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등에 ‘올드보이’들 올라타다
  • 김현일 대기자 ()
  • 승인 2015.04.16 16:1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4·29 재보선 맞아 호남 민심 빌미로 재등장한 ‘동교동계’

올해로 만 70세가 되는 노인들이 태어난 1945년, 그해에 한민당이란 정당이 생겨났다. 당시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로 무수한 정당들이 생겨났지만, 그중에서도 한민당은 단연 군계일학일 정도의 제1당이었다. 그런 한민당이지만, 국부로 떠받들어지던 이승만 초대 대통령과의 관계가 틀어지면서 야당의 길을 걷는다. 그 후예가 4·19 혁명으로 탄생한 제2공화국의 주연을 맡은 민주당이고, 파벌 싸움으로 지새우다 5·16 군사 쿠데타의 일격을 맞은 뒤 신민당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박정희 정부의 장기집권을 거치면서 제1야당인 신민당은 김영삼(YS)과 김대중(DJ)이라는 두 지도자에 의해 영도된다.

이미 대통령을 지낸 두 사람의 야당 시절, YS를 따르던 무리를 ‘상도동계’라고 했고 DJ 추종자들을 ‘동교동계’라고 불렀다. 딱히 부를 만한 호칭이 없었기에 두 사람이 살던 동네 이름을 따서 붙인 것이다. 굳이 구분하자면 윤보선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민주당 구파(舊派)의 대를 이은 게 YS였고, 장면 전 총리 중심의 신파(新派) 후예가 DJ다. 두 사람의 출신지 때문에 상도동에는 부산·경남 인사들이, 동교동에는 호남 인사들이 모여들며 지역색이 두드러졌다. 이들 ‘가신’의 상당수는 YS와 DJ가 각각 대통령 자리에 있을 때 권력의 한자리를 차지하는 수혜를 입었다.

4월7일 권노갑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가운데)을 비롯한 이훈평·김옥두 전 의원 등이 김대중 전 대통령 묘소를 참배하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수그러들던 동교동계의 막판 엄포 먹혀

2003년 DJ의 대통령 퇴임과 함께 상도동계와 동교동계란 이름도 역사의 한 장면으로 넘어가는 듯했다. 하지만 10여 년이 지난 지금 때아닌 상도동계·동교동계가 정치권의 복판을 다시 차지하고 나섰다. ‘계(系)’에 몸담았던 정치인들 거의가 지금 70대다. 따라서 지금 다시 과거의 계파가 들먹여지는 것은 분명 비정상이다. 당시 YS나 DJ 밑에서 잔심부름을 하던 막내 그룹도 이미 60세 전후다. 차기 여권의 유력 대선 후보로 꼽히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도 상도동계 서열로는 한참 아래다. 그는 2009년 상도동계-동교동계의 ‘화합 만찬’ 때 선배들에게 밀려 의자에도 못 앉고 서 있었을 정도다. MB(이명박) 정부에서 문광부장관을 역임한 4선의 정병국 새누리당 의원이나 박근혜 대통령의 측근으로 통하는 재선의 이성헌 전 의원 정도는 ‘현역’이라서 대접을 받을 따름이지, 계파 내부에선 ‘아기’다. 이처럼 ‘막내 중의 막내’들이 정치 주역으로 떠오른 판인데 결코 나타나선 안 될 무슨 ‘계’가 지금 이 시간에 머리를 쳐들고 있는 셈이다.

‘동교동계’란 단어가 2015년 정치판의 한가운데에 재등장한 것은 4·29 재보선 때문이다. 사실 우리 정치의 암적 요소인 ‘지역색’과 어우러져 타기해야 할 ‘계’는 2012년 대선 때도 활개를  쳤다. YS의 차남 김현철씨를 비롯해, 김덕룡 전 의원 등 상도동계 인사들이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고 나섰다. DJ 비서실장을 지낸 한광옥 전 의원(현 국민대통합위원장)과 ‘리틀 DJ’로까지 불리던 한화갑 전 의원, 김경재 전 의원(현 청와대 언론특보) 등이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를 지지했다. 물론 대다수 상도동계 인사들은 박 후보를, 동교동계 인사들은 문 후보를 각각 지원하는 정도를 걸었지만, 이처럼 예외적인 돌출행동이 나타났다. 각각 옛 동지들로부터 배신자 소리를 들었던 이들의 ‘전향’ 이유가 대개는 ‘친정’의 홀대와 배척이 결정적 계기가 되기는 했지만, 일각에서는 변화를 유도했다는 점에서 긍정적 평가를 하기도 했다. 무조건 떼를 지어 몰려다니며 한목소리를 내는 작태에 대한 국민들의 식상함이 컸던 탓이다. 

