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박 찰 줄 알면서 왜 자꾸 거짓말을?
  • 하재근│문화평론가 ()
  • 승인 2015.04.30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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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서 진실 터져 나오는 디지털 시대…대중은 공인의 뻔뻔함에 분노

이완구 국무총리가 결국 사퇴했다. 돈을 받았다는 결정적인 증거도 없는 상황에서 일국의 총리가 밀려나고 말았다. 어떻게 보면 여론 재판과도 같은 양상이었다. 명백한 증거가 나온 것도 아닌데 사람들은 이완구 총리를 질타했고, 여야가 모두 등을 돌렸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돈을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불거졌기 때문이다. 바로 ‘거짓말’과 ‘말 바꾸기’ 문제다. 처음부터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과 긴밀한 관계였음을 인정하고 돈 문제에 대해서만 부정했으면 일이 이렇게 악화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성 전 회장과의 관계 자체를 부정하는 바람에 둘 사이의 긴밀한 관계 정황이 드러날 때마다 거짓말 논란에 휩싸였고, 두 사람 사이의 1년간 전화 착발신 횟수가 무려 200여 차례에 달한다는 보도가 나온 후 여당까지 완전히 등을 돌리고 말았다. 그 밖에도 유세 참여 관련 말 바꾸기라든가, 선거사무소에서 성 회장을 만난 적이 없다고 했다가 기억이 안 난다고 바꾼 점, 스마트폰 한 대에서 전화기 두 대로 바뀐 대목 등이 이완구 총리의 발목을 잡았다. 여기에 지난 총리 인준 당시 언론 외압 발언을 한 적이 없다고 했다가 녹취록이 공개된 후 사과한 일까지 더해져, 설사 돈을 안 받았다고 해도 대중이 이완구 총리를 더 이상 국무총리로 인정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 시사저널 최준필, ⓒ 연합뉴스, ⓒ 뉴스뱅크이미지
순간의 잘못보다 거짓말이 더 문제

과거 김태호 전 총리 후보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과 처음 만난 시점이 2007년 이후라고 했다가 야당 질의 후 2006년 경남도지사 선거 이후라고 말을 바꿨다. 그런데 2006년 지방선거 이전에 박연차 회장과 함께 찍은 사진이 공개되며 결국 낙마하고 말았다. 잘못한 내용 그 자체, 의혹의 실체보다 그 의혹을 해명하는 과정에 등장한 거짓말에 국민이 싸늘한 시선을 보내는 것이다.

정치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중을 상대하고 실정법보다 정서법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는 점에서 정치인과 매우 유사한 입장에 있는 연예인들 사이에서도 거짓말로 큰 타격을 받는 일이 반복된다. 최근 인터넷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태임-예원 사건’만 해도 그렇다. 예원이 애초에 자신의 반말을 인정하고 유감 표명 정도만 했더라도 이토록 크게 이슈가 되지 않고 넘어갈 일이었다. 반말의 내용이 ‘안 돼, 아니 아니’ 정도의 수준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귀엽게 봐주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예원 측은 반말 자체를 전면 부정했고 이후 동영상이 유출되면서 거짓말이 탄로 나고 말았다. 거짓말을 알게 된 대중은 이제 예원을 질타하고 있다.

처음엔 예원보다 이태임이 훨씬 큰 잘못을 저질렀다. 예원의 경우에는 ‘안 돼, 아니 아니’ 정도의 애교로 볼 수도 있는 반말에 불과했지만 이태임은 욕설을 퍼부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태임보다 예원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훨씬 크다. 사람들이 욕설보다 거짓말을 더 나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태진아 억대 도박 의혹 사건 때도 태진아가 말 바꾸기로 곤욕을 치렀다. 도박장에 간 횟수나 베팅 액수 등의 내용이 자꾸 변했기 때문이다. 한 방송 시사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때 생방송 중에 발언 내용이 바뀌기도 했다. 이런 모습을 본 사람들은 태진아 억대 도박 의혹의 진실 여부와 별개로 태진아를 질타했다. 처음부터 도박장에 간 횟수를 정확히 말했으면 여론이 그렇게 악화되지 않았을 것이다.

