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총리가 어떻게 성 회장 모른 척할 수 있는겨”
  • 엄민우 기자 (mw@sisapress.com)
  • 승인 2015.04.20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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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에서도, 지역에서도 설 땅 잃어가는 이완구

“4월이 어떤 달입니까? 저한테는 잔인한 달입니다.” 지난 4월13일 대정부질문 도중 이완구 국무총리는 이런 발언을 해 국회 본회의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당시엔 이 총리와 의원들 모두 웃었지만 결코 웃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성완종 리스트’ 의혹이 처음 제기됐을 때만 해도 주인공은 현 정부에서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낸 김기춘·허태열 전 실장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부각되는 인물은 이완구 총리다. 심지어 여당조차도 더 이상 그를 보호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국무총리 인사청문회 때만 해도 새누리당은 혼신을 다해 그를 지켰으나 ‘성완종 리스트’ 사태와 관련해서는 ‘더 이상 보호할 수 없다’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일각에선 ‘검찰이 현직 총리를 수사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제기한다. 일단 정황들로 볼 때 검찰 수사는 시간문제다. 검찰 관계자는 “아직 수사가 진행 중이고 다양한 인물이 거론되고 있지만 돈을 전달했다는 사람이 특정된 홍준표 경남도지사와 구체적인 돈 전달 정황이 나온 이완구 총리는 수사를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성완종 전 회장 측 인사는 “2013년 4·24 재보선 전인 4월4일 오후 4시, 당시 이완구 선거사무소를 찾아 성 전 회장 지시로 현금이 든 비타500 박스를 테이블에 놓고 나왔다”고 폭로했다. 이에 대해 이 총리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

4월15일 성완종 리스트 파문에 휩싸인 이완구 국무총리가 국회 본회의 대정부질문에 참석하기 위해 국회로 들어서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이완구 지지 현수막, 충청포럼 작품”

“저도 얼마나 친한지는 모르겠지만, 이완구 총리가 처음에 (성 전 회장을) 모르는 척한 것은 좀 아닌 것 같습니다. (성 전 회장) 상가에 갔을 때도 서산에 계신 분들은 이 총리의 그런 말에 불쾌해했습니다.” 성완종 전 회장의 비서실장 격이었던 박준호 전 경남기업 상무는 성 전 회장과의 친분 관계를 부인하는 이 총리의 발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성 전 회장의 측근들은 이 총리에 대해 적대감을 갖고 있다. 현재 성 전 회장의 측근들에 대한 소환조사가 이뤄지고 있는 상황인 점을 감안하면, 이 총리로선 불안할 수밖에 없다. 그들 중에서 추가적으로 돈 전달과 관련한 구체적 진술이 나올 경우 이 총리는 절체절명의 코너로 몰리게 된다. 현재 검찰은 이 아무개 보좌관 등 성 전 회장 측근으로 분류되는 인사들을 조사하고 있다.

이완구 총리의 팬클럽 ‘완사모’ 회원도 구속됐다. 완사모의 자문임원단 회장을 맡고 있는 이 아무개씨는 버스회사를 운영하며 조합 자금 31억원을 빼돌려 유용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이 돈이 이 총리 후원에 쓰였을 가능성에 대해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성 전 회장은 현 정권에서 자신에 대한 수사가 이뤄지는 것에 대해 강한 배신감을 갖고 있었다. 특히 사정 수사를 진두지휘하는 인물이 이완구 총리이고, 그 대상이 자신이 됐다는 것에 대해 불만이 컸다. 성 전 회장을 잘 아는 한 충남 지역 인사는 “성 회장은 충청도에서 힘 좀 쓰는 사람들을 두루두루 도왔는데, 당연히 대권 이야기가 나오는 이 총리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런데 성 회장과 ‘별로 친하지 않았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니 아는 사람들이 보기엔 괘씸하고 화가 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총리는 우여곡절 끝에 총리가 됐다. 인사청문회 중간에 언론 회유 발언이 알려지며 중도 낙마 위기에 몰렸다가 기사회생했다. 그런데 그 과정에 성 전 회장이 설립한 ‘충청포럼’이 도움을 줬다는 의혹이 야당에서 하나둘 제기되고 있다.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 당시 여론이 악화되자 성 전 회장이 충청포럼을 통해 이완구 후보자를 도왔다는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 홍영표 의원은 “이완구 후보자 인사청문회 당시 바르게살기위원회·소상공인협의회 등의 이름으로 충청 지역 전역에 ‘이완구 총리 낙마시키면 다음 선거 때 가만 안 두겠다’는 내용의 수천 장의 현수막이 걸렸는데, 이 비용을 댄 쪽이 충청포럼”이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이 총리는 “그런 현수막이 수천 장 달린 것을 얘기는 들었지만, 자발적인 것으로 알고 있다. 충청포럼이라는 존재가 실체가 있는 그런 조직까지는 아니다. 저와도 관계가 없는 조직”이라고 일축했다. 그는 “나에게도 ‘완사모’ 라는 팬카페가 있는데 그분들끼리 현수막을 걸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2월15일 충남 천안시 동남구 신부동 일원 주택가에 이완구 총리 후보자 임명동의안 처리를 촉구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 뉴시스
그러나 충청권 정치 및 시민사회계 인사들은 이 같은 이 총리의 해명에 대체적으로 동의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당시 상황을 잘 아는 서산의 L 시의원은 “(이 후보자 인사청문회 당시) 내가 보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많은 현수막이 거리에 걸렸다. 그걸 다 돈 주고 작업해야 하는데 완사모가 돈이 어디 있겠느냐”며 “이 총리는 성 회장에 대해 그런 식으로 말하면 안 된다. 지금 여기가 등 돌리면 이 총리는 사실상 끝나고, 지금 여긴 그런 분위기”라고 말했다.

