만원, 현대제철 115억6000만원, 현대차 57억2000만원)을 보수로 지급받아 ‘오너 경영인 연봉왕’에 등극했다. 정 회장의 보수 가운데 94억원은 현대제철 등기이사에서 물러나면서 받은 퇴직금이다. 이 퇴직금을 제외하고 정 회장이 받은 순수한 의미의 연봉은 121억원대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부회장은 18억6000만원을 받았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이재용 부회장 부자가 연봉왕 리스트에서 빠진 것은 등기임원이 아니기 때문이다. 삼성 오너 경영인 가운데 이부진 신라호텔 사장이 유일한 등기이사인데, 이 사장은 지난해 26억1500만원의 보수를 받았다. 

각 기업이 경영진의 연봉을 공개하면서 CEO의 고액 연봉이 직원들의 사기를 떨어뜨린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심상정 정의당 원내대표는 4월2일 국회에서 열린 당 상무위원회에서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피터 드러커는 CEO와 직원 연봉 차가 20배를 넘기면 직원 사기가 떨어지고 악영향이 발생한다고 진단했다”며 “전일 근무하고도 200만원을 채 못 받는 인구가 900만명이나 되는 현실이, 매년 로또 당첨금 이상을 받아가는 고액 CEO들의 연봉과 무관한지 묻고 싶다”고 지적했다.  조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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