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괜히 박근혜 밀었다며 대성통곡하더라”
  • 충남 공주=이승욱 기자 (gun@sisapress.com)
  • 승인 2015.04.20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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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완종이 사망 직전 털어놓은 깊숙한 얘기…진경 스님 단독 인터뷰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은혜를 모르면 망종지자(亡種之者)여. 몹쓸 사람이라는 말이여. 박근혜 대통령을 당선시키는 데 일등 공신인 성완종(전 경남기업 회장)에게 논공행상은 하지 못할지언정 어떻게 사정 1호로 그를 집어넣는가 말이여.” 노승(老僧)의 노여움에 찬 목소리가 법당 안을 쩌렁쩌렁 울렸다.

충남 공주 계룡산 첩첩산중에 위치한 1600년 역사의 고찰 신흥암을 기자가 찾은 것은 4월14일이었다. 이 암자의 주지인 진경 스님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조심스럽게 다가가 인사를 건넨 후, 해외 자원개발 사업 비리와 분식회계 혐의 등으로 검찰의 수사를 받아오다 지난 4월9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이야기를 꺼내자 그는 벼르고 있었다는 듯 말을 쏟아냈다. 성 전 회장의 죽음 직전을 가장 가까이서 오랫동안 지켜본 그는 할 말이 많은 것 같았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4월8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에 대한 의혹을 해명하고 있다. © 연합뉴스
자살 직전 열흘 동안 10여 차례 만나 대화

성 전 회장이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를 남기고 세상을 떠나자 그 배경을 둘러싸고 여러 이야기들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가 자신의 결백을 강하게 주장하면서도 법적 다툼이 아닌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배경은 명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성 전 회장과 동향인 진경 스님은 성 전 회장이 평소 ‘아버지’라고 부를 정도로 가까이 따르고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은 인물이다. 1980년대에 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냈을 정도로 그는 불교계에 영향력이 크다. 80대의 노승인데도 정정한 체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진경 스님은 지난 3월 중순 검찰의 경남기업 수사가 본격화하면서 성 전 회장이 사정 칼바람으로 궁지에 몰린 긴박한 시기에 그와 빈번히 통화를 했다고 한다. 특히 3월 말 진경 스님은 성 전 회장의 요청으로 상경하기도 했다. 서울에 머무른 열흘 동안 진경 스님은 성 전 회장과 10차례 이상 만났다. 시사저널은 4월14일과 15일 이틀 동안에 걸쳐 신흥암 근처에 머물면서 진경 스님과 단독 인터뷰를 가졌다. 장시간 이어진 인터뷰에서도 그는 지친 기색 없이 성 전 회장의 마지막 심경을 대신 전했다.

“어느 날 성 회장이 전화를 했는데 서울로 올라오라고 하더라고. 자기가 ‘너무 마음이 착잡하고 허전하니 스님이 곁에 와 계셨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어. 내가 바로 서울로 갔지. 거기서 한 열흘 정도 있으면서 10차례 이상 성 회장이 나를 직접 찾아와 따로 만났지.”

성 전 회장과 서울에서 대면한 두 사람은 많은 말을 주고받았다고 한다. “성 회장하고 열흘 동안 만나면서 별의별 이야기를 다 했지. 나도 이야기를 많이 했고, 성 회장도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털어놓은 거야. 어떤 때는 엉엉 울어가면서 이야기를 하더라고. ‘이런 배은망덕한 놈들이 세상에 어디 있느냐’면서 말이지.”

검찰 수사와 관련한 부당함과 자신의 결백과 억울함을 주장하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자신을 사정 대상으로 삼은 박근혜 정부에 대한 분노와 배신감이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고 한다. “박근혜 정부를 출범하도록 하기 위해 자신이 몸으로, 돈으로, 그리고 조직(충청 지역을 기반으로 한 옛 자유선진당을 지칭)을 다 갖다 바치면서 혼신을 다했고 그래서 박근혜 정부가 탄생했는데 왜 하필 자기를 사정 대상으로 삼느냐는 거였지. 거기다 자기를 악덕 기업주로, 아주 이 사회에서는 있어서는 안 될 제거 대상으로 ‘와꾸’(틀이라는 의미의 일본어)에 짜 넣느냐는 이야기를 많이 했지.”