현수막뿐 아니라 지난 대선 당시 충청포럼에서 노인들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자리를 제공했다는 의혹도 새정치연합에 제보돼 진위 파악에 나섰다. 노인 740명을 대상으로 1인당 6000원 상당의 식사를 제공하는 데 도움을 줬다는 것이다. 이 부분 역시 검찰 수사 대상이 될지 주목된다.

이 총리가 2013년 재보선 당선 후 성 전 회장을 만났다는 의혹도 있다. 2013년 5월 중·하순께, 국회 앞 건물 3층의 한 중식당에서 이 총리가 선거를 도운 것에 대한 답례로 성 전 회장을 초청해 만났다는 것이다. 해당 식당은 의원들이 자주 이용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차라리 친하다고 시인했어야”

온갖 의혹이 나오고 있지만 이완구 총리는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말을 바꾸는 모습을 보여 신뢰를 잃어가는 모습이다. 사실 이번 사태가 이렇게까지 이 총리에게 초점이 맞춰지게 된 것도 초기 대응을 잘못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성 전 회장의 충청포럼은 물론, 일부 완사모 회원들도 이 총리의 발언에 대해 잘못됐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고 한다. 서산의 K 시의원은 “충청도 민심은 특히 명분과 의리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차라리 (잘 아는 사이라고) 시인을 했어야 하는데 애매모호하게 말을 돌리는 바람에 신뢰를 잃어버렸다”고 말했다. 이렇게 되자 이 총리와 관련한 각종 의혹이 우후죽순 제기되는 양상이다. 새누리당이 이 총리에 대해 적극적으로 감싸지 않는 것도 지역 민심을 고려한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성 전 회장과 이 총리는 서로의 정치인생에 시너지를 주는 역할을 했다. 지역 유력 인사들에 따르면, 이 총리는 2013년 6월 당시 성완종 의원이 충남도당위원장에 임명되도록 추천했다. 이렇게 해서 충남도당위원장이 된 성 전 회장은 지난해 5월 이 총리가 새누리당 원내대표로 선출되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지난해 3월부터 지역 모임 자리 등에서 이완구 의원이 원내대표가 될 것이 확실하다는 발언을 공개적으로 하고 다녔다는 전언이다. 성 전 회장이 당시 충남도당위원장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물밑 작업이었다는 것이 지역 인사들의 분석이다. 그러나 불과 1년 후 한 사람은 부패척결을 진두지휘하는 위치에 올랐고 다른 한 사람은 부패척결 수사 대상 1호가 됐다. 결국 배신당했다고 생각한 성 전 회장으로부터 직격탄을 맞은 이 총리의 입지는 회복되기 힘들 정도로 축소됐다. 

 

‘성완종 사태’ 배후는 충청대망론? 


“충청도 출신 대통령을 반드시 배출해야 한다. 그동안 우리 충청권은 부끄럽게도 영호남 양대 산맥의 그늘에 가려 선거 때 캐스팅보트 역할만 했다. 그러나 이용당하고 나면 언제나 핫바지, 멍청도, 천덕꾸러기가 됐다.”

곽정현 전 충청향우회 총재가 지난해 1월 한 충청 지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다. 그의 말에서 알 수 있듯 충청도의 소외의식은 꽤 강하다. 그동안 김종필·이회창·이인제 등 지역 출신 인사들이 대권에 도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그래서인지 ‘충청대망론’에 대한 기대가 크다. 충청권에서는 이완구 총리와 안희정 충남도지사,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등이 충청대망론을 실현시켜줄 ‘잠룡 삼총사’로 꼽힌다. 지역에서는 이들 셋이 여야에서 건강한 긴장감을 유지하며 대권 후보로서의 경쟁력을 키워가는 것을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은 이 총리가 이 균형을 깨뜨리려 했다고 폭로했다. 그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사정 대상 1호인 이완구가 엉뚱한 사람을 사정하고 있다. 이 총리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의식해서 그렇게 나온 것 같다”고 밝혔다. 충청권 대권 주자로 거론되는 이 총리가 또 다른 잠룡인 반 총장과 가까운 자신을 노렸다는 것이다.

성 전 회장과 반 총장의 관계는 꽤 가까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 총장은 충청포럼 회원으로 서울에서 초청 강연 등을 하기도 했다. 특히 반 총장의 동생 반기식씨는 충청포럼 창립 멤버이고 경남기업 고문직을 맡고 있는 등 성 전 회장과는 각별한 사이다. 만약 반 총장이 대권에 도전할 경우 충청포럼이 조직 기반이 될 것이고 이 조직을 운영하던 이가 곧 성 전 회장이다.

충청권에서는 ‘충청대망론’의 주인공이 되기 위한 내부 경쟁이 사뭇 치열하다. 성 전 회장이 자신이 수사 대상에 오른 이유를 “반기문과 가까운 죄”라고 외친 데도 이런 배경이 깔려 있다. 이 총리 측은 “터무니없는 오해”라고 주장한다. 한편 이런 논란에 대해 반기문 총장은 “국내 정치에 관심이 없고 그럴 여력도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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