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세대 왕자 250명 ‘왕좌의 게임’
  • 김회권 기자 (khg@sisapress.com)
  • 승인 2015.04.14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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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의 왕위 계승 다툼…전통적으로 형제 상속이 원칙

1953년 사우디아라비아를 건설한 압둘 아지즈 초대 국왕은 36명의 왕자를 뒀다. 일부다처제라 가능한 ‘36’이라는 숫자는 이후 사우디라는 국가를 운영하는 데 중요한 열쇳말이 됐다. 36명의 왕자들 중 역대 궁전 속 왕좌를 차지한 사람은 6명이다. 지난 1월 압둘라 전 국왕이 사망하면서 살만 빈 압둘 아지즈가 왕자들 중 6번째로 왕위를 물려받았다. 생존한 아들 중 가장 막내인 35남 무크린 빈 압둘 아지즈는 왕세제가 돼 왕위 계승 서열 1위에 올랐다.

사우디에서는 형이 동생에게 왕위를 물려주는 일이 반세기 이상 계속되고 있다. 왕위를 자식에게 물려주는 역사적 상식은 유독 사우디에서만은 통하지 않는다. 건국 당시만 해도 장자 상속이 원칙이었지만 1960~70년대 왕위를 두고 피를 흘리는 사태가 계속되면서 형제 상속으로 바꾼 탓이다. 이번에도 91세인 압둘라 전 국왕이 타계한 후 뒤를 이은 살만 국왕은 79세에 왕관을 썼다. 차기 왕위 계승자인 무크린 왕세제 역시 일흔 살의 고령이다.

지팡이를 짚은 채 부들거리는 다리로, 또는 인공 고관절 수술을 받은 채 휠체어를 타고 왕좌로 향하는 사람이 가득한 사우디 왕궁이다. 모두가 세대교체를 이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쉽게 손대지 못했다. 지지부진해왔다. 사우디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전문가들은 “3세대 중 누가 먼저 왕이 돼야 하는지에 대해 왕실의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250명이 넘는 3세대 왕자는 모두들 자기 자신에 대해 정당한 평가가 내려지기를 원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왕이 될 한 명을 뽑는다면 엄청난 풍파를 각오해야 했다.

이집트·UAE와의 관계 험악해져

그런 점에서 살만 국왕처럼 재빠르게 움직인 왕은 없다. 1월23일 즉위하자마자 자신의 통치에서 가장 큰 일들을 한꺼번에 처리해버렸다. 일단 자신의 다음 왕으로 동생인 무크린을 지명했다. 그리고 그동안 사우디 왕실의 케케묵은 고민인 3세대 왕위 승계의 시작을 자신의 손으로 했고, 전 국왕의 인물들을 축출해버렸다. 3세대 첫 주자는 55세의 모하메드 빈 나예프 왕자. 그는 왕위 계승 서열 2위인 부왕세자로 임명되면서 초대 국왕의 손자에 해당하는 3세대 250여 명 중 선두주자가 됐다. 그러면서 압둘라 전 국왕의 아들 2명은 리야드 주지사와 메카 주지사에서 해임되는 아픔을 겪었다. 압둘라 전 국왕의 아들들은 3세대 중 그동안 왕위 승계 가능성이 가장 컸던 인물들이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수다이리 세븐’의 주도권 강화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수다이리 세븐’은 압둘 아지즈 초대 국왕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았다고 하는 하사 알 수다이리 왕비가 낳은 왕자 7명을 뜻한다. 1982년부터 2005년까지 재위한 장남 파드 전 국왕에 이어 둘째인 술탄, 넷째인 나이프가 왕세제의 자리까지 올랐다가 사망했다. 살만 국왕도 이 중 하나로 수다이리 세븐 중 무려 4명이 왕 또는 왕세제가 됐다. 신임 살만 국왕의 친형의 아들인 모하메드 부왕세자도 이쪽 계파에 속한다. 따라서 이번 정리를 두고 수다이리 세력이 압둘라 전 국왕의 인맥을 제거하고 왕실의 주도권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이라는 견해도 나온다.

