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 장사꾼’ 배 불리는 죽음의 바다
  • 강성운│독일 통신원 ()
  • 승인 2015.04.28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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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만에 1000여 명 사망…지중해 밀항 산업 연 50억 유로 달해

2013년 10월3일, 이탈리아령 람페두사 섬 앞바다에서 난민선이 침몰해 368명이 사망했다. 지중해에서 일어난 난민선 좌초 사고로는 사상 최악의 규모였다. 난민 문제를 외면해온 유럽연합(EU)은 질타를 받았고, EU 회원국 정상들은 “재발 방지에 힘쓰겠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지중해의 비극은 계속되고 있다. 4월13일 리비아 해안에서 난민선이 침몰해 400여 명이 사망한 데 이어 5일 후인 18일에 또다시 리비아 해안에서 배가 좌초해 최소 700명의 난민이 목숨을 잃었다.

람페두사 참사가 일어난 지 1년 반이 지난 시점에서 불과 5일 사이에 사상 최악의 사고가 연거푸 터지자 유럽 사회는 뒤늦게 대책 마련에 나섰다. 그러나 구체적인 내용을 두고 나라와 정당마다 입장이 판이하게 갈려 해결이 쉽지 않아 보인다.

4월12일 한 독일 상선이 촬영한 지중해 난민선 모습. 침몰해가는 배 위로 불법 이민자들이 빼곡히 몰려 있다. ⓒ EPA 연합
민간 상선에 구조 활동 떠넘긴 EU 도마 올라

이탈리아 정부는 람페두사 참사 이후 ‘마레 노스트룸’ 프로그램을 마련해 적극적으로 지중해 난민 구조 활동을 펼쳤다. 매일 군함, 헬리콥터, 선전용 비행기 등을 동원해 난민이 발견되면 즉시 구조했다. 그 결과 마레 노스트룸이 시행된 1년간 지중해에서 구조된 난민은 10만명에 달했다. 351명의 난민선 브로커를 검거하는 성과도 올렸다.

이처럼 큰 성과를 냈음에도 불구하고 마레 노스트룸은 시행 1년 만에 중단되고 말았다. 이탈리아 정부가 매일 30만 유로(당시 약 4억원)에 달하는 구조활동 비용을 혼자 부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안젤로 알파노 당시 이탈리아 내무장관은 EU에 마레 노스트룸을 인계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토마스 드 메지에르 독일 내무장관을 중심으로 EU 내에 “마레 노스트룸 때문에 오히려 북아프리카인들이 마음 놓고 난민선에 오르고 있다”는 회의론이 퍼졌기 때문이다.

결국 지난해 11월 유럽국경감시기구 프론텍스(Frontex)가 이탈리아의 뒤를 이어 ‘트리톤’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그러나 트리톤 프로그램에 편성된 예산은 마레 노스트룸의 3분의 1인 하루 10만 유로에 불과했다. 게다가 전용 구조선은 단 한 척도 배정되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구조 활동 반경이 이탈리아 해안으로부터 30마일 이내로 대폭 축소되면서 사실상 아무런 효용이 없다는 비판이 일었다. 대다수 난민선은 바다 한가운데에서 침몰하기 때문이다.

이번 사고로 EU의 지중해 난민 대책이 명백하게 실패했음이 드러나자 자이드 라드 알 후세인 유엔 인권최고대표는 “고질적인 정책의 실패와 기념비적인 동정심의 결여로 인해 수백 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EU를 유례없이 혹독하게 질책했다. 헤리베르트 프란틀 독일 빌레펠트 법대 교수도 ‘쥐트도이체차이퉁’ 신문 사설을 통해 “이틀간 개최되는 EU 정상회담에 들어가는 돈이면 마레 노스트룸을 1년간 운영할 수 있다”며 EU의 가치 체계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고 맹비난했다.

