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하얀 행주 빨래 햇빛에 말릴 때 가장 행복”
  • 윤영무│MBC아카데미 이사 ()
  • 승인 2015.04.23 17:1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닭튀김 집 ‘계열사(鷄熱社)’ 여사장의 행복론

“사람들의 행복을 굳이 물질로 표현한다면 얼마일까?” 친구에게 물었더니 입가로 가져가던 커피 잔을 내려놓고 말했다. “사람마다 그 행복에 필요한 액수는 다르겠지, 어쨌거나 자기가 좋아하는, 남들보다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으면 되지 않을까. 거기에다 돈이 따라온다면 행복한 거지.” 내가 맞장구를 치면서 “혹시 그런 사람을 아느냐?”고 했더니 ‘계열사’라면 적당한 사례가 될 것이라고 일러준다.    

“대기업 계열사 말인가?”

“아니야, 닭튀김 집이지. 닭 계(鷄), 뜨거울 열(熱), 회사(會社)할 때 사(社), 세 자를 합친 거지.” 

“그런 집도 있어? 발칙하네. 그거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작명이다.” 나는 과연 그렇구나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친구에 따르면, 그 집은 입구에 대기자 명단 보드를 내걸고, 손님들이 직접 자기 이름을 써놓고 부를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주말에는 보통 30분 이상 걸리고 추가 주문을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왜?” 내가 물었다. “빨리 먹고 나가라는 거야. 다른 손님들도 들어와야 하니까.” “대단한데?” “굉장해. 한 마리에 2만원이라, 싸지 않은데도 손님이 끊이지 않으니.” “주인은 어떤 사람인데?” “60대 초반? 카리스마가 있는 할머니야. 떠드는 사람들은 다른 손님에게 방해된다며 바로 제압하지.” 한번은 그 사장이 밖에 나와 담배를 피우는 것을 보고, “그렇게 힘드시냐”고 물었더니 “손님이 하도 많아서, 이렇게라도 쉬려 한다”고 하더라며, 즐거운 비명이 아닐 수 없다고 했다. “음. 그건 어떤 일에 몰입할 때 오는 쾌감·희열·환희, 뭐 그런 절정의 순간이 아닐까?”

‘계열사’ 박선옥 사장 © 시사저널 이종현
실내는 갤러리로 착각될 정도

프라이드치킨은 기름에 튀긴다는 뜻의 작(炸)을 쓰고, 동사+목적어의 어순에 맞게 작계(炸鷄)로 해야 되지만 자장면보다 짜장면이 귀에 익듯 ‘작계사’라 하지 않은 것이 기발했다. 매스컴이 재벌을 비난하면서 계열사란 단어를 매일 습관적으로 써주니, 자동적으로 홍보가 되는 셈이라 사람들은 그 단어가 낯설지 않다. 문화적 상상력과 감각을 지닌 주인이라면, 그것도 60대 초로의 할머니라면 뭔가 행복의 지혜를 얻을 수 있을 듯했다. 똑딱 하는 1초 사이에 닭 한 마리를 소비하는 국내 시장은 물론 수십만~수백만 곳의 치킨점 경쟁이 치열한 시장에서 앞서가는 ‘계열사’의 비밀은 무엇일까.     

3월 중순의 평일 오후 4시를 택해 사전 연락 없이 찾아갔다. ‘계열사’의 옥상과 도로 높이가 수평을 이루고 있는 가운데 양철을 오려 만든 것 같은 두 마리의 닭이 서로 마주 보는 조형물이 ‘계열사’의 상징물로 옥상에 세워져 있다. 집중호우가 내리면 빗물이 콸콸 ‘계열사’로 흘러들어 물난리를 칠 것 같았으니, 장사하기에 결코 좋은 자리라고 할 수 없었다. 물이 모이는 곳에는 돈도 모인다는 속담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평일 그 시간에도 20평 내외의 ‘계열사’ 1층엔 빈자리가 없었다. 지하의 20평에는 가보지 않았다. 주로 젊은 남녀가 마주 앉아 데이트를 했고, 등산복 차림의 중·장년들이 섞여 있었다. 겉으로 허름해 보였지만 내부는 전혀 딴 분위기였다. 안으로 들어가보니 깔끔한 느낌이 드는 데다 고소한 냄새가 풍겨왔다. 기름에 쩐 냄새와는 분명 다르다. 2인용, 4인용 등 작고 단순한 30여 개의 식탁과 의자도 청결했다. 벽에 걸린 그림들도 예사롭지 않았다.

