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평범한 가정 속으로 파고들다
  • 이은선│매거진 M 기자 ()
  • 승인 2015.04.23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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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쟁적 다큐에서 일상의 사적 성찰로 옮겨가

<반짝이는 박수소리>는 올해 스물여섯 살인 이길보라 감독이 만든 첫 장편 다큐멘터리다. 이는 ‘입으로 말하는 세상’과 ‘손으로 말하는 세상’을 오가며 살아온 감독의 기록이다. 청각장애 부모의 건청인 자녀인 감독은 어린 시절부터 늘 부모의 이야기를 기록하려고 생각했다. 부모님의 세상이 늘 아름답게 빛난다고 생각해온 그와는 달리, 다른 사람들은 감독의 부모 이야기를 들으면 당황하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이길보라 감독은 어릴 때부터 부모님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오픈해야 자신에게 상처가 덜 된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깨우쳤다.

이 다큐에 등장하는 감독의 부모는 쾌활하고 긍정적이다. 기존 미디어가 장애인을 ‘슬프지만 꿋꿋이 산다’는 연민의 대상으로 그린 것과는 다르다. 감독이 실제로 자라며 지켜본 부모의 모습이기도 하다. 카메라는 종종 따뜻하고 밝은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풀밭을 배경으로 수화하는 손을 비춘다. 이 공간의 느낌은 감독이 다큐를 통해 전하고 싶었던 청각장애인의 세계다. 이길보라 감독은 수화가 얼마나 아름다운 언어인지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실제 청각장애인의 공동체는 무척이나 따뜻하고 밝은 분위기다. 이들만의 언어와 문화를 공유하는 이들은 ‘다시 태어나도 청각장애인으로 살고 싶다’고 말할 정도다. 감독은 “이 다큐가 사람들의 편견을 깨는 데 일조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힌다.

영화 ⓒ KT&G상상마당 제공
장애인 부모에 대한 세밀화

내레이션은 이길보라 감독이 직접 했다. 그의 고백은 오랜 시간 정리된 덕분에 간결한 언어가 되어 담담하게 흐른다. “나는 (사람들에게) 깔끔하게 대답하고 싶어 대화를 했고, 영어를 배웠고, 철학책을 읽었다. 하지만 표현할 수 없는 것이 있었다. 장애라는 한 단어로 설명하기엔 엄마 아빠의 얼굴 표정과 직관적인 표현 같은 것은 침묵을 기반으로 해야만 가능한 것이었다. 그 드넓은 침묵을 이해하고 싶어 카메라를 들었다. 찍으면 찍을수록 그 세계는 자체로 완전하고 드넓었다.”

이 고백에선 사람들이 얘기하듯 부모님을 생각해서라도 착하게 자라야 했던 감독과 남동생이 살아가면서 생각하고 이해하고 때론 혼란스러워하는 솔직한 내면이 엿보인다. 이 다큐를 통해 우리는 ‘음성 언어 없는 세계’에 대한 이해와 접근이 가능하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대상을 관찰하고 함께 시간을 쌓은 사람만이 남길 수 있는 기록이 <반짝이는 박수소리>에 있다. 그리고 자신과 가족의 역사 그리고 관계를 관찰하는 이 다큐는 단순히 사적 기록의 차원에 그치지 않는다. 나아가 한국 사회의 작은 단면을 비추는 하나의 거울이 된다.

지난해 개봉한 <마이 플레이스>도 비슷한 경우다. 박문칠 감독이 직접 카메라를 들고 자발적 비혼모를 선택한 여동생과 그를 바라보는 가족의 반응을 담은 다큐다. 스스로 비혼모에 대한 편견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동생의 일이 되자 걱정이 앞서는 감독의 모습 역시 고스란히 담겨 있다. 가족의 갈등과 화해 속에서 보이는 건 한국 사회의 획일적 기준과 편견이다. 정상과 비정상, 모범적인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가르는 이상한 잣대. <마이 플레이스>는 그렇게 가족의 이야기에서 출발해 사회를 바라보는 어떤 관점을 제시한다.

홍재희 감독의 <아버지의 이메일>(2014년) 역시 개인의 역사에서 의미를 찾고자 하는 시도였다. 가족에게 모질었던 아버지가 남긴 사진과 기록, 거기에 가족과 친척의 인터뷰와 재연 드라마를 엮었다. 아버지가 한 자 한 자 당신의 인생을 기록한 편지를 홍재희 감독에게 이메일로 보낸 것이 계기였다. 43번째 메일을 보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감독의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다. 감독은 이 다큐를 통해 현재의 자신이 과거의 아버지를 용서하는 방식을 택한다. 그리고 아버지 뒤에 언제나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던 시대의 풍경을 이해한다. 남북 분단, 베트남 전쟁, 중동 건설 붐, 재개발 문제 등 각 시대의 이슈가 가족의 관계 안에 겹친다. 이를 통해 홍재희 감독은 자연스럽게 한국 근현대사를 함께 조명한다.

영화 ⓒ KT&G상상마당 제공
한국 사회의 현실을 비추다

이 같은 영화의 등장은 국내 다큐멘터리 흐름의 중요한 변화 가운데 하나다. 1990년대만 해도 국내 다큐는 노동·여성·환경 등의 영역에 카메라를 대고 제도와 권력의 문제를 바라보는 액티비즘(행동주의) 계열이 주를 이루었다. 최근에는 한층 복잡다단해진 한국 사회의 현실을 비추기 위해 다큐의 형식 역시 각양각색으로 변화하는 추세다. 과거 다큐가 저항의 움직임을 최우선으로 했다면, 최근에는 그 문제를 바라보는 감독 자신의 입장을 먼저 성찰하는 형식이 눈에 띈다. 액티비즘 다큐 역시 기록성과 현장성만을 중시하던 경향에서 벗어나 형식적으로 다양한 시도를 보이고 있다. 용산 참사를 새롭게 구성한 <두 개의 문>(2012년)이 좋은 예다. 

다큐멘터리 카메라는 이제 치열한 투쟁의 공간부터 평범한 가정으로까지 폭넓게 파고들고 있다. 5월 개봉하는 <잡식 가족의 딜레마>는 황윤 감독이 구제역 사태 이후 도축 동물의 환경과 일상을 지켜보면서 돈가스를 마음 편히 먹을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에서 출발한다. 육식을 선호하는 남편 영준과 아들 도영 덕분에 복잡해진 가족의 식단 결정을 통해 삶과 먹을거리, 생명체에 대한 이야기로 관점을 넓혀가는 다큐다.

지난 3월26일부터 4월1일까지 열린 인디 다큐 페스티벌에서 선보인 작품에서도 이러한 추세가 감지됐다. 돌아가신 할아버지 명의로 된 선산이 친척 관계 때문에 방치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 감독이 가족의 역사를 짚는 <아들의 시간>, 아버지에게 용돈을 얻어 쓰는 자신에게 문득 죄책감이 들어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고 지인을 취재하고 나선 <아빠가 죽으면 나는 어떡하지?>, 다큐멘터리 감독인 자신의 직업적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담은 <찍으라는 영화는 안 찍고> 등 개인의 고민에서 출발한 기록이 여럿 출품됐다. 감독에게 사적 다큐멘터리는 자신의 이야기를 찍는다는 점에서 문제를 피하지 않고 더욱 집요하게 붙들고 갈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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