EU가 외면한 지중해 한복판의 보트 피플을 구조한 것은 민간 상선(商船)이었다. 이탈리아 해안경비대가 사고 해역 근처를 지나던 상선에 구조를 요청한 것이다. 민간 상선이 조난자를 구조하는 일은 전에도 있었지만, EU가 지중해 난민 구조 활동의 범위를 대폭 축소하면서 민간 상선의 부담은 점점 커지고 있다. 랄프 나겔 독일해운연맹 대표에 따르면 지난해 유럽 해상에서 민간 상선이 구조한 난민은 4만명이었는데 올해는 그 수가 10만명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나겔 대표는 ‘쥐트도이체차이퉁’과의 인터뷰에서 “인명 구조는 뱃사람들에게 법적 의무이며 명예지만 최근 우리가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수준에 도달했다”고 말했다. 경제적인 손실도 생기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선원들이다. 짧게는 5시간, 길게는 꼬박 36시간이 걸리는 구조 활동은 체력은 물론 정신적으로도 극한 상황으로 몰아가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말타와 리비아를 오가는 독일 상선 오필로크 호의 선원 두 명이 배 타는 일을 관두기로 했다. 얼마 전 지중해에서 난민선을 구조하다가 끔찍한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오필로크 호가 접근하는 것을 본 난민들이 한꺼번에 갑판 한쪽으로 몰려들면서 배가 뒤집혔고, 배에 타고 있던 300명 중 180명이 사망했다. 애써 물에서 건져올린 난민들 중 일부는 갑판 위에서 저체온증으로 숨졌다. 특히 어린아이들이 구명조끼에서 빠져나가 끝내 목숨을 잃는 모습을 눈앞에서 지켜본 선원들은 더 이상 항해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트라우마를 입었다. 이 같은 일이 반복되자 독일해운연맹은 최근 페터 알트마이어 독일 총리실장에게 공개서한을 보내고 정치권의 행동을 촉구했다. 갑판 위에서 난민들이 죽는 일이 없도록 헬리콥터 등을 이용해 의료 인력을 보낼 것, 독일 연방군의 지원과 국경 수비를 강화할 것 등이 담긴 요구 사항이 전하는 메시지는 하나다. 정치적인 문제를 민간에 떠넘기지 말라는 것이다.

“비극의 직접적 원인 브로커를 잡아라”

참사 직후인 4월20일, 각 EU 회원국 내·외무장관은 긴급회의를 열고 향후 대책을 논의했다. 이날 회의에서 EU위원회는 수색 및 긴급 해상 구조의 확대, 난민 브로커 근절, 분쟁 국가 국민을 위한 합법적 망명 통로 개설 등을 포함한 10개 안을 내놓았다. 이번에 발표된 10개 안이 시행될 경우 트리톤의 예산은 현행 연간 300만 유로에서 600만 유로로 늘어난다. 그동안 EU의 보수 정치인들은 트리톤 확대를 주저해왔다. 특히 드 메지에르 독일 내무장관은 사고 발생 불과 일주일 전에도 “난민 구조 활동은 밀항 브로커에게 주는 보조금”이라고 주장했다.

10개 안에는 지중해 난민 브로커를 체계적으로 소탕하자는 내용도 담겨 있다. 난민 브로커는 지중해 비극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조각배에 1000명 가까운 사람을 실어 망망대해로 내보내기 때문이다. EU위원회는 아프리카 해역의 해적 소탕 작전을 본떠 불법 난민선을 아예 몰수하고 파괴할 것을 제안했다.

2011년 북아프리카 지역의 정세가 극도로 불안정해지면서 난민 수송은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 잡았다. 리비아는 자국민뿐 아니라 시리아·아프가니스탄·에리트레아 등의 피난민들이 몰려들면서 유럽으로 향하는 환승 국가가 되었다. 난민 산업이라는 말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지중해를 오가는 배 한 척에 거액의 돈이 오가고 국제적인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이다. 난민 브로커를 추적해온 이탈리아의 저널리스트 잠파올로 무수메치는 “밀항 산업의 규모는 지중해에서만 연간 50억 유로에 달한다”고 추산했다. 이스탄불이나 로마, 트리폴리스에 있는 선주와 리비아 현지의 밀항꾼, 매수된 경찰, 유럽 곳곳의 난민 브로커 등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뒤엉켜 있다.

