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 ‘만선’의 기쁨 언제였던가
  • 김진령 기자 (jy@sisapress.com)
  • 승인 2015.04.30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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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사 이래 최대 위기…실적 줄고 노사분규까지

현대중공업은 기사회생할 수 있을까. 2011년 4월 주당 55만원대까지 치솟았던 현대중공업의 주가는 지난해 10월 말 9만원대로 추락했다. 코스피 지수 2200 돌파를 목전에 둔 요즘 같은 활황장에도 15만원대 밑에서 횡보하고 있다. 한때 세계 조선업계 1위로 국내 증시를 이끌던 현대중공업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지난해 현대중공업은 쇼크라고 볼 수밖에 없는 성적표를 냈다. 현대중공업의 지난해 매출액은 23조4600억원. 2012년 25조550억원, 2013년 24조2800억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매출이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문제는 영업이익이다. 2013년 7300억원이던 영업이익이 지난해는 1조9200억원의 손실로 급락했다. 당기순손실도 1조7500억원대에 달한다. 더 큰 쇼크는 관계사와 연결된 연결재무제표에서 영업손실액이 무려 3조2500억원을 기록하고 당기순손실은 2조2061억원에 달했다는 점이다.

울산의 현대중공업 조선소는 세계 최대 규모다. 하지만 선박 건조 실적은 더 이상 세계 1위가 아니다. ⓒ 연합뉴스
이런 천문학적인 손실의 원인은 저가 수주다. 일감 확보나 매출 규모 유지를 위해 낮은 가격에 수주를 했던 게 발목을 잡은 것이다. 이는 세부 항목에서도 확인된다. 주력인 조선 분야에서의 영업손실이 1조8960억원이고, 플랜트에서 1조1308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현대중공업의 두 주력 분야라고 할 수 있는 곳에서 큰 손실을 입은 것이다. 그나마 전기·전자나 금융, 정유 분야에서 영업이익을 냈지만 조선·플랜트 같은 주력 분야에서의 손실 규모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지난해 10월 10만원대 밑으로 주가가 주저앉은 것은 시장이 현대중공업의 실적이나 미래 가치를 비관적으로 보고 있다는 뜻이다.

오너 정몽준,  ‘믿을 맨’ 두 명 긴급 투입

현대중공업도 이런 실적 악화와 위기 도래를 알고 있었다. 지난해 2분기에 1조1000억원이 넘는 손실을 기록하며 1972년 창사 이래 최악의 적자를 내자 지난해 8월 ‘올드보이’ 최길선 전 현대중공업 사장(69)을 5년 만에 다시 회장으로 불러들였다. 최 회장은 서울대 조선공학과를 졸업한 후 1972년 현대중공업에 입사해 현대중공업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인물이다. 현대중공업이 공정 관리 실패와 납기 지연으로 큰 손실을 입자 비상 경영을 선언하고 검증된 경영인을 다시 쓴 것으로 풀이된다. 이어 9월에는 정몽준 현대중공업 대주주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권오갑 현대오일뱅크 사장을 그룹 기획실장 겸 현대중공업 사장에 임명했다. 권 사장은 정몽준 전 의원 옆에서 축구 관련 일을 오래 해오다 2010년부터 현대오일뱅크 사장으로 근무했다. 현대오일뱅크가 권 사장 부임 이후 4개 정유회사 중 유일하게 2분기 연속 흑자를 기록하는 등 좋은 실적을 올리면서 그의 경영 능력이 부각되기도 했다.

이 두 명의 구원투수는 오너인 정몽준 전 의원을 대신해 현대중공업을 구원할 수 있을까. 유휴 자산 매각, 수주 물량 확보, 노조와의 단체협상 등 난제가 많다.

일단 유휴 자산 매각은 순조로워 보인다. 지난해 11월 한전기술·KCC 등 보유 지분을 매각했다. 지난 2월에는 현대상선 유상증자 불참을 결정했다. 쌓아둔 돈을 바탕으로 ‘주식 투자’에 나서던 지난 몇 년간의 행보와는 사뭇 다른 움직임이다.

문제는 오너인 정몽준 전 의원의 의중이다. 증권가에서는 현대중공업그룹이 보유하고 있는, 2조원대에 달할 것으로 보이는 범(汎)현대가 지분을 현대중공업이, 더 정확히는 오너가 매각할 것인지 여부를 지켜보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지난 몇 년 동안 현정은 회장이 이끄는 현대그룹과 지분 싸움을 벌였다. 현대중공업은 현대상선(21만7000주)·현대엘레베이터(2300만주) 등 현대그룹 주력 계열사 지분을 매입하는 등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측의 경영권을 견제하는 범현대가 컨소시엄의 주력 부대로 활약했다. 하지만 지난 2월 현대중공업은 현대상선 증자에 불참함으로써 현정은 체제의 현대그룹을 더 이상 흔들 재력이 없음을 보여줬다.

현대중공업은 현대그룹 계열사 주식을 고정자산처럼 들고 있어야 하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증권가에서는 현대그룹 계열사 주식을 최악의 상황을 맞이한 현대중공업이 계속 들고 있어야 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 

또 다른 난제는 노사 문제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권 사장 취임 두 달 만인 지난해 11월 파업을 단행해 현대중공업 19년 노사 무분규 기록이 깨졌다. 2014년 임단협은 파행 끝에 지난 2월 타결됐지만 2015년 임단협을 놓고 벌써부터 파열음이 들리고 있다. 노조 측에서는 ‘지난 1월 과장급 이상 사무직 노동자 1000여 명의 ‘희망퇴직’에 이어 3월에는 사무직 여성 노동자 160여 명이 희망퇴직하고 최근에는 희망퇴직하지 않은 사무직 여성 노동자를 대상으로 CAD 교육을 실시하려고 하는 등 일방적인 강제 구조조정을 시행하고 있다’며 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정몽준 현대중공업 오너가 실적 악화, 노사분규 등으로 고민에 빠졌다. ⓒ 시사저널 이종현
방위사업 비리 수사도 변수

방위사업 비리에 현대중공업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도 경영진이 풀어야 할 숙제다. 현대중공업은 지난 2월 해군 잠수함 부실 평가 비리 의혹으로 방위사업 비리 합동수사단의 압수수색을 받은 데 이어 4월 들어 2차 압수수색을 당했다. 

게다가 지난 1분기 수주 실적이 30억1700만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59억4900만 달러의 절반에 그치는 등 매출 실적이 좋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실적 악화, 노조와의 마찰, 방위사업 비리까지 더해지면서 현대중공업은 총체적인 난국을 맞이한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더 이상 실적이 악화되지는 않을 것이란 예상이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조선·중공업 담당 애널리스트인 김현 신한금융투자연구원은 “현대중공업의 조선 부문이 3분기에 흑자 전환할 것으로 예상되고 해양 부문도 연중 흑자 전환하는 등 4분기부터는 실적 개선이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올해 현대중공업의 목표는 매출 24조3259억원, 수주액 220억5000만 달러다. 오너인 정 전 의원이 구원투수로 투입한 두 명의 ‘믿을 맨’이 현대중공업을 되살려낼지, 아니면 1988년 이후 국회의원 등 정치인으로 활동해온 정 전 의원이 경영 일선에 복귀해야 하는 화급한 상황이 올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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