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봄을 잊지 않는 싸움 이제부터 시작이다”
  • 조철│문화 칼럼니스트 ()
  • 승인 2015.04.16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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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탐욕의 배 가라앉는 것 보고 <목격자들> 집필한 김탁환

“그 봄 바다에 빠져 돌아오지 못한 이들을 위해 정성을 쏟은 가수들과 화가들께도 감사드린다. 새벽마다 함께 만들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든든했다. 울분을 내지르지 않고 꾹꾹 눌러 이야기에 담았다. 오랫동안 독자들에게 스며들었으면 좋겠다. 그 봄을 잊지 않는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우리는 구경꾼이 아니라 목격자가 되어야 한다.”

<불멸의 이순신>으로 유명세를 탄 김탁환 작가(47)는 역사추리소설로써 현실을 말하는 작가인가. 그는 <방각본 살인 사건>을 시작으로 역사추리소설 ‘백탑파’ 시리즈를 펴냈는데, 후속작을 애타게 기다려온 독자들 앞에 내놓은 것은 <목격자들>이었다. ‘조운선 침몰 사건’이라는 부제가 붙었는데, 책 제목에는 그가 책을 통해 말하려 한 것을 앞세웠다.

ⓒ 뉴스뱅크 이미지
1780년 전남 영암과 경남 밀양의 바다에서처럼, 2014년 전남 진도의 바다에서도 탐욕에 물든 배가 숱한 생명들과 함께 가라앉았다. 생환과 진실의 소식이 요원할수록, 감당할 수 없는 사실들은 날이 갈수록 쌓여갔다. 그 무게에 짓눌린 것은 작가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집필을 멈추고 질문을 시작했다. 생명의 존귀한 가치를 훼손시키는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 인간이 어떤 탐욕을 가지고 있기에 이 절대적인 가치가 훼손되는가. 그것은 죽은 자와 산 자의 인간다움이 위협받는 존엄의 문제였다. 그리고 남은 자들이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모색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고통에 둘러싸인 가운데에서도 삶의 걸음을 멈추지 않으려면, 고통 이외의 무엇이 필요했다.

‘침몰하는 조선을 구하라’ 메시지 담은 소설

“조선시대 실제 기록으로 존재한 조운선(국가 수납 조세미를 지방 창고에서 경창으로 운반하던 선박)의 다발적 침몰을 모티브로 삼았다. <목격자들>을 낸 뒤 다른 작품으로 넘어가지 못하고 계속 맴돌고 있는 것 같다. 출간 후에 독자들에게 계속 묻고 싶었다. 어떻게 읽었는지. 이 소설은 머리로 치밀하게 계산해서 썼다기보다 가슴으로 쓴 부분이 많아서 이 부분들을 독자는 어떻게 읽어줬을지, 걱정도 되고 기대도 되고 그런다. 독자들 얘기를 들으면 또다시 각인이 되고, 세월호 사건 1주기가 돌아오니까, 몸도 마음도 계속 작품 속에 젖어 있는 상태가 지속되는 것 같다.”

‘백탑파’ 시리즈는 조선의 문예부흥기인 정조 때, 백탑 아래 모여 학문과 예술, 경세를 논하던 박지원·홍대용·박제가·이덕무·유득공 등 젊은 실학자들의 이야기다. 이들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데 조선의 명탐정 김진·이명방을 앞세웠다.

정조 시절, 전국의 조운선이 동시에 침몰하는 기이한 사고가 발생한다. 의금부 도사 이명방과 조선 명탐정 김진은 담헌 홍대용과 함께 은밀한 어명에 따라 침몰 사건의 진실을 파헤친다. 조운과 세곡을 둘러싼 이권과 탐욕은 무고한 생명을 숱하게 앗아갔으며, 사건의 진실에 다가설수록 예상치 못한 희생자가 속출한다. 밀양과 영암에서 조운선 침몰 사건의 전모에 접근하던 홍대용·김진·이명방은 결국 조운선과 자신들의 운명을 하나로 묶는 위험한 함정을 판다. 안개가 가득한 바다 위에서, 사건은 예상치 못한 곳으로 요동치는데….

가깝게는 세곡을 직접 징수하는 말단 관원부터, 가장 큰 권력을 움켜쥐고 있는 영상까지 조운선을 둘러싸고 각자의 욕망과 이기심을 채우기에 바쁘다.

<목격자들>은 2014년 5월부터 집필을 시작했다. 세월호 참사가 작가에게 인간으로서, 또 소설가로서 고뇌와 아픔이 됐다. 그래서 이 작품에는 국가 재난에 대한 역사소설가로서의 반성과 해결책 등을 담았다. 탐정이 등장하는 추리소설에서 정의와 불의의 문제는 앎과 모름의 문제로 바뀐다. 탐정이 수사를 거듭해 몰랐던 것을 모두 알아내는 순간 불의에 맞선 정의가 실현되고 소설은 끝나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의 사건에서 정의를 구한다고 해서 사회의 부조리가 모두 걷히는 것은 아니다. <목격자들> 또한 통쾌하게 해결되는 사건은 있지만, 사건의 모체가 되는 사회의 어두움은 여전히 남는다. 그 어두움을 목도하며 조선의 백성은 삶을 지속한다.

“세월호 사건과 광주 항쟁으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이 만나서 나눈 이야기를 전해들은 적이 있다. 그때 광주항쟁 유가족 중 한 분이 ‘이건 세월이 약이 아니다. 평생 잊히지 않는 거다. 그러니까 어떻게 잘 기억할 것인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기억의 마을’ 짓는 것이 남은 자의 책무

‘숙향, 열여섯 살, 흥양에서 나고 자란 기생이옵니다. 팔이 길고 다리가 빨라 춤에 능했사옵니다.…창진, 서른 살, 흥양의 격군이옵니다.…차돌의 어미옵니다.…4월5일 등산진 앞바다에 침몰한 소선과 관련하여 목숨을 잃은 열다섯 명이옵니다. 모두 전하의 백성이옵니다.’

소설의 제목이 다름 아닌 ‘목격자들’임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조운선 침몰 사건으로 희생된 백성들을 하나하나 읊고 추모해 기억함을 소설에서는 ‘기억의 마을’을 짓는 일이라 칭한다. 기억의 마을을 짓기 위해서는 구경꾼이 아닌 목격자가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소설에도 짧게 써놓았지만, 사실 그 사람들을 기억하는 방법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그냥 이름을 한 번 불러주면 되는 것이다. 소설에서 열다섯 명의 이름을 읽었다. 실제로 아침마다 집필하기 전에 박재동 화백이 그린 그림을 보면서 사망자들의 이름을 소리 내서 읽어봤다. 이게 도대체 무엇인지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더라도 그냥 소리 내서 읽어보는 것, 천천히 읽으면서 생각해보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중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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