지분 챙기려는 코미디 ‘흥행’에 비난 자자

그런데 ‘계’가 다시 소생했다. 지난해 새누리당 전당대회와 올해 새정치민주연합 전당대회 때다. 물론 새누리당 전당대회 때는 선두인 김무성·서청원·이인제 후보 모두 상도동계라는 측면에서 거론됐기 때문에 파벌 싸움을 얘기할 때의 ‘계’와는 경우가 다르다. 하지만 올해 새정치연합 전당대회 당시 나온 동교동계는 전형적인 파벌 개념이다. 박지원 후보가 당내 다수파인 ‘친노’ 그룹 리더인 문재인 후보에 맞서느라 불가피했다지만, ‘동교동계-호남’을 전당대회장에 다시 끌어들였다. 실제 상당한 위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문재인 후보가 당 대표에 당선됐고, 때문에 ‘동교동계’를 우려먹는 정치는 더 이상 없을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동교동계’가 또 살아났다. 천정배·정동영 전 의원의 탈당과 재보선 출마로 다급해진 문재인 대표가 호남 쪽에 SOS를 치면서다. 수그러들던 동교동계의 막판 흥행이 먹혀든 것이다. 그런데 이 과정도 코미디 수준이다. 

DJ 부인 이희호 여사는 매주 화요일 부군 묘소를 참배하는데, 이 여사를 따라나섰던 동교동계 인사들이 찬밥 신세 타령을 했다. 그러던 중 이훈평 전 의원이 재보선 문제를 꺼내며 새정치연합을 지지할지 여부를 묻자 참석한 50여 명 전원이 반대 의사를 표시했다고 한다. ‘동교동 신사’라는 평을 듣는 이협 전 의원은 “정색하면서 토론한 게 아니었다”고 했으나, 이 장난 같은 ‘거수 표결’의 파괴력은 컸다. 이 소식을 접한 문 대표가 박지원 의원과 동교동계 좌장 격인 권노갑 고문에게 애소(哀訴)했고, 권 전 의원이 이를 ‘가납(嘉納)’, 닷새 만에 전면 거부에서 전면 지원으로 전환한 것이다. 명분은 선당후사(先黨後私)다. 진정 당을 먼저 위하고, 개인감정은 다음에 따지자는 것인지, 아니면 4월2일 ‘전면 거부’ 결의 후에 쏟아진 친노 그룹의 일제포화가 부담스러웠는지는 불분명하다. 4월7일의 입장 선회 발표 직후 이어지는 ‘비주류 40%’ 지분 요구 소리를 보면 그게 다는 아닌 듯하다.

동교동 잔존 그룹들로서는 이런 소득에 스스로 대견해할지 모르나 호남 민심과는 동떨어진 것이다. 동교동계에 대한 호남 현지의 불만이 대단함은 누구도 부인키 어렵다. 오랜 세월 호남을 내세워 호의호식하기만 했지 막상 해놓은 게 무엇이냐는 볼멘소리가 자자하다. 그런 주제에 다시 호남 대표성을 차지하려는 시도는 염치없다는 지적이다. 

지금 동교동계 노(老)정객들의 행각은 시곗바늘을 되돌려 놓고 마치 시간이 되돌려진 것처럼 가장하는 형국이다. 그쯤 했으면 호남 발전을 위해서, 호남의 젊은 인재를 키우기 위해서, 한국의 정치 발전을 위해서라도 뒤로 빠져주는 게 도리라는 비난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그러나 내년 총선과 내후년 대선을 앞두고 있는 정치권에서 또 ‘계’의 입김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구태의 가장 큰 피해자가 누구일지는 따져볼  필요조차 없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