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대박녀’라 불러주세요”
  • 안성찬│골프 칼럼니스트 ()
  • 승인 2015.04.28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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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영, 올 시즌 LPGA 투어 진출 ‘벌써’ 2승

#1. 2015년 4월19일, LPGA 투어 롯데챔피언십 최종일. ‘루키’ 김세영(22·미래에셋)이 기적 같은 드라마를 연출했다. 17번 홀에서 박인비(27·KB금융그룹)는 세컨드 샷이 그린 오른쪽 벙커에 빠졌다. 그런데 절묘하게 홀에 붙여 파 세이브에 성공했다. 이에 질세라 김세영도 파로 막아 11언더파 동타를 이루며 공동 선두. 18번홀(파4)에서 김세영의 하이브리드 티샷이 그린과 페어웨이 사이 워터해저드에 퐁당. 위기였다. 김세영이 웨지를 잡고 친 볼은 깃대 앞 5.5.m 그린 에지에 떨어졌다.

박인비가 5번 우드로 친 볼은 왼쪽 러프로 갔다. 박인비는 편안하게 그린에 올렸지만 거의 15m나 지나쳤다. 그런데 첫 번째 퍼트가 OK를 받을 정도로 홀과 한 뼘에 붙어 파를 확정지었다. 핀을 뽑고 칩 샷을 한 김세영의 볼은 그대로 홀로 빨려들어갔다. 물에 볼을 빠뜨리고 파 세이브를 한 것이다. 김세영은 손을 번쩍 치켜들며 환호성을 질렀다. 18번 홀에서 박인비와 연장전에 들어갔다.

4월19일 LPGA 투어 롯데챔피언십 우승 트로피에 입맞추는 김세영. ⓒ AP 연합
그런데 김세영의 세컨드 샷이 홀을 바로 파고들어 환상의 이글을 작성하며 피날레를 장식했다. 김세영이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롯데챔피언십(총상금 180만 달러)에서 우승한 것이다. 역전에 재역전이었다.

#2. 2013년 9월8일, KLPGA 투어 한화금융클래식 최종일 17번 홀에서 극적인 드라마가 연출됐다. 남은 홀은 2개. 김세영은 유소연(25·하나금융그룹)에 3타나 뒤져 있었다. 

파3, 17번 홀(168야드). 김세영은 6번 아이언을 잡았다. 샷을 한 볼은 그린을 향했고, 깃대 7m 앞에 낙하하더니 홀로 빨려들어갔다. 홀인원이었다. 이날 10번 홀 이글에 이어 엄청난 행운을 잡은 것이다. 볼이 날아가는 것을 제대로 볼 수 없었던 그는 주위의 환호성을 듣고 옆에 서 있던 캐디에게 “진짜 들어갔어?”라고 물었다. 

태권도 3단, 탄탄한 하체와 유연성

이 홀인원으로 김세영은 한 홀을 남겨둔 상태에서 선두에 1타 차로 따라붙었다. 유소연은 18번 홀에서 보기를 범했고, 파를 잡은 김세영은 경기를 연장전으로 끌고 가 이겼다. 이날 김세영은 우승 상금 3억원, 홀인원 부상으로 1억5000만원 상당의 벤츠 SUV(G350), 계약사 보너스 등 6억원의 ‘잭팟’을 터뜨렸다. 

야구는 9회 말 투아웃부터라는 말이 있다. 골프의 결과는 마지막 18번 홀에서 장갑을 벗어봐야 안다. 김세영(22·미래에셋)을 보면 이 말이 실감난다. ‘역전의 명수’라는 말이 김세영에게 잘 어울린다. 선두에 나섰다가 그대로 우승한 적이 거의 없다. 지고 있다가 뒤집어버리는 묘한 재주가 있다. 

김세영은 태권소녀였다. 부친이 태권도장을 운영해 걷기 시작했을 때부터 태권도를 했다. 덕분에 체력과 운동감각을 타고났다. 163cm 키에 태권도 3단이다. 탄탄한 하체와 유연성이 강점이다. 이것이 그가 280야드 이상 장타를 날리는 비결이다.