살만 국왕의 방향을 두고 우려의 목소리도 제기된다. 특히 주변국은 유심히 지켜보는 중이다. “IS와 예멘 문제에서 협력 관계에 있던 이집트와 아랍에미리트(UAE)와의 관계를 험악하게 만들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이집트와 UAE는 압둘라 전 국왕과 매우 긴밀한 관계에 있던 나라다. 함께 급진 이슬람 세력들이나 원리주의 무장 조직을 강하게 견제해온 사이다. 그런 신뢰 관계는 외교적으로도 표출됐는데 이집트에서 2013년 여름, 당시 국방장관이던 압델 파타 엘시시 현 대통령이 쿠데타를 일으켜 무슬림형제단이 주도했던 무르시 전 정권을 축출하자 사우디와 UAE가 재빨리 엘시시 지지를 표명하고 재정 지원에 나서 뒷수습을 돕기도 했다.

하지만 압둘라 전 국왕의 왕자들을 해임하고 대신 내세운 모하메드 부왕세자는 UAE의 셰이크 모하메드 빈 자이드 알 나흐얀 아부다비 왕세자와 매우 불편한 사이로 알려지고 있다. 이집트 역시 살만 국왕의 인사에 불만을 품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는데, 그동안 이집트와의 통로 역할을 맡아왔던 전 국왕의 인물들이 모두 배제됐기 때문이다.

단숨에 3세대 선두 주자로 떠오른 모하메드 왕자는 내무장관을 겸임하고 있는데, 이슬람 과격파들에 대한 테러 대책을 지휘하며 실적을 쌓아왔다. 이런 경력 탓에 알카에다는 2009년 그에 대한 암살을 모의했다. 속옷 아래 폭탄을 숨겨 자폭 테러를 감행했지만 부상만 입은 채 살아남으며 주목을 받았다. 치안 협력을 통해 미국과의 관계도 돈독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초대 국왕의 24번째 아들인 나예프 빈 압둘 아지즈 왕세자의 아들로 내무부 차관을 지내왔고 아버지의 뒤를 이어 내무장관을 맡았다.

“예멘 공습 중심에 의욕 넘치는 왕자 있다”

차기 왕위 계승자가 반드시 왕이 되는 것은 아니다. 첫 3세대 국왕으로 다른 이가 오를 수도 있다. 그렇다 보니 3세대 왕위 다툼이 사우디 안팎으로 불씨가 될 가능성은 줄곧 지적돼왔다. 모하메드 빈 나예프 왕세자와 더불어 떠오른 살만 국왕의 아들 모하메드 빈 살만 국방장관이 그런 인물이다. 30세의 나이로 중책을 맡은 그는 최근 예멘 사태의 중심에 서 있다.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는 예멘 후티 반군에 대해 사우디가 전격적으로 군사작전에 나선 요인 중 하나가 3세대 왕자들 간의 경쟁 때문이라고 지적하면서 그 중심 인물로 살만 국방장관을 꼽았다. 런던정경대(LSE) 중동연구센터 교환교수이자 사우디 출신인 마다위 알 라시드 교수는 “살만 장관이 자신보다 야심이 넘치고 경력이 축적된 사촌들 사이에서 주목받기 위해서는 시아파 예멘과 이란을 격퇴했다는 명성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왕자의 업적을 위해 예멘 군사작전의 성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2만명에 달하는 왕실 이해 관계자 중 2000여 명이 권력과 부를 독점하는 나라. 내무부·외무부·국방부 등 주요 장관직과 리야드·메카 등 주요 지역의 지사 자리 역시 왕가의 몫인 곳. 치안을 담당하는 군과 경찰은 모두 왕족이 최고위 책임자인 국가. 이런 사우디는 수니파 국가의 큰형님이고 아라비아반도의 전통적 강자다. 예멘에서 보듯 사우디 왕가에서 벌어지는 권력 다툼은 이미 나라 안팎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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