“제가 사장인데요.”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가진, 반백 머리를 올백 스타일로 빗어 넘기고 얼굴 피부색이 뽀얀 60대 초반의 할머니(라고 해야 편할 듯하다)가 두리번거리는 나를 보고, 자신을 단순명료하게 소개했다.  

“행복하지 않습니다. 힘들어요.” 사장은 단도직입적으로 내 예상을 부정하더니, 살색 파스를 붙인 양쪽 손목을 내밀어 보이며 말했다. “무거운 거 들다보니, 이 모양입니다. 손목이 아파요.” 나는 그 말을 듣고, 다시 오겠다는 인사를 하고 나왔다. 그곳에 다시 간 어느 주말 오후 7시. “주말은 바빠서 이야기할 시간이 없다니까!” 사장이 전화상으로 경고했지만 나는 우겼다.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적어놓고, 안으로 들어갔다. 저녁 10시쯤, 손님이 뜸해졌다. 사장은 “조금 기다리면 문화 사업을 하는 내 동생이 올 거야”라며 이 집 메뉴인 과메기와 생맥주를 내놓았다. 

주방 조금만 더러워도 불호령

“우리 다섯째 언니는 동생들에게 퍼주는 것을 너무 좋아해요. 그래서 복 받는 거예요. 7남매 중 가장 힘들게 살았는데도 그랬어요. 남들이 어렵다는 소리를 들으면, 그 순간 그게 언니 일이 돼버리는 겁니다. 그림 보이시죠? 여기 오시는 화가가 어렵다고 해서, 언니가 사준 그림이지요. 언니가 성공하는 이유는 굉장히 후덕하고 깨끗하게 하고, 정성을 다해요. 기본에 충실한 겁니다. 주방이 조금만 더러워도 불호령이 떨어지지요. 냉장고 겉과 속, 음식 엘리베이터가 늘 반들반들해요. 언니는 절대 남의 집 장을 안 먹어요. 직접 담그지요. 튀김용 기름을 수시로 바꿔요. 원가를 생각하지 않거든요. 언니는 돈을 얼마 버는지도 몰라요.” 한류 문화 상품 수출 사업가라는 사장의 막내 여동생이 말했다. 그녀에 따르면, ‘계열사’란 이름은 자신이 스크랩한 신문 기사를 참고해, 한 작명가가 만들어 온 것이었다.

닭튀김 집을 시작한 것은 30대였다. 대전에서 쌀장사를 하다 쫄딱 망하고, 먹고살기 위해 그 싸전 옆에 있던 닭집을 인수했던 것이 계기였다. 10년 전 지금의 자리로 와서도 그렇지만 평생을 솔직하고 정직하게 일하며 열심히 살았다. 안 팔린 것은 전부 버렸다. 식탁 세 개를 놓고 장사할 때, 어느 잡지사 기자가 혼자 와서 튀김닭 색깔이 곱다며 먹어보고 기사를 써줬다. 그때부터 입소문이 났다.

사장은 한쪽 테이블에 조용히 앉아 마늘을 까고 있었다.  

“사장님. 지금 행복하시죠?” 

“힘들어서 행복한 건지 뭔지 모르겠소.”

“돈을 많이 버셨잖아요. 남동생 집도 사주고, 부모님 산소에 수백만 원을 쓰셨다고 하던데.”

“돈 벌 줄도 모르고 그저 열심히 했어요. 큰 것이 아니라 행주를 하얗게 빨아 널 때가 제일 행복했던 것 같아요. 지금은 빨래가 너무 많아서 행복한 것 같지 않지만….”

어떻게 하면 후하게, 깨끗하게, 정성을 손님에게 다할 수 있을까. 사장의 막내 여동생은 그것이 언니가 평생 실천해온 장사의 정신이라며, 요즘도 아침마다 계열사를 청소 전문가들이 와서 청소한다고 귀띔했다. 직원은 14명. 자식이 없는 사장으로서는 모두 자식 같다. 7명이 서 있으면 꽉 차는 비좁은 주방이었지만 깨끗했다. 여동생이 필자를 배웅하며 ‘계열사’에서 100m쯤 떨어져 있는 두 동의 건물과 한옥 한 채를 가리키며 말했다. “우리 언니가 이번에 샀어요.” 그렇다면 행주 빨래를 할 때 가장 행복했다는 사장의 행복을 물질로 표현한다면 얼마일까. 행주 빨래를 할 때 들어가는 세탁비와 수고비, 그리고 옥상의 빨랫줄 설치비 정도라면 지나친 억지일까.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