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길들이기’ 그만하고 이젠 만나줘?
  • 박승준│인천대 중어중국학과 초빙교수 ()
  • 승인 2015.04.16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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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중 외교부장 북·중 정상회담 시사 5월 모스크바에서 조우 가능성

중국은 지난 3월18일 평양 주재 대사를 교체했다. 류훙차이 대사(劉洪才·60)를 중국공산당 대외연락부 부부장으로 발령 내고, 같은 급의 당 대외연락부 부부장 리진쥔(李進軍·59)을 후임으로 임명했다. 전임 류훙차이는 1990년대 초 주일 중국대사관에서 1등서기관을 지낸 것을 제외하고는 외교관 경력이 없었다. 그에 비해 리진쥔은 1970년대 중반 옛 동독의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독일어를 공부하고, 2000년대 초반 미얀마와 필리핀 주재 대사를 지낸 바 있다. 외교관으로서는 류훙차이보다 경험이 풍부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대체적으로는 동급의 인물을 류훙차이의 후임으로 임명하려고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과거 혈맹 관계보다는 ‘정상적인 국가 관계’로 북·중 관계를 변화시키려는 시진핑 정부의 의도를 잘 보여준 인사라고 할 수 있다.

평양 주재 대사의 교체에 앞서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은 지난 3월8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내외신 기자회견을 가졌다. 리커창(李克强) 총리를 비롯한 중국 국무원 부장(장관)들은 매년 3월5일 열리는 전국인민대표대회(우리의 정기국회와 같은 성격)를 계기로 베이징 주재 내외신 기자들을 모두 초청해 기자회견을 갖는 관례를 갖고 있다. 여기에 나온 총리 이하 각부 부장들은 자신의 소관 업무에 대한 내외신 기자들의 질문에 비교적 상세하고 성의 있게 답변하는 전통을 갖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 EPA 연합
왕이 부장, 북한과의 관계 개선 언급

왕이 부장은 올해 중국 외교정책의 전반적인 방침, 중국인 해외 여행객의 급증, 중국 외교부가 올해 최대의 외교 목표로 내세운 신(新)실크로드 정책, 중·러 관계, 유엔 설립 70주년, 중·미 관계, 테러리즘 등에 대한 질문에 일일이 대답했다. 이어서 한국 연합뉴스 베이징 특파원의 질문을 받았다. 연합뉴스 특파원이 한 질문은 “북한 지도자가 5월 러시아에서 열리는 전쟁승리 기념행사에 참석하기로 확정됐는데, 중국과 북한 지도자 사이의 회담도 연내에 이루어질 것인가. 6자회담이 재개될 가능성은 있는가”였다. 이 질문에 대한 왕이 부장의 답변은 다음과 같았다.

“중국과 조선(북한)은 우호적인 이웃이다. 중국인은 신의와 정의(情義)를 중시한다. 우리는 중국과 조선의 전통적인 우의를 소중하게 생각하며, 양국 관계의 정상적인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중·조 관계에는 단단한 기초가 있어서 일시일사(一時一事)적인 영향을 받지 않는다. 중국과 조선 두 나라 지도자 간의 회담은 쌍방이 언제 편리한가를 봐야 할 것이다.” 왕이 부장은 이어서 한반도 전체 정세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한반도 정세는 총체적으로 안정을 유지하고 있고, 중국은 이를 위해 건설적인 작용을 하고 있다.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고,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는 것이 각자의 공동 이익에 부합할 것이다. 현재 시점에서 한반도 정세는 민감한 시기에 진입했다. 우리는 관련 당사국들이 냉정과 자제를 유지하기를 촉구한다. 긍정적인 말을 많이 하고, 적극적인 일을 많이 하며, 6자회담 재개를 위한 분위기를 만들고, 조건들을 쌓아나가야 할 것이다.”

왕이 부장의 올해 전인대 내외신 회견 답변 가운데 한반도 관련 부분은 지난해와 비교해볼 때 분명 온도 차이가 느껴졌다. 그의 지난해 답변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현재의 한반도 문제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비유해서 말하자면 세 가지를 잘해야 한다. 언덕을 오르는 것, 장애물을 통과하는 것, 정도(正道)를 걷는 것이다. 우선 한반도 비핵화라는 언덕을 올라가야 한다. 핵문제는 현재 병의 증세가 엉켜 있는 곳이다. 비핵화를 실현하면, 한반도에는 진정 지구(持久)적인 평화가 올 것이다. 언덕이 아무리 길고 경사가 급하더라도 중간에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올라가야 한다. 두 번째로 상호 신뢰가 부족하다는 장애물을 넘어가야 한다. 관련 당사국들 사이에 신뢰가 부족하고, 특히 조선과 미국 사이에 신뢰가 심각하게 결핍돼 있는 점이 우리를 가로막고 있는 첫 번째 장애물이다. 이 장애물이 한반도 정세를 지속적으로 긴장시키고 있고, 6자회담도 여러 차례 중단시켰다. 우리는 각자가 자제심을 유지하고 선의를 보여주어서 한 점 한 방울씩 상호 신뢰를 쌓아나가기를 희망한다. 세 번째는 대화로 해결하는 것이 정도라는 점이다.” 

왕이 부장이 지난해와 올해 각각 전인대에서 한 답변을 비교해보면, 지난해에는 한반도 문제에 관한 자신의 일반론을 말하는 데 그쳤다면, 올해는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관해 언급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발견된다. 2013년 2월 북한의 세 번째 핵실험과 그해 12월 친중파(親中派)인 장성택 전 국방위 부위원장에 대한 숙청 사건이 발생한 후인 2014년 3월8일에 가진 기자회견 당시 왕이 부장으로서는 중국과 북한의 정상회담이나 관계 개선에 관해 언급할 분위기가 아니었을 것이다.

3월 말 주북한 중국 대사로 부임한 리진쥔 대사가 한국전쟁 중 사망한 마오쩌둥 초대 국가주석의 큰아들 마오안잉을 포함한 희생 중공군 묘역을 참배하는 것으로 북한에서의 첫 공개 활동을 시작했다. ⓒ 뉴시스
북ㆍ중 냉각 관계 정리하는 쪽으로 방향 설정

하지만 올해 왕이 부장이 전인대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한 답변을 보면, 그동안 상당히 소원해 보였던 중국과 북한 사이에 새로운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다시 말해 중국과 북한은 2012년 11월 시진핑의 당 총서기 취임 직후 감행된 북한의 3차 핵실험으로 사상 최악의 관계에 빠졌던 상황에서, 이제는 관계 개선을 말하고 북·중 정상회담까지 언급하는 상황으로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는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것이다.

이란 핵문제 해결로 이제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관심은 북한으로 모아지게 됐다.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지난해 10월 블룸버그 통신과의 회견을 통해 중국이 북한에 대해 원유 공급도 중단하고, 정상적 교류를 일절 하지 않는 데 대해 만족해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그러나 지난해 하반기 내내 중국공산당과 외교부 합동으로 북한 문제에 관한 연석회의를 가진 결과, 2013년 시진핑 국가주석 출범 이후 유지해왔던 북·중 간 냉각관계를 정리하는 쪽으로 방향을 설정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 북·중 관계의 리트머스 시험 결과는 오는 5월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는 시진핑과 김정은의 조우(遭遇) 여부와 상황을 보면 알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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