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조카 개입한 헤지펀드에 잠긴 돈의 비밀
  • 이승욱·엄민우 기자 (gun@sisapress.com)
  • 승인 2015.04.29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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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우리투자증권 2000만 달러 투자…MB 퇴임한 2013년 말 폐쇄

‘성완종 리스트’ 파문은 거대한 블랙홀이다. 애초 검찰 등 사정기관은 전 정권인 MB(이명박) 정부를 겨냥했다. 4대강 사업 비리 수사에 이어 방산 비리, 그리고 해외 자원개발 사업 비리로 이어지는 이른바, ‘사자방’ 수사의 과녁은 MB 정부였다. 하지만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여권 유력 정치인을 상대로 금품 로비를 벌였다는 폭로가 나오면서, 현 정권의 부정부패 스캔들로 비화하고 있다.

검찰 수사가 박근혜 정부에 민감한 대선 자금 수사로까지 확대될 여지가 적지 않은 상황에서, MB 일가와 측근 등 MB 정부 시절 핵심 실세를 향해 휘몰아치던 사정 바람도 한풀 꺾인 모양새다. 하지만 MB 정부 당시부터 수없이 제기돼온 의혹을 말끔히 지울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MB 정부를 둘러싼 여러 의혹들이 쌓여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미국 플로리다 주 올랜도에서 기독실업인회(CBMC) 본회가 주최하는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출국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런 가운데 시사저널은 MB 정부 당시 제기된 의혹들을 다시 짚어봤다. 특히 이명박 전 대통령과 일가, 그리고 측근들의 움직임을 집중적으로 살폈다. 이 과정에서 흥미로운 움직임이 감지됐다. 이 전 대통령의 조카와 측근을 중심으로 조성·운용됐던 헤지펀드 BRIM(Blue Rice Investment Management)의 동향이다.

BRIM은 싱가포르를 거점으로 운영된 헤지펀드 ‘BRIM ASIAN CREDIT FUND’(BRIM 펀드)를 운용한 투자회사다. 지금까지 BRIM 펀드의 정확한 자산 운용 규모는 확인되고 있지 않지만 최대 1억 달러에 달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BRIM은 2009년 말 KIC(한국투자공사)의 투자운용본부장(CIO)을 퇴직한 말레이시아인 구안 옹 대표(founder & principal)가 설립한 투자회사로, BRIM 펀드는 싱가포르를 기반으로 한 아시아권 헤지펀드다.

이상득 전 의원의 아들 이지형씨. 그는 2011년 7월 싱가포르 헤지펀드인 BRIM에 영입됐다. ⓒ 뉴스뱅크 이미지
설립자, MB 퇴임한 해 돌연 투자비 반환

그런데 시사저널 취재 결과 BRIM이 운용하던 BRIM 펀드가  이명박 전 대통령이 퇴임한 해인 2013년 말에 폐쇄된 것으로 확인됐다. 펀드 폐쇄에 따라 BRIM은 2013년 말까지 펀드 투자금을 투자자들에게 반환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BRIM이 운영한 것으로 알려진 인터넷 홈페이지도 현재 접속이 되지 않고 있다.

BRIM이 설립 이후 국내에서도 주목받은 것은 이 펀드의 주요 임원으로 있으면서 펀드 조성에 관여한 인물이 MB의 친인척이기 때문이다. MB의 형인 이상득 전 의원의 장남인 지형씨가 2011년 7월 BRIM의 마케팅담당 이사로 취임했다. BRIM 설립자인 구안 옹 대표는 마케팅담당 이사 자리를 새로 만들어 지형씨를 영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형씨가 BRIM으로 영입되자 BRIM이 MB 일가와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지형씨는 BRIM 이사로 영입된 이후인 2012년 3월 국내 한 언론사와 가진 인터뷰에서 “BRIM은 유럽과 아시아권에서 투자자를 모으고 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한국을 오가면서 투자자들과 관계를 유지하고 비즈니스 거리를 찾고 있다”며 BRIM 펀드 조성에 적극 관여하고 있음을 시인했다. 당시 그는 “적절한 시기에 자산운용회사를 만들어보고 싶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이씨가 BRIM 이사로 영입된 지 2년여 만에 BRIM 펀드는 폐쇄 수순을 밟았다. 특히 폐쇄 결정을 내린 시점이 공교롭게도 이 전 대통령의 퇴임 직후라는 점에서 의도가 무엇인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BRIM은 MB 재임 시절 펀드 조성이 본격적으로 이뤄졌다. 특히 우리금융지주 계열사였던 옛 우리투자증권(현 NH투자증권)은 2009년 12월 BRIM 펀드에 2000만 달러를 투자했다. 우리투자증권의 사업보고서를 보면, 당시 우리투자증권은 한화 233억4800만원을 BRIM 펀드에 투자한 것으로 나타났다. 설립 초기 지분의 85.11%에 달하는 규모다.