그런데 그의 강력한 무기는 무엇보다 강한 정신력이다. 여기에 승부사 기질이 깊게 자리 잡고 있다. 그는 승부를 즐기는 스타일이다. 진정한 승부를 가릴 때 짜릿함을 맛본다고 한다. 이것은 승리근성으로 이어져 종종 욕심을 부리기도 한다. 파를 잡아도 되는 홀에서 그는 공격적인 샷으로 버디를 노린다.

한화금융클래식 마지막 날도 그랬다. 이글과 홀인원의 행운이 따랐지만 그는 우승의 희비가 갈린 홀은 16번이라고 했다. 티샷이 오른쪽으로 밀려 깊은 러프에 빠졌다. 까다로운 라이. 클럽이 긴 풀에 감길 것은 빤한 일. 그린에 올린다는 보장도 없고. 이때 강공을 선택했다. 7번 아이언으로 샷을 했다. 볼이 홀에서 3m에 붙었다. 이때 그는 자신도 모르게 “대박!”하고 소리쳤다. 이것이 방송 카메라에 잡혀 한동안 닉네임이 ‘대박녀’가 됐다.

강한 정신력이 최강의 무기

올 시즌 LPGA 투어에 진출해 2승을 거두며 성공적인 루키 시즌을 보내고 있지만 김세영도 힘겨운 시절이 있었다.

국가대표를 지낼 때는 기량이 돋보였다. 하지만 프로에 데뷔하면서 뭔가 자꾸 어긋났다. 그는 골프를 좀 더 알고 싶어 여러 가지를 시도했다. ‘더 잘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편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를 궁리한 것이다. 좀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언젠가 반드시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실패의 연속이었다. 이는 2부 투어를 뛰는 그의 발목을 소리 없이 잡았다.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을 앞두고 그는 국가대표를 포기하고 프로로 전향했다. 그는 당시 2016년 올림픽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루라도 빨리 프로 무대에 적응해서 올림픽 대표로 선발되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다. 

그러나 프로 무대는 녹록하지 않았다. 2010년 한국 여자프로골프(KLPGA) 2부 투어에서 정회원이 됐지만 컷오프도 많이 당했다. 시드 순위전을 5위로 통과하면서 2011년부터 1부 투어에 합류했다.

자신의 스윙을 고집했지만 성적은 좋은 편이 아니었다. 루키 시즌이 끝날 때쯤 ‘다시 첫 단추를 꿰어보자’는 마음가짐으로 임했다. 목표가 컷 통과였다. 2년간 무명이었던 셈이다. 그러다가 2013년 3승을 거뒀고, 지난해 1승을 추가한 후 미국행을 결심했다.

그가 늘 잊지 못하는 것이 두 가지 있다. “검은 띠를 딸 때가 됐는데도 아버지는 다시 심사를 했죠. ‘검은 띠를 딸 수 있는 실력이 아니다’며 노란 띠로 내려보내곤 한 것입니다. 뭐든 쉽게 얻으면 다른 것도 쉽게 얻을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는 걸 우려하셨던 것 같아요. 골프를 배우면서도 느꼈던 부분입니다. 쉽게 얻고 편안하게 갈 수 있는 길은 어디에도 없다는 걸 말이죠.”

또 있다. 2013년 LPGA외환·하나은행챔피언십. 선두권을 형성하다가 미셸 위, 수잔 페테르센(스웨덴)과 함께 공동 3위에 그쳤다. 우승을 놓친 아쉬움이 컸다. 집에 돌아오는 차 안에서 창밖을 보는데 자꾸만 눈물이 흘렀다. 

“그날 저녁이었어요. 오빠가 저에게 뛰어오더니 밝은 목소리로 ‘나는 네가 우승을 할까 걱정했다’는 거예요. ‘네가 우승을 해서 바로 미국으로 가면 아무런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또 고생을 할 거 아니냐, 여기서 충분히 준비를 하고 가라는 하늘의 뜻으로 받아들여라’라고 위로를 해주는 것이었어요. 그때 저는 결과를 냉정하게 받아들이기로 했죠. 지금 제가 이렇게 우승하는 데 마음을 다잡는 밑거름이 되고 있어요.”

아직은 루키여서 시작이다. 하지만 장타력에 강한 멘탈까지 갖고 있는 김세영이 몇 승을 더 추가할지 팬들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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