성 전 회장이 진경 스님에게 “이런 억울한 사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느냐”고 되물으며 자신의 답답함을 수시로 호소했다고 한다. “성 회장이 계속 한 말이 뭐냐 하면, ‘나는 베풀기만 했지 다른 누군가에게 받아먹은 게 없다’는 거야. 돈 벌어서 장학재단 주고…. 그런데 ‘(박근혜 정부가) 나를 천하에 파렴치한 인물로 만들어서, 그럴 듯한 명분을 대고 호의호식하는 이중 위선자로 만들었다’고 하더라고. 그 점에 대해서는 ‘자기 목숨을 걸고서라도 진실을 밝혀야겠다’ 그런 이야기를 했지.”

“이 총리가 전화 걸어 ‘내가 지시 안 했다’ 변명”

진경 스님과 성완종 전 회장의 대화에서 성 전 회장이 박근혜 정부 실세 인사들 중 가장 중요하게 거론한 인물 중 한 명이 이완구 국무총리였다. 성 전 회장은 경향신문과의 생전 마지막 인터뷰에서 ‘2013년 4월 부여·청양 국회의원 재선거에 출마한 이 총리에게 현금 3000만원을 전달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이 총리는 이를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성 회장이 자기가 이 총리를 계속 도왔다고 하더라고. (2013년 국회의원 재선거 때) 자기가 국회의원 공천을 주는 데 힘썼다고  했지. (이후) 원내대표 될 때도 계속 밀어줬다고 말이야. 국무총리 될 때도 (비리 혐의로 궁지에 몰릴 때) 충청포럼 동원해서 지지 현수막 설치하고…. 그런데 ‘어떻게 이완구가 나한테 그럴 수 있느냐’고 분개했어.”

성 전 회장은 이 총리와 통화한 사실도 진경 스님에게 털어놓았다고 한다. 성 전 회장이 자신에 대한 비리 수사의 배경에 이 총리가 있다는 점을 주변 인사들에게 말하고 다니자 이 총리가 직접 해명을 하기 위한 전화였다는 것이다. “한번은 이 총리가 직접 전화를 했더래. 전화가 왔는데 이 총리가 ‘성 형, (검찰 수사 지시) 그것은 내가 한 것 아니야’ 그러더래. 그래서 성 회장이 ‘당신이 하지 않았으면 누가 해, (수사) 할 테면 해봐라’며 전화를 끊었다고 말하더라고.”

진경 스님은 성 전 회장이 다수의 정치권 인사들을 통해 구명 활동을 했다는 이야기도 털어놓았다고 했다. 하지만 구명의 핵심은 수사를 피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불구속 수사를 해달라는 것이었다는 게 진경 스님의 설명이다. “성 회장이 백방으로 쫓아다니면서 누구누구 만난 거 다 이야기하더라고. 그렇다고 성 회장이 정도에서 벗어나 (수사에서 자신을 아예) 빼달라고 한 것도 아니었어. ‘의혹이 있으면 날 조사하되, 내가 여태까지 박근혜 정부에 기여한 것 봐서 불구속쯤은 해줄 수 있지 않느냐’ 이거였지. 그리고 잘못이 있으면 재판받겠다고 하더라고. 수사 피하겠다는 건 아니었지.”

2012년 12월20일 당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중앙선대위 해단식에 성완종 새누리당 국회의원(오른쪽 세 번째)이 참석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성완종 리스트’ 속 인물 직접 거명

성완종 전 회장은 진경 스님과의 대화에서 자신이 도운 박근혜 정부 핵심 인사들을 구체적으로 거명했다고 한다. 성 전 회장의 시신에서 발견된 금품 수수 메모, 즉 ‘성완종 리스트’에 이름이 명시된 8명 중 홍준표 경남도지사를 제외한 7명의 이름을 성 전 회장이 직접 거론했다는 것이다.

