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구·이순형 ‘맑음’ 권오준·장세주 ‘흐림’
  • 이석 기자·정태선│이데일리 기자 ()
  • 승인 2015.04.30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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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의 동국제강·포스코 수사 등으로 철강업계 희비 갈려

‘설상가상’이다. 국내 대표 철강기업들이 사정 당국의 날 선 수사 압박에 휘청거리고 있다. 업계에서는 전방 산업 부진으로 인한 수요 감소와 중국발 저가 수입재 공세에 시달리는 가운데 ‘검풍(檢風)’까지 몰아치면서 국내 철강산업 부진이 장기화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발단은 철강업계 1위인 포스코에서 시작됐다. 정부가 부정부패 척결 의지를 강조한 직후 포스코는 검찰 수사 대상 첫머리에 이름을 올렸다. 권오준 포스코 회장이 표적은 아니지만, 현직 회장인 데다 수사가 장기화되면 그룹 전반에 경영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로 검찰 수사는 현재 포스코의 ‘최고 윗선’까지 바짝 다가선 모양새다. 검찰은 조만간 정동화 전 포스코건설 부회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비자금 조성 경위와 사용처를 확인할 방침이다. 정 전 부회장 소환조사는 정준양 전 포스코 회장뿐 아니라 포스코그룹 전체로 수사를 확대할지를 가름할 분수령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이순형 세아그룹 회장, 권오준 포스코 회장,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 ⓒ 시사저널 이종현·최준필·뉴스1
포스코 수사 ‘최고 윗선’까지 다가가

4월 초 갑자기 몰아친 ‘성완종 리스트’ 파문으로 포스코 수사가 잠시 뒷전으로 밀려나는 듯싶었다. 하지만 검찰 수사는 곧바로 업계 3위인 동국제강으로 옮아갔다. 검찰은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이 미국 도박판에서 수십억 원을 땄다는 내용의 미국 금융정보 당국의 자료를 넘겨받아 공조 수사를 해왔다. 장 회장은 결국 검찰 소환조사에 이어 구속될 상황까지 내몰리고 있다.

검찰의 레이더에 포스코와 동국제강의 비리 혐의가 걸린 것을 두고 단순히 부정부패 척결 차원으로 보는 시각은 많지 않다. 재계 한 관계자는 “포스코와 동국제강에 대한 검찰 수사 진행 과정은 국세청 세무조사 및 기업의 내사가 이뤄진 사안이고, 수사 또한 기업 수뇌부를 향하고 있다는 데 상당한 공통점이 있다”고 말했다.

포스코는 제철소 출범을 포항에서 시작했고 본사 또한 포항이다. 동국제강도 전체 생산량의 약 70%를 포항공장에서 담당한다. 두 기업의 주 무대가 이명박(MB) 정권 당시 실세로 통하던 ‘영·포(영일·포항) 계열’의 안방인 셈이다. 이 때문에 MB 정부 인사를 겨냥한 수사라는 얘기가 수사 초기부터 흘러나왔다. 포스코가 MB 정권 시절 여러 기업을 인수해 몸집을 부풀렸고, 이 과정에서 탈세 혐의와 부실 기업 인수 등의 문제가 많았을 것으로 보고 검찰이 타깃으로 삼았다는 것.

특히 검찰 소환이 임박한 것으로 알려진 정준양 전 포스코 회장은 대표적인 ‘MB맨’이다.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도 지난 2007년 12월 말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첫 대기업 총수 회동에 참석한 것을 비롯해 2008년 대통령 브라질 순방에도 동행하는 등 MB 정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검찰은 비자금 수사를 함께 받고 있는 포스코와 동국제강의 해외 연결 지점인 브라질 제철소 사업에 대해 현재로선 수사 대상이 아니라고 선을 긋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수사 대상을 예단하기 쉽지 않은 상황인 데다 브라질 제철소는 투자 규모가 크다. 비리가 있다면 베트남 건설 사업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일 것으로 업계에서는 보고 있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업계 맏형인 포스코에 이어 3위인 동국제강까지 검찰 수사를 받게 되면서 다음 타깃이 누가 될지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며 “포스코나 동국제강의 경우 재무 구조 개선이 시급하고, 현재 브라질 제철소 등 규모가 큰 사업이 막바지 단계에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검찰 수사에 따른 후폭풍은 예상 외로 심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대제철이나 세아제강은 검찰 수사로 반사이익을 보게 됐다. 경쟁사들이 검찰의 파상공세로 어려움을 겪는 동안 전열을 정비해 후계 구도를 구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현대제철 이사회는 4월8일 이사회를 열어 현대하이스코 합병안을 의결했다. 5월28일 주주총회 승인을 거쳐 7월1일까지 합병을 마무리한다는 방침이다.

재계에서는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의 숙원 사업인 일관제철소 건설이 마무리되자마자 M&A(인수·합병)에 나선 것에 주목한다. 현대제철은 2013년 현대하이스코의 냉연 부문을 합병했고, 올해는 동부특수강과 단조 제품 전문 업체인 SPP율촌에너지를 잇달아 인수했다. 이번 합병으로 현대제철의 자산과 매출은 각각 31조원과 21조원으로 커지게 됐다. 1위인 포스코와의 격차가 그만큼 줄어들게 되는 셈이다. 이런 움직임의 배경을 두고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의 경영 승계를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현대제철 경영은 그동안 정몽구 회장이 주도해왔다. 2012년 3월 정의선 부회장이 현대제철 사내이사 및 품질총괄로 신규 선임됐다. 이듬해 정 회장이 현대제철 등기임원에서 물러났다. 박승하 현대제철 부회장도 같은 해 물러나면서 정 부회장의 입김이 더욱 강해지게 됐기 때문이다.

세아그룹 이태성·이주성 공동 경영 체제 가나

물론 정 부회장은 현재 현대제철 지분을 전혀 보유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향후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현대제철의 경영 성적은 호의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재계 관계자는 “이건희 삼성 회장이 쓰러지면서 이재용 부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섰을 때도 e-삼성 문제가 거론됐다”며 “향후 정의선 부회장 승계가 본격화되면 정 부회장의 경영 능력이 도마에 오르는 상황을 염두에 뒀을 수 있다”고 말했다.

세아그룹 역시 최근 승계 작업의 고삐를 바짝 죄고 있다. 재계 40위권인 세아그룹은 몇 년 전까지 장남인 이운형 회장과 차남인 이순형 부회장이 형제 경영을 펼쳐왔다. 2013년 3월 이운형 전 회장이 타계하면서 후계 구도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이순형 부회장이 회장으로 승진하면서 주력 계열사인 세아제강과 세아베스틸 경영을 맡았다. 이 전 회장의 부인인 박의숙 세아네트웍스 대표 또한 세아네트웍스 회장과 세아홀딩스 부회장으로 승진해 그룹의 한 축을 이뤘다.

하지만 장기적인 밑그림은 이순형 회장의 장남인 이주성 세아제강 전무와 박의숙 부회장의 장남인 이태성 세아홀딩스 전무에게 맞춰져 있다. 이들은 지난해 말 인사에서 전무로 승진했다. 주력 계열사 지분도 경쟁적으로 매집해왔다. 현재는 그룹 주력 사업인 특수강과 강관·판재 사업의 일선에 배치돼 경영 수업을 받고 있다. 올해부터는 투자를 전문으로 하는 세아R&I와 세대에셋의 대표이사까지 맡으면서 사촌형제간 공동 경영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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