신정환도 마찬가지다. 처음에 도박 사실을 깨끗이 인정하고 사과했으면 지금보다는 여론이 우호적이었을 것이다. 도박 의혹이 불거진 후 병원에 누워 있는 인증샷으로 거짓말을 했기 때문에 여론이 최악으로 치달았다. 유승준에 대한 정서가 아직까지 차가운 것 역시 “입대하겠다”는 거짓말이 큰 영향을 미쳤다.

거짓말은 기업 활동에도 위기를 초래한다. 이른바 ‘땅콩 회항’ 사건 당시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자신의 폭언을 인정하고 사과했다면, 한 번 질타받고 정리됐을 일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잘못을 부정하고 승무원에게 모든 잘못을 전가했으며 심지어 진실 은폐 논란까지 불거지면서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고 말았다. 진실을 말했으면 사과 한 번으로 끝났을 일인데, 일단 거짓말을 하자 나중엔 거듭 사과해도 용서를 받지 못하는 지경이 되었다.

대중의 인식 ‘거짓말=인격’

잘못은 인격이 아니다. 그러나 거짓말은 인격이다. 바로 이것이 대중이 거짓말에 민감한 이유다. 잘못을 했으면 그 잘못에 대해 사과하고, 죗값을 치르고,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으면 된다. 그러면 대중이 그 사람을 다시 받아들일 때가 많다. 특히 우리 사회는 인정 사회이기 때문에 진정성 있는 반성에 약하다.

반면에 거짓말은 그 사람의 인격을 말해준다고 여겨지기 때문에 대중이 그 사람 자체를 불신하게 된다. 특히 한국 같은 인정 사회, 관계 사회에서 사람됨에 대한 불신은 치명적인 타격을 초래한다. 믿지 못할 사람을 누구도 보기 싫어하게 되는 것이다. 연예인이 거짓말을 하게 될 경우, 그렇게 사람됨에 문제가 있는 이를 TV에서 보기 싫다는 대중심리가 생겨난다. 게다가 공직자·정치인의 거짓말은 국가적 신뢰의 붕괴로 이어지기 때문에 더욱 큰 분노가 나타나기 마련이다.

잘못을 저지른 후엔 그것을 솔직히 인정하고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는 것이 최선이다. 잘못을 인정한 것 때문에 지금의 자리를 잃을 수도 있지만, 그로 인해 결국 동정론이 생겨난다. 용서받을 여지가 생기는 것이다. 거짓말은 용서의 가능성을 미리 막아버리는 최악의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왜 정치인과 연예인들은 자꾸 거짓말을 선택하는 것일까.

너무 당황해서 순간적으로 판단력이 흐려졌을 수 있다. 찔리는 구석이 많아 아예 전면 부정부터 하고 보는 심리도 있다. 원래부터 새빨간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이 정치를 하고, 또 거짓 공약 등 거짓말이 몸에 뱄기 때문에 위기의 순간에 평소 습관이 나온 것일 수도 있다. 연예인의 쇼 비즈니스 세계도 실체보단 이미지가 중요한 거짓의 구조다. 또 과거엔 거짓말을 해도 사실이 잘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믿는 구석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곳곳에서 진실이 터져 나오는 디지털 시대다. 언제 어디에서 증언이나 영상이 나올지 알 수 없다. 일단 나오면 인터넷에 걷잡을 수 없이 퍼지기 때문에 주워 담을 수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거짓말은 너무나 위험한 도박이 되었다. 잠깐 질타받고 끝날 일이 정치생명, 연예인 생명을 걸어야 하는 상황으로 폭주한다. 이젠 ‘진실이 결국 정도’라는 소박한 원칙으로 돌아가야 할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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