내전에 시달리는 북아프리카 주민들에게 난민선은 희미한 희망이다. 그러나 브로커에게 난민선은 이윤이 보장된 장사다. 리비아를 출발해 이탈리아 람페두사로 가는 뱃삯은 무려 3000유로에 달한다. 하지만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럼에도 배에 오르려는 사람들은 끊이지 않는다. 가만히 있다가는 언제 총탄에 맞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난민선에 몸을 맡긴 이들의 생사는 철저히 돈의 액수에 따라 갈린다. 무수메치는 “뱃삯이 적어질수록 배는 노후하고 승객 수는 늘어난다. 돈이 없는 사람은 목숨으로 그 대가를 치른다”고 밝혔다. 그는 “선장 몇 명을 붙잡아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배후에 있는 선주를 잡거나 좀 더 근본적으로 리비아의 정치 상황이 안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EU위원회의 10개 안이 시행될 경우 EU가 리비아 정부를 대신해 본격적으로 브로커 소탕에 나서게 된다.


난민 문제의 대부분을 떠맡고 있는 마테오 렌치 이탈리아 총리(왼쪽)와 그리스의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 ⓒ AP 연합
EU위원회가 내놓은 10개 안 중에는 더블린 조약 개선안이 포함돼 있어 눈길을 끈다. 현재 난민들은 2003년 개정된 더블린 조약에 따라 처음으로 땅을 밟은 나라에서 망명을 신청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그 결과 이탈리아·그리스 등 일부 국경 지역 국가가 난민들을 떠안게 되면서 EU 내륙 국가와 지중해 국가 간에 갈등이 빚어졌다. 난민 수용 능력이 한계에 이른 이탈리아가 난민들에게 차비를 쥐여주고 몰래 내륙 국가로 보내기도 했고, 내륙 국가들은 “국경 국가의 난민 수용 시설이 열악하다”고 지적하면서도 정작 실질적인 도움은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10개 안은 이러한 문제를 인정하고 난민 분배를 공평하게 하기 위해 시범 프로젝트를 마련했다. 난민 5000명을 대상으로 무조건 최초로 도착한 나라에서 망명 절차를 밟는 대신 경제 상황과 인구 등을 고려해 여러 회원 국가로 건너가 망명 신청을 하게 하는 것이다.

독일의 정치권과 시민사회는 더블린 조약뿐 아니라 EU의 망명 정책 자체를 두고 논쟁을 벌이고 있다. 드 메지에르를 비롯한 EU의 보수 정치인들은 난민 발생 국가에 이른바 ‘망명 센터’를 설치하자고 제안했다. 피난민이 무모하게 목숨을 걸고 지중해로 나서지 않게 현지에서 망명 신청을 받고 자격을 심사하자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인권단체인 프로 아쥘(Pro Asyl)과 독일의 좌파당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정책”이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망명 신청을 거절당한 사람들이 불법 난민선에 오를 것이 빤하기 때문이다. 독일의 녹색당과 좌파당은 “불법 난민선을 없애려면 합법적으로 유럽에 건너올 수 있는 길을 마련해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EU가 북아프리카 분쟁 국가 국민들의 ‘안전한 사회’에서 살 권리를 적극적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럽 사회는 인간성과 자유라는 유럽 문화의 핵심 가치를 어떻게 지켜나가고 또 얼마나 실천할 수 있을까. 지난 1월 ‘샤를리 에브도’ 테러 사건이 일어난 후 유럽 각국의 정상들은 서로 팔짱을 끼고 파리 시내를 걸었다. 그리고 4월23일 이들은 다시 한 번 한자리에 모여 난민 문제 해결을 위한 10개 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이것은 아직 실천이 아니다. 유럽의 시험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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