우리투자증권의 BRIM 지분율은 2011년 3월 기준 71.4%로 하락한 이후 2012년 3월 38.27%로 대폭 떨어졌다. 당시 지분율 하락은 지분 회수에 의한 것이 아니라 BRIM 펀드가 별도의 투자비를 확충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사실상 우리투자증권이 투자한 돈을 종잣돈으로 삼아, 2년여 만에 BRIM이 덩치를 확 키운 것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실소유 논란이 끊이지 않는 자동차 부품업체 다스(DAS)의 북미공장 착공식 현장에 나타난 이 전 대통령의 아들 이시형씨(오른쪽 두 번째). ⓒ 연합뉴스
우리투자증권, BRIM 설립 때 85% 지분 투자

우리투자증권은 MB 정부 시절인 2009년 10월31일 리스크관리위원회를 열어 ‘BRIM 펀드에 대한 투자의 건’을 가결했다. 그로부터 한 달 후인 2009년 11월30일 투자를 실행했다. 당시 우리투자증권은 지분 85.11%를 보유했지만, 매도 가능 증권으로 수익 및 운용에서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투자를 했다.

우리투자증권은 2007년부터 싱가포르·말레이시아 등지에 100% 지분을 투자한 별도의 계열사를 두고 있었다. 우리투자증권은 BRIM 펀드가 자금 반환 등 펀드 폐쇄 조치를 취하던 중인 2013년 9월 환매를 했다. 우리투자증권을 합병한 NH투자증권에 따르면, 우리투자증권은 BRIM 펀드 투자 기간 동안 6.6%의 수익률을 올렸다. NH투자증권 관계자는 “BRIM에 투자한 후 이익 실현을 한다는 차원에서 환매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지형씨의 BRIM 영입 이후, 우리투자증권의 BRIM 펀드 투자를 이씨와 연결 지으며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우리투자증권이 신생 펀드인 BRIM에 2000만 달러라는 거액을 투자한 것과 관련해 MB 일가의 영향력이 작용한 것이라는 게 의혹의 핵심이었다.

하지만 이씨는 이러한 논란에 대해 “BRIM에 입사한 것은 2011년 7월인데 우리투자증권이 BRIM에 돈을 맡긴 건 2009년”이라며 “우리투자증권은 구안 옹 대표가 푸르덴셜자산운용에서 보여준 실력을 믿고 투자했고, 초기 투자자로서 BRIM의 수수료 수입 20%를 받는다는 점을 고려했다고 밝힌 바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논란의 뿌리는 BRIM의 설립자인 구안 옹 대표와 이지형씨의 관계다. 구안 옹 대표가 한국투자공사(KIC)의 CIO로 근무할 당시인 2008년 1월, KIC는 메릴린치 의무전환우선주에 2조원을 투자해 약 7200억원의 손실을 봤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부실 자원외교에 견줄 정도로 큰돈이다.

2008년 10월21일 당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이 문제에 대한 지적이 나왔다. 당시 국정감사 회의록을 보면 당시 메릴린치 투자와 관련해 ‘외압’이 있었는지 등에 대한 질의가 집중됐다. 이에 대해 구안 옹 당시 CIO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우리는) 메릴린치 외에도 여러 가지 투자제안서를 보았고 그중에서 합당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메릴린치 투자였다. 투자를 결정할 당시에 (나와) KIC 내부의 팀이 이를 결정했다.”

이지형-구안 옹 둘러싼 의혹들

구안 옹 대표가 직접 언급한 것처럼, 그는 메릴린치 투자를 결정했다. 그런데 이 투자 배경에 이상득 전 의원의 아들 지형씨가 있다는 의혹도 있었다. 구안 옹 대표와 이지형씨는 2004년 외국계 자산운용사 사장들의 모임에서 인연을 맺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는 이러한 의혹들에 대해 이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메릴린치 투자 과정에도 개입했다고 하는데 이는 사실무근”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후 구안 옹 대표가 BRIM을 창립하고 2011년 이씨를 마케팅담당 이사로 임명하면서 또다시 둘의 관계에 대해 의혹이 제기됐다.

2008년 국감 당시 구안 옹 CIO는 박병석 의원으로부터 메릴린치에 투자할 당시 투자 운용안에 대해 회의를 열지 않고 서면으로 의결한 점을 지적받기도 했다. 이에 대해 구안 옹 대표는 “멤버들이 소규모 인원이었기 때문에 서면으로도 가능했다”고 해명했다.

한편 시사저널은 BRIM 펀드의 폐쇄와 관련된 의혹 등에 대한 이지형씨의 설명을 듣기 위해 이메일을 보냈지만 4월24일까지 아무런 입장도 들을 수 없었다.

 


ⓒ 연합뉴스
MB 정부 시절 각종 의혹을 몰고 다녔던 구안 옹 BRIM 대표(사진)는 중국계 말레이시아인이다. 1986년 런던 임페리얼 대학을 졸업하고 1990년 미국의 투자은행 ‘Credit Suisse First Boston’에서 금융인으로 ‘입봉’했다. 2001년부터 2004년까지 ‘더 에셋(The Asset)’지로부터 최우수 아시아 달러 채권 투자가로 선정되는 등 아시아 지역 투자 전문가로 이름을 날렸다.