“홍준표 (경남도지사) 이야기는 안 했지만, 김기춘·허태열(전 청와대 비서실장), 이병기(현 비서실장), 이완구(국무총리), 유정복(인천시장), 홍문종(새누리당 의원) 등은 사실 다 자신한테 신세진 사람이라고 했지. 그래서 내가 ‘그럼 (그들에게) 돈을 줬다는 것이냐’고 하니깐, ‘다 제가 돈을 줬지요’ 이러더라고.”

하지만 진경 스님은 성 전 회장이 돈을 준 구체적인 경위나 액수 등은 자신에게 말하지 않았다고 했다. 또 성 전 회장이 자신과의 대화에서 야당 인사들과의 친분이나 돈거래 등을 말한 적은 없었다고 한다. “(성 회장이 평소) 야당 인사하고는 별로 접촉하지 않았고 야당을 별로 안 좋아했어. 사업상 접촉은 했는지 몰라도…. (열흘 동안 있을 때도) 야당 인사에 관해서는 일절 이야기를 안 했지.”

성 전 회장은 해외 자원개발 사업 비리에서 시작한 검찰 수사가 별건 수사로 확대되는 양상에 대해서도 납득하기 어렵다는 불만을 꾸준히 토로했다고 한다. 특히 자원개발 사업 비리에서 시작된 검찰 수사가 분식회계와 법인 자금 유용 등 개인 비리로 옮겨가는 데 대해 강한 의문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검찰 조사를 받을 때 검찰이 해외 자원개발(사업)에서 돈을 조사해보니깐 ‘(성 회장이) 먹은 게 없다, 그리고 그 이상의 정보를 모른다’고 그러면 끝내야 하는데, 그런데 ‘(검찰이) 다른 걸로 자꾸 이렇게 조사할 테니깐 사실대로 불어라’고 한다 하더라고. 해외 자원개발 비리나 그런 걸 찾으려고 하는 게 아니더란 말이야. (처음 수사) 목적 외에 별건을 들이대면서 조사를 한다는 거야. (검찰 소환) 조사를 받고 나와서 성 회장이 ‘세상에 이럴 수가 있느냐. 나를 과녁으로 삼아서 조준해 죽이려고 하느냐’고 그랬지.”

성완종 전 회장은 자신을 향한 검찰 수사에 악의성이 있다고 확신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 성 전 회장은 박근혜 정부 주변 인사와 정치인 등을 통해 그 배경을 추적해보기도 했다. 애초 성 전 회장은 자신에 대한 수사 배경에 이완구 총리가 있다고 봤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청와대, 나아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의혹의 시선을 보냈다고 한다.

“박 대통령, 나쁜 사람”이라며 통곡

“성 회장에게 들은 이야기지만 국회의원 실세들을 대상으로 나름대로 자기가 (수사 배경에 대해) 조사를 했다 하더라고. 성 회장이 누가 이렇게 했는지 의심을 계속했지. 막판에 가서는 ‘이거는 박근혜 장난’이라고 그러더라고. 박근혜 장난이 아니면 이렇게 못한다 이거야.”

성 전 회장은 생전 청와대의 ‘오더’(주문)를 받은 검찰이 자신을 기획 수사한 것이라고 결론 내린 것으로 보인다. “성 회장이 죽 조사를 해봤는데 (누군가가) 청와대 오더라고 했다는 거여. ○○○(청와대 모 수석)하고 □□□(검찰 간부)하고 만난 게 있다고 하던데…. 무슨 모사를 하는 것을 봤다나. 그것을 확실히 알고는 (4월8일) 기자회견을 한 것이지.”