그의 주 활동 무대는 싱가포르다. 싱가포르 정부와 투자청(GIC)이 주도한 자산운용업 및 금융 허브 사업에 참여했으며 2002년엔 싱가포르 국립대학기금 펀드를 운용하는 투자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했다. 미국 푸르덴셜금융그룹 글로벌투자 총괄책임자 및 한국 푸르덴셜자산운용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이후 한국투자공사(KIC)와 3년 계약을 맺고 CIO(투자운용본부장)로 활동했는데, 이때부터 각종 의혹을 받았다. 2006년 국정감사에서 당시 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은 “구안 옹의 경력이 한국투자공사법이 정한 자격 규정인 ‘10년 이상 투자 업무 종사’ 규정에 못 미친다”고 의문을 제기한 바 있다.

KIC의 CIO에서 물러난 후 다시 싱가포르로 건너간 구안 옹 대표는 아시아 헤지편드 운용사 BRIM을 설립하고, 이상득 전 의원의 아들 이지형씨를 마케팅 이사로 고용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정가에서는 두 사람의 관계를 두고 뒷말이 파다했다.

 


 
 

MB 일가·측근 2세들 어디서 뭐 하나 


싱가포르 투자회사 BRIM의 마케팅담당 이사로 근무한 이상득 전 의원의 아들 이지형씨가 이후 미국 한 대학으로 활동 무대를 옮긴 사실이 확인됐다. ‘JAY LEE’라는 영문 이름을 사용하는 그는 이곳에서 객원연구원으로 명시돼 있었다. UC어바인의 비즈니스스쿨인 ‘The Paul Merage School of Business’ 사이트에는 그에 대한 소개가 올라와 있다. 이곳에 산업 객원연구원(Visiting Industry Researcher)으로 명시돼 있던 그는 BRIM(Blue Rice)의 마케팅 이사 및 맥쿼리 IMM 설립자 등으로 소개돼 있다.

그가 자리를 잡은 곳은 미국 캘리포니아 주 오렌지카운티 어바인이라는 도시에 있는 주립 종합대학 UC어바인이다. 노벨상·퓰리처상 수상자들을 배출한 이곳에는 노벨상 수상자 3명이 교수로 근무하고 있다. 미국 현지 매체 머니매거진이 발표하는 각종 우수 대학 순위에서 상위권에 랭크되는 ‘명문’이다.

어바인은 캘리포니아에서 2번째로 소득이 높은 도시다. 생활환경과 치안이 좋아 자녀를 유학 보내려는 한국인들이 선호하는 곳이다. 학부모들 사이에 ‘미국의 8학군’으로 불리기도 한다. 미국 FBI가 8년 연속으로 꼽은 미국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다. 연예인 손지창·오연수 부부도 아이 교육 차 이곳으로 왔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자녀 교육환경 등을 고려해 갔을 것”이란 추측이 나온다. 한인 출신 시장이 당선되기도 할 정도로 특히 한국인들의 입김이 강하기로 유명하다.

정치권에서 특히 그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고 있는 이유는 그를 자원외교 부실 투자와 관련해 검찰에 고발된 김형찬 메릴린치 서울지점장과 가까운 관계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내에 좀처럼 들어오지 않는 그의 행보를 두고 도피성 해외 체류라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한다. 본지는 이지형씨가 현지에서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등과 관련해 이메일로 질문을 했지만 답을 받지 못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집사로 알려진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의 아들 김형찬씨는 MB 정부 시절 대표적 자원외교 실패사례로 꼽히는 캐나다 하베스트 투자 실패와 관련해 의문의 자문을 해 국고 손실을 입혔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아들인 시형씨는 현재 자동차 부품업체 다스에 전무로 근무하고 있다. 일각에선 “미국으로 갔다”는 소문이 파다했으나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다스의 한 관계자는 “지금도 본사에 정상적으로 매일 출퇴근하며 남들처럼 회사 생활을 하고 있다. (시형씨가) 외국으로 출장 및 여행을 갔을 때 나온 오해일 것”이라고 말했다.

회사 안팎에서 지켜보는 눈이 많아 조용히 회사에 다니던 그는 최근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다스는 수년 전부터 이명박 전 대통령이 실소유자라는 의혹을 받는 곳이다. 그는 올해 1월 입사한 지 4년 만에 전무로 초고속 승진했다.

그는 2008년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돈 기업 한국타이어에 인턴으로 입사해 정식 사원으로 발령받았다가 2009년 퇴사한 적이 있다. 이후 그가 과장으로 입사한 곳이 다스다.

때문에 정치권에선 사실상 다스의 후계자 행보를 걷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파다하다. 현재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설립한 재단법인 청계가 다스의 지분 5%를 소유하고 있다. 이 전 대통령의 친구로 알려진 김창대씨도 4%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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