성 전 회장이 기자회견을 하기 직전에는 박 대통령에 대해 강한 실망감을 드러냈다고 한다. 당시 성 전 회장은 박 대통령을 ‘대통령’이라는 호칭도 생략한 채 이름만 부르면서 배신감을 드러냈다고 한다. “(성 회장이 청와대 오더를 인지한) 그 전까지는 ‘박근혜’라고 그냥 부르지는 않았거든. 그런데 (성 회장이) 수소문을 해본 후에 박근혜 장난이라고 결론을 내렸고, 기자회견까지 한 거야. 나중에는 (박 대통령을) 아주 나쁜 사람이라고 하더라고. 내가 이럴 줄 알았으면 괜히 대통령으로 밀었다고 여러 번 이야기를 했어. 자기를 위해서 일한 사람을 잔인하게 잡는다 이거지. 억울하다고 대성통곡을 하는 거야. 몇 번이나….”

하지만 성 전 회장은 자살 직전까지도 박 대통령에 대한 일말의 기대감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진경 스님은 “(성 회장이) ‘박근혜 정부가 배은망덕하다’고 하기에, 그럼 기자회견 하면서 거기서 다 밝히라고 하니깐, ‘그래도 내가 모신 대통령인데, 그렇게 하기가 뭣하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진경 스님은 성 전 회장이 기자회견 후 자살을 선택할 때까지 만 하루 정도의 시간 동안 급격한 심경의 변화를 겪었을 것으로 짐작하고 있었다. 진경 스님은 성 전 회장이 기자회견을 한 4월8일 밤 11시쯤 통화를 했다고 한다. 여기서 성 전 회장은 “오늘 기자회견을 했는데 외부 반응이 어떤지 좀 알려 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30~40분 후쯤 다시 진경 스님이 성 전 회장에게 전화를 했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성 회장이 누군가를 통해 ‘박 대통령이 오해를 풀고, 왜 자신을 완전히 제거하려고 하는 것인지 이유를 알 수 있도록 말씀을 전해달라’고 시종일관 부탁을 했다는 이야기를 나한테도 했어. 그런데 그쪽에서 진짜 (대통령에게) 전했는지, 아니면 전하지 않고 가짜로 했다고 했는지, 결국은 노(NO) 하니깐 이거 쓸어내야 되겠다고 하고 폭로를 한 거지. (산으로 가기 전) 유언장을 써놓고 마지막으로 받으려고 했던, (박 대통령에 대한) 일말의 희망과 기대감을 가졌던 전화가 하나 있었을 거야.” 

 

 


진경 스님(사진)은 1980년대 초반 조계종 총무원장과 종회의장, 동국대 이사장 등을 지냈다. 한때 불교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사찰 풍수지리와 ‘해동명필’의 대가로 지금까지 알려져 있다. 진경 스님은 1980년대를 대표하는 승려지만 당시 불교계 내부 갈등 속에서 영욕의 세월을 보내기도 했다. 진경 스님은 조계종 총무원장 시절인 1983년 7월, 반대파 측과의 갈등 속에서 강원도 속초 신흥사 신임 주지를 임명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물리적 충돌이 발생해 승려 1명이 숨지고 승려 6명이 중경상을 입는 사건이 발생했다. 결국 진경 스님은 이 사건으로 종단 간부진과 동반 퇴진했다.

진경 스님은 15년 전 충남 계룡산 신흥암으로 내려와 지금까지 머무르고 있다. 신흥암은 불교가 우리나라 최초로 전래된 서기 372년(고구려 소수림왕 2년) 이전에 창건된 고찰(古刹)로 알려져 있다. 특히 신흥암은 부처의 진신 사리를 바위 사이에 보관해둔 천연 바위탑 ‘천진보탑’(天眞寶塔·문화재자료 제68호)으로도 유명하다.

진경 스님은 첩첩산중 작은 암자에서 은둔 생활을 하다시피 하고 있지만, 심대평 전 충남도지사와 이인제 새누리당 최고위원 등 충청 지역 정치인들 사이에서는 ‘큰스님’으로 떠받들어지면서 그들과 교류하고 있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도 진경 스님과 깊은 교분을 쌓아온 인물 중 한 명이다. 진경 스님은 “정치는 국민을 편하게 한다는 목적에서 불교와 매한가지”라면서 “자기를 생각하지 않고 남을 위해서 바쳐야겠다는 대승보살의 아름다운 마음으로 정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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